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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8월 페이스북 페이지 '성판매 여성 안녕들 하십니까'가 페이스북 코리아에 의해 통보 없이 삭제되었고 1141명의 연서명을 받아 복구됐습니다. 그러나 이 사건이 알려지며 사건을 다룬 기사들에는 성판매 이슈에 대한 반감과 몰이해에 기반한 성판매자/성노동자에 대한 혐오 발언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이 기획을 통해 각 필자는 당시 달린 악플들을 유형별로 분류하여 하나씩 답변합니다. -기자말

 '미투 캠페인'은 사회 전 영역으로 퍼지고 있는 추세다.
 '미투 캠페인'은 사회 전 영역으로 퍼지고 있는 추세다.
ⓒ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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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일 '성판매 여성 안녕들 하십니까' 페이지도 #미투(#MeToo) 해시태그 캠페인에 동참했습니다. 이에 앞선 1월, 서지현 검사는 검찰 내 성폭력 사건을 고발했습니다. 서 검사의 '말하기'는 많은 이들에게 용기가 되었습니다. 물론 한국에는 '미투'가 없었다는 일각의 지적과는 달리, 지난해에도 #○○내_성폭력 해시태그 캠페인이 있었습니다. 당시에도 다양한 곳에서 각양각색으로 벌어진 성폭력 사례들이 주목받았습니다.

지금 다시 시작된 '미투'의 동참자들은 그때 용기를 낸 사람들과 연결되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들의 '말하기'가 차곡차곡 쌓여온 결과 우리 사회는 다시 '성폭력'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많은 이들이 성폭력 피해자의 편에 서서 그들을 지지하고 연대하기로 결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성판매 여성 안녕들 하십니까' 페이지의 '미투' 참여글에는 유독 이상한 반응이 있었습니다. 성매매 업소 현장에서 구매자가 합의되지 않은 행위를 한 경우, 그러니까 글 작성자의 의사에 반해 이뤄진 일에 대해 설명한 글이었습니다. 이어 작성자는 "사실은 그렇게 힘들진 않고요", "이런 일이 하루이틀인가! 보통은 이런 일을 겪어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며 바로 다음 방으로 들어갔다"라고 덧붙였습니다. 하지만 분명히 "(고통을 적극적으로 전시하지 않는) 나도 성폭력 피해자"라고 적었습니다.

이는 분명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한 성폭력 사건입니다. 상대의 동의와 거부를 나타내는 의사 표현을 그대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은 모든 인간의 의무이지, 호의도 친절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성폭력 사건의 피해자가 평소에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인지, 어떤 사람인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누군가의 고통이 피해 유무를 결정하는 절대적인 척도가 될 수 없습니다. 이는 평소 저를 포함한 많은 여성주의자들이 성폭력 이슈를 논할 때에 주장하는 바입니다.

하지만 이 글에는 성판매 여성에 대한 전형적인 혐오 발언이 담긴 댓글이 달렸습니다. "그게 무슨 성폭력이냐", "진짜 피해자에게 사과해라", "미투 본질 흐리지 마라"는 반응들까지 따라 붙기 시작했습니다. 글을 게시한 지 이삼 일만에 약간의 응원 댓글과 많은 악플이 이어졌습니다. 댓글만 2000개가 넘어갔습니다.

기시감이 들었습니다. 이런 반응은 일견 2013년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가 전국적으로 붙을 당시, '성판매 여성 안녕들 하십니까' 페이지 관리자 이소희가 적은 대자보에 대한 반응과 비슷하기도 했기 때문입니다. 당시에도 "저는 성판매 여성입니다"로 시작해서 "나도 말할 수 있는 사람이다"로 끝나던 대자보에 "이건 안녕들하십니까 운동을 폄훼하려는 세력의 음모다", "진보 욕 먹이지 마라" 등의 반응이 있었습니다.

거부당하고 삭제되는 성판매 여성들의 목소리

 성판매 여성, 안녕들하십니까 페이스북 페이지.
 성판매 여성, 안녕들하십니까 페이스북 페이지.
ⓒ 페이스북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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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나도 말할 수 있는 사람이다>를 함께 펴냈고, 이 기고를 이어 갈 '성판매여성안녕들하십니까 기록팀'은 작년 여름 페이지가 강제로 삭제됐던 사건을 통해 모였습니다. <나도 말할 수 있는 사람이다>의 주저자인 이소희는 페이지를 통해 자신의 '말하기'를 꾸준히 시도해 왔습니다.

저는 그의 글들을 지켜보며 '글쓰기'의 역사에 대해 떠올려 보았습니다. 글쓰기는 오랫동안 '남성 지식인'의 영역이었습니다. 그러고 보면 멀지 않은 과거의 여성 작가들은 하고 싶은 말을 글로 써서 책으로 엮기 위해 익명을 쓰거나 남성의 이름을 빌리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버지니아 울프는 여성의 글쓰기를 정치적인 행위로 간주했고, '여성의 글쓰기'에 대한 글쓰기를 했습니다. 나혜석 역시 수십 년 전 "나는 그대들의 노리개를 거부하오"라며, 이 나라에서 사람 취급을 제대로 받지 못하던 여성이 '사람'임을 글쓰기를 통해 알렸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글쓰기는, 그 중에서도 출판물은 일부에게만 허락된 '영토'입니다. 사회적 지위가 높은 직업을 가진 사람들, 학위와 명성이 있는 주류의 사람들에게는 쉽게 이 '영토'가 주어집니다. 신문사와 잡지사의 칼럼 기고란부터 단행본과 전집의 자리까지 말입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그렇지 않습니다. 특히 사회적으로 쉽게 멸시 당하곤 하는 일을 하는 사람에게는 더욱 어려운 일입니다. 페이지에 자신의 목소리를 담은 글쓴이가 돈을 벌기 위해 주로 하는 일은 '성판매'입니다. 그 페이지의 글이 주로 다루고 있는 주제도 그가 일하면서 겪는 일과 이 산업에 대한 것이었고요.

재작년 여름에는 #나는_창녀다 해시태그가 유행했습니다. 당시 넷페미니스트들은 자신을 '창녀' 취급하는 사회를 향해서 힘껏 비판의 목소리를 냈습니다. 그들이 말하는 '창녀' 취급은 가령 동의 없이 각종 외모 평가를 당한 기억, 쉴 새 없이 다이어트와 화장하기, 불편한 옷 입고 하이힐 신기 등의 꾸밈 노동을 강요받던 기억, 그리고 주로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당한 기억에서부터 떠올린 것들이었습니다. 그들의 이야기는 모두 저마다의 가슴 아픈 사연이었고, 그 사연들은 인터넷 상에서 유의미할 정도로 관심을 모았습니다. 더 나아가 '여성에게 가해지는 폭력'에 대한 다수의 문제의식을 환기시켰습니다.

그러나 혐오는 공기와 같은 것입니다. 그 사이에서도 '창녀'에 대한 혐오는 공기처럼 떠다니고 있었습니다. '창녀' 취급은, 누가 봐도 좋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므로 "나를 '창녀'처럼 부당하게 대하지 말라"는 주장은 곧잘 "나는 '창녀'가 아니니까"라는 암묵적인 이유가 수반되는 방식으로 이야기되곤 했습니다. 때로는 저절로 그리 읽혀버리기도 했고요. 그건 자칫, 마치 '진짜 창녀'라면 당해도 되는 부당한 취급이 있다는 것으로 읽히기도 했습니다.

'창녀'와 '창녀 아닌 여성'을 나누는 것은 의도치 않아도 어떤 부정적인 효과를 불러일으킵니다. 악의 없는, 선한, 정의롭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머릿속에도 대부분 이 두 그룹은 공고한 벽에 의하여 나뉘어져 있기에, '성판매 여성'이 '안녕들 하십니까' 운동에 끼면 그것은 운동의 본질을 흐리는 것이고, '미투' 캠페인에 끼면 '진짜 피해자'에게 사과해야 하는 일이 되는 것입니다.

'창녀'에 대해 좀더 생각해 봅니다. '창녀'는 이 사회에서 매우 납작하게 소비되어버리고 마는 존재입니다. 보통 사람의 머릿속에서 '성판매 여성'의 이미지는 일상과 크게 괴리되어 있습니다. 으레 이렇게 화장하고 성형한 외모일 것이며, 옷은 이렇게 입을 것이고, 특정한 말투로 말하고, 전형적으로 행동할 것이라고 짐작해버립니다.

실상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들의 실제 감정과 생각이 어떤지는 별로 특별한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그들은 숨겨진 존재이므로, 딱히 인간 대 인간으로 만날 일이 없는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이는 이 사회가 그들이 어떤 평범한 일상을, 때로는 비일상을 보내고 있는지, 자신들이 받는 '창녀 취급'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어떤 삶을 살기 위해 그 일을 하고 있는지, 더 나은 세상에 대한 꿈은 어떤 식으로 꾸는지, 그런 것에 대해서는 좀처럼 관심을 갖지 않는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글을 쓰는 이소희는 그렇게 으레 관심 없어 하는 것들에 대해 '말하고' 싶었기에, 페이스북 페이지를 자신의 작은 '영토'로 삼았습니다. "힘껏 외치는 투도 아니고 싸우는 투도" 아니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겪은 일들과 그 일들이 있게 한 사회 구조에 대해서,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일기처럼 적어 내려가곤 했습니다. 그리고 그 일기 같은 글을 읽고는 '성판매 여성'이 납작한 존재가 아닌, 다면적인 존재임을, '말할 수 있는' 사람임을 자연스럽게 알게 된 사람들이 생겨났습니다. 그게 하나 둘 모이고 늘어나 어느덧 사천사백 여 명의 사람들이 그의 글에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계속 마이크를 들 것이다

 책 《나도 말할 수 있는 사람이다》의 마스코트인 마이크를 든 햄스터
 책 《나도 말할 수 있는 사람이다》의 마스코트인 마이크를 든 햄스터
ⓒ 홍혜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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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8월의 어느 여름 날, 이 페이지는 아무 통보 없이 삭제되어버렸습니다. 그가 차곡차곡 써 온 글들은 순식간에 사라질 위기에 처했습니다. 이 페이지를 지워버린 건 다름 아닌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의 제공자, '페이스북 코리아'였습니다. 페이스북 측은 이 페이지를 일방적으로 '음란물'로 규정했습니다.

이 사건은 누군가에게는 별 것 아닌 일일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좀 싸워보기로 결정했습니다. 이유는 충분했습니다. 지금까지 요란하지 않게 적어 내려간 한 '인간'의 경험과 감정과 생각에 대한 글들이 일방적으로 '음란물' 취급 받고 권력자로부터 공개적인 자리에서 끌어내려지는 것은, 이 사회에서 다수자들이 공공연히 소수자들에게서 '목소리를 빼앗는 일'의 연장선상에 있는 사건이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페이스북 코리아의 페이지 삭제를 규탄하는 성명을 낸 후, 1141명의 연서명을 받았습니다. 이 모든 일이 벌어진 것은 단 3일, 페이지는 또 아무런 통보 없이 복구되었습니다. 이것이 그 '찻잔 속의 태풍'의 전말입니다. 이 일은 이런저런 언론을 타며 수천 명에게 '인지'되기는 했습니다. 꽤 유의미한 수의 사람들에게 서명 동참을 이끌어 냈고요. 제법 고무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걸로 끝일 수는 없었습니다. 누구에게나 허락된 것 같은 인터넷의 공간조차도, '검열'의 칼끝은 누구를 향해 있는지, 그 칼자루는 누가 쥐고 있는지 잘 알 수 있게 된 사건이었으니까요.

또 페이지의 게시물이 '사회 통념'에 부합하지 않으면, 이 남성중심적 '혐오사회'의 입맛에 맞지 않으면 언제 '음란물'로 규정되어 삭제 당해버리고 말지 알 수 없는 일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한 발 더 나아가, 아무에게나 주어지지 않는, '책'이라는 특별한 '영토'에 지금껏 써온 페이지의 글들을 남겨 보자고 마음먹었습니다.

당시 이 사건이 언론에까지 알려지면서 더 넓은 범위의 사람들이 페이지의 존재를 알게 되었을 때, 어떤 반응들이 쏟아져나왔는지를 기억합니다. '성판매 여성'에 대한 흔한 혐오발언들은 개인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쏟아져 나왔습니다.

'혐오발언'에 '설득'으로 대응하는 것은 사실 별 소용이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 혐오발언들의 대부분은 개인의 특별한 지점을 향하고 있지도 않았습니다. 그저 '창녀'에 대한 일차적 혐오에서 비롯된 반응이었습니다. 하지만 반복되는 댓글의 양상들을 보면서, 이 때문에 논점이 흐려지고, 유의미한 비판 지점과 생각거리들이 지워지는 것이 안타까웠습니다.

"창년들이 말이 많아", "그래봤자 너흰 범죄자야", "납치당한 거면 모를까…", "돈을 쉽게 번다", "UFC 선수가 옥타곤에서 맞으면 아프다고 징징거리냐?", "다들 힘든데 너만 힘드냐?", "몸이나 파는 주제에", "더럽다", "걸XXXX분들", "더러운 육XX들", "생체 XXX". 이 사건을 다룬 기사 댓글창에 쏟아져 나온 독자들의 반응입니다. 댓글창에 무수한 사람들이 키보드를 두들겨 쏟아져 나온 말들을 더하지도 빼지도 않고 옮겨 적어 보았습니다.

우리는 이제부터 이 '쏟아진 말들'에 대해 하나씩 답변을 남겨 보고자 합니다. 이제부터 "나도 말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선언으로부터 시작된 목소리들에 귀 기울여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책 <나도 말할 수 있는 사람이다>의 여는 글을 토대로 일부 변경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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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스트 저자. 소수자의 눈으로 세상을 봅니다. 관심사는 마이너리티/섹슈얼리티/몸/시민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