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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월 6일, 355일만에 한국에 돌아왔다. 공항에 마중 나온 부모님을 보자마자 무사히 살아서 돌아왔다는 안도감에 한바탕 눈물을 쏟았다. 아니 꼭, 살았다는 안도감만의 눈물은 아니었다. 이제 외롭지 않아도 된다는 기쁨, 좀 더 다르게 여행해 볼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후회, 지난 시간에 대한 감사 그리고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할까 하는 고민의 눈물이었다.

여행을 통해 얻고 싶은 목표는 확실했다. 여행을 통해 공동체의 삶, 귀농, 대안적인 삶의 방식을 체험해보고 이렇게 살아도 죽지 않을 수 있다는 확신을 얻고, 사람들에게 여행기를 통해 다른 방식의 삶을 알리기. 다녀 온 후에는 사회 단체 활동가로 일하기, 책 출간하고 강의 하기. 이게 내가 세운 여행의 목표였다.

여행 초, 중반에는 제법 이 목표가 확고했다. 몇 년 동안 해보고 싶던 덤스터 다이빙을 하고, 한국에는 없는 동물 복지형 뉴질랜드 동물원에 관광을 갔다. 여행 초반에는 10년 동안 바라던 여행을 떠났다는 생각만으로도 매일이 신나고 즐거웠다.

여행 3개월 때, 볼리비아에서는 산 중턱에 있는 농장에서 한 달 정도 자급자족으로 사는 가족을 도우며 일을 했다. 이 가족과 머물며 여행의 목표가 삐그덕 거리기 시작했다. 도시에서 나고 자란 내가 막상 귀농의 삶을 살아보니 상상 이상으로 힘들었다.

돈을 쓰는 대신 다 직접 내 몸을 이용해 집을 짓고, 농산물을 길러내야 했다. 도시에서 하던 텃밭 바꾸기 수준의 노동이 아니라, 하루 7, 8시간을 허리를 숙이고, 손톱 밑이 흙에 물이 들도록 일하는 중노동이었다. 자급자족의 삶을 지향하는 마음은 없어지지 않았지만, 한국에 돌아가자마자 귀농해 살 생각은 접었다.

페루, 쿠바를 여행하는 동안 여행의 목표가 한 번 더 흔들렸다. 페루에서 누구나 가는 관광지 마추픽추 대신 생태마을 여행을 선택했다. 문제는 생태마을인 줄 알고 간 곳이 사실은 흰두교 사원이었다는 것. 생태마을에 관한 글을 써야 하는데 엉뚱하게 흰두교 사원에 와 버렸으니 어쩐다 하며 여행을 즐기는 대신 스트레스를 받았다.

쿠바에선 남들 다하는 관광 코스를 즐겨 보기로 했다. 쿠바에 간 이유는생태농업 탐방이 아니라, 쿠바문화를 즐겨보고 싶어서 였다. 그럼에도 여행하는 내내 어쩐지 마음에 '대안적인 삶을 주제로 한 글을 써야 하는데...'라는 부담감이 지워지지 않았다. 나도 모르게 주객이 전도된 여행을 하고 있었다.

스반홀름에서 봉사활동 수료증받고 기념품 받은 날 찍은 사진.
 스반홀름에서 봉사활동 수료증받고 기념품 받은 날 찍은 사진.
ⓒ 조수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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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서 내 자신에게 '책은 왜 내고 싶은 거야'라고 묻고 또 물었다. 친환경생활, 대안적인 삶을 살고,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은 마음이 없지는 않았지만, 내 안에 있는 또 다른 마음을 발견했다. 나는 유명 여행자가 되고 싶었다. 여행 팟캐스트에 나와서 '나는 이렇게 특이하게 여행했고 성공했습니다'라며 떠들고 인정받길 원했다. 그래서 먹고 살 길을 해결하길 원했다. 나 자신의 또다른 욕망을 마주하자 스스로에게 많이 부끄러웠다. 나의 진정성은 어디에 있는 걸까.

대안적인 삶, 친환경적인 삶을 향한 관심 자체가 없어진 것은 아니었지만 여행을 즐기지 못할 바에야 마음 편히 관광이라도 실컷하자 생각하며 미국과 유럽에 많은 시간을 할애해 혼자 관광지를 돌아다녔다. 혼자 있는 시간이 길어지자 질문의 방향이 내 내면으로 향했다. 게스트하우스 하던 시절을 돌아보며 그 일이 왜 갈수록 힘에 부쳤나 분석했다.

지난 날의 연애를 떠올리며 답도 없는데 연애를 망친 이유를 거듭 고민했다. 한국에 돌아가서 활동가가 되고 싶다는 목표도 흔들렸다. '내가 잘 할 수 있을까?' 그런 고민이 시작되자 마음이 더욱 불안해졌다. 마음에 질문은 가득했고 깊은 대화를 나눌 사람도 없었다.

여행 내내 닥치는 온갖 문제를 나 혼자 해결 하는 것도 어려웠다. 이탈리아 시골의 허허 벌판에서 혼자 길을 일고 헤맨 날 무척 서러웠다. 옆에서 내 손 붙잡고 "걱정하지마, 우리 같이 길 찾으면 돼. 내가 옆에 있어"라고 말해줄 누군가가 그리웠다.

여행을 떠나기 전에는 전혀 몰랐던 나의 모습이었다. 팀프로젝트가 전무한 영문과를 나오고, 혼자 게스트 하우스를 운영하며 나는 내가 뭐든지 혼자서 잘 해내는 사람, 혼자인 게 편한 사람인 줄 알았다. 그건 착각이었다. 먼 나라에서 철저하게 혼자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건 너무 외로웠다.

여행 떠나기 전에는 사람 귀한 줄 몰랐던 내가 내 옆의 누군가를 뼛속 깊이 그리워했다. 가족과 친구들이 보고 싶어 매일 소셜 네트워크로 소식을 전하며 끝없이 한국에 있는 지인에게 연락했다. 상대가 전화를 받으면 다짜고짜 울음부터 쏟아냈다. 여행 후반부는 내인생 최고로 외롭고, 사람이 그리운 시간이었다.

여행을 다녀온 지 한 달이 지났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여행을 다녀온 후 바로 책을 내겠다며 여기저기 출판사에 출판계획서를 내고, 주택 협동조합에 들어가 살거나 시민단체를 기웃거리고 있어야 한다.

지금 나는 부모님과 같이 살며 이제는 부모님이 관리하시는 게스트 하우스 일을 돕고 있다. 마음의 허전함과 외로움이 온전히 채워지고, 고정적인 수입이 들어올 때까지 독립의 꿈을 미뤘다. 틈틈이 취업 준비도 하고 있다. 대기업 입사준비나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대신, 사회적기업, 작은 잡지사, 신문사 등의 일자리를 알아보고 있다. 1년 전의 내가 전혀 상상하지 못하던 나다.

그럼 내 여행은 실패한 여행인가? 내 자신에게 이런 말을 던지자마자 혼자 '피식' 하고 웃어버렸다. 여행에 실패가 어디있담. 여행은 그저 과정일 뿐이었다. 나를 알아가는 과정. 내가 혼자 있기에는 연약한 사람이란 걸 알았고, 장시간 육체노동을 하는 것을 힘들어 하고,외롭고 힘들어도 목표를 위해 참고 견디는 고집 있는 사람이란 걸 알았다.

삶이 내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듯이, 여행도 내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그래도 괜찮다. 계획이 달라졌다면, 부끄러워하고 창피해 하지 않아도 된다. 그저 쿨하게 '그럴 수도 있지' 하고 하고 넘어가고 달라진 계획대로 살면 된다. 여행을 통해 나란 사람이 통째로 바뀌지도, 유명한 사람이 되지도 못했지만, 괜찮다.

355일의 시간을 홀로 지낸 것만으로도 나는 멋진 사람이다.


태그:#세계일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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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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