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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8일 한국수자원공사가 4대강 관련 문서를 대량으로 파기하고 있다는 제보가 있은 뒤, 국가기록원은 파기예정 문서가 실려 있는 트럭을 봉인했다. 사진은 국가기록원 직원과 한국수자원공사 직원, 더민주대전시당 관계자, 문서파기업체 직원 등이 트럭 봉인과 문서확인작업에 대해 상의하고 있는 모습.
 지난 1월 8일 한국수자원공사가 4대강 관련 문서를 대량으로 파기하고 있다는 제보가 있은 뒤, 국가기록원은 파기예정 문서가 실려 있는 트럭을 봉인했다. 사진은 국가기록원 직원과 한국수자원공사 직원, 더민주대전시당 관계자, 문서파기업체 직원 등이 트럭 봉인과 문서확인작업에 대해 상의하고 있는 모습.
ⓒ 오마이뉴스 장재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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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수자원공사(수공)의 공공기록물 불법무단 파기 실태가 국민들에게 충격을 주고 있다. 특히 경인아라뱃길(경인운하) 사업으로 1조 원 손실이 예상된다는 내용의 보고서가 기록물 파기 대상에 포함돼 있어 충격을 더하고 있다.

국가기록원에 따르면 한국수자원공사의 기록물 파기와 관련해 현장을 점검한 결과, 법에서 규정돼 있는 기록물평가심의회를 거치지 않은 채 원본기록물을 파기하거나 파기를 시도한 것으로 드러났다.

한국수자원공사는 이번이 첫 사례가 아니다. 지난 1월 9일 국가기록원 실태 점검 당시 한국수자원공사 해외사업본부의 공공기록물 무단 파기 의혹이 제기됐다. 한국수자원공사는 2016년 12월 과천에서 대전으로 이전하면서 종이 서류 등을 폐지업체를 통해 처리했는데 당시 폐기 목록을 남기지 않아 기록물 무단 파기 의혹이 일었던 적이 있다. 이 점검 결과는 국가기록원이 국무회의까지 보고했던 중요한 사안이었다. 이런 지적이 있었음에도 그동안 계속된 무단 파기를 시도한 것이다.

한국수자원공사는 의도적으로 파기하지 않았다고 해명하고 있지만, 여러 정황상 이 사안의 해결은 간단하지 않아 보인다.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법상 몇 가지 문제점을 짚어보고, 해결 방안을 모색해보도록 하자.

기록물 16톤 파기... 개인 PC에 기록물 보관하기도

지난 12일 국가기록원이 공개한 한국수자원공사 기록물 원본. 이미지 속 문서는 '경인 아라뱃길 사업 국고지원'이다. 왼쪽 문서 좌측 상단에 '대외주의'라고 적혀 있다. 또한 우측 문서에는 "국고지원을 전제해도 1조원 이상 손실 발생'이라고 쓰여 있다.
 지난 12일 국가기록원이 공개한 한국수자원공사 기록물 원본. 이미지 속 문서는 '경인 아라뱃길 사업 국고지원'이다. 왼쪽 문서 좌측 상단에 '대외주의'라고 적혀 있다. 또한 우측 문서에는 "국고지원을 전제해도 1조원 이상 손실 발생'이라고 쓰여 있다.
ⓒ 국가기록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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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전 대통령. 사진은 2009년 5월 6일 오후 인천 서구 시천동 '경인아라뱃길' 중앙전망대에서 열린 경인 아라뱃길사업 현장보고회에 참석한 모습.
 이명박 전 대통령. 사진은 2009년 5월 6일 오후 인천 서구 시천동 '경인아라뱃길' 중앙전망대에서 열린 경인 아라뱃길사업 현장보고회에 참석한 모습.
ⓒ 청와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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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국가기록원이 확인한 내용에 따르면, 수공은 이번 점검 대상 407건 중 302건의 원본기록물 파일을 개인 컴퓨터(PC)에 보관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한국수자원공사가 공식적인 시스템에서 기록을 생산 및 등록하지 않고, 개인적으로 관리하는 게 관례화돼 있음을 입증하는 것이다. 개인 PC에서 기록 생산이 일상화돼 있으면, 기록물을 선별적으로 등록하는 게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 결과 중요기록물로 등록해야 하는데, 파기를 시도한 기록들도 다수 발견됐다. 이번에 파기를 시도하다 발견된 문건은 '소수력발전소 특별점검 조치결과 제출' '해수담수화 타당성조사 및 중장기 개발계획 수립' '4대강 생태하천조성사업 우선 시행방안 검토요청' 등 수자원공사에서도 매우 민감하고 엄중한 자료들이다.

특히 1월 9일부터 1월 18일까지 총 다섯 차례에 걸쳐 기록물 반출 및 파기가 반복적으로 이뤄졌고, 1차~4차에 걸쳐 16톤 분량의 기록물 등이 폐기목록, 심의절차 없이 이미 파기된 것으로 밝혀졌다.

향후 검찰 수사 및 감사원 감사 등에서 16톤 분량 기록의 업무담당자, 파기업체 대표 조사를 통해 어떤 유형의 기록이 파기됐는지 집중적으로 밝혀야 할 것이다.

'기록물 심의과정' 생략 가능성 크다

지난 12일 국가기록원이 한국수자원공사 기록물 파기 건을 현장점검 한 뒤 발표한 기록물 원본. 이 문서는 '4대강 생태하천조성사업 우선 시행방안 검토요청'으로 수기 결재까지 돼 있는 '업무연락' 기록물이다. 이 기록물도 파기 대상에 포함됐다.
 지난 12일 국가기록원이 한국수자원공사 기록물 파기 건을 현장점검 한 뒤 발표한 기록물 원본. 이 문서는 '4대강 생태하천조성사업 우선 시행방안 검토요청'으로 수기 결재까지 돼 있는 '업무연락' 기록물이다. 이 기록물도 파기 대상에 포함됐다.
ⓒ 국가기록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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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 한국수자원공사 기록물평가심의회가 제대로 구성 및 운영됐는지 조사해야 한다. 대부분 공공기관은 기록물평가심의회를 구성해 기록물을 폐기할 때 외부 심의를 받도록 하고 있다.

필자도 일부 지방자치단체 기록물평가심의회에 참석해 폐기 목록을 검토한 적이 있다. 이 과정에서 엑셀로 구성된 폐기 대상 기록목록을 분석한 후, 보존연한 책정이 제대로 됐는지 확인한다.

보존연한은 1년, 3년, 5년, 10년, 30년, 준영구, 영구 보존으로 구성돼 있다. 이중 폐기 대상은 30년 이하 기록들이다. 보존연한이 도래했지만 내용의 중요성이 의심되는 기록들은 실물로 확인해서 보존연한을 늘리거나 중요기록으로 보존할지 결정한다. 하지만 한국수자원공사의 경우 공공기록들을 개인 PC에 보존하고 있어 이런 과정을 생략했을 가능성이 크다.

한국수자원공사, '마비'된 기록물관리 시스템 

1월 19일 국가기록원이 한국수자원공사에서 '4대강 문서 고의 파기 의혹'과 관련, 민간 업체에게 파기 의뢰된 문서들 중 국가기록물을 확인하고 있다.
 1월 19일 국가기록원이 한국수자원공사에서 '4대강 문서 고의 파기 의혹'과 관련, 민간 업체에게 파기 의뢰된 문서들 중 국가기록물을 확인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장재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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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현 한국수자원공사 기록물관리 시스템이 정상적으로 가동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이는 한국수자원공사 각 부서에서 기록물을 생산·등록·분류·이관·평가하는 기능이 완전히 마비됐다는 뜻이다.

현재도 한국수자원공사에는 '4대강 영상화 기록' 등이 보존돼 있어, 이 같은 중요기록이 제대로 관리될 수 있을지 우려하는 목소리가 기록관리 전문가들 사이에서 나오고 있다.

공공기관의 한 기록물전문요원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수자원공사의 '처리과(부서) 기록관리' 실태가 이런 중요문서가 파기 되는 것조차 막을 수 없을 정도로 부실화되었다는 것이고, 한국의 공공기록관리 체계가 처리과(부서) 단위의 부실을 지금껏 콘트롤 하지 못했다는 것이다"라고 꼬집었다. 한 기관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으로 양산되는 문제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국가기록원 이소연 원장은 "수자원공사 직원이 5000명이고 전국에 흩어져 있는 거대 공공기관인데, 기록물전문요원은 단 1명이다. 이런 구조가 이런 사태를 키웠을 가능성이 크다"라면서 "제도 개선을 통해 업무의 중요성 및 기관의 규모에 따라 기록물전문요원을 정원을 늘리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라고 말했다.

아울러 "국가기록원도 관리책임이 없는지 점검하고 있다. 모든 공공기관 업무담당자들이 기록관리가 자신의 업무 중 중요한 일로 인식해야만 이런 사태를 막을 수 있다"라고 진단했다.

덧붙이는 글 | 전진한 기자는 알권리연구소 소장이자 국가기록관리혁신 TF 위원입니다.



태그:#한국수자원공사, #공공기록물, #기록물파기, #기록물평가심의회, #국가기록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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