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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곳에서의 아침

생장피드포르 알베르게 창문에서 바라본 거리
 생장피드포르 알베르게 창문에서 바라본 거리
ⓒ 차노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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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를 간지럽게 하는 저 소리는? 몸을 뒤척이다가 팔이 침대 난간에 부딪쳤다. 귀중품을 잃어버린 것을 뒤늦게 안 사람처럼 눈을 떴다. 창문과 떨어진 안쪽 2층 침대 아래를 배정받았는데도 열어놓은 창밖으로 푸르스름한 여명이 보였다. 여명 속에 녹아들었을까. 알람 역할을 했던 새는 지저귐을 멈추었다. 대신 바로 옆 2층 침대에서 낮게 코고는 소리가 들렸다.

생장피드포르(Saint-Jean-Pied-de-Port, 이하 '생장'이라 함). 어제 밤늦게 이곳에 도착했고 간신히 알베르게(숙소)를 구했다. 나 외의 세 사람은 지금 곤하게 자고 있다. 4시 30분. 삼십분 더 누워있다 일어날까 아니면 지금 일어날까 망설이다가 조용히 일어났다.

내 기척이 제법 컸을까. 맞은편 일층 침대에서 자던 남자도 눈을 뜨는 듯했다. 내가 나오자 그도 뒤따라 나왔다. 어제 통성명하기는 했다. 피곤하기도 했지만 낯선 곳에서 처음 본 사람들과 익숙하지 않은 언어로 대화를 하느라 신경이 많이 쓰였다.

내 뒤를 따라오는 남자 이름도 생각나지 않았다. 그가 영어를 못해서였는지, 하룻밤 잘 침대를 구했다는 안도감이 더 컸는지 지금으로서는 판단할 수가 없었다. 그가 베란다에서 연거푸 담배를 피던 모습만 선명했다.

이곳에 도착하기까지 나는 긴장을 풀 수 없었다. 전날 파리에서 바욘으로 향하는 2시 17분 떼제베(TGV ; 고속열차)를 탔다. 도착 예정 시간은 7시 35분. 바욘에서 9시 10분 완행열차를 타고 또 생장으로 가야했다. 생장은 스페인 산티아고로 가는 순례길 첫 시작점이다(출발점은 여러 군데가 있으나 가장 대중적이다). 그곳 순례자 사무실에서 순례자 여권을 발급 받아야 순례자에게만 혜택을 주는 알베르게를 이용할 수 있다.

운 좋게 1등석을 예약해서 떼제베 타는 것이 순조로울 줄 알았다. 생각보다 좌석 찾기가 힘들었다. 우리나라 기차는 숫자가 크게 적혀 있는데 이곳은 힘들게 찾아야 한다(나만 그럴 수도). 기차가 상당히 길다(걸어오는 데만도 십분 넘게 걸렸다). 짧은 영어로 세 번 물어 기껏 찾아서 앉았더니 뒤늦게 온 승객이 자기 자리라고 한다. 하지만 그가 내 자리에 대신 앉아 주는 배려를 발휘한다.

창밖으로는 프랑스 시골 풍경이 빠르게 지나갔다. 넓고 푸른 들판. 군데군데 그림 같은 집들. 들판 너머 숲. 높고 맑은 하늘. 뭉게구름. 마냥 풍경에 취할 수만은 없었다. 달릴수록 무선 데이터 강도는 약해졌다가 끊어졌다. 정확한 위치를 확인할 수 없었다.

도착할 시간이 가까워오자, 정차하는 역마다 신경이 곤두서서 내가 내릴 곳인가를 살펴야했다. 도착하기 30분 전에 한 역에서 오래 정차했다. 그곳이 바욘인줄 알고 얼마나 조마조마했던가. 좀 일찍 도착할 수도 있지 않는가.

뒤에 앉은 승객에게 승차권을 보여주면서 물었다. 여기가 바욘이냐고. 아니라고 35분 정도에 도착한다고 했다. 하지만 40분이 되어서야 도착했다. 기차 차창 밖으로 먹구름이 따라왔는데 조그마한 역사는 쾌청했다. 승차권을 끊고 여유 있게 기다리면 되었다.

곧바로 문제가 생겼다. 직원들은 다 퇴근했고 사무실 불은 꺼져 있었다. 현지인들에게 익숙한 자동발매기 두 대만 달랑 조그마한 역사를 지키고 있었다. 몇 사람이 발매기 앞에 서 있었다.

프랑스어를 못하는 내게 자동발매기는 승차권 발권용이 아니었다. 데이터가 끊겨 번역도 할 수 없었다. 혼자, 아무도 없는 시골에 내다버려진 느낌이었다.

앞서 사용하는 사람들을 뒤에서 훔쳐봤지만 혹, 이상한 사람으로 보일까 싶어 조금 보다가 돌아섰다. 용기 내어 한 사람한테 부탁하니, 죄송하다고 잘 알아듣지 못하겠단다. 다행히 9시 10분 기차라 서두르지 않아도 되었다. 차분히 역사 주위를 돌면서 사람 좋고 영어를 할 수 있는 사람을 물색하기로 했다. 

역사 밖으로 나갔을 때 목걸이 명함을 목에 걸고 있는 오십대 초반 남자를 봤다. 유니폼을 입고 있는 것을 보아 직원인 듯했다. 다가가서 생장을 가야하는데 승차권을 끊을 수 없다고 도와줄 수 있냐고 물으니, 그 양반 프랑스말만 한다.

비장의 무기를 꺼냈다. 생장을 영어로 써주고 손가락으로 고고, 라는 표시를 했다. 그제야 알아듣고 전광판을 가리킨다. 아마도 시간을 묻는다고 생각한 듯하다. 나는 다시, 제일 쉬운 언어인 몸짓으로 자동발매기를 가리키며 티켓티켓, 이라고 언급했다.

아, 친절하게 발권기 앞으로 간다. 나는 마음 놓고 직원이 누르는 순서를 본다. 여러 번 화면이 바뀌는 것을 보니 간단하지는 않다. 그는 사적인 계산에서는 직접 카드 넣어라, 하고 비밀번호도 누르라고 한다. 한 번 더 고르는 것이 있었는데 아마도 class인 듯. 발권된 승차권을 보니 class2다. 그의 도움으로 어렵게 해냈다!

바욘에서의 시간

시계탑이 있는 바욘역
 시계탑이 있는 바욘역
ⓒ 차노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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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바닥에서 비둘기가 여유롭게 모이를 주워 먹는다. 비둘기의 점 찍는 듯한 발걸음을 따라 마주보고 앉은 대기 승객을 본다. 옆구리에 커다란 배낭을 놓고 역사를 둘러보는 20대 남자이다. 깊은 쌍꺼풀에 회갈색 눈동자가 호기심으로 가득하다. 탄탄한 육체에 긴 팔다리. 반바지를 입고 다리를 벌리고 있다. 방심한 듯 보이면서도 연신 긴장감이 느껴진다.

그도 이곳이 처음이고 혼자다(그와는 첫 출발을 같이 한 리투아니아 출신 '유리'다). 이곳에 오는 동안, 혹시나 기차를 잘못 탈까봐, 나처럼 불안해했을까. 그 옆에 있는 오십대 여자는 아이패드를 꺼내서 뭔가를 열심히 검색하고 있다. 그녀 옆에 붉은 색 낡은 배낭이 있다. 역사 밖과 반대편인 탑승구에는 온통 눈 주위에 검정칠을 한 무리가 서성거린다. 아무리 둘러봐도 동양인은 나뿐이다. 

여유를 가지고 주변을 탐색하지만 긴장 또한 늦출 수 없다. 두 시간 정도 시간이 있다. 저녁도 이곳에서 해결해야 할지도 모른다. 시계탑이 있는 작고 오래된 역사 밖으로 나간다. 4차선 도로가 있다. 도로 바깥으로 5층 건물이 늘어서 있다. 도로를 건너 오른쪽 편 야외 카페로 간다. 정리정돈이 잘된 곳이 파리라면 시골로 내려갈수록 물건을 여기저기 서랍에서 꺼내놓은 것처럼 어수선하고 낡아 보인다. 하지만 정겹다. 남쪽이어선지 야자수 나무도 보인다.

색 바란 건물 1층에 자리한 식당 야외는 이미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밝지 않은 실내에도 사람들이 많다. 이 많은 술렁거림 속에 혼자 테이블을 차지하고 음식을 주문할 용기가 없다. 건물을 오른쪽에 끼고 역사와 반대 방향으로 걷는다.

음침한 계단에 누군가가 앉아 있다. 호기심에 들여다볼까 하다가 오래전에 포르투갈에서 대면했던, 횡설수설 마약 판매원이 아닐까, 라는 생각에 그냥 간다. 바다가 보인다. 들어가지 못하도록 철조망이 쳐 있다. 예상치 못한 풍경이다. 나는 쇠창살 너머로 또 다른 동네를 잇고 있는 다리를 보다, 그 아래 강물로 시선을 던진다. 조용히 되뇐다.

왜 너는 이곳에 혼자 있니?  

바욘 역사 밖 사거리
 바욘 역사 밖 사거리
ⓒ 차노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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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욘에 있는 다리
 바욘에 있는 다리
ⓒ 차노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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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걷기 역사는 그리 길지 않다. 작년(2016) 봄부터 걷기 시작했다. 그해 겨울 제주 올레길을 완주하고 다음해 상반기, 강의가 없는 날에 지리산 둘레길을 짬짬이 걸어서 완주증을 받았다. 사흘 전, 열두 시간 비행기를 타고 파리로 훌쩍 날아 왔다.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800km 프랑스 순례길을 걷기 위해서다. 가장 대중적이고 인기가 많은 프랑스길 출발점인 생장에 가기 위해 지금 나는 이렇게 홀로 바욘에 서 있다.

모험이라면 모험일 수 있다. 하지만 더 늦기 전에 맘껏 걷고 싶은 곳을 걷고 싶었다. 망설여서 후회하느니, 결정했다면 바로 떠나야 한다고 내 속의 내가 속삭였다. 가장 필요한 것은 용기였다. 다행히 내게 남아있는 용기가 있었다.  

생장 가는 기차는 8시 54분에 문을 열었다. 내가 도착했을 때부터 세 칸짜리 기차가 정차해 있었다. 대부분 승차하는 사람들은 배낭족이었다. 이미 배낭에 순례자의 상징인 가리비를 단 사람도 있다. 연령도 다양했다.

중간 칸 뒷좌석에 자리 잡은 나는 배낭을 벗어 왼쪽 발아래에 두었다. 34리터 배낭이 볼록하다. 무게도 제법 나간다. 많은 순례자들이 그랬듯이 나도 가는 도중에 짐을 덜어야할 지도 모른다. 순례길에 발을 들여놓지도 않았는데 배낭이 무겁게만 느껴진다. 숙소를 아직 정하지 않았다. 데이터가 터지지 않으니, 현장에 가서 해결해야 할 일이지만 점점 하늘이 어두워지자 슬금슬금 걱정이 된다. 

역사 의자에서 봤던 20대 청년은 나를 지나쳐 마지막 칸으로 간다. 마지막 칸은 서로 마주보는 좌석으로 구성되어 있어 일부러 피했다. 피로가 몰려오는 지금, 누군가와 대화하고 싶지는 않다. 출발 시간 5분 전에, 내 앞에 거구의 나이 들어보이는 남자가 앉는다(첫날 같이 출발하게 된 하와이 출신 '스펜서'이다). 배낭이 있는 것도 아니다. 대충 입구가 터진 가방에 짐을 넣고 왔다. 방석이 입구로 삐져나와 있다.

옷차림도 스포츠 웨어가 아니다. 낡은 붉은색 체크무늬 셔츠와 면 반바지이다. 대학노트를 꺼내서 뭔가를 열심히 적는다. 작가이거나 교수이거나 하지 않을까. 발가락이 보이는 슬리퍼를 신고 있다. 끊임없이 주위를 돌아보며 쓸 소재거리를 찾는 듯하다. 저 연세에 산티아고 길에 온 것만으로 대단해 보인다. 경거망동 하지 말고 침착하게 길 위에서 시간을 보내야겠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기차 직원이 와서 표를 수거한다. 아, 맞은편 붉은 체크 셔츠. 표 안 끊고 그냥 탔다. 직접 돈 내고 직원한테 산다. 아, 승차권 끊으려고 얼마나 마음 졸였던가. 

생장피드포르에서의 심호흡

생장피드포르 새벽 거리
 생장피드포르 새벽 거리
ⓒ 차노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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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날, 마음 졸였던 것들, 새벽 기운이 말끔하게 가져갔다. 생장은 아담한 마을이다. 가로등에 전선줄이 드러나고 전선줄이 빛을 이동시키는 듯 좁은 골목은 황금빛을 띠었다. 알베르게 앞에서 길게 호흡을 하며 으레 여행가면 그렇듯 동네 한 바퀴를 돌아볼 작정으로 발을 내딛었다.

뒤따라 나온 남자가 담배를 꺼내 피었다. 담배를 피울 거냐는 의미로 담배 한 개비를 꺼내 내게 건네려고 했다. 나는 고맙지만 사양한다는 말을 하고 가로등 불빛 사이로 들어갔다. 보슬비가 뺨에 내려앉았다.

나는 보드라운 보슬비를 맞으면서 골목길을 걸었다. 중세시대부터 형성된 좁은 골목. 골목 바닥은 판석이다. 조용하게 감싸는 불빛과 안개를 온 몸으로 느끼며 중앙광장 쪽으로 우회했다. 책에서 읽었던 생장에 관한 동네 묘사는 전부 환한 대낮 풍경이었다. 열시가 다 되어 도착했을 때도 지금 이 시간에도 상상했던 것과는 달랐다. 저 어디서 들리는 기타 소리는 또 어떠한가. 공연이 아직도 끝나지 않았을까. 아님 젊은이들이 아직까지 술자리를 마치지 못한 것일까.

일상을 떠나 온 곳. 어떤 상황이 벌어지더라도 나는 즐겁게 받아들이기로 한다. 양팔을 벌리고 눈을 감고 숨을 천천히 들이켰다가 내뱉았다. 오늘 넘게 될 피레네산맥을 향해 눈을 떴다. 어둠에 싸인 피레네산맥은 보이지 않고 엇박자 기타 소리만 안개 속을 배회했다.

덧붙이는 글 | '산티아고 순례길 프랑스길'은 2017년 6월13일에 걷기 시작해서 7월12일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 도착했습니다. 30일만의 완주였습니다. 그 다음 날, '세상의 끝'이라는 피니스테레와 묵시아까지(100km)까지 내처 걸었습니다. 이렇게해서 34일 동안 900km 여정을 마쳤습니다. 몇 십년 인생이라는 길 위에서, 34일의 여정은 짧을 수 있으나 걸으면서 느꼈던 것들은 제게 인생의 축소판처럼 다가왔습니다. 움츠린 어깨를 펴게 하고 긍정적인 미래를 내다보게 했습니다. 이곳에서 34일 간의 힘들었지만 행복했던 시간들을 도란도란 풀어놓으면서 함께 공유하려고 합니다.



태그:#산티아고, #순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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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이자 문학박사. 저서로는 소설집 《기차가 달린다》와 《투마이 투마이》, 장편소설 《죽음의 섬》과 《스노글로브, 당신이 사는 세상》, 여행에세이로는 《자유로운 영혼을 위한 시간들》, 《물공포증인데 스쿠버다이빙》 등이 있다. 현재에는 광주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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