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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호화폐, 희망을 말하다]
1편: '스팀잇'이 보여준 암호화폐와 블록체인의 가치
2편: 암호화폐 '김치 프리미엄'이 존재하는 이유

"그 몸체를 생각하면 소의 몸뚱이에 나귀의 꼬리, 낙타의 무릎에 호랑이의 발, 짧은 털, 회색 빛깔, 어진 모습이며 슬픈 소리를 지녔다. 귀는 구름을 드리운 듯 하고, 눈은 초승달 같으며, 두 개의 어금니 크기는 두 아름이나 되고 키는 1장 남짓이나 되었다. 코는 어금니보다 길어서 자벌레처럼 구부렸다 폈다 할 수 있고 굼벵이처럼 구부러지기도 한다. 코끝은 누에의 끝 부분처럼 생겼는데 거기에 족집게처럼 물건을 끼워서 둘둘 말아 입에 집어넣는다."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 상기에서 코끼리를 묘사한 부분이다.

이미 코끼리를 알고 있는 우리는 이 묘사를 보고 쉽게 코끼리의 형상를 떠올릴 수 있다. 청나라에서 코끼리를 처음으로 본 연암 박지원이 코끼리를 한번도 본적이 없는 조선사람들에게 설명해주기에는 이만한 글도 없다 싶을 정도로 아주 섬세하고 정확한 묘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코끼리를 한번도 보지 못한 조선 사람이 이 글을 읽고 코끼리를 정확하게 떠올리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이 전 두 편의 글에서 암호화폐가 토큰과 주식처럼 기능한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 글들에 달린 댓글 중, "성급한 짐작과 논리의 비약으로 점철된 긴 글을 읽느라 피곤하다"라는 글이 있었다. 그 마음을 충분히 이해한다.

10년 전 비트코인이 등장하기 전까지 암호화폐와 블록체인은 이 세상에 없던 존재였다. 그리고 10년이 지난 오늘에도 글을 쓰는 본인에게나 글을 읽는 여러분에게나 암호화폐는 이해하기 어려운 존재다. 지폐나 동전처럼 손에 쥘 수 있는 실물도 없고 지금 현재도 끊임없이 변화, 발전하고 있어서이다.

그래서 연암 박지원의 글은 곧, 댓글에 대한 나의 변명이다.

그나마 이전에 설명한 토큰과 주식으로서의 암호화폐는 실제 작동하는 메커니즘을 설명한 글이었지만 이번에 이야기하고자하는 화폐로서의 기능은 실제 제대로 작동하고 있다고 보기에는 어려운 부분이 있어 더욱 조심스럽다.

이글을 쓰면서 두 가지 고민이 있었다.

첫째, 화폐로 기능할 가능성을 강조하면 국가와 정부의 통제 하에 이루어진 중앙집중식 경제체제에 익숙한 분들의 정서적 거부감을 불러올 수 있다. 이미 많은 분들이 암호화폐와 블록체인이 불러 올지도 모를 새로운 패러다임에 대해 극렬한 거부감을 표시하고 있기도 하다. 그런 분들은 암호화폐가 토큰이나 주식으로 기능한다는 사실조차도 받아들이기 힘들지도 모른다. 그런데 하물며 화폐로서의 가능성이라니!

둘째, 반대로 화폐로 기능할 가능성을 무시하자니, 비트코인이 탄생할 때 목표했던 "신뢰할만한 제 3자(정부, 은행, 카드사 등)의 개입이 필요없는 당사자 간의 직접거래 수단"으로서의 기능은 포기할 수밖에 없어진다. 또한 실제로 현재 발행된 수많은 암호화폐 중에는 비트코인을 필두로 탈중앙화된 화폐로서의 기능, 그 자체를 목표로 한 경우도 많다.

자신이 투자한 암호화폐가 어떤 사업 목적을 가졌는가, 즉 어떤 블록체인 생태계 구축을 목표로 하는가에 대한 최소한의 이해 없이 미래에 화폐로서 기능할 가능성만을 보고 투자하는 투자자들이 아마 90% 이상이 아닐까 한다. 즉, 심지어 화폐로서 기능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지 않은 암호화폐의 경우에도 투자자는 화폐로 기능하기를 기대하고 투자하고 있는 경우도 많다는 것이다.

암호화폐, 가상화폐, 전자화폐 등 뭐라고 부르던, 화폐라는 단어가 들어가 있다는 이유로 생긴 오해가 아닌가한다. 이는, 암호화폐 투자는 투자가 아닌 투기라는 오명을 쓰게 된 주된 이유가 되기도 한다. 

오해와 불신을 떠나 어쨌거나 탈중앙화된 화폐로서의 기능을 표방한 암호화폐들이 현존하고 앞으로 계속 발전된 형태로 진화할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도 아니라서 이에 대해 논의해 보자.

일단 암호화폐 중 그 어느것이라도 지금 이시간 현재, 온라인 오프라인을 통틀어서 화폐로서 제대로 기능하고 있다고 볼만한 것은 없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트랜젝션 속도가 어떻고, 트랜젝션 수수료가 어떻고 하는 이야기는 접어두자. 가까운 미래에 그런 문제를 해결한 암호화폐가 등장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 오히려 이상할 정도로 블록체인 기술은 발전하고 있다. 기술 개발은 개발자들에게 맡기고, 우리는 어렵게 생각하지 말고 최대한 단순하게 생각해 보자.

우리가 금속 쪼가리의 형태든, 종이 쪼가리의 형태든, USB메모리에 든 데이터의 형태든, 그것을 화폐라고 인식할 만한 조건이 무엇일까?

첫째, 구매자의 입장에서는 그것을 가지고 가면 판매자로부터 자신이 원하는 재화나 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다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 판매자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재화나 서비스를 구매하고자 하는자가 그것을 구매수단으로 가지고 온다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심지어 비트코인의 천국이라 불리는 일본에서조차 구매자가 비트코인을 들고 아무 상점, 음식점, 주유소에 가서 비트코인으로 결제가 가능하다는 믿음을 가질 수 없다. 반대로 판매자의 입장에서도 자신의 재화나 서비스를 제공받으러 오는 구매자들 중 다수가 비트코인을 들고 올 거라는 믿음이 없어서 굳이 엔화나 신용카드 외에 비트코인을 또 하나의 결제수단으로 쓸지에 대한 확신을 가질 수 없다.

둘째, 화폐라고 부를 수 있으려면 최소한의 가치 안정성을 지녀야 한다. 몇 시간만에 가치가 10%가 오를 수도, 떨어질 수도 있는 무언가를 화폐라고 인정하기는 매우 어렵다.

판매자의 경우라면 결제가 빠르게 이루어지고 결제 즉시 법정화폐로 교환되어 입금되는 시스템이 만들어지면 크게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구매자의 경우라면 가치가 떨어질 것을 예상한다면 오프라인에서 결제 수단으로 쓰러 가기 전에 거래소에서 최대한 빨리 팔아버리는 게 낫다. 반대로 가치가 오를 것으로 예상한다면 결제 수단으로 쓰기에는 아깝다. 지금 비트코인 하나로 소형차를 사기보다 몇 주 후 가치가 더 오르면 중형차를 사겠다는 결정이 이어지다 보면 도저히 결제 수단으로 쓸 수 없어진다. 비트코인 하나가 중형차 가격에 이르더라도 일단 법정화폐로 중형차를 구입하고, 비트코인은 대형차 가격까지 오르기를 기다릴 수도 있다. 

즉, 보편성과 가치 안정성의 문제가 해결되어야 비로소 화폐로 인정받을 수 있다. 그런데 이 둘은 떼어 놓을수 없는 관계다. 보편성이 해결되면 가치 안정은 저절로 이루어질 가능성이 높다. 물론 가치 안정이 이루어지려면 발행량이 적절하게 조절되어야겠지만, 보편성이 없이 발행량 조절만으로 가치 안정을 이루기는 매우 어렵고 보편성이 확보되면 훨씬 쉬워진다.

가까운 미래에 비트코인이든 그 어떤 다른 암호화폐든 이 보편성과 가치 안정성의 문제를 해결하기는 매우 어려워 보인다.

다만, 나의 주관적인 판단으로, 그 가능성이 가장 높다고 생각되는 분야가 있기는 하다. 바로 카지노 산업이다.

카지노에서 화폐처럼 사용되는 게임 칩
 카지노에서 화폐처럼 사용되는 게임 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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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지노에서 쓰이는 칩을 대신할 가상의 암호화폐인 SJ코인이 몇몇 카지노에서 쓰이도록 하는데 성공했다는 가정을 해보자. 이 SJ코인을 USB메모리나 스마트폰 속의 지갑에 담아 해당 카지노에 가서 칩처럼 쓸 수 있다면 가치 안정성은 상대적으로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SJ코인도 초기에는 가격 변동성이 클 수밖에 없다. 오늘 1SJ가 2달러인데 내일 3달러가 될 것으로 기대하는 사람은 SJ코인으로 커피를 사마시기는 어렵지만 카지노에서 칩으로 쓰는데는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카지노에서 도박을 하는 도박꾼들은 잃기를 기대하기보다는 따기를 기대하기에 오늘 1SJ로 도박을 하여 10SJ를 따면 오늘의 2달러로 내일의 30달러를 딸 수 있다는 기대를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오늘 1SJ가 2달러인데 내일 1.5달러로 떨어질 수 있다고 예측한다 하더라도 도박꾼의 입장에서는 당장 1SJ를 2달러에 팔기보다는 도박으로 10SJ를 따서 내일 15달러에 팔 수 있다는 기대를 가질 수 있다. 즉, 극단적인 변동성만 아니라면 도박을 하는 사람들은 SJ코인으로 도박을 하는데 크게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카지노에서 SJ코인의 사용이 활성화되면 그 주변 상점들도 이 SJ코인 결제 시스템을 받아들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카지노 산업은 특정 지역에 결집되어 있는 경우가 많아서 예를 들어 라스베이거스의 카지노들이 SJ코인을 받아들인다면 라스베이거스의 판매자들은 그곳에 오는 관광객 중 상당수가 비트코인을 가지고 있을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겠지만, 다수가 SJ코인을 소지하고 있을 것이라는 판단을 할 수 있다. 라스베이거스의 많은 상점이 SJ코인 결제를 해주면 SJ코인으로 구매를 하고자 하는 이도 서서히 증가할 것이다.

물론 도박에서 쓸 때와 달리 일반 상점에서 쓰기에는 초기의 가격 변동성 때문에 저항이 있을 수 있겠지만, 라스베이거스 뿐 아니라 세계 각지의 카지노 도시에서 SJ코인이 보편성을 확보한다면 가격 안정성을 이루기는 훨씬 쉬워진다. 즉, 보편성과 가격 안정성은 서로 선순환하면서 향상될 것이라는 기대를 할 수 있다.

라스베이거스, 마카오, 정선, 마닐라 등 세계의 카지노 도시들은 하나의 암호화폐, SJ코인으로 결제가 가능한 경제 공동체가 되는 것이다. 카지노 도시 내에서는 카지노, 상점, 호텔, 음식점, 심지어 중고차 상사나 주유소에서도 SJ코인으로 결제 가능한 수준까지 발전한다면. 

물론 이 SJ코인도 카지노 도시들을 떠나면 결국 각국의 법정화폐로 교환되어 사용되겠지만 이 정도 규모가 되면 토큰을 교환해주는 수준이 아니고 국경없는 가상의 "SJ카지노국"의 화폐로서 SJ코인을 환전해 준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암호화폐가 화폐로 기능할 가능성을 쓴다더니 겨우 카지노냐? 라고 할 수도 있겠으나 세계의 카지노 산업 규모의 합은 이미 웬만한 국가 하나의 경제 규모를 넘어선다고 추측할수 있다. 세세한 통계자료도 필요 없다.

카지노로 먹고 산다고 할만한 세계의 도시들, 라스베이거스, 마카오, 정선, 마닐라 등의 도시로 가상의 국가를 형성한다고 생각해 보면 어지간한 개발 도상국 하나보다 경제 규모가 더 클 것이라는 추측은 쉽게 할수 있다.     

이제까지 세 편의 글 중 이글이 가장 비약이 심하다고 여길 수도 있겠지만, 최소한 암호화폐가 법정화폐와 경쟁할 수준에 이르는 시나리오를 구상해 본다면 이 시나리오가 가장 현실적이 아닌가 한다.

세 편의 글을 쓴 지금, 중간 요약을 하자면, '암호화폐=암호(토큰+주식+미래의 화폐)'라고 하겠다.



태그:#암호화폐, #가상화폐, #비트코인, #블록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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