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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0년 2월 22일 창간한 <오마이뉴스>가 올해로 18주년을 맞았습니다. 15주년도, 20주년도 아닌, 18주년에 얼마나 특별한 의미를 부여할 수 있겠습니까만, 사람으로 치면 18살인데요. '소년도 청년도 아닌 경계선에서 혼란스러운 시간을 보내고 있지만, 꿈을 포기하지 않은 나이'라고 생각합니다. 18살 오마이뉴스가 18년째 무언가를 하고 있는 동갑내기 친구를 찾아가 질풍노도의 시절을 함께 공감하고 꿈과 희망에 관해서 얘기 나눴습니다. 이 인터뷰는 그 첫번째입니다. [편집자말]
 ‘대한민국 1호 오지레이서’ 유지성 런엑스런 대표. 4대 사막(사하라, 고비, 아타카마, 남극)을 달리는 그랜드 슬램을 세계 최초로 두 차례나 달성했다. 세바시(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 등 각종 강연을 다니며 ‘꿈 전도사’로 활동했다.
 ‘대한민국 1호 오지레이서’ 유지성 런엑스런 대표. 4대 사막(사하라, 고비, 아타카마, 남극)을 달리는 그랜드 슬램을 세계 최초로 두 차례나 달성했다. 세바시(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 등 각종 강연을 다니며 ‘꿈 전도사’로 활동했다.
ⓒ 유지성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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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회? 왜 없었겠나. 나름 열심히 한 것 같은데 통장 보면 맨날 빚이다. 계속 돈 갚으라고 연락 오고... '내가 이걸 왜 하고 있나' 싶더라. 힘들 때마다 18년 전 처음 사막을 달리기 시작했을 때의 마음을 떠올린다."


인터뷰 내내 생기 넘치던 유지성 런엑스런 대표(47)의 목소리가 차분히 가라앉았다.

지난 2000년 다니던 건축회사를 그만두고, 막연한 동경으로 사막을 달리기 시작했다. 사막 다음엔 정글, 정글 다음엔 남극... 그렇게 전 세계 오지만 찾아다니며 달린 덕분에 '대한민국 1호 오지레이서', '사막의 아들'로 불린다. TV, 라디오에 여러 차례 출현했고, 책도 몇 권 냈다. 각종 강연을 다니며 '꿈 전도사'라는 명예도 얻었다. 화려한 이력을 나열하다 보면 와~ 하는 탄성이 절로 난다. 그렇게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는 뒤에 맺혀있는 쉰내 나는 땀방울을 감추곤 한다.

유지성 대표의 두 눈이 허공에 꽂혔다. 그는 여전히 끝이 보이지 않는 자신만의 사막을 18년째 달리고 있는 듯했다.

이명박근혜 정부가 트레일러닝 붐에 공헌하다

한파가 살짝 물러선 지난 8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서교동의 한 주택가. 몇 번이고 지도앱을 들여다보며 런엑스런 사무실 간판을 찾았지만, 보이지 않았다. 유 대표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다. 그의 안내에 따라 오래된 빌라 반지하 문을 열고 들어섰다. 20평 남짓 가정집을 사무실로 개조해서 사용하고 있었다.

간판은 없지만, 런엑스런은 국내 최초·최대의 트레일러닝&오지레이스 커뮤니티다. 2001년 사하라사막 레이스 정보 공유 사이트로 시작해 2011년부터 본격적인 커뮤니티 그룹으로 전환, 회원 수도 7000명이 넘는다. 한국 참가자들의 국제 대회 신청 및 접수, 관리, 훈련, 교육 등 모든 총괄 업무를 진행한다.

트레일러닝은 말 그대로 "포장된 도로를 벗어나 모든 길을 달리는 것"이다. 어드밴처 레이싱, 오지 마라톤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렸던 트레일러닝은 이미 유럽과 미국, 일본 등에서는 대중적인 스포츠로 자리잡았다. 2012년 국제트레일러닝협회(ITRA) 출범 후 용어, 규정 등의 세분된 통합작업을 거치며 국제적 표준을 세웠다. 최근에 불어닥친 전 세계적인 트레일러닝 붐과 열기에 힘입어 대회의 수가 해마다 폭발적으로 늘었고, 현재 세계적으로 3만 개 이상의 대회가 개최되고 있다. 이에 따라 트레일러닝 시장의 규모도 매년 급속도로 성장 중이다.

한국의 경우, 런엑스런이 2015년 'KOREA 50K 국제 트레일러닝 대회'를 개최하면서 본격적인 해외 무대로의 도전과 경쟁이 시작됐다. 지난해 열린 3회 대회에는 외국 선수 25개국 220여 명, 내국 선수 880여 명이 참가하는 등 국내 트레일러닝 대회 중 최고의 대회로 성장했다. 오는 4월 21일 경기도 동두천에서 제4회 대회가 열린다. (신청: www.korea50k.com)

 트레일러닝은 포장된 도로를 벗어나 산 길, 마을 길, 공원 등 모든 길을 달리는 아웃도어 스포츠다.
 트레일러닝은 포장된 도로를 벗어나 산 길, 마을 길, 공원 등 모든 길을 달리는 아웃도어 스포츠다.
ⓒ 유지성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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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만 명으로 추산되는 국내 마라톤과 조깅 인구의 관심이 트레일러닝으로 옮겨지면서 관련 산업도 주목받고 있다. 유 대표는 "KOREA 50K는 국내에 본격적인 트레일러닝 시장을 열었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대회"라고 말했다.

"국제적으로 통용될 수 있는 표준화 된 국내 대회가 만들어지면 그와 관련한 시장이 생기게 된다. 다행스럽게 국내 아웃도어 시장이 정점을 찍고 확 내려간 시점에 트레일러닝 붐이 일면서 대체시장으로 진입하는 단계까지 왔다. 2015년에 미미한 수준의 시장이 형성됐고, 작년을 기점으로 도약할 수 있는 기반이 확립됐다."

유 대표에 따르면, 기존의 마라톤하던 사람들, 등산하던 사람들이 트레일러닝으로 넘어오기 시작했다. 사실 트레일러닝은 마라톤과 등산의 장점만 뽑아서 섞어 놓은 것 같다는 느낌을 받는다.

"마라톤이나 등산에 질린 거다. 그에 비하면 트레일러닝은 새롭다. 예를 들어 마라톤은 죽으라고 아스팔트 깔린 자동차 도로만 달렸는데, 트레일러닝은 산도 뛰고 들판도 뛰고, 힘들면 뛰다가 옆 사람과 얘기하면서 걷는 모습이 재미있어 보이는 거다. 산을 막 뛰어다니는 모습을 보고 '미친 거 아냐?' 그러다가 '나도 해볼까?'... 그렇게 트레일러닝을 하게 되는 것이다."

유 대표는 특히 트레일러닝 문화가 20~30대 젊은 층을 중심으로 형성되고 있는 점을 주목했다. 마라톤은 악으로 깡으로 달리는 헝그리정신을 강조하지만, 트레일러닝은 장비의 비주얼 등이 화려해 젊은 세대와 잘 맞는다는 것이다. 화려한 스포츠는 당연히 비용도 많이 든다.

"럭셔리까지는 아니지만, 적어도 자기 자신을 위해서 이 정도는 쓸 수 있다 할 정도의 비용을 써야 한다. 예를 들어 마라톤은 10만~20만 원이면 다 되지만, 트레일러닝은 약 100만 원 정도는 써야 제대로 장비를 갖춘다. 그렇게 한번 돈을 쓴 사람은 새로운 브랜드나 모델이 나오면 계속 돈을 쓴다.

이게 지난 두 정부(이명박-박근혜 정부)와도 연관이 깊다. 두 정부를 거치면서 젊은 사람들 사이에 확실히 '3무(無)'가 정착됐다. 집 안 사고, 결혼 안 하고, 애 안 낳고... 그렇게 해서 남은 돈을 자기를 위해서 쓴다. 자기 자신을 위한 투자를 통해 즐거움을 찾는 것이다."

취미가 비즈니스가 된다는 것... 관건은 누구를 만나느냐

18년 전 처음 사막을 달릴 때부터 트레일러닝은 유 대표에게 단순 취미가 아닌 사업이었다. 무작정 사막을 달리고 싶어 관련 정보를 찾았지만, 국내에는 전혀 없었다. 국제대회 주최 측이나 외국인 선수를 직접 찾아다니며 정보를 구했다. 그 과정에서 해외에선 이미 트레일러닝 산업화가 시작됐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 뒤로 유 대표는 국내 트레일러닝 대중화와 시장 개척에 나섰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당시 국내에는 트레일러닝 관련 정보나 샘플 자체가 없었다. 그래서 '내가 샘플이 돼 버리자. 나 다음에 하는 사람들은 나처럼 고생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역시 해보니까, 그 다음부터는 현실이지 않나. 안 되는 거다. 뭐가 있어야 하지."

 '대한민국 1호 오지레이서' 유지성 런엑스런 대표가 사막을 달리는 모습.
 '대한민국 1호 오지레이서' 유지성 런엑스런 대표가 사막을 달리는 모습.
ⓒ 유지성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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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 오지를 찾아다니며 30여 회가 넘는 대회에 참가하면서 트레일러닝 관련 노하우를 습득한 유 대표는 2009년 본격적으로 국내 대회를 만들려고 시도했다. 하지만 시장성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아직 아니구나..." 일단 국내 대회를 포기한 유 대표는 대신 스포츠 관련 업체에 들어가 영업을 하면서 유통을 배우고, 브랜딩을 공부했다. 나름 성과도 있었다. 유 대표가 만든 브랜드가 시장에서 인정받은 것이다. 그렇게 영업과 마케팅을 배우면서 내실을 다졌다.

그러면서도 "외국은 다 있는 시장이 왜 한국에만 없겠는가, 언젠가는 국내 대회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잃지 않았다. 조금씩 국내 대회를 만들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갔고, 기회가 왔다. 첫 번째가 소셜네트워크의 활성화였다.

"2010년부터 소셜이 막 활성화되더라. '아, 이제부터 콘텐츠가 먹히겠구나' 생각했다. 그래서 본격적으로 (트레일러닝 관련) 정보를 사람들과 더 나누기 시작했다. 이전에는 정보를 나누는 채널이 (블로그나 오마이뉴스 기사 등으로) 상당히 제한적이었지만, 소셜이 활성화되면서 다방면으로 정보가 퍼지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더 많이 알게 되고, 일을 같이하게 되고, 그런 식으로 같이 만들어가게 되더라. 2012~2013년부터 확실하게 국내에서도 붐 조성이 됐다."

유 대표가 국내 대회를 만들어낼 수 있었던 두 번째 여건은 바로 사람이었다. 18년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 동안 트레일러닝만 생각하며 달려온 유 대표가 시련을 통해 얻은 교훈이기도 하다.

"취미는 취미로 끝내야 한다. 취미가 비즈니스가 되면 남들이 볼 땐 되게 좋아 보이는데, 실제 당사자는 행복하지 않을 수 있다. 너무 힘드니까. 어느 시점이 되면 그다음에는 혼자 못한다. 그때 누구를 만나느냐가 굉장히 중요하다. 나는 그나마 운이 좋아서, 정말 좋은 사람들을 만났다. 그 다음부터는 그 사람들이 키우는 것이지, 나의 능력이 아니다. 나는 남이 안 간 길에 첫 번째 깃발을 꽂고 '이런 게 있습니다' 하는 거고, 그 다음부터는 옆에 있는 사람들이 만드는 것 같다."

 ‘대한민국 1호 오지레이서’ 유지성 런엑스런 대표(오른쪽)는 ‘KOREA 50K 국제 트레일러닝 대회’를 개최하면서 국내 트레일러닝 대중화와 시장 개척을 본격화하고 있다. 유 대표는 장지윤 총괄디렉터(가운데), 김영록 총괄매니저(왼쪽)를 만나서 함께하지 못했다면 이 모든 게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말한다.
 ‘대한민국 1호 오지레이서’ 유지성 런엑스런 대표(오른쪽)는 ‘KOREA 50K 국제 트레일러닝 대회’를 개최하면서 국내 트레일러닝 대중화와 시장 개척을 본격화하고 있다. 유 대표는 장지윤 총괄디렉터(가운데), 김영록 총괄매니저(왼쪽)를 만나서 함께하지 못했다면 이 모든 게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말한다.
ⓒ 최경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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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지윤(42) 런액스런 총괄디렉터가 유 대표와 함께 일을 시작한 것은 2012년부터다. 마라톤에 도전하기 위해 자료 조사를 하다가 트레일러닝을 알게 됐다고 한다. 그도 사하라 사막을 시작으로 3번이나 사막 레이스를 완주했다. 원래 아트디렉터·디자인 일을 하던 장 디렉터는 이제 런액스런에서 없어서는 안 될 핵심 구성원이다. 그가 말하는 트레일러닝의 가장 큰 매력은 자연이다.

"전 세계적으로 볼 때, 자연경관이 뛰어나다고 알려진 곳은 전부 트레일러닝 대회가 있고, 계속 생기고 있다. 나도 달리기는 되게 안 좋아하는데, 자연과 함께한다는 경험 때문에... 그걸 경험하면 중독성이 생긴다. 자연이 있는데 또 거기에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과 같이 달리며 나누는 문화를 경험하는 게 굉장히 중요하다. 국내에서 작은 이벤트를 만들어 사람들이 어느 정도 비슷한 경험을 하게 했더니, 굉장히 즐거워하더라. 그럴 때 보람을 느꼈고..."

현재 전자공학을 전공하고 있는 대학생 김영록(27) 총괄매니저는 지난 2016년 국토대장정에 나섰다가 우연히 트레일러닝 포스터를 발견했다. 사막에서 뛰는 사람들을 보고 "내가 살면서 언제 사막을 가 보겠나"하는 심정으로 무작정 유 대표를 찾아갔다.

"마라톤은 기록 싸움이기 때문에 옆 사람과 말하기도 힘들지만, 트레일러닝은 끝까지만 가면 된다. 걸어도 되고, 자연도 즐길 수 있다. 걸으면서 정말 특이한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같이 사진도 찍고, 얘기하면서 서로 알게 되고... 그런 것을 통해서 좋은 에너지를 많이 받았다."

"오마이뉴스... 뭔가 재수 없다"

유지성 대표는 2006년부터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 활동하고 있다. 주로 사막, 남극 등 오지에서 진행된 트레일러닝 대회 참가기를 쓰거나 관련 정보를 소개했다. 지금까지 51건의 기사를 썼고, 그중 7건이 톱기사에 오를 만큼 반응도 좋았다. 2008년엔 '이달의 새뉴스게릴라상'도 받았다. 트레일러닝을 더 많이 알리기 위해 시민기자를 시작했다는 그는 요즘엔 "게을러져서" 글을 잘 안 쓴다고 했다. 더 본질적인 이유가 있을 것 같아 재차 다그쳤더니, 여지없이 따끔한 질책이 쏟아진다.

"오마이뉴스가 처음에는 나름 신선한 게 있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기존의 언론과 차별화를 못 느끼겠다. 덩치만 엄청 커지고, 더 보수화되고, 느려지고, 외부에서 날카롭게 바라보는 제3자의 이야기를 귀담아듣지 않고, 주관적이고 독자적으로 하는 것들이 눈에 보이면 구독자나 초반에 함께 했던 사람들이 떨어져 나간다. 변화도 필요하지만, (독자와의) 공감대 형성이 되는 변화가 있어야 같이 발전하는데... 뭔가 재수 없다. '그렇게 잘 나가냐? 그럼 너희들끼리 해!' 그렇게 독자들이 방관하게 된 것 같다. 물론 오마이뉴스도 여러 가지 사정들이 있겠지만, 기성 언론화됐다는 느낌을 너무 많이 받게 된다."

유 대표는 "야구나 축구 같은 주류 스포츠 말고, 변방에서 잘 주목받지 못하는, 그러나 마니아 시장이 형성돼 있는 아마추어 스포츠를 공략하면 좋을 것 같다"면서 "이제는 남들이 하는 것은 다 빼고 남들이 하지 않는 것을 해야 오마이뉴스도 활성화될 것"이라고 애정 어린 조언도 덧붙였다.

 '대한민국 1호 오지레이서' 유지성 런엑스런 대표가 남극을 달리는 모습.
 '대한민국 1호 오지레이서' 유지성 런엑스런 대표가 남극을 달리는 모습.
ⓒ 유지성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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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친김에 꿈을 향해 달려가는 청년들에게도 한 마디 부탁했다. '꿈 전도사'로 강연장을 도는 유 대표이기에 뭔가 의미심장한 말이 나올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그의 답변은 의외였다.

"꿈팔이는 사기꾼이다. 제 앞가림도 못 하는데 남들한테 이래라저래라 하는 것도 웃기고..., 이제 겨우 하나하나 만들어가는 단계다. 이제부터 고민이다. 외형적으로 보이는 것과 내실은 전혀 다르다. 깨지기도 하고 잘 되기도 하는 건데, 자꾸 잘 된 모습만 보여주려고 한다. 우리 사회는 영웅을 원하는데, 영웅은 없다. 같이 만들어가는 세상이 더 아름답다. 누구 한 사람의 말에 쏠리기보다는 더 많은 사람에게 기회를 줘서 함께 잘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사막을 달리며 홀로 고된 시간을 견뎌왔던 그에게 이젠 함께 뛰며 어깨 걸어줄 든든한 동료들이 생겼다. 그 사이 세월의 무게를 감당해낼 만큼 두 다리도 더 단단해졌다. 어찌 보면 이제 막 출발선을 벗어났는지도 모른다. 동갑내기 오마이뉴스도 마찬가지다. 든든한 동료도, 견제자도, 체력도 생겼다.

이제 본격적인 레이스가 시작된 셈이다.



[창간 기획 - 18세 오마이뉴스가 18세 동갑내기에 묻다]
② 18년 차 활동가 참여연대 최인숙 "촛불정권... 언제까지 이 말 가능할까요?"
③-1 이인영의 정치 18년 "민주주의 신인류에 맞는 헌법 만들어야"
③-2 이인영의 정치 18년 "이재명의 사이다 발언, 나는 왜 못하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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