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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0년 5월 'Korean Language'라는 글이 '로어노크 대학 학보(Roanoke Collegian)'에 실렸습니다. 이 글을 쓴 이는 19세의 한국인 유학생 김규식. 김규식은 한국을 궁금해하는 동료 학생들에게 한국어에 대해 설명하며 동방의 낯선 나라 한국을 알린 거지요. 김규식은 한국어가 인구어(印歐語·인도에서 유럽에 걸친 지역에서 쓰이는 언어)와 어떻게 다른지 그리고 한국어가 중국어나 일본어와는 어떤 차이가 있는지를 중심으로 우리말의 역사, 문자, 서사법, 문법구조 등을 설명했습니다. 당시는 우리말 연구가 걸음마를 떼기 시작할 무렵이라 참고할 자료가 거의 없었지만, 김규식은 인구어와 우리말의 문법구조를 비교하면서 우리말의 특징을 분석했고 이를 쉽고 명쾌하게 설명했지요. 이 글을 발표함으로써 김규식은 종합적인 우리말 구조론을 쓴 최초의 한국인이 되었습니다.

이 글을 발표한 이후 김규식은 미국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국의 문화와 외교 관계 등에 대해 수차례 연설을 했고 이 연설문을 같은 학보에 실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할 것은 그가 한국을 알리는 일의 첫 번째 주제로 우리말을 선택했다는 사실입니다. 짐작건대 김규식은 한국의 정체성을 가장 명료하게 드러낼 수 있는 것이 우리말과 한글이라 생각하고 이를 설명하는 것이 한국을 알리는 첫 단계라 생각했을 겁니다. 그런 그가 우리말의 구조를 정교하게 설명한 걸 볼 때 김규식은 우리의 문화를 깊이 이해하면서 동시에 이를 객관화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던 인물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가 국제외교 무대에서 합리적이고 지혜로운 인물로 평가받으며 임시 정부를 대변할 수 있었던 건 이러한 능력이 뒷받침되었기 때문일 거라 생각합니다.

김규식과 관련한 일화 한 토막은 우리말 문법을 학습한다는 것의 의미를 잘 보여줍니다. 모어 화자가 모어 문법을 특별히 배워 모어를 설명한다는 것은 자신이 쓰는 말을 대상화하고 객관화하여 그 구조를 들여다본다는 뜻입니다. 이처럼 자신과 관련된 것을 대상화하고 객관화하는 능력은 학습 능력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고, 문법 교육은 역사적으로 이러한 능력을 키우는 기본 과정으로 인정되어 왔습니다. 그런데 문법 교육은 실용적 교육으로서의 의미도 지니고 있습니다. 

유학생활을 마치고 귀국한 김규식이 심혈을 기울였던 일도 학생들에게 문법을 가르치며 우리말 문법서를 집필하는 것이었고, 그는 1908년 <대한문법>을 완성합니다. 정치학을 전공한 김규식이 하고많은 일 중 학생들에게 문법을 가르치고 우리말 문법서를 쓰는 일에 가장 먼저 뛰어든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그는 <대한문법>에서 언어와 문자의 규례를 정제하고 학습하는 것이 문화 발전의 첫걸음임을 강조한 바 있습니다.

이러한 생각은 김규식뿐만이 아니라 근대 초기 우리말 문법을 연구하고 교육했던 이들의 공통된 생각이기도 했습니다. 유길준도 그랬고, 주시경도 그랬고 우리말 연구의 선구자들은 우리말과 글을 통해 지식을 습득하고 자신의 뜻을 펼치는 것이 우리나라를 발전시키는 길이라 생각했으며, 이를 위해 우리말과 글의 규례를 정하고 그것의 원리를 학습하는 것이 필요함을 강조했습니다. 유길준은 우리말이 수레이고 배라면 규례의 근본인 문법은 그 바퀴고 키가 된다고 말하며 문법 학습의 의미를 강조했습니다. 

특히 주시경은 맞춤법과 표준어를 정하는 것과 관련지어 문법 연구를 심화하였고 이를 교육하며 우리말 규범을 정립하고자 했습니다. 그의 뜻은 후대의 연구자들에게 이어져 엄혹했던 일제강점기에 우리말과 글을 지키고 우리말 규범을 완성하는 힘이 되었습니다. 문법 연구를 통해 한글맞춤법과 표준어를 정립하고 이를 기반으로 우리말 사전을 편찬한 것의 문화적 의의와 사회경제적 효과는 별도로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우리말 규범의 원리와 의의에 대한 탐구가 우리말 교육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했던 것은 이 때문이었습니다.

오늘날 우리말 문법 교육은 개화기 때부터 이어져 온 문제의식을 심화하며, 창의적인 국어사용 능력을 키우는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이는 문법 교육이 언어를 대상화하고 규범을 이해하는 능력을 키우는 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언어의 이해 및 표현 능력을 향상시키는 교육으로 진화한다는 걸 뜻합니다. 수학능력으로 언어능력을 판단하는 과정에서 문법에 대한 이해 능력을 판단하는 것이 중요한 것은 이 때문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교육부는 수학능력시험에서 문법을 배제하는 수능 개편안을 마련한다고 법석을 떱니다. 문법 교육에 대한 편협한 이해와 우리 근대사에 대한 몰이해에서 비롯한 사태를 지켜보자니 답답하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합니다. 교육 당국의 진지한 성찰을 요구합니다.  

* 현 사안의 개요: 현재 국어 교육과정의 수능 시험은 '2009년 개정 교육과정'에 따라 <화법과 작문>, <독서와 문법>, <문학> 3과목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런데 '2015년 개정 교육과정'에서 <독서와 문법>을 <독서>와 <언어(=문법)와 매체>로 분리하면서 국어 과목은 4과목으로 증가하였다. 2022년 수능 시험 범위는 '2015년 개정 교육과정'에 따라야 하는데, 이 교육과정을 설계한 교육부가  학습자의 부담을 이유로 수능 시험 과목의 축소를 검토하면서, <언어(=문법)와 매체> 과목을 수능 시험에서 제외할지를 묻는 설문조사를 일방적으로 강행하였다. 여러 과목 중 문법이 포함된 과목만을 선택해 그 포함 여부를 묻는 설문조사는 우리말 문법의 배제에 초점이 맞춰진 것이라 볼 수밖에 없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의 내용은 2018년 2월 10일 신문고뉴스에 게재된 "수능 '문법 배제, 117년전 '19세 김규식' 배워라"와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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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연구자/원광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