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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의 하늘은 맑고 청명했다. 미세먼지 하나 없던 지난 18일(일). 시인 윤동주의 일본 유학 첫 번째 대학이었던 이케부크로 릿쿄대학을 찾아가는 길은 약간 쌀쌀했지만 서울의 혹독한 추위와는 달리 뺨에 스치는 바람 속에서도 봄을 느끼게 했다.    

이날 낮 2시부터 도쿄 릿쿄대학(立敎大學) 예배당에서는 73년전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27살로 숨진 시인 윤동주(1917~1945) 추도식이 열렸다. 2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추도식은 추도 기도와 시 낭송, 특별 강연 등으로 구성돼 오후 6시까지 이어졌다. 

"윤동주를 돌아보며 우리 삶을 생각한다"

윤동주 추도회 접수 윤동주 추도회가 열리는 도쿄 릿쿄대학 성당에 접수하기 위해 긴 줄을 선 일본인들, 오른쪽 건물이 성당 건물
▲ 윤동주 추도회 접수 윤동주 추도회가 열리는 도쿄 릿쿄대학 성당에 접수하기 위해 긴 줄을 선 일본인들, 오른쪽 건물이 성당 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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릿쿄대학 성당 윤동주가 다녔던 릿쿄대학 성당 추도회 모습
▲ 릿쿄대학 성당 윤동주가 다녔던 릿쿄대학 성당 추도회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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릿쿄대학은 북간도 출신인 윤동주 시인이 1942년 2월 말 일본에 건너와 10월까지 8개월 동안 문학부영문과 학생으로 공부하던 곳이다. 이후 윤동주는 교토 도시샤대학(同志社大學)으로 편입하기까지 이 대학 캠퍼스에서 '쉽게 씌어진 시(1942.6.3.)'를 비롯해 5편의 시를 남겼다.  

이날 릿쿄대학 성당에서 열린 '2018 시인 윤동주와 함께'(詩人尹東柱とともに) 추도회는 윤동주를 기념하는 릿쿄 모임(詩人尹東柱を記念する立教の会, 대표 야나기하라) 주최로 일본인들의 추도행사였다. 올해로 11년째를 맞는 행사는 2부로 나뉘어 1부는 추도기도와 윤동주 시 낭송으로 꾸며졌다.

1부 추도기도는 김대원 사제(司祭, 릿쿄대학 성직자) 주관으로 진행됐다. 그는 추도회에서 "윤동주 시인은 저항시인이자, 민족시인으로 알려졌지만 이 두 가지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인간미 넘치는 온화한 성품의 소유자이자, 내면이 튼실한 시인이었다. 이제 그의 시는 한국과 일본은 물론 세계 각지에서 사랑받고 있다. 앞으로도 그가 남긴 시를 통해 우리 자신이 어떠한 삶을 살아야 할 것인가를 생각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라는 메시지를 전했다.

김대원 사제  추도 기도회를 집전하는 김대원 사제
▲ 김대원 사제 추도 기도회를 집전하는 김대원 사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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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동주 시 '공상'을 일본어로 낭송한 스즈키유미(앞쪽), 약간 뒤쪽은 한국어 낭송자 이은정씨
 윤동주 시 '공상'을 일본어로 낭송한 스즈키유미(앞쪽), 약간 뒤쪽은 한국어 낭송자 이은정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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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자(이윤옥), 김대원 사제, 니노미야사토시씨.
 기자(이윤옥), 김대원 사제, 니노미야사토시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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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진행된 시 낭송회에서는 윤동주 시인의 대표작인 <별 헤는 밤>을 비롯해 모두 9편의 시가 낭송됐다. 시 낭송은 일본인과 한국인이 번갈아가며 맡았다. 시 낭송 마지막에는 추도회에 참석한 사람 모두가 윤동주 시인이 마지막 소풍을 갔던 교토 우지강변에서 불렀던 <아리랑>을 한국어로 불러 숙연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특히 올해 95세의 나이로 시 낭송에 참가한 가모자와씨는 해마다 추도회에 나와 시낭송을 하는 분으로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손쉽게 씌어진 시>를 낭송해 주목을 받았다.

1부 추도기도와 시낭송이 약 1시간 동안 진행된 뒤 이어진 2부에서는 윤동주 시인과 관련된 특별 강연이 마련됐다. 이날 강사는 윤동주 시를 1984년에 처음으로 일본어로 완역한 이부키고(伊吹鄕, 78세) 씨와 타고기치로(多胡吉郞, 62세)씨의 강연 <시인 윤동주를 둘러싸고(詩人尹東柱をめぐって)>이 예정돼 있었으나 번역자인 이부키고씨의 건강이 좋지 않아 부득이 참석치 못하고 타고기치로(多胡吉郞) 작가만 강연했다.

타고기치로씨는 NHK PD출신 작가로 1995년 한국의 KBS와 공동으로 NHK스페셜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윤동주 - 일본 통치하의 청춘과 죽음>을 제작한 베테랑 윤동주 연구가다. 그는 <생명의 시인 윤동주 -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탄생의 비적(生命の詩人·尹東柱-空と風と星と詩 誕生の秘蹟->을 윤동주 탄생 100주년이던 지난해 2017년 2월 16일에 펴내 일본 사회의 커다란 반향을 일으킨 작가다(이 책은 3월 한국어판으로 한국에서 출간 예정).

이날 타고기치로씨의 강연은 윤동주 시를 번역한 이부키고씨와 윤동주 친동생인 고 윤일주(1927~1985) 선생에 관한 이야기를 중심으로 이어졌다. 강연 도중에는 생전에 형님(윤동주)의 시를 녹음한 고 윤일주 선생의 육성을 듣는 시간을 가져 참석자들에게 잔잔한 감동을 선사했다.

  2부 특별강연을 한 타고기치로 작가
 2부 특별강연을 한 타고기치로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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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윤동주의 초고,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에 관한 자료를 보여주면서 그에 읽힌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윤동주의 초고,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에 관한 자료를 보여주면서 그에 읽힌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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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일주와 윤인석 형님인 윤동주의 일본어 완역본을 들고 기뻐하는 동생 고 윤일주 선생(번역본이 나온 이듬해 1985년 작고)(왼쪽), 윤일주 선생의 아들 윤인석씨가 유족 대표로 인사말을 했다
▲ 윤일주와 윤인석 형님인 윤동주의 일본어 완역본을 들고 기뻐하는 동생 고 윤일주 선생(번역본이 나온 이듬해 1985년 작고)(왼쪽), 윤일주 선생의 아들 윤인석씨가 유족 대표로 인사말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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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이날 강연 중간에는 윤동주 시인의 조카인 윤인석(성균관대 교수, 윤일주 선생의 아들) 교수가 유족 대표로 참석해 "윤동주 시인의 맑고 깨끗한 시어들을 알기 쉬운 일본어로 완역해준 이부키고 선생에게 감사드린다. 번역을 통해 일본인들이 윤동주 시인의 생애와 그가 나고 자란 조국에 대한 역사를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된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 앞으로 국적을 뛰어 넘는 우정을 이어갔으면 한다"라는 인사말과 함께 건강이 안 좋아 강연에 불참한 이부키고씨에게 전하는 편지를 낭독했다.

이날 행사는 '시인 윤동주를 기념하는 릿쿄 모임'의 대표인 야나기하라 야스코씨의 인사말로 마무리됐다. 평생을 윤동주 시인을 연구하고 그를 추모하는 일에 앞장서고 있는 야나기하라 대표는 "지금이야말로 윤동주 시인이 필요한 시기다. 그가 추구하던 '부끄럼 없는 세상을 어떻게 만들어 갈지, 그의 시를 통해 우리가 깨달아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내년 추도회까지 숙제로 남기고 싶다"라고 말했다.

 이날 행사를 주관한 야나기하라 야스코씨.
 이날 행사를 주관한 야나기하라 야스코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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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윤동주 서거 날에 맞춰 도쿄 릿쿄대학 성당에서 거행되는 '윤동주 시인 추도회'를 잘 알고 있던 기자는 언젠가는 성당 무대에서 윤동주 시인을 그리는 시를 낭송해보고 싶었다. 그 바람이 이뤄져 18일 200여 명의 추도객 앞에서 기자는 윤동주의 <별 헤는 밤>을 한국어로 낭송했다. 가슴이 뭉클했다(일본어 번역문 낭송은 배우이자 시인인 마츠오카 미도리 씨가 맡았다).

기자는 이날을 위해 흰 한복을 새로 맞췄다. 그리고 저고리에는 태극무늬, 치마에는 윤동주의 서시를 이무성 한국화가를 통해 직접 붓글씨로 써 받았다. 이러한 기자의 준비를 안 사회자는 시 낭송 전에 '윤동주 시인의 추도회를 위해 특별히 입고 나온 치마저고리는 세상에 단 한 벌 뿐인 옷'이라고 소개해줘 참석자들의 뜨거운 주목을 받았다.

 기자는 <별헤는 밤> 시 낭송을 맡았다. 윤동주의 <서시>를 치마에 써 넣은 한복차림으로 참석자들로 부터 큰 호응을 얻었다.(이무성 화백 글씨와 그림)
 기자는 <별헤는 밤> 시 낭송을 맡았다. 윤동주의 <서시>를 치마에 써 넣은 한복차림으로 참석자들로 부터 큰 호응을 얻었다.(이무성 화백 글씨와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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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문의 주사는 없었다'는 강연 내용... 적절치 않았다

이날 윤동주 시인의 73주기 추도회를 마치고 숙소에 돌아와 원래 강연자였으나 건강상의 이유로 불참한 이부키고씨의 강연 원고(일본어)를 꼼꼼히 읽어봤다. '2018 시인 윤동주와 함께(詩人尹東柱とともに)' 행사 소책자는 모두 38쪽 짜리인데 22쪽에서 26쪽까지가 이부키고씨의 강연 원고였다. 

강연 원고는 윤동주 시인의 일본어판 최초 번역자가 되기까지의 사연인 '시의 마음'과 '의문의 주사는 없었다'(윤동주를 죽게 한 주사를 가르킴) '당신의 마음은?'(번역집을 대하는 동생 윤일주의 마음)의 세 개 주제로 요약돼 있었다.

이 주제 가운데 기자의 눈에 띈 것은 두 번째 주제였다. '의문의 주사는 없었다'라는 단정의 이 제목이 솔직히 거슬렸기 때문에 기자는 이 부분을 읽고 또 읽었다.    

"1945년 2월에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숨진 윤동주의 사인에(死因) 대해 한국 사회에서는 주사에 의한 사망이라는 설이 확산되고 있다. 그러나 증거는 없고 이것은 잘못 전해진 것이다. 당시 전염병 등 예방주사가 실시되었다는 문서는 남아있으나 이러한 잘못된 사실이 확산 되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2018 시인 윤동주와 함께(詩人尹東柱とともに), 소책자 23쪽 아래 부분>

이부키고 씨의 강연 요지집  이부키고 씨의 강연 요지집 23쪽에 '의문의 주사는 존재하지 않았다'는 제목 부분
▲ 이부키고 씨의 강연 요지집 이부키고 씨의 강연 요지집 23쪽에 '의문의 주사는 존재하지 않았다'는 제목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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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부키고씨는 "주사제에 의해 윤동주가 죽었다는 자료는 없다. 따라서 그가 주사제로 죽었다는 말은 맞지 않다"고 하면서 자신이 "후쿠오카 형무소에 근무했던 형무소장, 간수, 수형자들의 면담을 통해 주사제가 있었다는 이야기를 듣지 못했다"라고 말했다.

기자는 이 글을 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비유가 적절한지는 모르겠지만 세상에 어느 강도가 사람을 죽이고 장부에 '이런 방법으로 아무개를 죽였다'고 기록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이부키고씨가 면담했다는 형무소 소장이나 간수들이 무슨 꼴을 당할지도 모르는 판국에 당시 근무했던 시절의 '극비'를 털어 놓겠는가 하는 점도 신뢰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이부키고씨는 "당시 식량난이 심했지만 형무소에는 그 여파가 미치지 않았다. 주사 같은 것을 놓을 이유가 없었다. 이후 조사에 의해서도 주사를 놓았다는 아무런 자료도 나오지 않았다"라면서 한국에서 제기되는 주사제에 의한 죽음이라는 말은 '억측'임을 강조했다.

그렇다면 27살의 청년 윤동주의 사인(死因)은 무엇이란 말인가? 왜 그토록 젊은 나이의 청년이 까닭 없이 죽어갔단 말인가? 아니 죽어야했단 말인가? 이부키고씨는 이 점에 대해서는 아무런 말을 하고 있지 않다. 뿐만 아니라 '윤동주는 주사제에 의해 죽지 않았다'는 근거도 정확히 제시하지 못한 채 '간수 등 몇 명의 증언이 그걸 입증하는 것'이라고만 주장하고 있다. 

젊은 조선 청년 윤동주는 일본 경찰에 의해 잡혀가 일본 형무소 안에서 옥사(獄死)했다. 거기서 그간 당한 일은 아무도 모른다. 또한 알려져 있지 않다. 사인(死因) 조사가 제대로 이뤄졌는지에 대한 담보도 믿기 어렵다. 따라서 기자는 이부키고씨의 단정이야 말로 '억측' 중에 억측이라는 생각이다. 특히 어제처럼 성스런 추도회에서 '왜 하필 윤동주는 주사제로 죽지 않았다'는 강연을 하려고 했던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이부키고씨는 강연 요지집에서 '형무소에서 예방주사는 놓았다는 기록이 있다'고 했다. 그렇다면 그 예방주사라는 것이 의심의 여지가 없는 것인지 묻고 싶다. 형무소 측에서 죄인들의 건강을 염려하여 진짜 예방주사를 놓았는지는 알 수 없다. 왜냐하면 형무소에서 죄수를 인간쓰레기로 취급하는 예는 허다하기 때문이다.  

일제는 1936년 만주 침공 시 세균전을 대비하여 하얼빈에 어마어마한 규모의 '방역급수부대'를 만들었다. 이후 1941년 <만주 731부대>로 명칭을 바꾸고 해마다 600여 명의 수용자들을 생체실험에 동원하여 최소한 3000여 명의 한국인·중국인·러시아인·몽골인 등을 생체실험 대상으로 삼은 끔직한 일을 저지른 경력이 있다.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생체실험 없었다는 근거 역시 없는데

기자는 2014년 9월 하얼빈 평방에 있는 <731부대>를 찾아가 일제의 생체실험 현장을 생생히 목격한 바 있다. 당시 2005년 8월 2일 <하얼빈일보>는 생체실험 대상자였던 1463명의 명단을 발굴 공개했는데 한국인 희생자 한성진(韓成鎭·1913년생·함북 경성·1943년 6월 25일 체포), 김성서(金聖瑞·함북 길주·1943년 7월 31일 체포), 고창률(高昌律·1899년생·소련 공산당 첩보원·강원도 회양군 난곡면·1941년 7월 25일 체포) 등도 항일운동 운동을 하다가 체포되어 끔찍한 실험대상으로 생을 마감한 사실이 밝혀졌다.  

그렇다면 후쿠오카 형무소라고 해서 생체실험이 자행되지 않았다는 근거는 없다고 본다. 잡아들인 사람들이 조선인들인 경우에 더욱 그렇다. 때문에 18일 나눠준 이부키고씨의 강연 자료에 '윤동주는 주사제로 죽지 않았다'는 주장은 적절치 않다고 본다.

아직 윤동주의 죽음에 대해 밝혀진 것은 없다. 다만 확실한 것은 '한국어로 시를 쓰던 유학생 윤동주가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27살로 숨졌다'는 사실만이 유일하게 밝혀졌을 뿐이다. 우려되는 것은 이부키고씨와 같은 이들이 아무런 근거없이 '윤동주의 죽음을 애매하게 얼버무려' 그것이 마치 진실의 자료인양 오인하게 만들까 하는 걱정이다. 

이부키고씨는 말한다. "나는 윤일주씨에게 윤동주 시인이 주사에 의해 숨진 게 아니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아마 윤일주 씨도 나의 이야기를 들으면 안도할 것이다"라고 했다.(소책자 24쪽)

과연 윤동주 시인의 동생 고 윤일주 선생은 '안도의 숨'을 쉴 수 있을지 의문스럽다. 

한국말에 '진정성'이라는 말이 있다. 그리고 '염장을 찌른다'는 말도 있다. 올해로 11회째를 맞이하는 릿쿄대학의 윤동주 추도 모임은 분명히 '진정성' 있는 행사이다. 그건 과거 침략의 역사를 덮고 있는 구린내 나는 일본 사회를 향한 작은 청량제 같은 행사라고 본다. 

하지만 이 거룩한 행사에 하필이면 윤동주 시인의 시를 완역한 작가가 확인되지도 않은 사실에 대해 "윤동주의 사인(死因)에 일본은 관여하지 않았다(주사제를 쓰지 않았다)"라는 주장의 강연을 계획했다는 것은 한국인들에게 '염장을 찌르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적어도 기자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윤동주의 죽음에 대해 함부로 말하지 말아야 하는 것'은 현재까지도 정확한 사인(死因) 밝혀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어쩌면 영원히 미궁 속에 빠져 버릴지도 모른다. 그것을 푸는 열쇠는 '몇월 몇시에 무슨 주사로 윤동주를 죽였다'라고 기록의 존재여부에 달려있다. 

만일 어딘가에 그런 기록이 남아 있다면 이부키고씨는 어제 강연 원고에 남긴 자신의 기록에 대해 영원히 부끄러운 짐을 벗을 수 없을 것이다.

 성당에 장식돼 있는 윤동주 사진.
 성당에 장식돼 있는 윤동주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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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부키고씨가 '책임지겠다'고 해 강연 내용 실었다"

이부키고씨의 주장에 대해 이번 행사를 주최한 '시인 윤동주를 기념하는 릿쿄 모임(詩人尹東柱を記念する立教の会)의 대표 야나기하라씨는 다음과 같은 의견을 밝히며 정중한 사과를 했다.

"어제 강연한 타고기치로 작가와 저는 근본적으로 이부키고 씨의 의견에 동조하지 않습니다. 윤동주의 죽음에 대한 어떠한 명확한 자료가 나오지 않은 상태에서 그가 주사제에 의해 죽지 않았다고 단정하는 것은 위험한 견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이부키고 씨로 부터 강연 자료를 받고 여러 번 '단정적인 견해'를 피해달라고 부탁을 드렸으나 '모든 것은 자신이 책임을 지겠다'고 해 강연 요지집에 싣게 된 것입니다."

그러면서 야나기하라씨는 "생체실험의 가능성 또한 부정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주사제에 의한 자료가 없다고 해서 온화하고 착한 청년 윤동주의 목숨을 앗아간 책임은 면할 수가 없다"라고 덧붙였다.

추도회의 분위기와는 다른 강연 요지집 문제로 이 기사를 쓰면서도 마음이 편치 않다. 이것은 윤동주가 원하던 풍경은 아닐 것이다. 윤동주의 시를 사랑한다면 윤동주의 풀리지 않는 죽음 또한 끌어안고 가야할 숙제라고 본다. 아직 정답이 나오지 않은 숙제에 섣부른 답은 서로간의 신뢰에 금이 가는 행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144년 역사를 자랑하는 도쿄 릿쿄대학 본관
 144년 역사를 자랑하는 도쿄 릿쿄대학 본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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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신한국문화신문에도 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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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박사. 시인. 한일문화어울림연구소장, 한국외대 외국어연수평가원 교수, 일본 와세다대학 객원연구원, 국립국어원 국어순화위원, 민족문제연구소 운영위원회 부위원장을 지냄 저서 《사쿠라 훈민정음》, 《오염된국어사전》, 시집《사쿠라 불나방》, 여성독립운동가를 기리는 시집《서간도에 들꽃 피다 》전 10권, 《신 일본 속의 한국문화답사기 》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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