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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키나와 해변에서 일본인과 외국인들이 함께 어울리는 축제가 벌어졌다.
 오키나와 해변에서 일본인과 외국인들이 함께 어울리는 축제가 벌어졌다.
ⓒ 조경국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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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키나와는 메이지유신(明治維新) 이전엔 '류큐'라는 이름의 독립적인 왕국으로 존재했던 섬이다, 또한, 세계 제2차대전의 악몽을 여전히 간직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오랜 세월 이곳에 주둔한 미국 군대의 영향 탓인지 '생선요리의 최강국'이라 불리는 일본이면서도 회보다 스테이크가 더 맛있다는 이야기가 공공연히 들려오는 섬.

한국 사람들이 제주도를 최고의 휴양지로 손꼽듯 오키나와는 일본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국내 여행지'다. 그렇기에 외국에서 출발한 비행기가 도착하는 국제선공항보다 일본을 오가는 비행기의 이·착륙지인 국내선공항이 더 크다. 그것 또한 이채롭고 재밌는 풍경이었다.

최초의 한글소설인 허균의 <홍길동전>에 등장하는 '율도국'이 바로 오키나와라는 이야기는 오래 전부터 사람들 사이를 떠도는 풍문이다.

오키나와 재래시장의 반찬가게.
 오키나와 재래시장의 반찬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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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싱한 해산물을 맛보기 좋은 여행지 오키나와.
 싱싱한 해산물을 맛보기 좋은 여행지 오키나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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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항 검색대에서 환한 웃음과 만나다

"절대다수의 일본인은 친절함이 몸에 배었다"는 세간의 평가가 그저 입에 발린 수사가 아니란 걸 오키나와 국제선공항에서부터 확인했다. 내가 둘러멘 조그만 여행 가방을 본 출입국사무소 보안검색 담당 직원은 보일 듯 말 듯한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말했다.

"3박4일 놀러온 것 치고는 가방이 너무 작네요."

사실 그렇게 보일만도 했다. 중학생들이 학교에 들고 다니는 작은 백팩 하나가 짐의 전부였으니. 그걸 재빨리 알아보고는 일본인 특유의 영어 발음으로 긴장해 있을 외국 여행자를 반기는 그들의 친절이 보기 좋았다.

예상했던 것처럼 일본의 대중교통은 나쁘지 않았다. 오키나와 공항을 나서니 바로 근처에 시내로 향하는 모노레일(지상철)이 보였다. 그 덕분에 인천공항을 출발한지 3시간 30분 만에 도착한 나하국제공항에서 숙소로 향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눈앞으로 호텔이 보였다. 유럽이나 한국의 숙소와 비교하자면 보잘 것 없는 방 크기. 하지만, 필요한 것은 다 있고 편의성에 있어서도 결코 모자람이 없는 오키나와와 호텔.

이곳이 과시보다는 실속 위주의 생활방식을 지향하는 일본임을 증명하듯 숙소는 정말이지 딱 필요한 것만 갖춘, 그러면서도 불편함을 찾아보기 힘든 환경이었다.

별반 든 게 없는 작은 가방이니 그걸 풀고 정리하고 할 것도 업었다. 짐을 던져두고 그때부터 흥미로운 '오키나와 탐구'에 들어갔다. 다음은 내가 '탐구-체감-분석'한 오키나와의 면면들이다.

바다가 지척인 오키나와엔 조개껍질로 만든 기념품을 판매하는 가게가 흔하다.
 바다가 지척인 오키나와엔 조개껍질로 만든 기념품을 판매하는 가게가 흔하다.
ⓒ 조경국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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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와모리를 비롯해 일본의 토속주를 판매하는 상점.
 아와모리를 비롯해 일본의 토속주를 판매하는 상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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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끗하고 소박한 오키나와의 해변

사실 열대의 섬으로 여행을 떠난다는 건, 사파이어빛 그득한 바다와 만나러간다는 것과 동일한 의미다. 넘실대는 파도로 아름다운 태평양 가운데 자리한 오키나와. 당연지사 산호가 부서져 형성된 새하얀 모래밭과 푸른색 잉크를 뿌려놓은 듯한 바다를 기대했다.

하지만, 그 기대가 너무 컸던 탓일까? 인도 서남부 아라비아해와 태국 푸켓에서 바라본 안다만(Andaman Sea) 같은 장엄함과 매혹은 오키나와 해변엔 없었다. 시내에서 꽤 먼 거리를 달려야 만날 수 있는 '만좌모' 정도를 제외한다면.

나미노우에 해변과 이케이 해변은 깨끗하고, 정리가 잘 된 휴양지임에는 분명했다. 하지만, 인도나 태국의 바닷가에 비해 그 규모가 터무니없이 작고 평범했다.

그렇다고 태평양 푸른 바다와 만난 감동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오키나와는 품에 간직한 바다보다 해변을 '찾아가는 길'이 훨씬 더 매력적인 곳이었다.

이케이 해변에 가기 위해 아침 일찍 나하 시내를 출발했다. 복잡한 도심을 벗어나자마자 거짓말처럼 한적한 시골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선명한 녹색과 파란색으로 골고루 채색한 듯 아름다운 바다와 마을은 콘크리트 건물에 지친 여행자의 눈을 편안하게 해주었다. 거리는 방금 전 비질한 것처럼 어느 곳 할 것 없이 깨끗했다.

거기에다 해변에서 가까운 도로를 지날 땐 한국에선 만나보기 힘든 맹그로브(Mangrove·열대 해변이나 하구의 습지에서 자라는 관목)까지 보인다. 낯선 곳에서 만난 이국적인 풍경이 기자가 일상에서 훌쩍 벗어나 있다는 걸 새삼스레 깨닫게 해줬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일본 오키나와 해변엔 드라마틱한 재미는 없다. 하지만, 자그마한 비치에 이르는 길을 깔끔하고, 예쁘게 꾸며놓은 주민들의 정성을 발견하는 소소한 기쁨은 넘쳐난다. 극적인 재미와 아기자기한 아름다움 중 어떤 것이 좋다고 느낄지? 이는 여행자의 취향과 지향에 따라 달라질 것이 분명했다.

오키나와 슈리성에서 관람한 일본의 민속 공연.
 오키나와 슈리성에서 관람한 일본의 민속 공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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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움을 더해준 오키나와의 술과 요리

듣던 대로 오키나와의 스테이크는 일품이었다. 가재와 쇠고기를 큼직하게 잘라 철판 위에 구워 먹었다. 육즙과 향이 기가 막혔다. 뒷맛이 깔끔한 오키나와 특산주 아와모리를 부르는 맛이었다. 오키나와에 주둔한 미군들이 먹는다면 고향을 떠올릴 것 같았다.

'고야 찬플'이라 불리는 음식도 특이했다. 쓴맛이 강한 오이를 재료로 만든 것인데 건강에도 좋다하고 한국에선 맛보기 힘든 것이라 부지런히 먹었다. 돼지고기를 각종 향신료와 함께 푹 삶아 고명으로 올린 '오키나와 소바'도 면 요리를 좋아하는 내 입맛에 딱 맞았다.

일본으로 여행 가서 회와 초밥을 먹지 않을 수는 없다. 한국 수산시장에서와 달리 살아 있는 생선이 아닌 적절한 시간 숙성시킨 선어(鮮魚)로 만든 것이라 풍미가 이전에 맛본 초밥이나 회와는 달랐다. 조그만 선술집에선 땅콩으로 만들었다는 두부도 한 접시 서비스로 줬는데 그 맛이 놀라웠다. '쫄깃한 두부'가 있다니…. 상상이 되는가?

아와모리에 대해선 한마디 더 해야겠다. 한국의 소주보다 알코올 함유량이 훨씬 높은 독한 술임에도 역한 향이 나지 않고, 다음날 아침 숙취도 거의 없는 이 술은 오키나와에서 나오는 검은 쌀을 발효·증류시켜 만든다는데, 혀에 감겨오는 끈적함과 식도를 훑어가는 싸한 느낌이 근사했다.

누가 뭐래도 아와모리는 오키나와에 머무르는 동안 '오리온 맥주'와 함께 일본 남국으로의 여행을 즐겁게 만들어준 좋은 친구였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경북매일신문>에 게재된 것을 일부 보완한 것입니다.



태그:#오키나와, #일본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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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꽃> <한국문학을 인터뷰하다> <내겐 너무 이쁜 그녀> <처음 흔들렸다> <안철수냐 문재인이냐>(공저) <서라벌 꽃비 내리던 날> <신라 여자> <아름다운 서약 풍류도와 화랑> <천년왕국 신라 서라벌의 보물들>등의 저자. 경북매일 특집기획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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