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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이제 이 집안 일꾼이여!"

20년 전, 12월 초에 결혼식을 올리고 두어 달 만에 설을 맞아 시댁에 갔을 때 아버님이 내게 하신 말씀이다. 마음 속에서는 '네? 일꾼이라뇨?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하고 싶었지만 차마 말대꾸를 못하고 속으로만 웅얼거렸다. 그 말씀에 이어 "너는 이제 이 집안 귀신이여"라는 말씀도 덧붙이셨다.

뭔가 억울해진 나는 "아니에요, 저는 우리 아버지 딸이에요"라고 말했다. 지금 생각하면 하나마나한 얘기였다. 아버님은 그냥 피식 웃으실 뿐, 별 말씀 안 하셨다. 갓 결혼한 며느리에게 기분 상하라고 하신 말씀은 아니셨겠지만 그땐 서럽기도 실망스럽기도 했다.

어이없게도 지난 20년간 40번 가까운 명절과 시부모님 생신을 치르면서, 또 이런 저런 농사일정과 집안행사를 겪으면서 '나는 이 집안의 일꾼이 맞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내가 일꾼인 것을 인정한다는 뜻이 아니다.

내가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서는 시댁과의 관계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받아들이기 힘들 때가 많았고, 내 나름대로 명분이라도 세워놓지 않으면 이 관계에서 발생하는 피로감을 견딜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남편에게 하소연을 하면 명절의 끝을 싸움으로 마무리하는 결과만 가져왔다. 나랑 같은 처지인 형님들에게 하소연도 했었고, 아이가 생기고서는 '내 아이의 할아버지 할머니니까'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리고 '시부모도 내 부모니까, 나도 가족이니까 같이 하는 거야' 라고 생각하면서.

그래도 이해가 안 될 땐 그분들이 살아오신 시대적 상황까지 떠올려 보면서 인간적으로 이해해 보려고 애를 쓰기도 했다. 하지만 내가 왜 '이 집안 귀신이고 일꾼'이기까지 한 것인지는 지금도 받아들이기 힘들다.

명절 20년, 변한 것과 변하지 않은 것

 결혼 초반에 남편이나 시동생을 설거지에 동참시키려 하면 어머님은 재빨리 아들들만 따로 모아 어린이집 원아들처럼 낮잠을 재우셨다
 결혼 초반에 남편이나 시동생을 설거지에 동참시키려 하면 어머님은 재빨리 아들들만 따로 모아 어린이집 원아들처럼 낮잠을 재우셨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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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초반에 남편이나 시동생을 설거지에 동참시키려 하면 어머님은 재빨리 아들들만 따로 모아 어린이집 원아들처럼 낮잠을 재우셨다. 진짜 잠들지는 못한 아들들은 끝도 없던 설거지가 끝나가는 것을 확인한 후에 비로소 방 밖으로 나갈 수 있었다. 설거지를 원천봉쇄 하신 것이다.

내가 남편을 불러달라 하면 어머니는 '○○ 잔다'라고 대신 말씀하셨다. 어쩌다 아들들이 하려고 해도 어머니가 강력하게 막으셨다. 더러는 작은 어머님까지 나서서는 '그 꼴은 못 본다, 차라리 내가 하고 만다. 그게 뭐 일이라고 남자를 시켜' 하시면서 고무장갑을 낚아채시기도 했다.

결혼 5년 만에 며느리들끼리 의기투합하여 친정 가는 길이 겨우 열렸을 때도, 어머니는 어떻게든 늦게 보내시려고 시간을 끄셨다. '차 막히니 한숨 자고 밤에 가라'라든가, 아들에게 술을 여러 잔 먹여서 운전 불능 상태를 만드신다거나, 시동 걸고 대기 중인 차 앞에서 '텃밭에 야채를 뽑아가라'처럼 시간이 필요한 일들을 거듭 주문하시면서….

그렇게 출발해도 친정 도착하면 저녁 먹고 자는 게 전부인데, 그 명절의 자투리 시간조차도 당신의 집에 머물게 하셨다. 어머니가 며느리였을 때는 친정가는 것을 꿈도 못 꾸던 일이라서? 딸이 없으셔서? 아님 아들들을 조금이라도 더 보고 싶으셔서?

드러내지 못하고 곪아온 시간들이 부부관계를 삭막하게 하고 시댁에 대한 반감으로 번지기도 했으며, 명절이 끝나면 몇 달이고 시댁에 가지 않고 안부전화조차 내키지 않던 시간들이 쌓인 채 지내기도 했다.

20년을 지나오면서 자잘한 투쟁을 거치고 거쳐서, 그리고 서로간의 양보와 이해를 거듭해가면서 아주 조금씩은 변화들이 생겼다. 일부러 시간을 끌어서 출발을 늦추는 어머니의 방법에 아들 며느리가 좀 더 단호하게 대처했고, 어머니도 부질없는 실랑이를 조금은 줄이셨다.

아주 가끔은 성인이 된 남자조카가 같이 전을 부치고, 새우나 고기 굽기 같은 간단한 조리 과정에는 아들들이 참여하기도 한다. 그리고 명절 음식 중 어머니 전문분야는 미리 해두시는 것도 많아졌다. 아들들만 낮잠을 따로 재우는 희한한 풍경은 오래 가지 못하고 사라졌으며, 큰 아주버님은 미리 오셔서 집안 청소를 다 해두시기도 한다. 그밖에 수리하기, 옮기기 등등의 다른 일들을 하기도 한다.

게다가 아버님은 평상시에도 마늘 까기, 파 손질하기, 콩 껍질 벗기기 등을 말없이 해 두시고, 특히 사골국은 아버님이 거의 매번 끓이신다. 완벽하지도 동등하지도 않기에 부단히 노력중이지만 농사가 가업인, 그래서 며느리가 일꾼인 게 당연시 되어 온 이 집안으로선 작지만 큰 변화들이 소소하게 진행중이다.

어머님의 '명분'에 동원되어 온 며느리들

하지만 20년의 세월 동안 변하지도, 사라지지도 않는 희한한 일정 하나가 있다. 초대받은 자들에겐 즐겁고 의미 있는 시간인지 모르겠지만 한 번도 초대받은 적이 없는 며느리 입장에서는 없어져야, 고쳐져야 한다고 생각되는 시간. 바로 명절 점심 때 들이닥치는 '친척'들의 방문이다.

'친척'이라는 단어 안에는 아버님의 친동생들인 작은아버님들과 그들의 배우자인 작은어머님들, 이 분들의 아들과 그 배우자, 그 사이에 생긴 손자 손녀들이 들어있다. 아주 가끔은 아버님의 여동생인 고모님의 가족, 어머님의 여동생인 이모님 가족도 포함된다.

어머니의 큰 동서인 큰어머니가 차례지낸 집안 남자들을 다시 불러 먹이던 좀 더 먼 과거에도, 나의 어머니는 2차처럼 이분들을 다시 집으로 오게 해서는 며느리들로 하여금 밥상 같은 술상을 차리게 한 뒤, 오후 늦도록 머물게 하셨다. 정작 큰어머니가 이 일을 그만 두신 뒤에도 어머니의 상차리기는 계속되었고, 심지어 진화하였다. 잔칫상 같은 밥상을 차려내도록 며느리들에게 주문하신 것이다.

설 전날 도착해서 설음식을 만들고 먹고 차리고 치우기를 반복하느라 이미 지친 상태에서 며느리인 나의 설날은 시작된다. 냉장고 문을 여닫는 소리, 뭔가 쏟아지고 부딪히는 소리, 비닐봉지 부스럭거리는 소리, 손위형님을 부르시는 소리…. 부엌 쪽에서 들리는 온갖 소리들은 며느리인 나를 깨우는 알람이다. 어머니는 지금 차례음식을 챙기시는 중이다.

넉넉히 30분 정도면 챙길 수 있는 일이고, 전날 재워둔 고기산적은 10여분이면 익을 것이고, 모든 차례준비물은 부엌 반경 2m 안에 다 준비되어 있는데도 어머니는 오래오래 챙기신다. 그것도 새벽부터.

그래서 며느리들도 부엌에 일찍나와 사소한 심부름 하나에라도 바로 투입될 수 있게 대기상태로 있게 만드신다. 늦잠을 잘 수도, 가족끼리 대화를 할 수도, 휴식을 취할 수도, 맑은 시골공기를 마실 수도 있는 시간이지만 며느리에게 그런 평화로운 설날 아침은 없다.

빨리하면 20분 만에도 끝낼 수 있는 일을 3시간에 걸쳐 하신 다음엔 '지금 상을 차려 둬라. 오자마자 작은 아버님들 드실 수 있게'라는 말씀을 남기신 뒤, 이 집안의 남자들과 함께 가족묘지를 향해 떠나신다.

방귀 뀌고 담배 피우는데 밥 먹어라?

 하지만 20년의 세월 동안 변하지도, 사라지지도 않는 희한한 일정 하나가 있다
 하지만 20년의 세월 동안 변하지도, 사라지지도 않는 희한한 일정 하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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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식간에 교잣상 서너 개가 놓여진다. 몇 명이 올지 알 수 없지만 늘 오던대로 대략 25명 분량의 수저를 세팅하고 반찬을 그릇에 담아 줄줄이 늘어놓는다. 올해 설음식은 소불고기, 모듬전(두부, 야채전, 간부침), 잡채, LA갈비, 굴비구이, 가오리찜, 양념게장, 멸치볶음, 콩나물무침, 물김치, 굴젓, 구운 김과 파래, 사골떡국, 내장탕, 식혜…. 다른 해보다 손님이 적어서 반찬 가짓수도 조금 줄었다.

긴 상이라면 같은 반찬을 두 가지씩 놓아 먹기 편하도록. 안 그러면 한 가지씩 더 놓으라는 추가주문이 이어지기 때문에 알아서 해 놓는다. 음식이 넘쳐서 비인기 음식을 상 아래로 내려놓더라도, 먹는 사람이 불편하게 밥을 들고 먹게 되더라도 푸짐해 보이도록 빈틈없이 상을 채우는 게 손님상 차리기의 중요한 포인트다.

정작 상 차리느라 제대로 끼니를 챙기지 못한 며느리들은 다양한 차례 음식들을 조금씩 맛본 이 집안 남자들에게 완벽한 한 끼를 제공하고자 흡사 군대처럼 일사분란하게 움직인다. 이 집안 일꾼으로 20년 이상 다져진 환상의 호흡을 자랑하면서….

어머님께는 시어머니로서 자신의 입지가 여전함을 동서들과 시동생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더없는 기회이다. 멀리서 찾아온 아들 며느리보다 당신의 과업에 더 열정을 쏟으시는 듯한 모습에선 이질감마저 느껴진다.

밥공기가 수북해도 '밥 더 가져와라', 반찬이 그대로여도 '더 가져와라', 심지어 이제 막 먹기 시작했는데 후식인 '식혜와 과일을 가져와라' 계속해서 주문하신다. 며느리들이 한 가지 주문을 완수하고 막 앉았을 때 다시 다른 일을 주문하심으로써, 며느리들이 한시도 편히 앉을 틈이 없게 조정하신다. '그래, 1년에 두 번, 아버님 형제 분들한테 식사대접 할 수 있지'라고 백번 생각하다가도 좋은 마음이 점점 사라지기 시작한다.

식사가 끝나갈 즈음, 상 여기저기에 생선 가시가 뱉어지고 갈비 뼈다귀가 수북해진다. 심지어 입닦은 휴지도 바닥에 뒹굴고 그래서 남편의 사촌 중 하나가 방귀라도 '뽕' 뀌거나 더러는 작은 아버님 중 한 분이 거실 창을 열고 담배라도 한 대 피우기 시작할 무렵, '니들도 이리 와서 빨리 먹어라. 배고파서 어쩌려고 그러냐' 하고 말씀하신다.

그 화려했던 밥상이 잔반 처리통 수준으로 바뀔 무렵에야 참으로 빨리, 고생한 며느리들에게 식사를 강요하신다. 차가 막히는 것보다, 전 부치는 것보다, 어마어마한 설거지보다도 정말 듣고 싶지 않은 말이다.

그 말과 함께 며느리들의 식욕은 이미 제로. 미리 약속한 적 없지만 '나중에 깨끗한 상 차려 따로 먹을게요' 하고 말한다. '배고파서 안 된다. 여기 반찬 많으니까 빨리 와서 먹어라' 독촉하신다. '거기서 어떻게 먹어요? 저희가 이따 차려 먹을게요' 어머니는 챙겨주는(?) 데도 안 먹겠다는 며느리들이 서운하다는 표정으로 못마땅해 하신다. 친척들 앞에서 인자한 시어머니 모습을 보이는 데는 매번 실패하신다.

딸에게도 설레는 고향길

매년 명절이면 나는 내가 아니었다. 인간 식기세척기이자 자동조리기, 보수는 없지만 가장 완벽한 명절도우미였다. 내 일상에서의 생각과 감성을 그대로 가진 채 견디기엔 힘든 이질적인 삶이 나를 맞이했다. 남편은 '1년에 겨우 두 번인데 그냥 좋은 맘으로 해'라고도 한다.

물론 그냥 할 수도 있고 지금껏 그리 해 왔다. 못 하는 게 아니다. 더 이상 하고 싶지 않을 뿐이다. 질부들이 차린 밥상은 당연한 것이라 여기며, 식당처럼 편히 먹고는 '애쓴다'는 립서비스조차 없이 사라지는 작은 아버님들을 위해 더 이상 밥상을 차리고 싶지 않다. 무엇보다 내 부모님과 보낼 시간이 많지 않다.

'어머니가 주도하고 며느리들이 진행하는 남자들을 위한 파티'에 동원되느라 정작 내 부모를 위한 명절상은 이렇게 차려본 적 없다. 친정가서도 음식을 만들어 먹긴 하지만 시간이 한정되어 있다 보니 조금 잘 먹는 저녁상 정도?

아들없는 내 부모는 딸사위들이 오지 않으면 두분이서 적적하게 출가한 딸들의 전화를 받는 것으로 명절을 대신할 때가 많았다. 내 언니들의 명절까지 합하면 30년 이상을….

앞으로 20년간 내가 친정을 먼저 간다고 해도 내 부모가 몇 년이나 더 나를 맞아주실지는 알 수 없다.

이번 추석엔 나도 명절뉴스의 단골 멘트인 '설레는 고향길'을 가슴으로 이해할 수 있을까? 10% 미만으로 남은 배터리처럼 간당간당한 에너지로 끄트머리 명절을 겨우 함께하는 게 아니라, 에너지를 가득채운 채 '시작부터 딸도 친정부모와 함께 하는 명절', 이번 추석을 그리 보내고 나서 다시 글을 올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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