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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0년 2월 22일 창간한 <오마이뉴스>가 올해로 18주년을 맞았습니다. 2월 20일 기준 8만6738명이 시민기자가 되어 전국 각지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시민기자로 살아보니' 어떤지 궁금했습니다. 최근 열심히 활동하고 있는 시민기자 4명의 이야기를 싣습니다. 2018년 더 많은 시민기자를 만나게 되길 바랍니다. [편집자말]
지난해 1월. 우연히 본 은유 작가의 책 <올드 걸의 시집>을 읽고 밤잠을 설쳤다. 나와 비슷한 연배의 그녀는 평소에 내가 일기장에 두서없이 끼적이던 내용을 논리 정연하게 적어 야무지고 감성 촉촉한 책으로 엮어 놓았다.

이 땅에 여자로 태어나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워킹맘으로 살아가는 평범한 이야기가 진솔함과 그녀만의 사유가 더해지면서 팔딱팔딱 살아 숨을 쉰다. 그 파장은 내 안에 들어와 언어로 형상화 되지 못했던 불편한 감정들을 정리시켰다. '나만 그런 게 아니구나'라는 보편감과 공감으로 위안을 준 그녀의 글쓰기 수업을 신청했다.

그녀는 유머가 있고 부드럽고 단호하며 다정하고 날카롭다. 사적인 이야기를 공공의 자리에 꺼내 놓는 일은 발가벗은 채로 대중 앞에 서는 것처럼 창피하고 두려웠다. 글을 쓰고, 학인들의 글에 감응하면서 내 안에 잠들어있던 또 다른 나를 만났다.

때로는 불편하고 가끔은 생소한 나에 대해 알아가는 일은 시점이 확장되면서 다른 사람을, 혹은 어떤 사건을 바라보는 안목이 생기는 작업처럼 느껴졌다. 그녀는 수업 중 학인들에게 완성된 글을 <오마이뉴스>에 기고할 것을 권유했다. 동료 학인들이 기고하기 시작했고 드디어 2017년 4월16일 나의 첫 기사가 실렸다. <오마이뉴스>와의 인연이 시작되었다.

[관련 기사 : 93세의 사랑, 그를 응원한다]

모두를 만족시키는 글은 없다

신기했다. 하찮게 느껴지는 개인적인 이야기가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을 줄 때 더 이상 하찮지 않다는 게
 신기했다. 하찮게 느껴지는 개인적인 이야기가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을 줄 때 더 이상 하찮지 않다는 게
ⓒ pexe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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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했다. 하찮게 느껴지는 개인적인 이야기가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을 줄 때 더 이상 하찮지 않다는 게. 글을 보내기 전에 이 글이 사람들에게 영향을 줄 수 있는 글인지, 아닌지 수 십 번 읽어본다. 너무 많이 읽고 고치다 보면 재미도 없고 의미도 없는 글처럼 느껴져 자신감이 떨어진다.

누군가 OK 사인을 내려줬음 싶은 마음에 친오빠에게 메일을 보내면, 내 글의 1호 독자인 그는 꼼꼼하게 읽고 빽빽하게 감상문을 보내준다. 감상문에 따라 첨삭을 한 후 송고하기 버튼을 누른다.

글을 보낸 후에는 내 글이 채택이 되었는지 궁금해서 자꾸 들여다보게 된다. 원고료가 제일 적은 기사라도 채택이 되면 신춘문예 당선이 부럽지 않을 만큼 기쁘다. 추천이 몇 개가 달리는지 궁금하고 어떤 댓글이 달리는지 가슴이 두근거린다. 어쩌다 악플을 보면 연약한 멘탈이 사방으로 흩어지고, 마음은 젖은 솜사탕처럼 쪼그라든다.

그러다 보면 다음 글을 쓸 때 진짜 내 생각이나 느낌보다는, 안전한 단어나 두루뭉술 포장된 문구들을 쓰고 싶은 갈등을 겪는다. 이럴 때면 노트북을 덮고 도서관이나 서점으로 간다. 나와 다른, 혹은 비슷한 감성이나 시점을 가진 작가들의 책들을 읽으며 몇 시간을 보내고 나면 가슴 속에서 뭔가 올라온다.

'모두를 만족시키는 글은 없다. 나만 쓸 수 있는 걸 쓰자.'

나이 오십을 바라보는 나는, 이 나이 때쯤이면 누구나 겪을 법한 일이나, 뭔가에 도전한 일, 또는 간호사로 일하면서 겪는 일들에 관한 이야기를 주로 썼다. 깜빡깜빡 잊어버리는 게 일상이 되고 날마다 어처구니없는 시트콤을 찍어대며 청춘은 끝이 났지만 그 대신 자유가 찾아왔다는 글이 메인에 오르면서 인기 글이 되었다. 공감의 반응들이 넘쳤다.

연타로 쓴 '성형외과에서 생긴 일'이 좋은 반응을 보이면서 <오마이뉴스>에 정기적으로 연재를 시작하기로 했다. 편집자와 통화하면서 내 글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와 격려의 말을 듣고 도전해 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관련 기사 : "언니, 눈 했어요?" 이 질문의 의미를 알려줄게]

연재를 시작하면서 청탁 글도 들어오기 시작했다. '사는 이야기'에 주로 글을 쓰던 내가 사회면 기사를 청탁받아 쓸 때는 괜스레 진짜 기자가 된 것처럼 얼마나 뿌듯하던지. 그런데 사회면 기사를 쓸 때 나도 모르게 논설문처럼 주장하는 글을 쓰는 나를 발견했다. 혼자 웃었다.

명랑한 중년 아니라 불편한 중년?

의식을 하며 바라본 세상은 그 전과 달라 보인다
 의식을 하며 바라본 세상은 그 전과 달라 보인다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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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연재 주제는 '명랑한 중년'이다. 어떻게 사는 일이 항상 명랑할 수 있겠냐만은 눈높이를 조금만 바꾸면 각도에 따라 달리보이는 게 인생. 나만의 각도로 세상을 보는 훈련을 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 그런데 의식을 하며 바라본 세상은 그 전과 달라 보인다. 뭐 하나 쉽게 지나쳐지지 않는다.

[관련 기사 : 만석 비행기에 오른 북극곰 삼총사, 그 후에 닥친 재앙]

<위대한 쇼맨>이란 영화를 친구들과 봤다. 다들 '너무 재미있다'며 한 번 더 보고 싶다는데 나는 보는 내내 불편했다. 동물학대, 장애인 비하, 목적을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는 그 한 사람을 포장하기 위해 동원된 수많은 사람들. 영화를 다큐로 보는 건 아닌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게 불편했다. 친구들의 감동까지 망칠까봐 입을 다물었다.

세상 편하게 지내던 친구들과의 수다도 다르게 들린다. 자기 인생은 없고 오로지 자식일이 곧 나의 일인 친구. 자신의 정체성을 누구의 아내라고 규정하고 우월해 하는 친구. 페미니즘을 앞세워 자신의 이기심만 더 충족하려는 친구. 누군가의 행동에 일일이 복수를 다짐하는 친구. 희생이 미덕인 것처럼 참고 참다 병이 난 친구.

복잡다단한 인생. 누구에게 충고랍시고 뭐라고 할 수도 없고, 또 그래서도 안 되는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의 언어들이 다르게 들리고 해석된다. 명랑한 중년이 아니라 불편한 중년으로 바꿔야 할 판이다.

그나저나 명랑한 글을 써야하는데 큰일이다
 그나저나 명랑한 글을 써야하는데 큰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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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시민기자가 되어 글을 쓰면서 달라진 나의 삶이 이렇다. 이렇듯 소소한 일상의 불편함 뿐 아니라, 보고도 못 본 척 지나쳤던 사람들이 눈에 박히듯 들어온다.

한 끼를 해결하기 위해 굽은 등으로 폐지를 줍는 할머니. 빨개진 얼굴로 치킨 배달을 온 어린 소년. 밖에서 오들오들 떨면서 뭔가를 팔고 있는 사람들. 보이는데 내가 어찌해볼 도리가 없으니 마음이 편치 않을 수밖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뭘까.

원고료를 기부하기로 맘먹었다. 거창한 뭔가를 할 순 없지만, 이렇게 번 돈을 좀 더 의미 있는 곳에 쓰고 싶다. 당장 페북을 통해 알게 된 어린 아이 셋을 남기고 세상을 떠난 가난한 젊은 엄마의 명복을 빌며 십만 원을 보냈다.

자신의 음반을 세상에 내 놓기도 전에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등진 싱어송 라이터의 음반을 만드는 작업에도 손을 보탰다. 보일러도 들어오지 않는 방에 전기장판으로 버티는 친구에게도. 보잘 것 없지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길 바라며.

내가 느끼는 불편함이 다른 사람을 돕는 원동력이 되어 다행이다. 그러니 불편함은 때로는 얼마나 필요함인지. 작년 4월부터 시작해서 이곳에 17편의 글을 썼다. 그러느라 많은 시간을 생각했고 고민했다.

멈추지 않고 계속 쓸 수 있게 기회를 준 <오마이뉴스>에게 진심을 담아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 시민기자와 더불어 성장하는 신문사가 되길 바란다.

그나저나 명랑한 글을 써야하는데 큰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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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오마이뉴스, #시민기자, #명랑한 중년, #중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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