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까마귀 없는 밀밭

"저 밀밭에 까마귀 떼가 있다면?"
"고흐. 까마귀가 나는 밀밭."

유리가 먼저 물었고 내가 대답했다. 둘은 서로 마주 보며 하이파이브를 했다. 밀밭 너머 잿빛 구름이 몰려있어서 강한 붓질만 더 보탠다면 <까마귀가 나는 밀밭> 작품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었다.

밀밭이 있는 풍경
 밀밭이 있는 풍경
ⓒ 차노휘

관련사진보기


팜플로나 알베르게에서 출발할 때 너무 일찍 가지 말자고 나는 스펜서에게 말했다. 전날처럼 길을 잘못 들어서 힘을 빼고 싶지는 않았다. 가능한 한 다른 일행과 함께 출발해도 괜찮았다. 한쪽 다리를 삐어서 팜플로나에서 멈춰야 했던 유리도 우리와 함께 출발하기로 했다. 팜플로나는 큰 도시였다. 도시를 벗어나는 데만도 한 시간 이상이 걸렸다. 목적지를 가리키는 화살표가 번잡한 도시 조형물에 가려 있어서 길 찾기도 힘들다고 했다.

알베르게에서 나왔을 때 여명에 휩싸인 오래된 건물벽과 돌바닥을 가로등이 감싸고 있었다. 사람 그림자 하나 없는 골목은 은은한 빛으로 출렁거렸다. 나는 알베르게 입구에 있는 의자에 앉았다. 장소가 어떠하든 해뜨기 직전 풍경은 묘한 매력이 있다. 햇빛에 제 모습을 완전히 노출하지 않은 그것은 여백이 많아서 상상의 여지를 준다. 잠시 새벽 풍경에 눈길을 주다가 생각났다는 듯이 배낭을 무릎 위에 올려봤다. 오늘 하루 짊어질 무게는 얼마나 나갈까. 갈수록 무게감은 더 했다. 어쩔 수 없이 배낭 속 물건들을 정리해야 했다. 어제는 버리기에 아까운 것들을 눈 딱 감고 꺼냈다.

일일이 수를 놓고 헝겊으로 기워서 만든 모 작가의 수제품 에코백 안에 원피스, 멀티탭, 여분의 충전기 등을 넣었다. 그것을 침대 맞은편 옷걸이에 얌전히 걸어놓고 나왔다. 꼭 필요한 사람이 사용했으면 하고 바랐다. 론세스바예스 수도원에서도 무게와 부피가 있는 굽 있는 샌들을 놓고 왔다. 간식 넣을 공간이 필요해서였다. 지금은 왼쪽 발가락에 물집까지 생겼다. 더군다나 식욕이 없어 기력이 쇠진하고 있었다. 무릎 위에 있는 배낭에는 이제 버리고 싶어도 버릴 수 없는 것뿐이었다. 그런데도 무겁기만 했다.

몇 분 지나니 유리와 스펜서가 차례로 밖으로 나왔다. 배낭을 멘 순례자 세 명의 그림자가 돌바닥에 그려졌다. 니콜라만 나타난다면 넷이었다. 운 좋으면 길 위에서 만나겠지 싶었다. 셋이 의기투합하고 막 출발하려고 할 때 다른 일행이 나왔다.   

사교성이 좋은 스펜서는 다른 일행과 이야기를 하면서 걸었다. 유리와 나는 자연스럽게 앞서가면서 도시를 벗어났고 시골 마을을 지나쳤다. 밀밭이 양쪽으로 펼쳐지는 들판을 지나 언덕을 천천히 올랐다. 그곳에서 전혀, 그림과 관련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유리가 고흐 이야기를 꺼냈다.

밀밭을 양쪽에 끼고 있는 길
 밀밭을 양쪽에 끼고 있는 길
ⓒ 차노휘

관련사진보기


"나는 네가 그림을 그릴 거라고 상상한 적이 없어. 건축이나 컴퓨터 쪽? 그쪽 일을 하지 않을까, 라고 생각했거든."

첫날 그를 볼 때 느꼈던 것처럼 목적의식과 욕망이 강하다는 인상은 변함이 없었다. 약점을 남에게 보이지 않으려고 하는 자존심 강한 청년이라는 이미지 또한. 그는 그렇게 교육받으며 성장한 듯했다. 천성 또한 그에 적합할 거였다. 밀밭을 향해 카메라 셔터를 눌러대던 유리는 내게 고개를 돌렸다. 그는 걷기 시작하면서부터 면도를 하지 않아서 턱 주위에 수염이 제법 나 있었다.

"맞아. 네가 정확히 잘 봤어. 내 꿈이 그랬다는 거야. 부모님이 반대했지만 더 불행한 것은 내게 소질이 없었어. 현실을 빨리 인정해야 했지. 하지만 얼마 전에 내 꿈을 살짝 변경했어."

그는 얼굴을 굳혔다. "좀 더 말해줄 수 있니?" 내가 재촉했다.

"그래.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어. 쉽게 말하자면 이런 거야. 작가 몇 명을 고용해서 그림을 그리는 거야. 스토리도 만들고. 일종의 애니메이션 작업이랄까. 순수 애니메이션이라고 생각하면 안 돼. 상업 광고용도 있으니깐. 명작들을 변형하는 것도 충분히 나올 수 있어. 내가 총 책임자고 경영을 하는 거지. 물론 영업도."

하늘은 잿빛 구름이 점점 걷혔고 밀 향기 나는 바람이 먼 곳에서 불어왔다. 그곳에서 풍력발전기가 천천히 돌아가고 있었다. 24시간 풍력발전기가 멈추지 않는, 바람이 많은 곳이었다. 유리가 더 설명을 하려고 할 때 말을 탄 순례자가 우리 뒤꽁무니에 바짝 따라붙었다. 우리는 그에게 길을 양보해야 했다. 

말 탄 순례자
 말 탄 순례자
ⓒ 차노휘

관련사진보기


이곳에는 다양한 순례자가 있다. 말을 타기도 자전거를 타기도 걷기도 한다. 말을 탄 순례자는 이 길에 들어서면서 처음 봤다. 그가 앞서가자 우리는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는 뒤돌아봤다. 스펜서가 얼마나 떨어져서 오는지 궁금했다. 다른 일행과 헤어진 스펜서는 언덕을 향해 바삐 걸어오고 있었다. 나는 그를 향해 손을 흔들어주었다. "천천히 오세요!" 유리는 스펜서를 향해 외쳤다.
 
"하지만 네 고민은 따로 있는 것 같은데?" 빠른 걸음으로 언덕을 올라오던 스펜서가 속도를 늦추는 것을 보고는 유리에게 물었다.

"실은 이 밀밭을 보니깐 테오가 생각났어. 고흐의 유일한 후원자이자 응원자였던 그의 동생. 나도 그런 사람이 한 명쯤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거든. 뭔가를 새로 시작하려면 용기도 있어야 하지만 돈이 필요하잖아. 돈은 내가 계획했던 목표액에 미치지 못했어. 나는 젊고 고작 3년 직장 생활을 했을 뿐이야.

돈이 없어서인지 용기가 생기지 않았어, 이 길을 들어서기 전까지는 말이야. 새로 시작한다는 것은 흥분된 반면 불안을 동반하잖아.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는데 꼭, 성공하고 싶었어. 욕심이 너무 많았지. 그러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드는 거야. 돈이 문제가 아니라 용기라고. 그리고 그 용기는 돈이 많아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나를 지지해주는 사람이 있을 때 생기는 것이라고."

유리는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좀 망설인 듯했지만 갈수록 그의 말과 얼굴에 생기가 돋았다. 첫날 피레네 산맥을 넘을 때보다 훨씬 차분했다. 동행자의 발걸음 속도에 맞출 수 있는 여유가 있었다. 뒤에 오는 사람도 기다릴 줄 알았다. 고작 3일 걸었을 뿐인데 그는 내면의 변화를 겪고 있었다.

나는 그의 이야기 속에 나를 투사시켰다. 그렇다고 마음의 빗장을 열어서 내 속내를 쏟아낸 것은 아니었다. 그저 귀를 열었을 뿐이다. 내가 글을 쓴다는 것도, 이 길을 걷기 전에 출판사 관계자로부터 자존심 상할 정도로 '갑질'을 당했다는 것도 말할 수 없었다. 유리가 그의 고민을 털어놓자 불쑥 그 불미스러운 일이 떠올랐다. 나는 '지금 당장 내 몸의 고통'에만 집중을 하고 있어서 지나온 일도 앞으로의 일도 생각할 수 없었다. 용기도 없었다. 이상하게 그것이 고마웠다. 나는 말 없이 밀밭으로 눈길을 던졌다. 

폭풍이 사납게 일며 위협적인 하늘 아래 밀밭을 나는 검은 까마귀 떼. 그 그림은 고흐가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고독하고 외로운 순간을 맞이할 때 그렸다. 테오가 아프고 실직 위험이 있어 더 이상 후원을 해주지 않을 거라는 불안감에 휩싸일 때였다. 그러나 그는 또 알았다. 극한의 고독과 불안함과 동시에 자연에서 얻게 되는 건강한 치유와 회복의 힘을. 아마도 유리는 그것을 몸소 겪고 있는지도 몰랐다. 말을 마친 그는 풍력발전기가 돌아가는 언덕을 가리켰다.    

"나는 저 언덕에서 나를 용서하고 싶어. 용기가 없어서 그동안 하고 싶었던 것을 하지 못한 나, 때로는 비열하고 나약하고 게으른 나, 결정을 했으면서도 자꾸 망설이는 나를 말이야. 허약한 나를 버리고 싶어."

나는 그가 가리키는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790m 높이의 '페르돈 언덕(Alto del Perdon)'이 우리 앞에 버티고 있었다. 페르돈은 스페인어로 '용서(자비)'를 뜻한다. 용서의 언덕. 언덕 위에는 순례자들의 철제 형상물이 있다. 걸어가는 사람, 말을 타고 가는 사람, 당나귀를 끌고 가는 사람 등. 그곳을 오르면서(오르고 나서) 그동안 용서하지 못했던 것(사람)들을 용서하라는, 달리 말하자면 용서를 강요(?)하는 언덕이었다.

바람막이 없는 언덕에 서면 시설(枾雪)처럼 붙어 있는 찌든 감정들이 날아가 버릴까. 그래서 자연스럽게 용서가 되는 것일까. 아니면 그곳에서 바라본 풍경이 가슴을 트이게 해서 누군가를 용서하고 싶어지는 것일까. 그것도 아니면 뭘까. 3일 동안 걷는 거리는 거의 70km 정도. 800km 여정에서 그 거리는 시작일 뿐이었다. 이곳에서 마음을 비우고 앞으로 마주치게 될 풍경을 담으라는 뜻일까. 배낭 속 물건을 비우듯?

바람이 많은 용서의 언덕에 여전히 풍력발전기가 느리게 돌아가고 있었고 그곳을 바라보는 유리는 까마귀 없는 밀밭에서 그만의 풍경을 완성하듯 눈길을 오랫동안 주고 있었다.  

그리고 또 풍경

끝없는 밀밭. 밀밭 위 고풍스러운 건물. 오래된 성당. 양 떼들. 바람. 작열하는 태양.

잿빛 구름이 물러간 하늘은 넓고 입체적이었다. 스페인에서 올려다본 하늘은 유독 광활하다. 시야를 가리는 고만고만한 산들이 없을 뿐만 아니라 공기가 맑아서일 것이다. 넓고 푸른 하늘에 보기만 해도 포근한 하얀 구름이 흩어져 있다. 하늘은 높고 뾰족한 붉은 빛 지붕과 조화를 이룬다.

마을 어귀에 들어서면 건물 사이로 일차선이 나 있다. 집들은 담장이 없고 건물들이 옆집과 붙어 있지만 숨 막히지 않다. 창문 너머 베란다가 있다. 베란다에는 집주인이 가꾼 화초가 걷는 사람들의 눈을 즐겁게 한다. 강한 태양을 가리기 위해서인 듯 창문에 덧창을 댔다. 가끔 베란다에 지나가는 사람을 구경이라도 하듯 고양이나 강아지가 앉아 있기도 했다.

자유롭게 풀을 뜯는 양떼
 자유롭게 풀을 뜯는 양떼
ⓒ 차노휘

관련사진보기


마을을 빠져 나오면 흙길 양쪽으로 드넓은 목초지가 시원하다. 끝나지 않을 듯한 목초지 너머 낮은 산등성이가 있다. 산등성이 위로 옅은 하늘색 하늘. 그 위로 한가로이 흩어져 있는 하얀 구름. 하얀 구름을 등받이 삼아 펼쳐지는 부드러운 능선. 능선 위에 서서 풀을 뜯는 양. 다시 마을이 보이기 시작하고 마을 어귀 도로에 노란 화살표가 그려져 있다.

용서의 언덕을 지나 아담하고 예쁜 마을과 도로 양쪽으로 펼쳐지는 목초지와 숲길을 번갈아 두 시간을 넘게 걸었다. 작열하는 태양 아래 발걸음은 지쳐있었다. 흙길 너머 마을이 서서히 드러나고 있었다. 그때였다. 언덕 아래 길 끝에서 꾸물꾸물 양 떼들이 올라오기 시작한 것이.

길 끝으로 사라지고 있는 양떼와 농부
 길 끝으로 사라지고 있는 양떼와 농부
ⓒ 차노휘

관련사진보기



양은 하나둘 숫자를 더하다가 한꺼번에 몰려왔다. 우리는 오른쪽 길섶에 섰다. 양들은 우리의 진행 방향을 방해하지 않으려는 듯 왼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피레네산맥에서 보았던 방목하는 산양과 달랐다. 몸통에 비해 다리가 왜소했고 털에 윤기가 나지 않았다. 느릿느릿 선두를 따라 이동했다. 아주 익숙한 길인 듯했다. 몇 마리는 길옆 풀밭으로 들어가 풀을 뜯었다. 양치기 개는 없었지만 농부가 양 떼 꽁무니에서 걸어오고 있었다.

마침내 양 떼는 우리를 지나쳐갔다. 나는 뒤돌아서 양 떼가 사라지는 것을 봤다. 양 떼와 농부는 흙먼지 날리는 길가로, 태양이 빛나는 하늘 아래로 모습을 감추었다. 그리고 그곳에 놀랍게도 니콜라가 걸어오고 있었다. 둘은 거의 동시에 외마디 환호성을 터트렸다.

"앗!"

내 풍경 속에는 까마귀 없는 밀밭에 유리가 있었고 양 떼가 물러간 자리에 니콜라가 나타났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풍경은 꽉 찬 듯했지만 여백이 있었다. 여백에는 만남과 헤어짐이 자연스럽게 끼어들었다. 그리고 그곳에 이야기가 그림자처럼 따라다녔다.

푸엔테 라 레이나(Puente La Reina)에 도착했을 때 유리는 6km를 더 걷는다면서 홀로 떠났다. 그곳에 도착할 때까지 스펜서와 나를 배려한 뒤였다. 마지막이라는 것을 직감한 듯이 용서의 언덕에서도 니콜라를 갑자기 만났을 때도 우리는 함께 기념사진을 찍어야 했다. 푸엔테 라 레이나 알베르게 문이 열리기를 기다릴 때는 서로 연락처를 주고받았다. 그런 뒤 그는 일일이 포옹을 해주고는 다시 배낭을 짊어졌다.

만남과 헤어짐은 순례자들에게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헤어짐은 가슴 아픈 일이다. 아무 말 없이 걸어도 걷는 사람들만의 연대의식이 생긴다. 무거운 배낭을 메고 땀을 흘리고 한발 한발 발을 내딛는, 그 수고로움에 가식이 있을 수 없다. 그래서 쉽게 마음의 문을 열고 허물없는 사이가 된다. 무엇보다 첫날 함께 걸었던 순례자라면 그 정은 더 두터워지기 마련이다. 헤어짐은 그 정을 떼는 작업을 수반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리움으로 변형되고 그리움은 고통을 거느린다. 무엇보다 다른 사람을 들일 여지를 주지 않는다.

유리는 유리만의 풍경을 완성하기 위해 앞서 걸어갔고 남은 나는 나만의 풍경에 여백을 두기 위해 유리의 걸음에 응원을 보냈다. 고흐의 테오는 될 수 없지만 하는 일에 응원의 메시지를 남기는 한 사람이 되겠다고. 그 여백에 한국인 소리와 연석이 잠시 머물렀다가 갔다. 또 그들이 남긴 흔적을 품고 다른 풍경을 맞이했다. 그리고 또 풍경이었다. 

무루사발(Muruzabal) 식수대에서 물을 마시는 스펜서와 유리
 무루사발(Muruzabal) 식수대에서 물을 마시는 스펜서와 유리
ⓒ 차노휘

관련사진보기


푸엔테 라 레이나 알베르게 창가에 앉아 있는 스펜서와 니콜라
 푸엔테 라 레이나 알베르게 창가에 앉아 있는 스펜서와 니콜라
ⓒ 차노휘

관련사진보기


덧붙이는 글 | ‘산티아고 순례길 프랑스길’은 2017년 6월 13일에 걷기 시작해서 7월 12일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 도착했습니다. 30일만의 완주였습니다. 그 다음 날, ‘세상의 끝’이라는 피니스테레와 묵시아까지(100km)까지 내처 걸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34일 동안 900km 여정을 마쳤습니다. 몇 십 년 인생이라는 길 위에서, 34일의 여정은 짧을 수 있으나 걸으면서 느꼈던 것들은 제게 인생의 축소판처럼 다가왔습니다. 움츠린 어깨를 펴게 하고 긍정적인 미래를 내다보게 했습니다. 이곳에서 34일 간의 힘들었지만 행복했던 시간들을 도란도란 풀어놓으면서 함께 공유하려고 합니다.



태그:#산티아고 순례길, #프랑스길, #팜플로나, #차노휘, #용서의 언덕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소설가이자 문학박사. 저서로는 소설집 《기차가 달린다》와 《투마이 투마이》, 장편소설 《죽음의 섬》과 《스노글로브, 당신이 사는 세상》, 여행에세이로는 《자유로운 영혼을 위한 시간들》, 《물공포증인데 스쿠버다이빙》 등이 있다. 현재에는 광주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