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꽉 막힌 도심 속 차량들 사이를 가볍게 스쳐 지나갈 때의 통쾌함이란...
 꽉 막힌 도심 속 차량들 사이를 가볍게 스쳐 지나갈 때의 통쾌함이란...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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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이 넘게 '자덕(자전거 덕후)' 생활을 하고 있다. 주말에 레저용으로 타는 것 외에도 출퇴근을 하고 멀리 자전거 여행을 떠나기도 한다. 마트나 도서관에 갈 때, 출장을 갈 때도 자전거와 함께 한다.

장갑을 끼고 헬맷을 쓰고 건물에 출입하다 보면 택배기사로 오해 혹은 환영받기도 한다. 자전거를 본격적으로 타게 된 건 출퇴근을 위해서였다. 회사를 오갈 때 타야했던 지하철이나 자가용이 모두 맘에 들지 않았다.

쾌적하고 깨끗하기로 명성이 자자한 우리나라 지하철은 알다시피 출퇴근 때는 지옥철이 된다. 자가용은 상습적인 도로정체로 생기는 짜증과 함께 내내 마음속에 찜찜함이 남았다. 대기에 매연을 뿡뿡 내뿜으며 다니는 1000kg이 넘는 차를 몸무게가 겨우 70kg 넘는 사람이 혼자타고 출퇴근하는 게 과연 합당한 일인가 하는.

자전거 출퇴근은 지하철의 괴로움과 자가용의 찜찜함을 모두 날려 주었다. 특히 꽉 막힌 도심 속 차량들 사이를 가볍게 스쳐 지나갈 때의 통쾌함이란... 자전거를 타는 것은 어느새 내 삶의 방식이 됐다.

'자덕'을 자각하는 순간

직접 자전거를 만드는 '덕업일치'에 성공한 어느 자덕.
 직접 자전거를 만드는 '덕업일치'에 성공한 어느 자덕.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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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출사(자전거로 출퇴근 하는 사람들)', '자여사(자전거타고 여행하는 사람들)'등 인터넷 자전거 카페를 알게 되면서 내 자전거는 좀 더 다양한 길을 달리게 되었다. 서울 한강변 자전거길을 한 바퀴 돌면 200km가 넘는다는 걸 알게 됐고, 제주도 자전거 캠핑여행을 하면서 난생 처음 노숙을 하기도 했다.

평소 귀여워했던 개들이 자전거만 보면 달려드는 본능을 이해하게 됐고, 한국의 강변풍경을 똑같이 만든 영산강, 낙동강 등 4대강길을 달리면서 이명박 전 대통령은 권력이 아니라 이권을 위해 대통령이 됐구나 깨달았던 것도 빼놓을 수 없겠다.

그렇게 몇 년간 동고동락을 하다 보면 자전거가 친구나 동료처럼 느껴지는 단계가 오는데, 이때가 진정한 '자덕'이 되는 순간이 아닐까 싶다. 이제 어딜 가도 자전거와 함께라면 그리 쓸쓸하거나 외롭지가 않다.

사람이 병이 나면 신음소리를 내듯, 자전거도 이상이 생기면 '끽끽' 하는 소음이 난다. '철덕(기차 마니아)'은 열차의 엔진소리만 들어도 어떤 열차인지 안다고 한다. 자덕은 자전거의 프레임(골격), 싯포스트(안장봉), 브레이크 부품 등 어디서 나는 아픈 소린지 바로 안다.

자전거 가게에 자주 들르게 되는 것도 이때부터다. 주치의처럼 내 자전거를 위한 단골가게가 생기게 되고 자전거가 아플 때를 대비해 간단한 정비수리까지 배우게 된다. 자덕이라면 다양한 모델, 비싸거나 희귀한 모델의 자전거를 소유하는 것도 좋지만, 자전거를 타다가 흔히 발생하는 타이어 펑크 수리는 자덕의 실질적인 기준이 되기도 한다.

다양한 자덕의 세계.
 다양한 자덕의 세계.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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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체력이나 체형, 취향에 맞는 자전거를 만나는 것도 중요하다. 바람을 가르듯 빨리 달리는 로드자전거, 거친 산길도 달릴 수 있는 MTB, 순수한 자전거의 본질을 느낄 수 있는 픽시, 도시 라이딩의 최강자 미니벨로, 노약자도 즐길 수 있는 전기 자전거까지... 자전거의 세계는 다종다양하다. 내게도 5대의 자전거가 집 안팎에 자리하고 있다.

수년간 몇 번을 사고 또 몇 번을 자전거 중고장터에서 팔면서 고르고 고른 애마들이다. 수집취미도 없는 내가 가장 공들여 장만한 금속말들이 집안에서 대문 밖에서 주인을 기다리며 서있는 걸 보면 흐뭇하기도 하고 소박하게 살고픈 내 삶에 이만한 사치가 없겠구나 싶다. 사치에도 종류가 있다면 일상에서 느낄 수 있는 작지만 확실하게 실현 가능한 행복을 뜻하는 '소확행'형 사치라고 할까.

자전거는 이런 수집의 기쁨에 더해 수집품을 꺼내 땀까지 흘리면서 언제든 직접 몸으로 체험해 볼 수 있다는 큰 장점이 있다. 디자인도 개성적인데다 출퇴근용, 여행용, 캠핑용, 무한 주행용 등등 각자 부여받은 임무가 다르다. 자덕생활의 큰 기쁨이라면 마침내 내 체형과 취향에 맞는 자전거를 찾았을 때다. 뜻이 잘 맞는 친구, 말이 잘 통하는 연인을 만난 것 같다. 이 애마를 타고 어디를 달릴까 상상만 해도 희열이 느껴진다.        

몸을 써 글을 쓰는 여행 작가로 만들어준 자전거 

자전거가 친구가 된 자덕의 여행.
 자전거가 친구가 된 자덕의 여행.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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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여행은 내 몸을 연료로 태우며 달려가야 하다 보니 일반적인 여행에선 느끼지 못하는 특별한 매력이 있다. 오르막 혹은 내리막 언덕길, 쓸쓸하고 홀가분한 외로움, 맞바람과 등 뒤에서 밀어주는 등 바람, 마주치는 다양한 사람들... 자전거 여행은 삶과 참 닮아있다.

자전거 여행체험을 여행기로 쓰게 된 계기는 어느 평범한 직장인이 쓴 <아메리카 자전거 여행(홍은택)>이라는 책 덕분이었다. 마흔이 넘은 나이의 저자가 미국이라는 큰 대륙을 횡단해 달려 자전거 여행을 했다는 사실 외에도 자전거 여행이란 참 풍성하고 끌리는 여행법이구나 싶었다.  

틈틈이 시간이 날 때마다 자전거 여행을 떠났다. 포탄처럼 눈이 쏟아져 내리는 겨울 제주도 중산간길을 느릿느릿 달리고, 비수기 아무도 없는 강원도 화천의 붕어섬을 혼자 독차지 하고, 새벽녘까지 울어대는 개구리들의 합창소리를 들으며 섬진강변 정자에서 잠을 청했다. 충직한 개들에게 동네를 벗어날 때까지 쫓기기도 했지만, 길 위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얘기하고 도움을 받았다.

여행지보단 여행지까지 가는 긴 여정이 더 즐겁고 때론 힘겹고 추억에 남는 자전거 여행. 페달을 밟는 것 자체가 목적이고 과정이다 보니 그곳이 미국이건 제주도건 큰 상관이 없다. 몇 킬로미터 되는 거리를 얼마 만에 달려갔다는 것도 그리 중요한 게 아니다.

타면 탈수록 자전거는 내게 무엇이 필요 없고 의미 없는지를 자연스럽게 깨닫게 해주었다. 수억 원의 연봉도, 고급 외제차도, 수십 평 집도 그다지 끌리지 않게 됐다. 나도 모르는 사이 미니멀리스트(최소주의자)가 됐다고 할까.

잊기 힘든 추억을 남겨준 자전거 여행.
 잊기 힘든 추억을 남겨준 자전거 여행.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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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여행을 떠날 때마다 지극히 평범했던 내 인생에 흥미로운 또 하나의 삶이 덧붙여졌다. 자전거를 타고 여행을 떠나면 소소한 삶의 이야기를 의도하지 않아도 저절로 자주 마주치게 된다. 심지어 익숙한 곳이 낯선 곳으로 변하는 마력까지 품고 있다.

처음엔 개인 블로그에 기록을 하다가 <오마이뉴스>에 자전거 여행기를 쓰게 되었다. 일반적인 글쓰기와 달리 여행기는 사진도 들어가고 체험을 주로 기록하는 것이다 보니 덜 힘들게 입문할 수 있었다.

자전거 타기처럼 중심을 잡고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하면 속도가 느려서 그렇지 점점 실력이 향상되는 게 글쓰기였다. 글을 쓰다 보면 무의식속에 숨어있던 기억과 생각지도 못했던 표현이 떠오르는 신기한 경험을 했다. 자전거 여행만큼 흥미로운 체험이었다.

이후 자전거잡지, 대한항공, 하천협회 등에 자전거 여행기를 연재하면서 팔자에도 없는 여행작가 소리를 들으며 강연도 하게 됐다. 다른 작가와 달리 자전거 여행 작가는 발을 굴리며 움직여야 글이 나온다. 몸을 써야 비로소 글이 써지는 특별한 작가, 다 자전거 덕분이다.

덧붙이는 글 | 제 블로그에도 송고했습니다.



태그:#자전거덕후, #자전거여행, #자전거여행작가, #자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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