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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군바로세우기 범국민운동본부 김환영 본부장(오른쪽)과 조현락씨(왼쪽)
 국군바로세우기 범국민운동본부 김환영 본부장(오른쪽)과 조현락씨(왼쪽)
ⓒ 김도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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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적인 복무 여건을 보장하지 않은 채로 국가가 청년들을 수탈하고 있다. 이런 수탈 체계가 수십 년 동안 지속되어 와서 이제는 마치 그것이 당연한 것처럼 느껴지지만, 이런 사고의 배경에는 국가가 아무렇게나 젊은이들을 수탈할 수 있다는 관념이 깔려있다고 생각한다."

'군인 노조 결성', '병사들에게도 최소한 최저 임금 수준의 월급 지급' 언뜻 들으면 현실성 없을 것 같지만, 줄기차게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 국군바로세우기 범국민운동본부 본부장 김환영씨다. 그냥 뜬구름 잡는 이야기처럼 치부하기에는 그가 살아온 이력이 남다르다. 육군사관학교 49기로 임관한 예비역 대위인 그는 평화재향군인회 사무처장을 지내면서 군 개혁과 군인 인권 증진, 평화 운동을 펼쳐왔다.(관련 기사: 육사 출신 평화운동가 "김선일 죽음이 내 삶 바꿨다")

김씨가 이런 주장을 하는 배경에는 군인을 그저 명령을 받는 수동적인 존재로만 취급하려는 현재 시스템을 바꾸지 않고는 장병 복무여건 개선은 물론 기본적으로 보장받아야 할 군인 인권조차 나아질 수 없다는 생각이 자리 잡고 있다. 이런 그에게 최근 걱정거리가 하나 생겼다. 국군바로세우기 범국민운동본부 회원 조현락씨가 지난해 9월 입영을 거부하고 최근 병역법 위반으로 재판에 넘겨졌기 때문이다.

조씨는 이제까지 병역 의무를 거부해왔던 종교적·양심적 사유의 병역 거부자들과는 결이 다르다. 최저임금 수준의 월급, 생명보험과 상해보험 가입 등을 입대 조건으로 내걸고 입영을 거부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 8일 김 본부장과 조씨를 서울 서소문의 한 커피숍에서 만났다. 다음은 이들과 나눈 일문일답을 정리한 것이다.

- 최근 첫 공판이 열린 것으로 안다.
조현락: "어제(7일) 인천지법에서 열렸는데 나는 출석하지 않았다. 국선 변호인에게 변호를 맡겼는데 나를 변호하기보다는 법원의 입장만 대변하는 것 같아서 신뢰가 가지 않았다. 이 분이 나를 제대로 변호할 수 없다고 판단해서, 출석하지 않고 내 입장을 서면으로 작성해서 재판부에 보냈다."

- 재판에서 유죄가 인정되면 감옥에 가야 한다.
조: "감옥에 갈 각오하고 시작한 일이다. 나에게 주어진 의무는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일인데, 이 일이 나에게 행복이라면 그걸로 만족한다."

- 입영을 거부하는 이유가 뭔가?
조: "난 입대를 거부하는 것이 아니다. 군대에 가겠다는 거다. 다만, 전제 조건이 있다. 최저 시급이 반영된 병사 월급을 지급하고 국가가 생명보험과 상해보험 가입을 책임져 달라. 국가가 내 인생의 귀중한 시간을 쓰려면 거기 맞는 대가를 지급해야 한다. 청년들의 인생을 빼앗아가서 거의 종처럼 부리면서 국가를 유지하려 하지 마라. 자유를 포기하고 군인이 된 이들에게 제대로 보상해야 하는 것 아닌가. 이것이 내 주장이다."

- 김 본부장께서는 여러 해 동안 군인노조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김환영: "올해 병장 월급이 40만5700원이다. 대부분의 국민이 '나는 겨우 몇 천 원 받았는데, 이만하면 군대가 많이 좋아진 것 아니냐'고 생각한다. 그런데 한 번 생각해 보자. 왜 40만 원이냐? 그 근거가 뭔가? 아무 기준도 없이 40만~50만 원 준다고 하면 그저 고마워해야 하는 거냐? '예전엔 쥐꼬리만큼 주다가 지금은 이만큼 주지 않느냐'며 마치 큰 시혜라도 내리는 것처럼 하는 건 시민이 아니라 노예를 대하는 방식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대선 당시 병사 월급을 최저임금의 50%까지 올리겠다는 공약을 한 바 있다. 이렇게 '최저임금 대비 몇%'하는 식으로 명확한 근거를 제시해야 한다. 그리고 '최저임금은 마땅히 줘야 하지만, 우리 재정상 지금 당장은 어려우니 양해를 해 달라'고 부탁해야 옳은 거다. 그렇다고 해도 사실 양해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부끄러운 일이지. 징병제를 시행하는 나라들 중 공산국가나 독재국가를 제외하곤 대부분 국가의 병사 월급은 적어도 그 나라 최저 임금보다는 높은 수준이다."

- 군인 노조가 있어야만 장병 처우 개선이 가능한가?
김: "지금 조현락씨가 싸우는 건 지금까지의 종교적·양심적 이유의 병역 거부와는 전혀 다른 이유 때문이다. '근무 여건을 개선하지 않으면 나는 군대 못 가겠다'라는 것 아닌가. 젊은이들이 그동안 얼마나 착취당하고 압박당하고 있는가를 이제 스스로 깨닫기 시작한 것이다. 이 시대가 반드시 인식해야 할 새로운 양상이라고 생각한다. 만약 지금 이걸 제대로 읽어내지 못하면 우리 사회는 영원히 젊은 세대와 함께하기 힘들 거다.

마치 큰 은혜라도 베푸는 양 '이거 주는 것도 감사하게 여겨라'는 식으로는 복무 여건이 나아질 수 없다. 군인노조를 설립해서 장병 스스로의 힘으로 정당한 권익을 지킬 수 있는 근무여건을 만들어 가야 한다. 계속 되풀이되는 군대 폭력 사건들도 군인들 스스로가 문제를 해결하는 주체가 되어야 비로소 풀릴 수 있다. 사건이 터진 후에야 사후약방문식 처방을 하는 군 당국의 행태와 외부 인권단체의 감시만으로는 이러한 군대 내의 폭력과 자살을 방지할 수 없다."

- 그렇다고 해도 국민에게 군인노조는 생소하기도 하고, 좀 급진적인 주장처럼 들릴 것 같다.
김: "사실 진보 진영 내에서도 군인노조 주장하면 이상한 사람 취급을 한다. 하지만 이미 독일을 비롯한 유럽의 몇몇 나라와 남아프리카공화국 같은 나라에 군인노조가 설립되어 있다. 무엇보다 노조하면 색안경 끼고 바라보는 인식부터 바꿔야 한다. 얼마 전 군인과 경찰을 제외한 공무원들에게 노동3권(단결권·단체교섭권·단체행동권)을 보장하는 방안을 개헌안에 담는 것을 논의하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 너무 화가 났다.

왜 군인과 경찰의 권리는 제외하는 것인가? 가령 노동3권을 제한할 현실적 필요성이 있다 해도 하위 법률에서 규정하면 될 것 아닌가. 헌법에서까지 군인의 권리를 제약할 수 있다는 발상이 한탄스럽다. 필요하다면 일부 권리를 제한할 수 있지만, 모든 것을 제한한다는 발상 자체를 바꿔야 한다. 노동계에도 할 말이 많다. 정치권의 이런 논의를 그냥 손 놓고 보고만 있는 것은 우리 노동운동의 상상력이 빈곤한 탓이다."

- 냉전 종식 후 징병제를 폐기했던 스웨덴과 노르웨이가 최근 다시 징병제를 부활시켰다. 
김: "나는 지금까지 일관되게 '예외 없는 공평하고 유연한' 징병제를 주장해 왔다. 우리나라 같이 병사들에게 최저임금도 주지 않고, 군인의 정치적 참여를 과도하게 제약하는 징병제는 폭력이다. 바람직한 징병제는 우선 예외 없이 국민 모두에게 공평해야 한다는 전제가 충족되어야 한다. 장교나 부사관도 병사 생활을 마친 사람 중에 선발하는 '선 징병 후 모병' 방식을 채택하고, 각종 병역 특례를 모두 없애야 한다. 지금처럼 '이렇게 빠지고, 저렇게 빠지는' 병역특례를 모두 없애면 병사 복무 기간을 12개월 정도로 줄이는 것도 가능하다.

특혜는 분명히 없애야 하지만 동시에 유연하게 적용해야 한다. 그건 징병제가 가지고 있는 폭력성 때문이다. 양심적·종교적 병역 거부자의 대체복무는 인정하고, 군 복무 대신 사회적으로 꼭 필요한 일을 하게 하면 된다. 군인과의 형평성을 고려한다면 군 복무 기간의 1.5배 정도를 근무하게 하면 되지 않겠나. 특정 시기의 활동이 중요시되는 운동선수나 연예인의 입영 시기도 좀 유연하게 하면 지금처럼 온갖 불법과 탈법으로 군대에 안 가려는 행태를 근절할 수 있을 것이다."


태그:#군인노조, #김환영, #조현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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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김도균 기자입니다. 어둠을 지키는 전선의 초병처럼, 저도 두 눈 부릅뜨고 권력을 감시하는 충실한 'Watchdog'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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