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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개정을 위한 2차 협상 둘째 날 일정이 끝난 1일 오후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 협상장을 나서며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개정을 위한 2차 협상 둘째 날 일정이 끝난 1일 오후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 협상장을 나서며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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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종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은 지난해 12월 18일 국회 산업위 <한미 FTA 개정협상 추진계획> 보고에서 'ISD(투자자-국가 분쟁해결절차) 문제를 제기할 생각이냐'는 더불어민주당 홍익표 의원의 질의에 "손댈 생각을 하고 있다"고 답했다.

2차 개정 협상 이후에도 ISD 개정에 대한 정부의 의지는 단호하다. 김현종 본부장은 "ISD, 무역규제와 관련해서도 강하게 의견을 제시했다"고 했다.

투자자-국가 분쟁해결절차(ISDS : Investor-State Dispute Settlement)는 해외투자자가 상대국의 법령·정책 등에 의해 피해를 입었을 경우, 세계은행 산하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ICSID)에 제소하여 중재를 통해 손해배상을 받도록 하는 제도다.

한미FTA 국회 비준 당시 '사법주권을 침해하고 공공정책의 자율성을 해칠 수 있다'는 이유로 대표적 독소조항으로 꼽혔지만, 정부는 '잘 모르고 하는 말씀'이라면서 대통령의 약속이나 국회의 재협상 요구마저 헌신짝처럼 묵살했다.

MB, "재협상하겠다" 약속해 놓고 2년 뒤엔 "좋은 제도"?

한미 FTA 국회비준의 처리 협조를 요청하기 위해 2011년 11월 15일 오후 국회를 방문한 당시 이명박 대통령이 손학규 민주당 대표와 인사하고 있다.
 한미 FTA 국회비준의 처리 협조를 요청하기 위해 2011년 11월 15일 오후 국회를 방문한 당시 이명박 대통령이 손학규 민주당 대표와 인사하고 있다.
ⓒ 국회사무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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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FTA 발효 후 3개월 내에 미국에 ISD를 재협상하겠다"

2011년 11월 15일 이명박 당시 대통령은 국회를 찾아와 한미FTA 비준동의안 처리를 부탁하며 이같이 말했다. 같은 해 12월 30일 국회 역시 여·야 합의로 ISD의 폐기, 유보 또는 수정을 포함한 '한·미 FTA 재협상 촉구결의안'을 채택했다.

하지만 한미FTA가 발효한 지 5년이 넘도록 재협상은 이뤄지지 못했다. 이유는 정부가 한미FTA ISD 조항은 '독소조항'이 아니라 '좋은 제도'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정부의 판단기간은 대단히 길었다. '발효 후 90일 이내 재협상'을 위한 사전절차를 무려 2년 넘도록 계속했다. 2014년 4월 23일 '한미 FTA ISD 용역결과 논의 및 향후 대응방향 모색'을 위한 국회 산업위 공청회 자료를 보자.

"한미 FTA의 ISD 제도는 투자자 보호 및 국가의 규제권한 간에 균형을 이룬 발전된 형태로서 그간 ISD와 관련하여 제기된 문제점을 보완하는 한편, 우리의 법·제도와 조화를 이룬 여러 안전장치를 마련한 것으로 평가한다." 당시 산업부가 보고한 '종합의견' 중 일부다.

때론 '독소조항'이라는 비판을 무지의 소산이라고 비꼬기도 했다. 이재형 교수(고려대)가 수행한 산업부의 연구용역 <최근 ISD 중재판정 사례 분석을 통한 정부 정책적 시사점 도출>에서는 "한미FTA의 ISD에 대하여 지속적으로 비판이 제기되는 이유는 ISD 제도, 중재판정의 최종결과, 조약 문언의 차이, 투자유치국 정부 조치의 부당성, 국제투자법 및 국제법에 대하여 충분하게 이해를 하지 못한 것에 기인하는 것으로 보인다(244면)"고도 했다.

변신은 무죄? 정부와 학자의 변신

이랬던 정부와 소위 '전문가'들의 입장이 변했다. 갑자기 ISD조항은 '문제가 있다'며 개정협상 주제 중 하나로 주창하고 나선다.

김현종 본부장은 2차 협상 이후 기자들과 만나 "ISD는 남소 방지 차원에서 한국 정부가 정책의 권한을 계속 유지하면서 이행할 수 있도록 의견을 제시했다"고 말했다.

산업부의 'ISD 민관 전문가 T/F'에 참여했던 최원목 교수(이화여대) 역시 "ISD는 다국적 투자회사들에게 다소 유리한 투자보장 환경을 조성하고 투자유치국 정부의 정당한 규제기능을 제한할 수 있는 위험성이 있는 제도"라면서, "투자법원을 설립하지는 못하더라도 ISD 제도남용을 막을 수 있는 장치들을 도입하도록 협상해 나가야 한다"고 주장했다(관세청 발간 <FTA REPORT- 미국 신보호주의 속에서의 한-미FTA 재협상의 방향, 2017년 6월)

5년 전 ISD 조항의 위험성을 지적했던 시민사회 전문가들의 주장과 판박이다.

"ISD 조항이 있기 때문에 투자자가 결심만 하면 한국 정부는 언제든지 국제중재에 회부됩니다. 선택권이 한국 정부에서 투자자로 넘어간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국제중재'는 투자자가 총집에서 언제든지 뽑아 쓸 수 있는 권총이 되었습니다." (송기호, <한미FTA 재협상 핸드북>, 44면)

미국은 폐기한다는데 우리 협상카드라고?

정부의 변신도, 소위 '관변'학자의 변화도 모두 그렇다치자. 반면 동시다발적 FTA 체결과정에서 정부의 대변자 역할을 해 온 전경련은 '잘못된 전략'이라며 펄쩍 뛴다.

미국은 이미 ISD에 대한 입장을 바꿨기 때문이다. 미국은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협상에서 ISD 조항 삭제를 주장했다. "미국은 ISD 소송으로 제3자에게 판단을 맡기기보다 미국 국내법을 적용하는 것이 미국에 유리하다고 판단"하고 있기 때문이다(전경련, <한미FTA 개정협상과 한국의 대응전략>, 2018년 1월 29일)

이에 따라 경제단체들의 모임인 전경련은 "미국이 ISD 폐지를 주장하는 상황에서 우리 정부가 ISD를 협상의 지렛대로 활용하겠다는 것은 상황에 맞지 않는 판단"이라고 분석했다(같은 보고서 17면).

한미FTA 개정협상, 전략 다시 세워야

그렇다면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은 왜 ISD 개정을 앞세우고 있을까? 미국 시민사회 활동가들도 ISD 개정을 한국측 카드로 쓰는 건 이상하다고 말한다. 협상은 상대방이 받기 힘든 카드를 내밀어야 하는데, ISD 개정은 미국 의회나 사법부조차 '주권침해 가능성'에 대해 우려를 제기하고 있는 주제로서 미국이 받지 못할 카드가 아니기 때문이다. 더구나 미국은 '폐기' 카드를 가지고 있다.

이번 개정협상에서 '무역수지 불균형'을 주장하는 미국에 대해 관세분야나 농업분야를 대폭 양보해놓고, '미국법 개정사항인 ISD 개정을 이뤄냈다, 이익의 균형을 맞췄다'고 협상의 성과를 드러내기 위한 큰 그림일 수도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FTA 수혜품목 여부와 상관없이 '무역수지 불균형'이라며 한국을 압박하는 미국을 상대로 협상 이후의 '홍보방안'을 고민해서는 안 된다.

한미FTA 개정협상은 이제 시작단계다. 지금 ISD 개정 요구를 앞세우는 김현종 본부장의 전략은 패착이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전략을 다시 세워야 한다.

덧붙이는 글 | 필자는 '국회 FTA연구모임 대표'로 활동 중입니다.



태그:#김현종, #한미FTA, #ISD, #송기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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