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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이 땅의 평범한 여성들을 강제로 전쟁터에 끌고 가 위안부라는 이름 아래 성노예로 만든 일본의 인권 유린을 비판하고, 피해자들의 의사와 상관없이 졸속으로 체결한 한일위안부 합의의 폐기를 촉구하는 의미에서 전국 각지에 세워진-지금도 세워지고 있는- 평화의 소녀상을 답사한다. 

이는 '국가'라는 이름 아래 조직적으로 전개된 여성 인권 유린과, 아직도 이를 공식 인정하지도, 반성하지도 않는 일본 정부에 대한 분노를 표현하는 필자만의 평화적인 방법이며, 부끄럽고 잘못된 과거를 바르게 청산하고 더 나은 미래를 향해 나아가고자 하는 이 사회의 여러 노력에 작은 보탬이 되고자 하는 의지의 표현이다.

단, 그냥 찾아다니기만 해서는 의미가 적다고 보고, 가능하면 소녀상이 세워진 지역의 역사성과 소녀상 건립이 갖는 의미, 소녀상의 모습과 상징성 등을 다양하게 알아보고 그 의미를 탐색하고자 한다(이는 단순한 평화의 소녀상 답사를 넘는 지역 답사의 의미도 갖게 됨을 의미한다). - 기자말

강릉의 대표적인 명소 경포호와 경포해수욕장 들어가는 입구, 3.1운동 기념공원 안에 경포호를 바라보며 앉아 있다
▲ 강릉 평화의 소녀상 강릉의 대표적인 명소 경포호와 경포해수욕장 들어가는 입구, 3.1운동 기념공원 안에 경포호를 바라보며 앉아 있다
ⓒ 홍윤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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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계올림픽 보러 온다는 사람들에게 이 소녀상도 한번 찾아달라고 해주세요."

해 뜨는 이른 아침 강릉 평화의 소녀상을 찾아 찬바람을 맞으며 우두커니 서 있을 때, 70대 가까운 나이 드신 할머니가 지나가며 한 마디 하신다.

바닷물이 끊임없이 모래를 실어와 바닷가에 쌓아놓는 바람에 바다로 통하는 길이 막혀버린 호수, 지리학적으로 석호라 부르는 이 경포호수는 한겨울이면 거울같이 맑고 투명하다. 날이 추워 얼음이 얼면 그 얼음이 곧 거울이 된다. 그래서 거울 경(鏡)을 써서 경포호라고 부르는 걸까.

조선 중기의 문인 정철이 <관동별곡>에서 '얼음같이 흰 비단을 다리고 다시 다린 듯한 맑고 잔잔한 호숫물'이라고 표현하며 '물 속 모래를 헤아릴만하다'고 이야기한 것이 겨울 경포호에 딱 들어맞는 듯하다.

강릉 평화의 소녀상은 이 경포호와 동쪽 동해안 방향을 바라보며 앉아 있다. 그래서 이 소녀상은 1년 내내 누구보다 먼저 아침해를 맞이한다.

춘천·원주와는 다른 강릉

강릉 평화의 소녀상은 확 트인 동쪽을 향해 앉아 있어 1년 내내 아침해를 맞이한다.
▲ 평화의 소녀상 일출 강릉 평화의 소녀상은 확 트인 동쪽을 향해 앉아 있어 1년 내내 아침해를 맞이한다.
ⓒ 홍윤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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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백두대간 동쪽 동해안 지역을 흔히 관동지방이라 부른다. 대관령의 동쪽이라는 뜻이다. 그 대관령을 넘어 만나는 고장이 강릉이니, 강릉은 관동지방의 관문이자 대표적인 고장이라 할 만하다. 삼국시대 고구려의 영토였을 때 '하슬라'라는 지명으로 불렸는데, 이때부터 신라와 이 지역을 놓고 각축전을 벌일 정도로 동해안에서는 중요한 중심지이자 전략적 요충지이기도 했다.

하지만, 지리적으로는 큰 산맥이 가로놓여 있다 보니 강릉은 어느 시대나 중앙과는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며 나름의 독자적인 문화를 발전시켜 왔다. 그래서 강릉은 토착성이 강하고, 강릉 사람들은 자기 고장에 대한 자부심과 자존심이 강하다.

강원도를 대표하며 서로 은근히 경쟁의식도 있는 3대 도시인 춘천, 원주, 강릉 중에서, 춘천과 원주는 이미 수도권에 거의 편입된 듯한 인상이 강하다. 그런데 강릉은 거리로 보나 지리적 위치로 보나 인구 구성으로 보나 아직도 강한 독자성을 갖고 있다.

독립지사들과 함께하고 있는 소녀상

소녀상이 있는 공원 안에는 강릉 지역에서 3.1운동을 주도하거나 참여한 주요 인물들의 흉상이 세워져 있다
▲ 강릉 3.1운동 기념공원 소녀상이 있는 공원 안에는 강릉 지역에서 3.1운동을 주도하거나 참여한 주요 인물들의 흉상이 세워져 있다
ⓒ 홍윤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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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강릉을 대표하는 상징이라 할 곳이 경포호이고, 이 경포호 입구에 있는 3.1 운동 기념공원에 평화의 소녀상이 자리하고 있다. 공원에는 3.1 운동에 참여한 대표적인 강릉 지역의 인물들 흉상을 만들어 3.1 운동의 정신을 기념하고 있다.

사람들이 많이 찾는 관광지 입구이자 교통과 접근성이 편리한 대중적 장소라는 점, 그러면서도 상징적 의미를 가진 장소라는 점에서 소녀상이 들어앉을 위치로는 매우 적절해 보인다. 게다가 이곳은 경포 생태습지공원으로 들어가는 입구이기도 하며, 요즘 이름을 알리고 있는 가시연습지로 들어가는 통로이기도 하다. 날 더운 여름에는 생태습지를 볼 겸해서 찾아와도 좋을 곳이다.  

강릉 평화의 소녀상은 2015년 8월 5일, 광복 70주년을 맞아 강릉지역 보훈 단체에서 최명희 강릉시장에게 건의해 세워졌다. 강원도에서는 가장 먼저 세워진 소녀상이다.

이 소녀상은 위치가 참 좋다.

소녀상 등 뒤에서 소녀의 시선으로 바라보면 멀리 경포호 전체 모습이 한눈에 들어오며, 그 너머의 동해안 바다도 보일듯 말듯 푸른 하늘과 함께 눈을 시리게 한다. 정면에는 태극기가 휘날린다. 오른쪽으로는 3.1운동 기념탑이 호위하듯 서 있다. 3.1 운동에 앞장선 인물들의 흉상과 함께 하니 외롭지도 않겠다.

강릉 평화의 소녀상은 경포호와 동해안을 바라보고 있다. 오른쪽에는 3.1 운동 기념탑이 서 있다.
▲ 소녀상 뒤에서 바라본 경포호 강릉 평화의 소녀상은 경포호와 동해안을 바라보고 있다. 오른쪽에는 3.1 운동 기념탑이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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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상 옆 바닥에 누워 소녀상 건립을 기념한 평화비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

"우리는 일본 제국주의 침략전쟁에 강제 동원되어 피맺힌 고통을 겪은 소녀들의 아픈 역사를 기억합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 여성들의 명예를 회복하고, 다시는 이 땅에 전쟁과 폭력에 의한 반인도적 범죄행위가 되풀이되지 않기를 바라면서, 평화와 인권이 존중되는 세상을 꿈꾸는 강릉 시민의 뜻을 모아 이 비를 세웁니다."

평화의 소녀상은 다른 지역의 일반적인 소녀상과 같은 모습으로 앉아 있다. 1930, 1940년대 평범한 소녀들의 외모를 가진 단발머리 형상으로 두 손을 꼭 쥔 채 의자 위에 앉아 있다.

부탁 하나 드립니다

8월 한여름에는 백일홍이 소녀상을 병풍처럼 둘러싸 아름다운 풍경을 이룬다.
▲ 8월의 소녀상 8월 한여름에는 백일홍이 소녀상을 병풍처럼 둘러싸 아름다운 풍경을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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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상 오른편에는 이 소녀상에 담긴 상징들이 간략하게 설명돼 있다.

내용을 보면 "어깨 위의 새는 현재의 우리를 이어주는 매개체, 발꿈치가 들린 맨발은 위안부의 상처와 사회적 편견으로 온전히 이 땅에 발 딛지 못한 삶, 빈 의자는 먼저 떠난 할머님들을 추모하고 평화를 향한 참여, 할머니의 그림자는 소녀가 할머니가 된 시간의 그림자, 잊히지 않는 역사의 증거, 나비는 돌아가신 할머니들의 영혼이자 진정한 해방을 향한 희망"을 상징한다고 쓰여 있다.

2017년 9월 30일에는 강릉 지역의 여성 단체와 뜻 있는 청년들이 모여 평화의 소녀상 지킴이 '평화 등대'를 발족시켜 활동 중이다. 평화의 소녀상이 정작 강릉 시민들에게는 멀리 있는 데다 소녀상 건립이 시민들 참여로 이뤄진 것이 아니다 보니 잘 모르는 시민들이 많아 이들에게 소녀상을 알린다는 목표도 갖고 있다.

이들의 활동이 오래도록 활발하게 진행돼 시민들이 수시로 찾아 관심을 갖고 아끼는 명소가 되기를 바란다.

거울같이 잔잔하고 맑은 경포호에 해가 지고 있는 풍경. 경포호에서는 일출과 일몰이 모두 가능하다.
▲ 경포호 일몰 거울같이 잔잔하고 맑은 경포호에 해가 지고 있는 풍경. 경포호에서는 일출과 일몰이 모두 가능하다.
ⓒ 홍윤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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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경포호와 경포해수욕장, 경포대, 오죽헌, 선교장, 안목 커피거리 등 이 일대 명소들을 찾아오는 사람들은 매년 수십만 명을 헤아리고 생태습지와 가시연습지를 보러오는 여행객들도 많아지고 있다. 하지만, 이 평화의 소녀상에 멈춰 주목하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다. 사전에 정보가 없어 모르고 지나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리라.

마침 평창에서 동계올림픽이 진행 중이다. 그래서 부탁드린다.

"동계올림픽 보러 가신다면 이 평화의 소녀상 한번 들러주십시오." 

관동8경 중 하나인 경포대의 겨울 일출. 평화의 소녀상은 이곳 경포대에서 걸어서 3~4분 거리에 있다.
▲ 경포대 일출 관동8경 중 하나인 경포대의 겨울 일출. 평화의 소녀상은 이곳 경포대에서 걸어서 3~4분 거리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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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사 정보]

강릉시내에서 경포대 방향으로 이동하면 경포호 들어가는 입구 오른쪽에 3.1운동 기념공원이 있다. 이 안에 소녀상이 있으며, 30대 이상 차를 세울 수 있는 주차장이 있다.

강릉 시내 강릉역, 강릉고속버스터미널 등에서 202-1번, 312번 시내버스(약 20~30분 간격 운행)를 이용, 경포대에서 하차한 후 해수욕장 반대 방향으로 250m 걸어가면 3.1 운동 기념공원에 닿는다.

주변에 가볼 만한 여행지가 많다. 경포호를 내려다보는 관동8경의 하나인 경포대가 가까이 있으며, 동해안 바다를 대표하는 경포해수욕장, 자녀와 함께 가볼 만한 참소리축음기 에디슨과학박물관, 강릉 사대부집을 대표하는 선교장 등이 걸어서도 갈 만한 위치에 있다. 여름에는 생태습지의 연꽃들을 보러 가도 좋다. 이곳들을 여행하며 평화의 소녀상도 잠깐 시간 내서 들러보자. 아침 일출 장소로도 괜찮은 소녀상이다. 

경포호 반대편의 초당두부마을에서 전통의 순두부백반이나 짬뽕순두부, 육개장순두부, 얼큰째복순두부 등 다양한 종류의 순두부 음식을 먹어보는 것도 좋다.

7~8월 여름에 경포호에 가면 생태습지의 가시연꽃을 볼 수 있다.
▲ 경포호 생태습지의 멸종 위기종 가시연꽃 7~8월 여름에 경포호에 가면 생태습지의 가시연꽃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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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강릉 평화의 소녀상 , #3.1운동 기념공원 , #경포호, #평화등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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