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임진왜란 의병장이자 선무원종1등공신인 박경신을 모시는 경북 청도군 금천면의 임호서원. 사진은 서원의 강당.
 임진왜란 의병장이자 선무원종1등공신인 박경신을 모시는 경북 청도군 금천면의 임호서원. 사진은 서원의 강당.
ⓒ 정만진

관련사진보기


경상북도 청도군 금천면에 가면 임호서원을 보게 된다. 물론 여느 서원처럼 임호서원 앞에도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역사유적과 문화유산 답사를 갔을 때에는 이 안내판부터 세심히 읽어야 한다. 안내판의 글은 전문 서적과 관련 논문만큼은 못 되지만 간결하고 훌륭한 '해설사'인 것만은 틀림없기 때문이다. 지난 2월 13일, 임호서원을 답사했다.

역사유적과 문화유산 앞의 안내판, 꼭 읽어야

안내판은 제목 '밀성박씨 삼우정파 종중 소장 문적', 문화재 등급 '보물 제 1237호', 소재지 '경상북도 청도군 금천면 명포길 294-5'를 첫머리에 소개한다. 이어지는 본문은 '이 문서는 밀성박씨 문중의 삼우정 박경신과 아들 지남, 철남에게 나라에서 내린 포상 문서인 <선문원종공신녹훈인증서> 13매와 박경신에게 내려진 <선무원종공신록권> 1책, 순조 연간 박경신 부부에게 증직된 교지 2매, 선조 12년 박경신의 무과 장원을 축하하기 위해 모친 장씨가 급여한 <별급 문기> 1매 등이다'로 시작한다.

이 부분은 보물 1237호가 (1920년에 창건된 임호서당의 후신) 임호서원 건물이 아니라 이 서원에 모셔지고 있는 박경신과 관련된 문서들이라는 사실을 설명하고 있다. 현재 이 문서들은 대구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서원 경내에 '경의관'이라는 현판의 기념관이 있지만 도난 우려 때문에 국립 박물관으로 옮겨져 있는 것이다. 안내판을 계속 읽는다.

 박경신 의병장의 유물 등을 모시고 있는 경의관(임호서원의 기념관)
 박경신 의병장의 유물 등을 모시고 있는 경의관(임호서원의 기념관)
ⓒ 정만진

관련사진보기


'박경신은 자는 중선, 호는 삼우정, 본관은 밀성이다. 그는 조선 선조 2년(1569) 무과 초시(과거 1차 시험, 이하 괄호 안의 보충 설명은 기자가 덧붙인 내용임)에, 이듬해 복시(과거 2차시험)를 거쳐 (1573년) 전시(임금이 지켜보는 가운데 실시되는 과거 시험)에 장원 급제하였다.'

본문은 박경신이 무과 장원 급제 이후 19년 지나 임진왜란을 맞이하였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또한 1539년생인 박경신은 만 34세에 장원으로 과거에 합격했고, 53세 때 왜적의 침입에 맞서게 되었다는 사실도 증언한다. 박경신은 임진왜란이 발발하기 직전 해에 벼슬을 그만두고 고향에 돌아와 있었다.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박경신은) 고향 청도에서 두 아들과 함께 의병을 일으켜 왜병을 물리쳤고, 또한 선조의 피란길을 호위하는 등 큰 공을 세웠다. 임란 후 선무원종공신 1등에 책훈되었으며, 임호서원에 배향되었다.'

 '선무원종1등공신'을 두전(비석 맨 위에 새겨져 있는 제목 성격의 글자)으로 하고 있는 임호서원 경내의 기념비. 여기서 선무원종1등공신은 임진왜란 당시 박경신 의병장을 가리킨다.
 '선무원종1등공신'을 두전(비석 맨 위에 새겨져 있는 제목 성격의 글자)으로 하고 있는 임호서원 경내의 기념비. 여기서 선무원종1등공신은 임진왜란 당시 박경신 의병장을 가리킨다.
ⓒ 정만진

관련사진보기


1592년 4월 13일 일본의 대대적 침입으로 임진왜란이 시작되고, 일주일 만인 4월 20일 청도는 적의 손에 넘어갔다. 박경신은 왜적의 침탈에 맞서 즉각 창의했고, 7월 9일에는 지역의 의병들과 힘을 합쳐 청도읍성을 탈환하는 큰 공을 세웠다.

박경신은 그후 밀양부사로 재직하면서 줄곧 경상도 일원의 왜적을 토벌하는 데 진력을 다했다. 하지만 1594년 6월 5일 과로를 이기지 못해 마침내 밀양부 관사에서 순직하였으니 향년 55세였다. 당시 경상도 병마절도사 박진은 만사를 지어 그의 타계를 애도했다.

머나먼 하늘나라에서 신선이 되어 명복을 누리소서

'영남루(밀양의 누각) 앞을 흐르는 강물은 오늘도 쉬지 않고 이어지고, 운문산(청도의 대표적인 산) 산마루를 비추는 달빛은 이 밤도 한없이 밝은데, 밀양 사람들과 청도 사람들의 근심걱정이 얼마나 많은지 아랑곳하지 않고, 아직도 전장의 사움은 끝나지 않았는데, 밀양도호부사 직과 청도 조전장 직을 버리고 이 세상을 떠나면 어떡하란 말이오? (중략)

아무쪼록 가슴속에 간직한 일편단심 충성된 마음을 조용히 가라앉히고, 사랑하던 말은 유월의 무성한 풀밭에서 제 마음대로 풀을 뜯어먹게 놓아둔 채, 속세의 어지러운 일들 다 잊어버리고 머나먼 하늘나라에서 신선이 되어 명복을 누리소서.'

 마을 중심부에 세워져 있는 '임호서원과 박경신 삼 부자'에 대한 해설 안내판
 마을 중심부에 세워져 있는 '임호서원과 박경신 삼 부자'에 대한 해설 안내판
ⓒ 정만진

관련사진보기


임호서원을 지나 마을 안으로 들어서면 박경신 삼부자를 형상화한 벽화가 그려져 있다. 벽화 옆 건물의 외벽에는 ''임진왜란 삼부자 공신 마을'이라는 글자도 커다랗게 표시되어 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박경신 의병장이 '속세의 어지러운 일들 다 잊어버리고' 머나먼 하늘나라에서 신선이 되었을 것 같지 않다.

찾아오는 답사자도 드물고, 삼부자의 훌륭한 이름을 기억하는 이도 별로 없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주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후원하기

<전국 임진왜란 유적 답사여행 총서(전 10권)>, 장편소설 <딸아, 울지 마라><백령도><기적의 배 12척> 등을 썼다. <집> 등 개인 사진전을 10회 이상 열기도 했다. 대구시 교육위원, 중고교 교사와 대학강사 역임, 전교조 활동으로 5년간 해직교사 생활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