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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는 직업상의 이유로 이사를 많이 다녔다. 한번은 외국으로 이사를 했는데, 해상운송이 늦어져서 짐을 예상보다 두 달 정도 늦게 받았다. 전임자가 살던 집에 살게 되었는데, 아내와 나 달랑 두 식구라 집이 휑했다. 방 네 개에 부엌과 별도로 식당이 있고, 베란다는 카페 테이블 네 개는 가져다 놓아도 좋을 만큼 컸다. 두 달이 넘게, 트렁크 두 개 분량의 짐으로 생활을 했다. 그런데 생활이 꽤 쾌적했다.

일단 집안에 TV나 오디오도 없이 노트북 하나뿐이니, 주말이 되면 저절로 산책을 나갔다. 짐이 없으니 넓은 공간이지만 청소하기도 편했다. 침실에는 침대 하나뿐, 주의를 끌 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다 보니 잠도 잘 잤던 것 같다. 물론, 쾌적한 생활은 두 달이 지나고 트레일러 하나 분의 이삿짐이 도착하고는 끝이 났다.

정리를 왜 해야 할까

정리의 기본은 버리기이고, 버리기의 기본은 분류다.
 정리의 기본은 버리기이고, 버리기의 기본은 분류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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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인슈타인은 사용하고 있는 과학 장비 중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는 기자의 질문에 휴지통을 가리켰다고 한다. 기자가 당황스러워하자, 그는 떠오르는 아이디어를 적을 펜, 그리고 필요 없는 메모를 정리할 수 있는 휴지통이 가장 중요한 도구라고 답했다. 영화 <브루스 올마이티>에서, 신의 역할을 맡은 짐 캐리가 사람들의 기도가 적힌 포스트잇 더미에 온몸이 뒤덮이는 장면을 생각해보면, 아인슈타인이 무슨 말을 하려던 것인지 쉽게 알 수 있다.

소설 <은하영웅전설>에 보면, 천재 전략가 양웬리와 같이 살게 된 고아 소년 율리안이 지저분한 집을 청소하는 장면이 나온다. 양웬리는 퇴근 후에 말끔히 정리된 집을 보고 짜증을 낸다. 겉보기에는 지저분한 집이지만 자신은 무엇이 어디에 있는지 다 알고 있었는데, 이제 다 정리가 되어 물건을 못 찾겠다는 것이다. 영화나 드라마에 많이 나오는 클리셰지만, 정말로 이런 이유를 대면서 정리를 거부하는 사람이 많다.

그런데 양웬리는 천재라서 물건들이 어디에 있는지 다 기억하는지 몰라도, 우리들 대부분은 그렇지 못하다. 다산 정약용도 '둔필승총'이라는 말을 남겼다. 둔한 붓이 총명한 머리를 이긴다는 말이다. 아무리 총명한 머리라도 메모하지 않으면 잊게 되며, 정리하지 않으면 잃게 된다.

왜 정리를 해야 하냐는 질문에 <하루 15분 정리의 힘>의 저자 윤선현은 무려 여덟 가지의 이유를 나열한다. 정리는 성취감을 느끼게 해주고, 삶의 의욕을 북돋아 주며, 창조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에너지의 흐름조차 개선해 준다고 한다.

그러나 역시 가장 중요한 이유는 시간과 돈이다. 정리를 하지 않고 살다 보면, 가지고 있는 물건인데도 어디에 두었는지 잊고 다시 사게 된다든가, 고지서를 잊고 있다가 연체료를 물게 된다든가 하는 일들을 겪게 된다. 단순히 돈을 어딘가에 방치해서 잃어버릴 수도 있다. 정리를 하지 않으면 금전적 누수가 발생한다.

더 심각한 것은 시간 낭비다. 찾는 물건이 어디에 있는지 기억나지 않아 시간을 낭비하는 것은 물론, 일을 체계적으로 하지 못 해서 더 많은 시간이 걸리기도 한다. 책에 소개된 미용실의 사례는 정리로 인한 시간 절약 효과를 잘 보여준다.

상자째 놓여있는 미용 물품과 배달 음식으로 통로가 막히면서, 직원들은 멀리 돌아다니면서 시간을 낭비해야 했다. 필요한 물건을 찾으려면 상자를 하나씩 열어서 내용물을 확인해야 하니, 시간이 많이 걸린다. 미용 물품을 상자에서 꺼내 투명한 용기에 수납하고, 싱크대 주변을 정리해서 공간을 확보한 것만으로 직원 한 명당 하루 30분 가량의 시간을 절약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정리할까

<하루 15분 정리의 힘> 표지
 <하루 15분 정리의 힘> 표지
ⓒ 위즈덤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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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정리의 3단계를 '비움, 나눔, 채움'이라고 설명한다. 첫 단계인 비움이 가장 중요하다. 후쿠시마 대지진 이후 미니멀리즘, 즉 단순하게 살기 운동이 일본에서 대유행 중이다. 지진으로 인해 파손된 물건들을 다시 사야 하나 하는 고민은, '그 물건이 정말 필요한가'라는 질문으로 변했다. 지진으로 선반 위의 물건이 떨어지면서 흉기로 돌변하는 것을 경험하자, 사람이 먼저인지 물건이 먼저인지 의아해지기도 했을 것이다.

여러분의 공간을 채우고 있는 모든 것, 즉 물건, 일, 심지어 생각까지도 유효기간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자. 모든 것에는 정해진 시간이 있다. 일정 시간이 지나면, 떠나보내야 한다. (113쪽)

읽을 때를 놓친 책, 끝난 프로젝트, 입지 않게 된 옷,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은 가치관 등 유효기간이 지난 모든 것들을 떠나 보내라고 저자는 말한다. 정리 수업을 들은 한 수강생은 남자친구가 선물로 준 인형을 버렸는데, 남자친구와 사이가 더욱 좋아졌다고 한다.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생일선물이라서 버리지 않고 있었는데, 오히려 그 인형을 볼 때마다 서운한 감정만 쌓아 온 것이다. 정리의 8할은 버리는 일이다.

내게 필요하지 않은 물건이 누군가에게는 필요한 것일 수도 있다. 그것이 나눔의 정신이다. 지구 전체의 식량 생산은 100억이 넘는 인구를 배불리 먹일 수 있는 양이라고 한다. 굶주리는 사람들이 있는 이유는, 물론 운송비라는 현실적인 문제가 가장 크겠지만, 나누려는 마음이 모자라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지금 당장, 잘 쓰지 않는 물건을 하나 골라 친구나 직장 동료에게 선물해 보라고, 저자는 제안한다.

버리고 나눈 다음에는 채워야 한다. 불필요한 물건으로 공간을 채우고 다시 버리기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채움의 단계에서는 자신이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본다. 싸다는 이유로, 유행한다는 이유로 산 옷은 결국 입지 않게 된다.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옷을 산다면, 입을 때마다 기분이 좋아지고, 심지어 자존감도 높아진다.

10만 원짜리 옷 열 개를 돌아가며 입는 것보다, 마음에 꼭 드는 백만 원짜리 옷 한 벌을 꾸준하게 입는 것이 낫다. 미니멀리즘을 실천하는 사람들 중에는 스티브 잡스와 같이 한 가지 스타일을 유니폼으로 정해 그 옷만 입는 사람들도 있다. 터틀넥과 청바지뿐이지만, 정말 자신의 마음에 드는 고급 제품이라면 자신에게 미안한 마음도 들지 않는다.

하루 15분 정리의 힘

예전의 나는 정리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학생 시절에는, 컴퓨터 책상 옆에 있는 침대 위에 물건들을 계속 쌓다 보니 나중에는 침대에 잘 공간이 없어서 바닥에서 자기도 했다. 하지만 직장 생활을 하게 되면서, 시간보다 부족한 자원은 없다는 사실을 잘 알게 되었고, 차차 정리의 필요성을 깨닫게 되었다.

나는 아침에 회사에 도착하면 우선 물티슈를 꺼내 책상을 청소한다. 그리고 오늘 할 일을 두 시간 단위로 대강 계획해서 메모지에 적어 모니터 옆에 붙여 놓고 업무를 시작한다. '작은 습관'의 힘이다.

'52권 자기 혁명'을 지탱하는 두 개의 바퀴는 깨달음과 실천이다. 아무리 훌륭한 가르침이라도 실천하지 않으면 삶을 변화시키지 못한다. <하루 15분 정리의 힘>을 읽는 경험은 세심한 정리 컨설턴트에게 정리 방법을 직접 배우는 느낌이다.

읽고 고개를 끄덕이는 데 그치지 말고, 실천할 아이템 한 개를 찾아 오늘부터 실행에 옮기자. 내가 추천하고 싶은 것은 '아침 5분 청소'다. 저자도 지적하듯이, 청소 시간을 30분으로 잡게 되면 습관으로 자리 잡기 어렵다. 아침 청소는 최대 5분으로 제한하는 것이 '작은 습관' 원칙에 맞는다.

아침에 책상 앞에 서면 저절로 물티슈에 손이 간다. 책상을 닦다 보면 옆 사람 책상까지도 닦고 싶은 생각도 든다. 책상 위에 나와 있는 물건의 수가 점점 줄어들고, 더 적은 물건을 가지고도 업무에 전혀 장애가 생기지 않는다는 사실도 알게 된다. 여기에서 조금만 더 힘내면 미니멀리즘에도 도전할 수 있다.


하루 15분 정리의 힘 - 삶을 다시 사랑하게 되는 공간, 시간, 인맥 정리법

윤선현 지음, 위즈덤하우스(2012)


태그:#52권 자기 혁명, #윤선현, #<하루 15분 정리의 힘>, #정리,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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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용이 강물처럼 흐르는 소통사회를 희망하는 시민입니다. 책 읽는 브런치 운영중입니다. 감사합니다. https://brunch.co.kr/@junat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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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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