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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는 일마다 실패의 실패를 거듭한 삶의 연속이었다. 그리고 2015년 여름은 내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기로 기억한다. 사람이 절망에 빠질 수 있을 만큼 절망한 시기였다. 내가 절망한 만큼 가족들도 절망했다.

앞이 보이지 않는 절망하는 인생 속에 매일 술로 연명했다. 술을 마시고 잠이 들고 깨면 또 다시 술을 마셨다. 몸도 마음도 아팠다. 바닥까지 떨어진 시기였다. 술의 늪에 빠졌다. 나오려고 하면 할수록 더 깊숙하게 빠져들었다.

알코올 중독의 극단까지 간 단계였다. 술을 마시고 흐트러진 모습을 가족에게 보여주기 싫어 엉망으로 취해 차 안에서 잠을 잤다. 누군가 깨워 일어나니 아내였다. 화를 내고 다시 잠을 잤다. 깨어보니 노모가 옆에 앉아있었다. 화를 내고 다시 잠을 잤다. 깨어보니 큰아들이 옆에 앉아있었다. 모두가 걱정 가득한 얼굴을 하고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고등학교 시절에 '순수하게 살자'라고 마음먹은 적이 있었다. 백합의 하얀 꽃잎처럼 향기롭게 순결하게 예쁘게 살고자 하였다. 그런데 그때의 내 모습은 술의 늪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었다. 그런 내가 싫었다. 잘 살고 싶었던 인생이 나도 모르게 고등학교 시절 가장 싫어하던 모습이 되어있었다.

옛날에 생각했던 순수. 그 순수한 삶을 다시 살아보고 싶었다. 나에겐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필요 없는 살들이 너무 많았다. 그 살들이 내 삶을 엉망으로 만들고 있었다. 다시 순수한 모습으로 살고 싶었다. 치열하게 치열하게 사는 것이 삶의 군더더기를 칼로 도려내는 것이라 생각했다.

더러운 부분을 도려내고 씻어 고등학교 시절 생각했던 그러한 순수한 삶을 갖고 싶었다. 더러운 부분을 도려내려면 피를 흘려야 했다. 피를 흘리는 고통을 이겨내어야만 그런 부분을 내 살에서 내 삶에서 잘라낼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를 생각해보았다. 나에게 더러운 살들과 더러운 생각이 생기기 시작한 출발점은 무엇일까를 생각해보았다. 삶을 힘들게 만든 것은 돈이 없다는 것이었지만 그것은 표면적인 이유에 불과했다. 어떤 것이 내 삶 속에 나쁜 씨앗으로 들어와 나쁜 꽃을 피워 삶을 악취 나게 하는지 그 원인은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옳게 사는 것이 무엇인지는 생각할 수 있었다. 절망의 연속인 생활이 진절머리가 났다. 어떤 것이 원인이 되어 내 삶을 피폐하게 만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건 진짜 내가 바라는 삶이 아니었다.

막노동을 시작하다

술을 끊고 치열하게 사는 것. 느슨한 삶이 아닌 내가 할 수 있는 필사적인 몸부림을 쳐보는 것. 그래서 선택한 것이 막노동이었다
 술을 끊고 치열하게 사는 것. 느슨한 삶이 아닌 내가 할 수 있는 필사적인 몸부림을 쳐보는 것. 그래서 선택한 것이 막노동이었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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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하면 잘 살 수 있을까를 생각해보았다. 아주 단순한 대답이 나왔다. 술을 끊고 치열하게 사는 것. 느슨한 삶이 아닌 내가 할 수 있는 필사적인 몸부림을 쳐보는 것. 그래서 선택한 것이 막노동이었다. 돈 없고 가진 기술이 없는 사람이 선택할 수 있는 마지막 직업인 막노동을 하면서 정신과 육체의 군더더기를 없애고 싶었다. 정말 이제와 다른 삶을 살고 싶었다.

이제껏 한번도 육체적인 노동을 해본 적이 없어 자신이 없었지만 부딪혀보기로 했다. 새벽 5시에 일어나 인력시장으로 무작정 나갔다. 참을 수 없이 힘든 노동이 나를 치열하게 만들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인력 사무소 사장이 나를 보더니

"여기 첨인교? 주민등록증 주소."

첫 마디였다. 주민등록증을 주자

"무슨 기술 있는교?"
"특별한 기술은 없심더."
"알았심더, 기다려보소."

인력사무실에는 사람들이 30~40명 정도 앉아 있었다. 그들은 모두 작업복에 모자에 안전화를 신고 있었다. 커피를 한잔 마시며 앉아 있으니 내 이름을 불렀다.

"윤창영씨 저 사람 따라 가이소."

그래서 간 곳이 현대 모비스 장생포 물류장 수리하는 곳이었다. 비계(건축공사 때 높은 곳에서 일할 수 있도록 설치하는 임시가설물) 일을 하는 곳이었는데 같이 일하러 간 사람이 나에게 할 일을 말해주었다. 파이프를 나르는 것이었다.

6M 파이프를 기술자가 작업하는 곳까지 날라다 주는 것이었는데, 하나 들어보니 너무 무거웠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은 두 개씩 들고 날랐다. 하나도 힘들어 쩔쩔 매며 나르고 있는데

"아저씨 그러다 언제 다 나르는교? 두 개씩 나르이소."

그 말을 듣고 두 개를 어깨에 짊어지려고 해보았지만 도저히 할 수가 없었다.

"무슨 일을 그렇게 하는교. 그래 일해 놓고 일당 받을라꼬 하는교?"

언성을 높이며, 다가와서는 파이프 드는 요령을 가르쳐 주었다. 처음에는 잘 되지 않았지만 어느 정도 하니 요령이 생겼다. 다음으로 한 것이 발판을 옮기는 작업이었는데 파이프보다 더 무거웠다. 그것도 두 개씩 나르는 요령을 욕을 들어가면서 배웠다. 하루 일을 무사히 끝을 내자 온 몸이 쑤시고 아팠다.

그렇게 해서 받은 일당이 9만 원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10만 원을 받았지만 초보라서 9만 원밖에 주지 않았다. 그리고 현장에서는 나이 따위는 소용이 없었다. 기술자들이나 일을 시키는 사장들은 막노동 하는 일꾼을 인격적으로 대우해주지 않았다.

일이 힘든 것은 어느 정도 참을 수 있었으나 인격적으로 모욕 받는 일은 참을 수 없었다. 어떤 현장에서 이제 20대 중반 밖에 되지 않은 기술자가 막말을 해대는 것을 참는데 진짜 힘이 들었다. 하지만 이 일은 나의 살을 깎는 일이라 생각을 하며 참아내었다.

비계일 뿐만 아니라 잡부가 되어 여러 가지 일을 했다. 곰방이라고 벽돌과 모래를 위층으로 옮기는 일도 하였다. 힘든 일이었기에 일당도 15만 원을 주었다. 일당이 많은 일이었기에 큰 아들을 데리고 가서 함께 한 적도 있었으며, 작은 아들을 데려가기도 하였다. 그리고 아들들에게 이야기하였다.

"어떤 일을 하든지 일하는 것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다. 놀면서 술이나 마시는 것이 부끄러운 것이다. 이제 아빠는 술을 마시지 않는다. 그리고 부끄러운 아빠가 되지 않기 위해 어떤 일이든 할 것이다."

사실 막노동을 하면서 부끄럽기도 하였다. 어떤 현장에 일을 하러 간 적이 있었는데 일을 맡긴 사장을 보자 얼굴이 화끈거렸다. 아는 후배였다. 일이 힘든 것보다 초라한 내 모습을 보여 주는 것이 너무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것이 끝이 아니다. 언젠가 제대로 일어선 내 모습을 보여주고 말테다'라는 생각을 하며 이를 악물었다.

그리고 다시 여름이 되었다. 비계 일도 어느 정도 익숙해졌는데, 땅에서 한 15M 정도 높이에서 일을 하다 뜨거운 열기를 이기지 못 하고 현기증으로 몸이 휘청거린 적이 있었다. 그러다 땅으로 떨어져 내리면서 목숨을 잃게 되는 위험한 상황에 처하게 된 것이다. 방송에서는 이런 일을 하다 죽게 되는 사람의 뉴스를 수시로 들을 수 있었기에, 이렇다가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죽도록 힘이 든다면

죽도록 힘이 든다면, 죽고 싶은 생각이 든다면
 죽도록 힘이 든다면, 죽고 싶은 생각이 든다면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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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도 완전히 끊었고 정신적으로도 안정이 되었다는 생각이 들어 막노동을 그만 두게 되었다. 이 일을 통해 다시 살아갈 힘을 얻었다. 어떤 일이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생겼다. 절망의 바닥을 확인한 것이다. 바닥에서는 더 이상 내려갈 곳이 없고 올라갈 일만 남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제껏 내가 한 일 중 가장 힘든 일을 한 시기였다. 어떻게 보면 치열하게 살자고 한 일을 실천한 것이 되었으며, 일이 고통스러울수록 내 정신과 육체의 군더더기를 칼로 잘라내는 아픔을 겪어내는 일이라 생각했다.

하루 일을 끝내면 카페에 가서 글을 썼다. 글을 쓰지 않으면 난 막노동꾼으로 사는 것이지만 글을 쓰면 난 작가로 살아가는 것이 된다는 생각을 하였기 때문이다. 막노동을 하며 밥도 하루 한 끼밖에 먹지 않았고 술도 마시지 않았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살이 빠졌다. 정신의 부정적인 생각의 군더더기도 없어지기 시작했다. 그때 쓴 시이다.

살깎기

요즈음 한창 살을 깎고 있는 중이다.
한 10키로 정도 깎았으니
몸이 홀쭉해졌다.

요즈음 한창 정신도 깎고 있는 중이다.
욕망을 깎고 슬픔도 깎고
정신도 홀쭉해졌다.

그래서 아프기도 하다.
깎여져 나가는데 어찌 아프지 않으랴?

몸이 깎이고
정신이 깎여
연필이 되었다.

그 연필로 글을 쓴다.

죽도록 힘이 든다면, 죽고 싶은 생각이 든다면 극기훈련을 한번 해볼 것을 권하고 싶다. 죽을 용기가 있으면 어떤 일이든 하지 못 하겠는가? 나도 그때 죽고 싶은 생각밖에 없었다. 잠을 자려고 눈을 감으면 절벽에서 떨어져 죽는 상상을 하였다.

하지만 이렇게 죽기에는 내 인생이 너무 억울했다. 남겨진 가족은 어떻게 살란 말인가? 가족을 생각했다. 그리고 막노동을 했으며, 이제 그 생활에서 탈피를 하였다. 다시 희망을 가지게 되었으며 가족과 함께 전과는 다른 인생을 살고 있다.


태그:#막노동, #막일, #알코올 중독,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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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창한 이야기가 아닌 생활 속에 벌어지는 소소한 이야기를 담고 싶습니다. 들꽃은 이름 없이 피었다 지지만 의미를 찾으려면 무한한 의미를 찾을 수 있습니다. 그런 들꽃같은 글을 쓰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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