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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소박한 절집이라 민가처럼 느껴집니다. 이래뵈도 화엄성지 김제 모악산 귀신사에는 부처 네 분이 계셨습니다.
 참 소박한 절집이라 민가처럼 느껴집니다. 이래뵈도 화엄성지 김제 모악산 귀신사에는 부처 네 분이 계셨습니다.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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畵虎畵皮難畵骨 (화호화피난화곡)
知人知面不知   (지인지면부지)

명심보감에 나오는 말입니다. 이는 큰스님들께서 법문하실 때 종종 인용하시는 말씀입니다. 뜻은 호랑이를 그릴 때 가죽은 그릴 수 있으나 뼈는 그리기 어렵고, 사람은 알되 얼굴을 알지만 마음은 알 수 없다는 의미입니다. 쉽게 말하면 사람 마음은 알 수 없다는 겁니다. 천길 물속은 알아도 사람 마음은 모른다는 이치지요. 그래서 종종 뒤통수 맞는 사람들이 생기는 게지요. 그렇지만 세상에 좋은 사람도 많다는 걸 알면 이미 도인이지요.

'번뇌'란 흐르는 생각을 붙잡는 순간 생기는 '망상'

모악산 귀신사는 그 흔한 일주문도 없어 계단을 오르니 바로 대적광전입니다. 소박함에 반했습니다.
 모악산 귀신사는 그 흔한 일주문도 없어 계단을 오르니 바로 대적광전입니다. 소박함에 반했습니다.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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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 잘 지내세요?"
"김제 금산사에서 봐요."

'짜장 스님'으로 알려진 운천 스님(전 남원 선원사 주지)과 통화. 그는 이미 스님이되 스님이 아닌, 그렇다고 속인도 아닌 어정쩡한 위치입니다. 왜냐면 '조계종 탈종'을 선언했기 때문입니다. 운천 스님에 따르면 "말이 탈종이지 사실 환계"라며, "환계란 조계종에서 받은 비구계를 다시에 돌려 드리는 것이다"고 합니다. 계가 없으니 비승(非僧)이나, 아직 머리를 기르고 있어 비속(非俗)이라는 겁니다. 이건 뒤에 따로 다루기로 하지요.

암튼, 인사 삼아 건넨 말이 씨가 되었습니다. 아침에 급하게 진행된 번개팅 덕분에 화엄성지 전북 김제 금산사로 향했습니다. 도 닦는다고 3개월 여 동안 절집 순례를 멈춘 탓에 콧바람 쐬는 게 그리웠던 까닭입니다. 아름다운 자연 풍경을 보며 자신을 되돌아보는 성찰의 시간이 필요하기도 했습니다.

인연에 따라 여행길에 올랐습니다. 인간이란 참…. 가다 보니, 없던 번뇌가 생기대요. 상황이 달라지니 예기치 않았던 생각이 일어난 겁니다. '점심은 어디서 먹지?', '뭘 먹을까?', '금산사 공양 간에서 먹을까?', '밖에서 사 먹을까?' 그렇지만 이런 생각 자락을 붙들지 않고, 가만 흐르게 두었습니다. 왜냐하면 인연에 맡기면 그만이니까. '번뇌'란 흐르는 생각을 붙잡는 순간 생기는 '망상'으로 변하니까.

금산사에 가까워질 즈음, 도로 이정표 하나가 도드라졌습니다. 귀신사. '왜 절집 이름을 귀신사로 했을까?'란 궁금증이 일었습니다. 갑자기 안내판 방향으로 핸들을 틀었습니다. 왠지 인연이 닿을 거란 느낌이었달까. 게다가 짜장 스님과 약속 시간에 여유가 있는지라 망설일 필요가 없었지요. 이정표에 그려진 화살표를 따라 움직였습니다. 절인지 민가인지 헷갈린 통에 잠시 헤맸습니다. 바람이 일었습니다.

보물인 모악산 귀신사 비로자나불입니다.
 보물인 모악산 귀신사 비로자나불입니다.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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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극의 고향 떠올린 해탈의 꿈 품은 절집 '귀신사'

귀신사는 '소박'했습니다. 주차 후 계단을 오르니 바로 대웅전. 절집 위용을 자랑하는 그 흔한 일주문조차 없습니다. 거기에서 걸림이 없는 '편안'을 보았습니다. 편안이라 쓰고, '선정'으로 읽어도 될 고요를 엿보았습니다. 으스스한 한글 이름 귀신사는 '돌아갈 귀(歸)'에 '믿을 신(信)'을 쓰고 있대요. 믿으면 돌아갈 수 있다는 궁극의 고향을 떠올린 게지요. 그러니까 절 이름조차 해탈을 꿈꾸는 듯합니다.

귀신사는 엄청난 내공을 속으로 갈무리하고 있습니다. 먼저 귀신사는 신라 676년(문무왕 16년) 의상대사가 창건한 절집입니다. 게다가 보물도 2개나 됩니다. 대웅전인 대적광전(大寂光殿)은 보물 제826호이며, 그 안에 안치된 소조 비로자나 삼불좌상은 보물 제1516호입니다. 문득 내공을 직접 체험하고 싶은 생각이 한 자락 일었습니다. 점심공양, 절집에서 탁발하기로 했습니다. 아침도 쫄쫄 굻은 터라 더욱 간절했습지요.

"(헛기침을 하며) 스님 계십니까?"
"(누가 왔나?)…."

"(더 큰 목소리로) 스님 계십니까?"
"(문이 열림과 동시에) 누구십니까?"
"(의미를 전달하며) 공양 좀 주십시오!"
"(누군데 공양을) 밥이 없는데…."

"(좀 더 간절하게) 점심 공양 좀 주십시오!"
"(난색을 표하며) 어디서 오셨습니까?"
"(좀 더 애절하게) 여수에서 왔습니다."
"(생각에 잠기더니) 잠시 기다리세요."

소통하던 문이 닫힙니다. 막간을 이용해 절집 전체를 눈으로 쓱 훑습니다. 대적광전, 명부전, 돌탑, 요사채, 해우소 등 조촐합니다. 소박함이 덕지덕지 묻어났습니다. 문안에서 도란도란 말소리가 들립니다. 밥이 없는데 어찌할지 상의하는 듯합니다. 멀리서 왔으니 공양을 드리는 게 좋겠다는데 의기투합하길 바랄 뿐! 다시 문이 열립니다.

모악산 귀신사 대적광전은 보물입니다. 절집 내공이 장난 아닙니다.
 모악산 귀신사 대적광전은 보물입니다. 절집 내공이 장난 아닙니다.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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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밥 나눈 마음, 있는 그대로 깨달음인 것을!

"안으로 들어오십시오."

궁하면 통한다더니, 원이 통했나 봅니다. 귀신사에 들른 순간, 비껴갈 인연이 이어진 게지요. 그렇다 치더라도 알 수 없는 사람을 들인 이유가 있겠지요. 방으로 들어서자, 바닥에 요가 깔렸습니다. 무여 스님에 따르면 "요를 깔아야 바닥이 차갑지 않다"고 설명합니다. 절약이 몸에 익었습니다. 비구니 스님 네 분이 생활하는 듯합니다. 주방 쪽에서 소곤거리는 말소리가 들립니다.

"우리가 먹을 밥을 한 그릇 더 나오게 잘 나눠."

아! 뿔! 싸! 자신들이 먹을 밥을 나눠주는, 진정한 보리심입니다. 부처가 어디 따로 있답디까. 이들이 곧 부처입니다. 주방문이 열립니다. 밥값이 필요한 시점. 상을 날리려 움직였더니 가만두랍니다. 비구니 스님 네 분의 한 상차림. 나그네(필자)의 한 상 차림으로 나뉩니다. 볶음밥과 콩나물국에 반찬은 김, 배추김치, 돼지감자 무침, 떡 등 네 가지입니다. 떡은 스님들 드시라고 부러 남겼습니다. 나머지는 게 눈 감추듯 사라졌지요.

"스님, 잘 먹었습니다."

예서, 선승(禪僧)의 게송 하나 읊지요. 다음은 조선시대 서산대사 상좌였던 소요 태능 스님(1562~1649)의 선시(禪詩), 우일(雨日, 비오는 날)입니다.

花笑階前雨 (화소계전우) 내리는 비에 꽃은 웃음 짓고
松鳴檻外風 (송명함외풍) 난간 밖 바람에 소나무 운다
何須窮妙旨 (하수궁묘지) 참선을 해야만 깨닫는가?
玆個是圓通 (자개시원통) 있는 그대로 원만한 깨달음인 것을….


모악산 귀신사 네 분의 부처께서 나눠 주신 점심 공양입니다. 인연이...
 모악산 귀신사 네 분의 부처께서 나눠 주신 점심 공양입니다. 인연이...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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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제 SNS에도 올릴 예정입니다.



태그:#모악산 귀신사, #김제 귀신사, #점심공양, #탁발, #무여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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