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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 동계올림픽 개막 잔칫날 난데없이 한국인을 비하하는 '망언 폭탄'이 터졌다. 장본인은 '망언 단골' 일본인이 아니라 미국인이었다. 이런 점에서 이번 망언은 큰 충격과 함께 단순한 말실수가 아닐 거라는 우려마저 나오고 있다. 

지난 9일 평창올림픽 개막식 때 미국 NBC는 중계방송을 했다. 해설자로 출연한 조슈아 쿠퍼 라모는 일본 선수단이 입장하자 뜬금없이 "일본이 한국을 1901년부터 1945년까지 점유했지만 모든 한국인들은 일본이 문화·기술·경제적으로 매우 중요한 본보기였다고 말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평창동계올림픽 개막식 중계 때 해설가로 출연해 한국비하 망언을 한 조슈아 쿠퍼 라모
 평창동계올림픽 개막식 중계 때 해설가로 출연해 한국비하 망언을 한 조슈아 쿠퍼 라모
ⓒ NBC 화면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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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모의 발언은 소위 '식민지 근대화론'에 근거를 둔 것이다. '식민지 근대화론'은 일본의 한국지배를 정당화하는 이론으로 일제의 식민지배가 한국의 경제발전에 밑거름이 되었다는 주장이 골자다.

이는 일본의 몇몇 극우성향의 역사학자들이 주창한 것이다. 한국에서는 뉴라이트 계열의 경제학자들이 '나팔수' 노릇을 하였으나 공감은커녕 역사학계 안팎에서 호된 비판을 받았다. 

이날 생방송을 통해 라모의 발언을 전해들은 국내외 한국인들은 즉각 SNS를 통해 발언내용을 전하면서 크게 분노하였다. 급기야 평창올림픽조직위원회는 NBC에 항의했다. 이에 대해 NBC는 "이 발언이 대한민국 국민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다는 것을 이해하며 사과드린다"는 성명과 함께 해설자 해고 조치를 내렸다.

국내언론은 물론 미국언론들도 라모의 발언을 비판하고 나섰다. <뉴욕타임스>는 "라모가 아시아의 문화를 일반화하는 태도는 깊이 없는 온라인 백과사전 수준"이라고 꼬집었습니다.

라모는 <타임>지 기자 출신으로 중국어에 능통한 아시아 전문가로 알려져 있다. 그는 또 컨설팅업체인 키신저 어소시에이츠의 최고경영자이며, 스타벅스와 페덱스의 이사로도 활동하고 있다.

사태가 확산되자 라모는 14일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사과하였다. 그는 "잊어서는 안 될 한국 역사의 한 부분을 축소하거나 무례한 언급을 하려는 의도는 아니었다. 평창올림픽 개막식에 있었던 제 발언에 불쾌감을 느꼈을 분들께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라모가 14일 자신의 트위터에 올린 사과문
 라모가 14일 자신의 트위터에 올린 사과문
ⓒ 라모 트위터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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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또 "결코 잊혀져서는 안 되는 한국 역사의 한 부분을 무시하거나 무례한 언급을 하려는 의도는 아니었습니다"라며 "한국은 고유의 가치와 경험을 바탕으로 특별하고, 강력하고, 중요한 발전을 이룩했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덧붙였다. 한 마디로 병 주고 약 주는 꼴이다. 

한편 라모의 난데없는 망언은 단순한 말실수가 아닐 거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미국 외교가의 동아시아에 대한 왜곡되고 편향된 인식이 표출된 것이라는 우려가 그것이다. 일본은 독도, 위안부 문제 등과 관련해 '사사카와 평화재단' 등 민간단체를 통해 미국의 오피니언 리더들을 친일파로 양성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돼 왔다.

라모의 망언 사태를 접하면서 한 세기 전의 한 미국인이 떠올랐다. 구한말 친일활동을 벌이다 최후를 맞은 더럼 스티븐스(D.W. Stevens, 한국명 수지분·須知芬)가 그 사람이다.

스티븐스는 1851년 미국 오하이오주 태생으로, 컬럼비안 대학 법리과·외교학과를 졸업했다. 미 국무부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한 그는 1882년 주일 미국공사관에서 1년간 근무한 것이 계기가 돼 일본과 인연을 맺게 됐다. 이후 그는 미국 워싱턴 주재 일본외무성 고문으로 위촉돼 외교자문을 하면서 본격적으로 친일노선을 걸었다.

 일제의 한국침략을 미화, 변호한 친일미국인 더럼 스티븐스
 일제의 한국침략을 미화, 변호한 친일미국인 더럼 스티븐스
ⓒ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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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스가 한일 외교무대에 처음 등장한 것은 1884년 갑신정변의 결과로 체결된 '한성조약' 체결 때이다. 일본 측 전권대사인 이노우에 가오루(井上馨)를 따라 내한한 그는 이노우에를 뒤에서 자문하였다.

1904년 제1차 한일협약이 체결된 후 일본정부의 명령으로 구한국 정부의 외부(外部·현 외교부) 고문에 취임했다. 그는 한국정부로부터 봉급을 받으면서도 일본의 대변자로서 한국침략에 앞장섰다.

그가 노골적으로 친일행각을 그러낸 것은 1905년 을사늑약이 강제체결 된 이후다. 1908년 2월 통감부는 스티븐스에게 1만 달러를 주면서 미국 조야(朝野)의 인사들을 만나 일본의 한국 외교권 박탈정책을 찬양하도록 지시했다. 그는 이같은 일본정부의 요청을 받아들여 이토(伊藤博文) 통감으로부터 휴가를 얻어 미국으로 건너갔다.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한 스티븐스는 미국 내 여러 신문사에 "조선인들은 일본이 보호해주는 것을 환영하는 분위기"라는 내용의 성명서를 보냈다. 이어 그는 기자회견을 열어 "을사조약은 미개한 조선인을 위해 이루어진 조치"라며 "조선인은 독립할 자격이 없는 무지한 민족"이라는 망언을 쏟아냈다.

그러자 기자회견을 지켜보던 최유섭(崔有涉) 등 한국교민 대표 4명은 분노한 나머지 현장에서 그를 붙잡아 구타하였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교민사회는 크게 들끓기 시작했다.

3월 23일, 스티븐스는 워싱턴으로 가기 위해 샌프란시스코 페리역에 도착해 일본영사의 안내를 받으며 역 구내로 들어섰다. 이때 먼저 도착해 있던 전명운(田明雲) 의사가 권총으로 그를 저격하였으나 불발로 실패하였다.

 전명운 의사
 전명운 의사
ⓒ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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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자 때마침 역에 도착한 장인환(張仁煥) 의사가 그를 향해 3발을 쏘았다. 두 발은 스티븐스의 허파와 허리에 박혔고, 나머지 한 발은 전 의사의 오른쪽 어깨를 관통했다. 전·장 두 의사는 사전에 협의 없이 각자 거사를 준비하였다.

 장인환 의사
 장인환 의사
ⓒ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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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으로 이송된 스티븐스는 이틀 뒤 성프란시스 병원에서 수술 도중 사망하였다. 거사 직후 현장에서 미국 경찰에게 체포된 두 의사는 이후 재판에 넘겨졌다. 재미교포들이 열렬한 재판투쟁을 벌인 결과 전 의사는 무죄로 풀려났다. 반면 장 의사는 2급 살인죄로 금고 25년을 선고받고 복역 중 1919년 1월 10년 만에 가석방되었다.

4월 6일에 워싱턴에 도착한 스티븐스의 시신은 8일 장례를 치른 후 워싱턴 온비루묘지에 묻혔다. 그의 추도식에는 루즈벨트 대통령을 비롯해 미국의 유명 인사들이 조화를 보냈다. 일본정부도 메이지(明治) 일왕의 조전 및 조화를 보냈으며, 스티븐스에게 1등급 훈장을 추서하고 유족들에게 조의금 15만엔을 지급했다.

미국인으로서 일제의 불법적인 한국침략을 미화·변호하던 친일미국인 스티븐스. 그는 재미교포 한국인 전명운·장인환 두 청년의 손에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 대한민국 정부는 1962년 두 의사에게 건국훈장 대통령장(2등급)을 추서했다. 장 의사는 서울 국립묘지에, 전 의사는 미국 L.A 근교 묘지에 안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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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여 년간 언론사에서 근무했고, 친일청산 등 역사문제에 관심을 갖고 있으며, 평소 그 무엇으로부터도 구애받지 않는 '자유로운 글쓰기'를 갈망해 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