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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젓가락질 잘해야만 밥을 먹나요
잘못해도 서툴러도 밥 잘 먹어요
······
옆집 아저씨와 밥을 먹었지
그 아저씬 내 젓가락질 보고 뭐라 그래
하지만 난 이게 좋아 편해"

맞다. 젓가락질이 이상해도, 하다 못해 인도인들처럼 맨 손으로 먹어도 나만 불만 없이 맛있으면 그만이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난 그렇지 못했다.

오래 전 다니던 직장 회식에서 나만 빼고 다들 일자형의 표준 젓가락질을 하는 걸 보고 자격지심에 내심 부끄러웠던 적이 있다. 그때 한 번 고쳐 보려고 했다가 잘 안 돼서 쉽게 포기한 이후 다시 바로잡아 볼 엄두를 내지 못한 채 살아왔다.

그러다 몇 달 전부터 무슨 심경의 변화로 더 늦기 전에 '별 거 아니지만' 계속 신경 쓰이고 불만족스러운 이 오랜 습관을 고쳐보기로 했다. 유튜브에서 적당한 젓가락질 교습 동영상을 택해 이제 걸음마를 배우는 아이처럼 하나하나 따라해 보았다.


당연히 처음에는 잘 되지 않았다. 아니 잘 되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불가능해 보였다. 동작 자체를 따라하기는 쉬운데 실전에서는 전혀 먹히지 않았다. 그래도 계속 하다 보면 되겠지라는 희망으로 집에서 알약을 하나하나 집어가며 연습했다.

젓가락질 교정을 시작할 무렵, 타인들의 젓가락질이 궁금해진 나는 직장 동료들에게 젓가락질을 어떻게 하는지 물어 보았다. 그런데 놀랍게도 약 90%가 잘못된 방식을 쓰고 있었고 더우기 그 중 일부는 매우 '창의적'이고 '개성 있는' 손놀림을 구사하고 있었다.

그중 발랄한 K양은 자신의 젓가락질이 너무 이상하고 불편해서 차라리 그냥 포크를 쓴다고 당당하게 말했다. 그럼에도 사십이 훌쩍 넘어 초등학생처럼 젓가락질을 새로 배우고 있는 나에게 뭐하러 굳이 그러느냐는 묻는다. 그들에게 난 이렇게 대답한다.

"겁나 폼 나잖아~."

그렇다. 내가 젓가락질을 바로 잡고 싶은 첫째 이유는 바로 그거다. 어설퍼 보이고 불편하기까지 한 옛 방식을 바꿔 좀 더 폼나게 먹고 싶은 게 나의 큰 로망이었다. 하지만 한 달 가까이를 연습해도 새로운 방식은 좀체로 나의 뇌에 각인되지 않았고, 원체가 급하고 욱하는 편인 나는 급기야 혼자 식사 중에 젓가락을 내던지며 분노의 포효를 내지르기 일쑤였다.

특히 몹시 배가 고파 끓인 라면 면발이 벌어진 젓가락 사이로 미꾸라지처럼 계속 빠져나가는 꼴을 보다못해 급한 마음에 다시 예전 방식으로 회귀한 뒤 큰 좌절감을 맛보기도 했다. 영화 <블랙 레인>에서 도쿄에 간 형사 닉(마이클 더글러스 분)이 일본인 형사와 함께 처음으로 우동을 먹다가 면발이 나무 젓가락 사이로 우수수 떨어져 체면을 구기던 장면의 주인공이 된 기분이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성인용 교정 젓가락이란 걸 구입해볼까 했지만 사용 후기들을 보니 그 효과도 의심스럽고 알량한 자존심이 허락칠 않아 그냥 하던대로 꾸준히 연습해 나갔다. 어느덧 천천히 결실이 보이기 시작했다.

교정을 시작한 이후로 드라마나 영화를 볼 때 식사 장면에서 출연자들의 젓가락질을 관찰하는 버릇이 생겼다.
 교정을 시작한 이후로 드라마나 영화를 볼 때 식사 장면에서 출연자들의 젓가락질을 관찰하는 버릇이 생겼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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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달 전 간만에 언니, 오빠네 식구들과 함께 가족 식사모임이 있었다. 아직은 불안정하지만 조금씩 안정을 찾아가고 있는 새로운 젓가락질로 식사를 하느라 고군분투하는 와중에 처음으로 식구들의 젓가락질을 유심히 관찰했다가 작은 충격을 받았다. 40, 50대인 그들조차 젓가락질을 제대로 하는 이가 아무도 없었다. 특히나 큰 언니의 젓가락질은 위의 K양과 쌍벽을 이룰 만큼 개성적이었다.

대체 작금의 한국인들의 젓가락질은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 어릴 땐 나만 젓가락질을 못하는 것처럼 보였는데 오히려 지금은 제대로 하는 사람을 보기가 힘들다. 교정을 시작한 이후로 드라마나 영화를 볼 때 식사 장면에서 출연자들의 젓가락질을 관찰하는 버릇이 생겼는데 그들 역시 제대로 하는 경우가 드물다.

인터넷엔 가끔 기이한 젓가락질을 하는 아이들 스타가 이슈가 되기도 하는데, 몇 달 전 모 드라마에서 열연한 배우 최민수씨가 가족들과 식사하는 장면에서 유일하게 혼자 제대로 하는 걸 보고 역시 명배우라며 감탄했었다.

교정을 시작한 지 6개월 쯤 된 지금 나의 젓가락질은 이제 90% 정도 안정세다. 워낙 몸치라 그런지 이런 것 하나도 평균에 비해 느린가보다. 하지만 나의 '폼 나는' 젓가락질이 스스로 만족스럽다. 젓가락을 들고 일부러 폼나게 거울에 비춰보며 회심의 미소를 짓기도 한다.

소위 '밥상 예절'이란 걸 지키자고 하면서도 정작 아이들에게 젓가락질 교육을 시키지 못하는 것은, 요즘은 어른들 또한 제대로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나도 어린 시절 누구에게도 그걸 제대로 배운 적도, 배워야 한다는 얘기를 들은 적도 없다.

이제는 동영상을 통해 무엇이든 혼자 배울 수 있는 시대다. 나처럼 자신의 젓가락질이 불편하고 싫어도 바꿀 엄두를 내지 못했던 분들은 이제라도 용기를 내 실행해 옮기기 바란다.

덧붙이는 글 | 개인 블로그 http://arinalife.tistory.com/에 추후 게재 예정입니다.



태그:#젓가락질, #교정, #폼나는 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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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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