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25일, 용산참사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두 개의 문>의 스핀오프 버전이 개봉했다. 바로 영화 <공동정범>이다. 이 영화는 '연분홍치마'(성소수자 문화 인권연대)에서 만든 작품으로 전작에 이어 김일란 감독이 연출을 담당했다. 여기에 이혁상 감독도 연출에 이름을 올리며 2명의 감독이 '공동연출'을 하게 됐다. 영화 <공동정범>과 연분홍치마 그리고 다큐멘터리에 관한 두 감독의 생각을 들어보기 위해, 지난 1월 11일 서울 마포구 망원동 연분홍치마 사무실에서 두 감독을 만났다. 다음은 인터뷰를 정리한 내용이다.

 영화 <공동정범> 공동 연출을 맡은 김일란, 이혁상 감독(왼쪽부터).

영화 <공동정범> 공동 연출을 맡은 김일란, 이혁상 감독(왼쪽부터). ⓒ 채송현


- <공동정범>에서 공동연출을 맡게 된 계기는?
이혁상 감독 : "우리가 '연분홍치마'를 만든 지 15년 정도 됐다. 연분홍치마의 작품들은 작품마다 감독은 다르지만 공동제작 시스템이 기본이다. 지금까지 연분홍치마의 모든 인원이 파트별로 참여하며 함께해왔다. 자기가 할 수 있는 최선의 파트를 맡는 것이다. <두 개의 문> 때는 내 데뷔작인 <종로의 기적>을 작업하던 중이라 현장에 같이 있지 못했다. 하지만 후반작업과 편집, 사운드 등에서 도움을 줬다. 이후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결합했고 공동연출이나 다름없었다고 본다. 당시 자연스레 속편에 관한 얘기가 나왔고 참여하게 됐다."

- <공동정범>은 <두 개의 문>의 '스핀오프'다. 다시 용산 참사에 주목한 이유는?
김일란 감독 : "<두 개의 문> 자체가 미완의 영화다. 영화를 경찰 중심으로 만든 것이 의도이기도 했지만 제한됐던 이유가 더 크다. 용산참사 당일 '망루 안에서 어떤 일이 있었나'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들은 촬영 당시 감옥에 있는 등 상황이 여의치 못했다. 이들이 출소한 이후, 꼭 다큐를 해야겠다는 생각은 아니었지만 이들의 기억이 사라지기 전에 기록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이혁상 감독 : "사실 <두 개의 문>은 자연스럽게 법정 증언 자료들과 변호사로부터 받은 자료들을 바탕으로 해서 재구성했던 것이다. <두 개의 문> 때 다룰 수 있는 정보의 제한이 있었다. 경찰과 검찰의 수사기록에 대한 접근뿐만 아니라 경찰들의 인터뷰를 전혀 할 수 없었다. 남은 사람들은 망루 안 철거민이었다. 이 사람들도 역시 감옥에 있어 접근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2013년에 특별사면으로 출소하게 됐고 망루 현장 안에 있던 사람들을 만날 수 있으니 '그 날의 진실'을 들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촛불 정국을 지나며 작은 희망이 생겼다."

- 주인공들이 카메라 앞에서 마음속 얘기까지 털어놓을 수 있던 이유는?
김일란 감독 : "스스로 그런 생각을 많이 한다. '그분들은 왜 우리 앞에서 이런 얘기를 할 수 있었을까'라고 말이다. 우리가 처음 보는 다큐 감독이 아닌 용산 초창기부터 연대해왔고 조금은 믿을 만한, 신뢰를 보낼 만한 감독이기에 그런 것 같다. 또 <두 개의 문>을 보고 '용산 참사가 잊히기 전에 좋은 작품이 한 번 더 나왔으면' 하는 기대감도 있던 것 같다. 하지만 기대와 믿음만으로 속내를 드러내는 것은 아니다. 주인공들은 4년, 5년을 정치범으로 교도소 독거방에 홀로 있었기에 '그 날 무슨 일이 있던 것일까' 끊임없이 생각했을 것이며 누군가에게 얘기하고 싶었을 것이다. 물론 인터뷰를 잘한 것도 성공요인 중 하나다."

이혁상 감독 : "그들에게 절박함이 있던 것 같다. 억울할 만한 경험을 한 사람들이고 그 억울함이 달래지지 않은 상황에서 감정이 쌓이다 보니 자신의 얘기를 들어주는 사람을 더 신뢰하게 된 것 같다. 우리가 제작을 시작했을 때는 박근혜 정권이 들어서며 용산참사 피해자들이 막막한 감정을 느꼈던 시기다국 '진상규명이 되지 않을 것이다' 하는 절망과 '용산참사가 점점 잊힐 것이다'하는 불안함이 있었을 것이다. 우리가 카메라를 들고 그들을 인터뷰하긴 했지만 이는 인터뷰가 아닌 일종의 '대화'였던 것이다. 김 감독의 말처럼 인터뷰도 잘했다. 서로가 상호보완적으로 인터뷰를 이끌었다."

김일란 감독 : "DMZ 버전과 극장 개봉 버전이 조금 다르다.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기간은 이명박 정권에 이어 박근혜 정권이 들어섰던 시기였기에 희망이 없다고 느꼈다. 때문에 결말이 부정적으로 끝난다.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 몇 가지 포인트의 자막이 보다 암울하다. 이번 버전은 희망 있게 끝나는 면이 있다. 주인공들이 모여 김석기 의원의 낙선 운동을 함께하는 컷을 집어넣었다. 이들이 진상규명을 새롭게 할 수 있게 힘을 보태달라고 관객들에게 호소하는 것처럼 보인다. 촛불정국을 지나며 안도가 될 만큼의 작은 희망이라도 생긴 것이다."

- 함께 작업하며 느낀 서로의 차이점은?
김일란 감독 : "나는 먼저 고민하고, 이 감독은 내가 고민한 것을 실현하는 사람이다. 내가 먼저 장면이나 스토리라인을 기획하고 이 감독이 그것을 어떻게 영화적으로 구현해낼 것인지 생각한다. 내가 어떤 장면과 분위기를 잡아주면 이 감독이 며칠 후 조명 등의 방식으로 구현해낸다. 현장에서 일상장면을 촬영할 때면 이 감독 혼자 작업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는 성격은 달라도 취향이 맞아 합을 맞추는 데 익숙해졌다. 어찌 보면 테니스 복식 선수 같다."

이혁상 감독 : "김 감독은 매우 이성적인 사람이고, 나는 감각적이다. 이 차이가 가장 두드러진다. 스타일의 차이로 인해 연분홍치마 활동을 하며 갈등이 없지는 않았다. 함께 지내온 세월이 오래되기도 했고 김 감독이 나를 잘 이해해주고 이끌어줘서 지금까지 큰 문제가 없었다. 차이를 통해 서로 보완하고 더 나아진 부분이 많다."

- <공동정범>에 투입된 카메라 기종은?
김일란 감독 : "이번 영화는 파나소닉 GH4를 썼다. GH3를 사용한 다른 영화를 보고 색감이 매우 좋다고 느꼈다. 그 영화의 감독에게 카메라가 어떤지 물었고 대답을 들은 후 GH4를 사용하기로 결정했다. 나는 카메라에 관해 깊게 알지 못해 이 감독이 자세히 알아봤다. 결국 괜찮다는 판단 하에 아름다운재단에서 후원을 받아 현장에 투입했다."

이혁상 감독 : "분홍치마 초창기부터 소니 Z1을 이용해왔다. 이후 <안녕 히어로> <노라노>를 캐논 XF100으로 작업했으며, GH4는 이번에 처음 활용했다. 제작 초기에 4K에 대한 붐이 일기 시작했고 평소에 시네마틱 룩에 관심이 많아 기자재에 대해 욕심이 생겼다. 하지만 돈이 부족해 가성비가 좋은 GH4를 선택했다. GH4 보디 2대에 12-35mm렌즈, 35-100mm렌즈를 각기 세팅했다. 캠코더가 아닌 미러리스 기종이라 신속한 촬영이나 핸드헬드에서 불안정한 부분이 있었다.

- GH4를 투입한 이유는?
이혁상 감독 : "카메라를 고민하던 시기에 4K 화질은 정말 경이로웠다. 때문에 4K로 촬영하면 이 다큐를 미학적으로 실험하는 데 있어 좋으리라 판단했다. 소위 미장센에 대한 욕심이 있었다. 연분홍치마의 다큐멘터리는 당대 다큐멘터리 트렌드를 한 단계 뛰어넘는 시도를 해왔다고 생각한다. <공동정범>에서는 우리가 미학적인 실험을 많이 해보고 싶었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 담아낼 수 있는 이미지와 좋은 카메라가 필요했다. 하지만 미러리스의 한계로 답답한 부분이 있었다. 이 문제는 숄더리그 등의 부가장비를 사서 보완하려 했다."

 지난 1월 11일 서울 마포구 망원동에 위치한 연분홍치마 사무실에서 이혁상, 김일란 감독이 카메라를 향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지난 1월 11일 서울 마포구 망원동에 위치한 연분홍치마 사무실에서 이혁상, 김일란 감독이 카메라를 향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채송현


"영화로서의 다큐멘터리는 매력적이다."

- <공동정범>의 색감이 도시적인 느낌이다. 표현하고자 했던 색감은?
김일란 감독 : "이번 영화의 색감은 우리가 의도한 부분이 있다. 컬러리스트는 평소 작업을 함께해온 KT&G 상상마당의 김형희 과장이다. 2011년에 <두 개의 문> 작업을 할 때 처음 만났다."

이혁상 감독 : "색보정작업을 하기 전에 컬러리스트와 몇 가지 색감을 두고 고민했다. 무엇이 좋을까 생각해봤다. <공동정범>은 도시 이야기기도 하고 차가운 시선으로 사람들의 심리를 응시해야 하는 영화다. 때문에 풍부한 느낌의 색감보다 차가운 톤이 낫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기본 톤을 설정하고 베리에이션을 잡았다. 평소 기술적으로 관심이 많다."

- 시네마틱 룩을 좋아하는 이유는?
김일란 감독 : "극영화와 다큐멘터리는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다르다. 다큐멘터리에서는 조명을 쓸 수도 있고 쓰지 않을 수도 있다. 나는 다큐멘터리야말로 극영화보다 훨씬 더 영화적 장르가 넓다고 생각한다. 다만 이를 구현해낼 상상력이 필요할 뿐이다. 다큐멘터리가 이미지로 구현해내는 것에 있어 폭이 넓다.

다큐멘터리의 다양성이 구현되지 않는 것은 다큐멘터리에 대한 정의, 스스로 지어놓은 한계 등으로 인해 발생한다. 실험영화와 극영화 등 모든 장르를 넘나드는 것이 다큐멘터리다. 나조차도 지금껏 소재 및 이슈와 어울리는 측면에서 최대한 보수적, 안정적 선택을 해왔다. 안정감을 벗어난 것이 <두 개의 문>과 <공동정범>이다."

이혁상 감독 : "어렸을 때부터 영화를 좋아했다. 때문에 자연스레 영화 언어, 영화 문법이 감각 안에 스며들었다. 항상 기자재, 사운드 등에 관심이 많았고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작업하는 데도 기계적 스펙이나 이미지 등을 중요시했다. 이런 시청각에 대한 열망이 <공동정범>에도 들어갔다. 나는 내 기준에서 '예쁘지 않은 것'에 대해 감각적으로 반응하는 것 같다.

- 다큐멘터리에서 어울리는 그림을 구성하는 방법은?
김일란 감독 : "첫 작품인 <마마상>에서는 다양한 방법을 시도했다. 이 작품이 지금까지 만든 모든 다큐의 원형이라고 볼 수 있다. <공동정범>의 흔적도 어설프지만 남아있다. <마마상>에서는 인터뷰한 내용 자체를 시각화해야 했다. 청각적인 것을 어떻게 시각화할 것인지 고민했고 이 감독이 타이포그래피로 표현해냈다. 다큐멘터리라는 장르는 굉장히 역동적이며 자유롭다. 이슈와 가장 어울리는 방법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이혁상 감독 : "다큐멘터리의 장르적 특성만 가지고 얘기하면 안 된다. 나는 현재 새로운 시도로 극영화를 제작할 예정이다. 중학교 1학년 때 할리우드 영화를 보며 매혹됐던 시절이 기억에 남는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을 굉장히 좋아했다. 내가 생각했던 영화는 '스티븐 스필버그' 같은 재밌는 영화다. 이런 픽션을 담아내는 영화를 다큐멘터리의 영역 안으로 끌고 들어오는 것이 시작점이다. 연분홍치마의 다큐멘터리가 다른 다큐멘터리와 차별화되는 것도 이유가 있다."

- 계속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이유는?
김일란 감독 : "사회가 바뀌면 영화가 제작될 수 있다. 그러나 영화가 사회를 바꾸진 못한다. 다만 영화라는 것이 '기억 나눔'인 것에 집중해야 한다. 영화는 경험과 기억을 한 공동체 내에서 나누는 매체다. 영화로서의 다큐멘터리는 매력적이다. 예상할 수 있는 부분과 예상할 수 없는 부분이 가늠된다. 분명히 다큐로는 극영화처럼 제작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 하지만 이제 카메라가 들어갈 수 없는 공간도 없으며 다큐멘터리의 한계도 없다. 내가 잘하고 재밌어하는 다큐멘터리를 벗어날 이유가 없다. 내가 하고 싶으므로 하는 것이다."

이혁상 감독 : "내가 살기 좋은 세상을 위해서 한다. 큰 공명심이나 이타적인 마음이 있다기보다 스스로 긍정하며 살 수 있는 곳을 만들고 싶다. 연분홍치마를 만들고 다큐멘터리를 하게 되며 내가 원하는 바를 이루려 노력하고 있다. <종로의 기적>을 만든 이유도 내 정체성을 담아서 같은 정체성의 사람들이 존중받으며 살 수 있도록 희망을 담은 것이다. 지금까지 그것이 이어지고 있다. 영화감독이 되겠다는 꿈은 어렸을 때부터 꿨지만 지금은 '내가 어떤 영화감독이 돼야 하나'를 생각한다. 창작의 근원은 스스로고 자신의 이야기를 했을 때 가장 큰 효과를 발휘한다."

덧붙이는 글 채송현 기자님의 이 기사는 잡지 월간 <비디오플러스> 2월호에 기재됐습니다.
공동정범 두 개의 문 연분홍치마 김일란 이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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