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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23일 출범한 한글학회 개혁위원회(공동대표 김정수, 밝한샘, 조규태)가 한글학회 개혁을 촉구하고 있는 가운데, 고등학교 교사인 하성환 시민기자가 개혁위원회를 지지하는 글을 보내와 싣습니다. 한글학회의 반론도 환영합니다. [편집자말]
한글학회 개혁을 촉구하면서 한글회관 입구(광화문 새문안로 소재)에서 1인 피켓 시위하는 박용규 박사
▲ 1인 시위장면(2월 5일) 한글학회 개혁을 촉구하면서 한글회관 입구(광화문 새문안로 소재)에서 1인 피켓 시위하는 박용규 박사
ⓒ 박용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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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4일은 절기상 봄이 시작된다고 하는 입춘이었다. 그러나 시위 첫날인 2월 5일 체감온도는 영하 17도에 이를 정도로 추위가 매서웠다. 그 혹한을 뚫고 매일 한글회관 건물 앞에서 1인 시위를 하는 사람이 있다. 그는 한글학회 개혁을 위해 한글학회가 안고 있는 적폐청산을 고발하며 온몸으로 절규하는 중이다.

그는 현재 한글학회 연구위원이자 한글학회 개혁위원회 운영위원장인 박용규 박사이다. 그는 조선어학회를 실질적으로 이끌어 간 지도자이자 국어학자인 이극로를 연구하여 고려대에서 학위를 받았다. 현재 이극로연구소장이자 고려대 한국사연구소 교수로 재직 중이다. 그는 조선어학회 사건(1942) 당시 고난을 받았던 조선어학회 33인을 연구하며 독립유공자로서 명예회복을 위해 노력하는 실천적 지식인이다. 실제로 박용규 박사는 대구광역시 달성군 어느 야산에 수십 년 동안 묻혀 있던 한글학자 이윤재 선생의 묘소를 2013년 국립묘지 애국지사 묘역으로 안장시키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또한 일제강점기 모욕적인 창씨개명에 통분 끝에 자결로써 항거한 조선어학회 신명균 선생을 2017년 독립운동가로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 받게 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하기도 했다.

그날은 매서울 정도로 차가운 바람이 몸 속 구석구석 파고들어 잠시도 서 있기 힘든 날씨였다. 그러나 한글학회 적폐 청산과 개혁을 향한 그의 의지와 열정은 뜨겁기 그지없다. 민족학회인 한글학회의 변화를 갈망하는 시민으로서 한글학회 개혁위원회의 주장에 뜨거운 지지와 응원을 보낸다.

지난 1월 23일 출범한 한글학회 개혁위원회가 한글학회 변화를 촉구하며 주장한 내용 가운데 핵심적인 내용 두 가지를 소개하고자 한다.

개혁위원회 주장에 따르면 한글학회에서 청산해야 할 적폐의 내용은 이렇다. 맨 먼저 한글학회 회장과 이사를 직선으로 뽑을 것을 요구한다. 1988년 회칙이 개악된 이래 한글학회 회장과 부회장, 이사 등 임원진이 30년째 간선제로 계속 선출되고 있다. 이사가 임명한 평의원들이 간선으로 회장, 부회장, 이사를 뽑는 상식 밖의 관행이 30년째 지속되고 있다. 2016년과 2017년 평의원회 구성의 절반이 특정 지역 인사들로 채워져 있음을 생각할 때 지역 편중 현상이 여전히 해소되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한글학회 정회원은 임원 선출과정에서 아무런 권한을 행사하지 못한다.

결국 순환되지 않는 체제는 침체되기 마련이다. 오늘날 거리의 간판은 뜻 모를 영어로 넘쳐나고 있다. <땅꺼짐> 현상을 <싱크홀>로 방송을 탔던 게 불과 몇년 전 우리네 언론계 현실이다. 레시피, 스타일, 퍼포먼스, 마스카라, 모티브, 와이프, 드라마, 하이서울, SK그룹, NH농협, LH공사, KB은행... 영어가 들어가지 않는 글자가 없을 정도이다. . 생경한 영어 단어들이 난무하면서 우리말과 정신을 잠식해 들어가는 씁쓸한 현실은 우리의 자화상이 된 지 오래이다. 우리말글을 천대하고 영어를 숭배하는 이런 현상들이 정체된 한글학회의 모습과 과연 무관한 것일까?

요컨대 한글학회 정회원이 직접 선거로 한글학회 지도부를 구성해야 한다. 소통이 사라진 조직은 반드시 침체되고 비민주성의 얼굴을 스멀스멀 드러내기 때문이다. 이는 오늘날 한국인이면서 자기나라 말글인 한글을 경시하고 영어를 숭배하는 언어 사대주의를 낳았다. 참으로 우려스럽고 통탄할 일이다.

일제 강점기 제국주의 일본의 민족말살정책에 따라 창씨개명을 강요받고 우리말글을 쓰지 못하게 한 시절이 있었다. 그 암울한 시절에 조선어학회 사건이 터진다. 우리 말글을 연구하고 널리 보급하려 했던 학자와 후원자들을 일제는 참혹할 정도로 고문을 자행했다. 한징, 이윤재 선생은 고문 끝에 재판도 열리기 전 감옥에서 옥사했다. 조선어학회의 실질적인 지도자이자 가장 징역형을 세계 받은 이극로 선생은 해방 직후 들것에 실려 나왔다. 우리말글을 지키기 위한 선열들의 피어린 투쟁을 우리는 잊지 않아야 한다. 우리가 오늘날 남과 북이 갈라져 있어도 같은 말글을 쓰고 있는 것은 모두 그분들의 고귀한 희생의 결과이다. 일제치하 한글맞춤법 통일안 제정(1933)과 외래어표기법 제정(1938), 그리고 우리말 큰 사전 발간 사업(1929-1957) 등이 선열들의 헌신과 수고의 결실이다. 독립운동사 연구자들이 감히 1942년 조선어학회 사건을 '언어독립투쟁'으로 그 성격을 규정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두 번째 2006년 회칙 개악으로 오늘날 한글학회 정회원이 될 수 있는 자격이 제한돼 있다. 한글학회 회칙 제5조에는 정회원을 '국어학, 언어학이나 국어 교육학, 또는 이와 관련된 분야의 연구에 종사하는 이로서 공인된 논문을 발표한 실적이 있는 이'로 규정돼 있다. 이는 한글학회 활동을 일개 학술단체로 그 위상을 규정지은 것으로 매우 잘못된 회칙 개악이다. 물론 회칙을 개정할 수 있는 자격은 '한글학회 이사회의 발의와 평의회의 심의로만 가능'하게(회칙 제39조) 돼 있기에 벌어진 기막힌 풍경이다.

한글학회는 1949년 조선어학회를 이어받은 단체이다. 조선어학회는 조선어연구회를 이어 받은 것이고 조선어연구회는 주시경 선생이 1908년 만든 국어학연구회를 이어 받은 단체이다. 물론 주시경 선생의 국어학연구회는 전덕기 목사의 상동교회를 주 무대로 결성된 모임이다. 상동교회에서 개설한 조선어강습원 출신 제자들이 역사상 뛰어난 김두봉, 최현배, 권덕규, 정열모 등이다. 따라서 주시경 선생의 일제 강점기에는 한글학회 정회원이 될 수 있는 자는 '한글을 사랑하고 한글 연구 발전에 관심이 있는 자'는 누구나 가입할 수 있었다. 이런 현상은 외솔 최현배 선생이 회장으로 있던 50-60년대에도 마찬가지였고 2005년까지 지속되었다.

따라서 한글을 사랑하고 우리말글 연구와 발전, 그리고 보급에 뜻이 있고 관심이 있는 자는 누구나 회원이 될 수 있었기에 한글학회 회원의 직업 분야는 시인(신석정), 영문학자(정인섭), 서지학자(김근수), 의사(공병우), 변호사(이인), 작곡가(금수현) 등 다양했다. 그 다양성이 한글학회를 민족학회로서 기능하게 하였고 생명력을 잃지 않게 만들어 주었다. 그러나 2006년 회칙 개악으로 정회원 자격은 언어학자나 논문을 발표한 특수 집단으로 국한되는 폐쇄성을 띠게 되었다. 이는 한글학회의 역동성과 생명력을 축소시키는 잘못을 초래했고 급기야 한글 운동 전반을 침체시킨 주요한 원인으로 작용한다. 오늘날 한글학회가 일개 학술단체로 쇠락한 이유이자 일부 언어학자나 국어학자들만의 전유물로 전락한 이유이다.

결론적으로 한글학회 임원인 회장과 부회장, 이사를 간선제가 아니라 직선제로 뽑는 것은 한글학회 적폐 청산의 첫걸음이다. 초등학교 학급 회장 선거도 아이들이 직접 선거로 뽑는 게 21세기 오늘의 현실이다. 기득권에 안주해 한글학회가 자신의 부끄러운 자화상을 모르쇠로 일관해선 안 된다. 나아가 우리말글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쳤던 선열들의 정신을 왜곡해선 안 된다. 우리말글을 사랑하고 연구하며 널리 보급하고자 노력하는 시민은 누구나 회원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한글학회 초기 정신을 회복하는 지름길이자 한글학회를 역동적인 민족학회로 발전시키는 바른 길이다.

이러한 변화야말로 영하 17도가 오르내리는 혹한 속에서 피켓을 들고 고군분투하는 박용규 박사의 비판적 제언에 한글학회가 정직하게 응답하는 첫걸음이라 생각한다. 뿐만 아니라 우리말글을 사랑하는 이 땅의 모든 시민들이 바라는 한글학회 개혁에 대한 간절함이기도 하다. 모쪼록 한글학회의 부단한 자기 성찰을 촉구한다. 나아가 이번 회칙 개정을 계기로 한글학회가 민족학회로서 거듭나 그 옛 위상을 회복하여 뜻있는 시민의 폭넓은 사랑을 받길 기원한다.



태그:#박용규, #한글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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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회원으로 가입하게 된 동기는 일제강점기 시절 가족의 안위를 뒤로한 채 치열하게 독립운동을 펼쳤던 항일투사들이 이념의 굴레에 갇혀 망각되거나 왜곡돼 제대로 후손들에게 전해지지 않은 점이 적지 않아 근현대 인물연구를 통해 역사의 진실을 복원해 내고 이를 공유하고자 함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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