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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 공부 열심히 해."

출근길. 아침마다 듣는 인사말이다. 집 근처에 치매 할머니가 거주하고 계신데 산책삼아 나오셔서 나를 마주한다. 인사말이 항상 한결같다. 어느 덧 마흔을 바라보는 내게 학생이라 부르시니 굉장히 겸연쩍다.

할머니는 작년 초에 이사 오셨다. 엄연히 말하면 지방에 계시다 치매 증상이 생겨 자식 집으로 오신 거다. 처음 오셨을 땐 할머니의 증세가 눈에 띄지 않았는데 1년이 지난 지금 살펴보니 더 안 좋아지신 것 같다.

가끔 할머니 댁에서 큰소리가 들린다. 자식들과 의견 대립이 있었을 거라 추측한다. 아니나 다를까, 인근에서 만난 할머니 댁 이웃은 나를 보자마자 집안이 시끄러워 미안하다는 인사를 전한다. 의사소통 방법이 그러하다면서.

나는 서울의 한 종합병원 재활센터에서 작업치료사로 근무하고 있다. 내 환자 중엔 혈관성 치매를 동반한 뇌졸중 환자분들도 간혹 있어서 이웃의 마음을 이해 할 수 있다. 치매 가족으로서 숙지해야 할 마음가짐이나 방법들을 알려주고 싶은데, 마땅히 그럴 기회가 없어 안타까운 마음만 갖고 있었다.

문제는 고령사회로 접어들며 치매환자가 많아지면서, 앞에 언급한 사례처럼 어찌할 바를 몰라 힘들어하는 가족들도 덩달아 많아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치매 현황과 대책은?

보건복지부 2013년 자료에 따르면 치매 환자수가 2012년도 54만 명이었던 반면 2030년엔 127만 명, 2050년엔 271만 명 정도로 20년 마다 두 배씩 증가할 것으로 예상됐다. 현재 65세 인구 10명 중 1명이 치매 환자라는 조사 결과도 발표됐다.

이는 2017년 9월 기준으로 65세 인구가 14%를 초과하는 고령화사회에 접어들었고, 2025년엔 65세 인구가 20%를 초과하는 초고령사회 진입을 목전에 두고 있는 현 시점과 무관하지 않다. 따라서 치매 문제는 앞으로 꼭 해결해야 할 시대적 과제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에 발맞춰 문재인 정부는 치매국가책임제를 시행하고 있다. 중증 치매 환자의 의료부담비를 10%로 낮추고, 신체기능이 양호해서 등급판정을 받지 못한 치매 어르신들도 등급체계를 개선하여 대상에 포함될 수 있도록 하고, 252개의 전국 보건소에 치매안심센터를 설치하여 1대1 맞춤형 상담, 검진 등이 이뤄질 수 있도록 하는 게 골자이다.

치매국가책임제는 기존의 지지부진했던 치매정책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갔다고 평가받고 있는데, 앞으로 발생될 수 있는 여러 시행착오를 개선해 나가는 게 가장 중요하다. 행정 중심에서 벗어나 현장의 목소리를 잘 반영하는 것도 중요하다.

이웃나라 일본은 어떨까?

일본은 노인인구 7명 중 1명이 치매환자일 정도로 유병률이 우리보다 높다. 그런데다 이미 초고령사회로 진입한 상태라 치매정책이 국가정책이 될 정도로 이 문제를 심각하게 바라보고 있다. 일본 치매 정책의 모습을 1월 20일 SBS에서 방영된 <치매 오디세이, 안녕 우리 할머니>에서 엿볼 수 있었다.

이 프로그램에선 후쿠오카 현 오무타 시의 사례를 보여줬다. 오무타 시는 젊은 사람들이 빠져나가는 이촌향도 현상이 뚜렷해 현재 노령화율이 35%에 달한다. 2010년 오무타 시민 9천여 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31%에서 치매환자 지원 프로그램이 필요하다는 응답이 나왔다.

후쿠오카 현 오무타 시는 치매환자 실종을 대비해 SOS 네트워크를 갖추고 있다
 후쿠오카 현 오무타 시는 치매환자 실종을 대비해 SOS 네트워크를 갖추고 있다
ⓒ SBS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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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무타 시는 그들만의 프로그램인 SOS 네트워크를 도입했다. 치매 환자가 실종됐을 때 시민에게 실시간으로 환자의 신상정보를 문자로 전송하여 빨리 찾을 수 있도록 노력한다. 또한 학생 어른 가릴 것 없이 치매어른 찾기 팀을 구성하여 실종 노인을 찾아 나선다. 1시간 이내에 실종 노인을 찾을 수 있도록 모의훈련을 실시하고 있다.

치매와 싸우지 마세요

직업적인 관심과는 별개로 나도 한평생을 살아갈 사람으로서 훗날 치매를 맞닥뜨릴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엄습했다. 문재인 정부의 치매국가책임제와 더불어 앞으로 나아가야할 이상적인 방향은 무엇인지 고민하던 와중에 앞에 언급한 <치매 오디세이>라는 프로그램을 보게 됐고, 이제부터 소개할 <치매와 싸우지 마세요>라는 책도 읽게 됐다.

우리보다 치매 정책에서 앞서 있는 일본의 한 서적을 번역했는데, 저자는 나가오 가즈히로와 곤도 마코토이다. 책의 특징은 외래와 재택으로 치매환자를 진료하는 의사(나가오 가즈히로)와 일본정부의 국가 치매대책 사업을 이끈 공무원(곤도 마코토)이 치매라는 공통된 주제로 서로 주고받은 편지를 엮은 것이다.

이 책은 의사의 시각으로 본 치매 환자의 모습과 치매 정책을 다루는 공무원의 시각이 병렬식으로 나열되어 독자가 어느 한쪽의 시선에 편중되지 않고 편하게 읽을 수 있다. 또한 공무원인 곤도 마코토도 본인이 직접 치매 가족으로 겪었던 여러 사례들을 고백하여 독자들이 공감할 수 있도록 도왔다. 치매환자와 치매환자 가족의 이야기가 중심이 되어 펼쳐진다.

치매에 대한 이해를 돕는 책이다
▲ 치매와 싸우지 마세요 치매에 대한 이해를 돕는 책이다
ⓒ 윤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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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느리가 밥을 안줘?  

어릴 때 외할머니가 치매를 경험하셨다. 외할머니가 항상 하셨던 말씀이 바로 "며느리가 밥을 안 준다"는 것이었다. 며느리로선 밥을 드려놓고도 억울할 수밖에 없다. 치매노인을 모시고 있는 많은 며느리들이 한 번쯤 겪었을 법한 상황이다. 예전에도 그랬지만 지금도 왜 하필 며느리인가라는 의문을 가졌었는데, 이 책에서 명쾌하게 답을 알려줬다.

"다른 사람도 많은데 할머니가 하필이면 왜 '며느리가 지갑을 훔쳐갔다'고 단정지었는지 우선 생각해봐야 합니다. 아마도 할머니의 병이 진행함에 따라 가정 내에서 며느리와의 힘 관계가 역전되었을 것입니다. 이제껏 며느리 위에 군림해왔던 할머니가 가사 일을 못하고 며느리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상태가 되자 며느리가 높은 위치가 된 게 분명합니다. 그러자 할머니한테서 '쟤를 나쁜 사람으로 만들어 내 위치가 높다는 것을 알게 해주자!'라는 본능이 발동한 것입니다" - 158p.


환자 가족이 중요하다

정작 치매환자는 아무것도 모르고,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기억도 가물가물 누가 누구인지 못 알아보는 경우도 많다. 내 병이 치매임을 인지하고 치매에 좋다는 음식을 찾아서 먹고 좋다는 운동을 찾아서 하는 일은 굉장히 드물다. 또한 내 증상이 이러이러하다고 의사에게 얘기할 수도 없다. 그렇기에 환자와 관련된 히스토리를 비롯해 증상을 확실히 인지하는 것은 가족의 몫이다. 이 책에서도 그 점을 강조했다.

"암 의료에서는 환자 자신이 블로그나 책으로 '항암제 치료 시 이런 힘든 점이 있었다' 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치매 환자는 스스로 '나는 아리셉트(치매 약)로 이렇게 되었습니다'라고 말할 수 없죠. 정보를 줄 수 있는 사람은 가족밖에 없습니다. 그만큼 가족의 소리를 중요하게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 치매의료의 특성이라 생각합니다." - 198p.


책에선 또한 환자가족 자조 모임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치매환자를 돌보면서 힘들었던 경험과 정보를 공유함으로서 서로 도움 되는 것은 물론 의지할 수 있음을 설명했다. 치매 가족모임은 치매가족을 위한 사회심리극, 치매가족 수기발표회, 치매환자와 가족이 함께 참여하는 인지프로그램 등도 함께 수행할 수 있다.

치매는 주치의가 필요하다   

치매 환자와 다투는 보호자들을 자주 본다. 사소한 일로 짜증을 내는 것을 시작으로 서로 주고받다 보면 목소리가 커진다. 이것은 치매를 온전하게 이해하지 못하는 데서 기인한다. 환자가 무엇을 원하는지, 안 된다고 강요만 하는 것은 아닌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가족도 중요하지만 치매를 전문으로 진료할 수 있는 주치의의 역할도 중요하다. 약물을 이용하여 안정시키는 것에만 초점을 둔다면, 치매환자를 이해하는 치료와는 거리가 멀어지는 것이다. 환자의 서사를 이해하는 것이 주치의에게 중요하다고 이 책에선 말한다. 그리고 주치의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오늘날 일본에서 치매환자에게 필요한 것은 먼저 '서사', 즉 그 사람이 살아온 역사와 인생에 관심을 갖는 주치의의 존재입니다. 치매는 선진국 질환이고 의료와 간병 등 사회보장제도와 관련이 있으므로 제도를 활용하기 위해서는 주치의가 필요합니다. 주치의의 역할은 먼저 그 사람이 걸어온 인생과 가족과의 관계 같은 배경을 심도있게 알아내는 것입니다. 그리고 현재 어떤 어려움이 있는지, 어떻게 생활하고 있는지를 구체적으로 끌어내어 파악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변 사람들은 어떤 점을 곤란해 하는지를 알아냄으로써 병태를 조금씩 이해해갑니다." - 175p.


치매가 걸려도 괜찮은 곳으로 만들자

치매는 누구나 두려워한다. 가족들과 지인들에게 민폐를 줄 거라 생각한다. 치매로 인해 갑자기 병원 시설에 갇히고, 그것도 모자라 손발이 묶여 신체 구속을 당한다고 생각하면 우울해진다. 점점 늙는 게 두렵고 무서워지기까지 한다. 과연 이런 상황이 옳은 것일까. 이 책에선 치매가 걸려도 괜찮은 곳을 만들자고 제안한다.

환경이 갑자기 바뀌면 증상이 악화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치매 환자라고 주위에서 걱정하는 순간 점점 더 우울감에 사로잡혀 증상이 악화된다. 자존감을 유지하려면 할 수 있는 일은 옆에서 도와주지 않아야 한다.

증상을 악화시키지 말고 현재의 환경에서 적응하는 것, 그리고 치매를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이 책에선 말한다. 치매에 대한 이해 없는 조기 발견은 조기 불안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저자는 경고한다.

우린 치매를 잘 이해하고 있는가. 초고령사회 진입을 앞둔 현실에서 많이 고민해야한다. 치매를 이해하고 치매 어르신을 적응시키기 위해 지역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공동체를 복원하고 활성화시켜야한다.


치매와 싸우지 마세요 - 치매의 진행이 멈추고 가족이 웃음을 되찾는 돌봄

나가오 가즈히로.곤도 마코토 지음, 안상현 옮김, 윤출판(2017)


태그:##치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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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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