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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키우면, 어른들끼리는 경험하기 힘든 낯선 일들을 겪습니다. 오직 육아하는 이 때만, 부딪칠 수 있습니다. 애 키우는 동안 나를 흘려보내는 것 같아 좌절감에 글을 씁니다. '너희만 크냐? 엄마도 같이 크자'는 마음으로 펜을 들었습니다. 아이와 함께 성장하기 위해 육아일상 속 메세지를 담아 글을 씁니다. [편집자말]
결혼하기 전에는 양말을 벗어 바닥에 휙 던졌다. 현관에서 다섯 발자국만 디디면 세탁바구니까지 갈 수 있는데도 그랬다. 결국 세탁 할 때마다 방 구석구석을 뒤지며 빨랫감을 모아야 했다.

대학 도서관에서 책을 빌리면, 반납을 늦게 했다. 그러다 연체 패널티를 받아, 대출 정지도 여러 번 먹었다. 두부된장찌개를 한 끼 먹으면, 냉장고에 바로 넣지 않았다. 애써 끓인 찌개에 쉰내가 나서 여러 번 버렸다.

빨랫감을 세탁 바구니에 모아야, 세탁할 때 편하다. 대출한 책을 제 때 반납해야 다른 사람에게 폐를 안 끼치고, 나도 대출 정지를 받지 않는다. 두부된장찌개는 먹고 나서 바로 냉장고에 넣어야 상하지 않는다. 어떻게 해야 할지 다 알고 있는데도 미루고 미루다 빈번히 일을 그르쳤다.

지행합일(知行合一) 못 하던 아가씨는 이제 엄마가 되었다. 여전히 재빠르지 못하다. 명절을 맞아 먼 길 달려 시댁으로 와서도, 무거운 엉덩이는 좀처럼 가벼워지지 않았다. 무엇을 해야할지 알면서 우물쭈물하다 결국 더 힘들게 일하는 엄마 성격을, 낯선 도시에서 두 아이가 온 몸으로 견뎌야 했다. 그것도 매우 혹독하게.

우물쭈물 굼 뜬 내가 결혼을 하고 엄마가 되었다.
 우물쭈물 굼 뜬 내가 결혼을 하고 엄마가 되었다.
ⓒ 최다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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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물쭈물하던 습관 때문에

거실 공기가 탁해, 환기를 시켰다. 둘째의 연한 살결에 찬 공기가 닿아 신경쓰였다. 5개월 밖에 안 된 어린 아기에게 겨울 바람은 그야말로 감기로 가는 지름길이다. 하지만 그래봤자 5분이니 큰일이야 나겠나,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한결 쾌적해진 거실에서 아이들은 무료함으로 바닥을 긁었다. 설 연휴 5일 동안 늘어질 아이들은 분명 엄마의 치맛자락 잡으며 놀아달라 떼 쓸 터! 나의 수고로움을 덜기 위해 장난감을 사러 마트로 갔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문을 닫았다. 아차, 머핀(아기띠 위에 덮어 씌우는 패딩 이불)을 차에 놓고 왔다. '영하 1도'. 매서운 기온이 머리를 스쳤지만 따뜻한 실내까지 거리는 짧았다. 결국 머핀 없이 아기띠에 둘째를 안고 발걸음을 바삐 옮겼다.

다행히 매장 안은 히터 공기로 훈훈했다. 추웠던 주차장을 까마득히 잊고 아이들 장난감을 골랐다. 고무공 하나와 스티커 책 한 권을 사서 시어머니 일 하시는 꽃집으로 갔다.

방바닥은 따뜻하고 공기는 서늘했다. 꽃과 나무가 편안해야 할 꽃집이니, 사람이 좀 추워도 어쩔 수 없었다. 대신 꽃향기와 풀내음이 나니 서늘한 공기라도 반가웠다. 그런데 둘째가 더운 바닥에 오래 누웠다가, 짧은 머리칼이 땀으로 푹 젖어버렸다. 땀 범벅이 된 머리를 손수건으로 닦아 말려줘야 했지만 모자만 씌웠다. 그렇게 추우면 춥다고 말 못하는 둘째 딸은, 축축한 머리에 모자만 달랑 씌워진 채로 있어야 했다.

거실 환기 할 때, 아이들을 따뜻한 방에 데려다 주지 않았다. 마트 주차장에서 빨리 차 문을 열어 머핀을 꺼냈어야 했다. 어머님 일터인 꽃집에서 아이의 젖은 머리칼을 방치했다. 우물쭈물하던 일들이 여러 번 쌓이니 결국 사단이 났다.

어린 둘째가 간간히 '콜록콜록' 기침을 했다. 콧물도 흘러 코가 막혔다. 코로 숨을 못 쉬니 젖 먹을 때면 중간 중간 입을 떼고 헥헥 거친 숨을 몰아 쉬었다. 감기 징후가 여러 개 있었지만, 열없이 잘 놀기에 병원 갈 생각을 안 했다.

그런데 밤부터 상태가 심상치 않았다. 밤잠 재우려 눕혔는데, 기침이 심해 나중에는 먹었던 젖을 다 토하고 말았다. 아이는 밤새 기침을 했고, 날이 밝자, 준비해서 병원에 갔다.

둘째 아이가 처방받은 항생제와 기침가래약. 하얀 가루 항생제가 입에 쓴지, 아이는 약병만 봐도 기겁하며 울었다.
 둘째 아이가 처방받은 항생제와 기침가래약. 하얀 가루 항생제가 입에 쓴지, 아이는 약병만 봐도 기겁하며 울었다.
ⓒ 최다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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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는 타이밍!

진찰 결과, 기관지염이란다. 콧물, 가래를 스스로 뱉지 못하는 아기가 감기를 오래 앓으면 기관지에 콧물, 가래가 흡착된다고 한다. 그게 염증이 되고, 심해지면 폐렴까지 올 수 있다고 한다. 결국 항생제와 기관지 확장제를 5일치 받아왔다. 열이 나면, 폐렴이 진행된 것일 수 있으니, 지체 없이 병원에 오라는 당부까지 받았다.

기관지염은 분명 내 탓이었다. 아무리 아프면서 큰다고는 하지만, 이번 감기는 알면서도 모른척한 게으름의 대가였다. 스스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한 아기를 어른인 내가 책임지고 돌봤어야 했는데……. 죄책감과 후회로 가슴이 답답했다. '이 정도면 괜찮겠지'를 여러 번 반복하니, 순한 둘째가 아팠다.

육아는 타이밍 싸움이다. 생각나는 그 순간, 그때그때 처리하지 않으면 다음 기회를 잡기 어렵다. 심하면, 이번처럼 아이를 아프게 할지도 모른다. 큰 아이를 키우면서 몸으로 깨달은 교훈인데 둘째를 낳고도 나는 여전히 실수를 반복했다.

'우물쭈물하다 내 이럴 줄 알았지.'

영국의 극작가, 조지 버나드 쇼의 묘비명이 아프게 다가온다. 후회 없이, 아니 최소한만 후회하며 육아 하고 싶다. 그러니 해야 할 때를 놓치지 말 것. 아이를 키우는 정성으로 삶을 사니, 아이를 키우며 성불하는 건가 싶다. 둘째가 아프면서, 엄마도 아프게 한 뼘 자란다.


태그:#주간애미, #육아, #타이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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