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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들이 우리나라의 발전되고 아름다운 모습이 아니라 상대적으로 낙후된 모습에만 초점을 맞추면 흥분하고 거부감을 드러내면서 왜 우리는 인도의 한 부분만, 그것도 문화나 경제적으로 생활수준이 가장 뒤떨어진 삶만 보려 하는지 말이다." (7쪽)
"인도에 살고 있지 않은 사람들에게 무엇을 보여줘야 할지 알고 있다면 찍는 것은 별 문제가 안 된다. 머릿속이 텅 빈 백지 상태라면 제아무리 성능 좋은 카메라라도 차가운 금속덩어리에 지나지 않는다." (17쪽)


겉그림
 겉그림
ⓒ 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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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를 사진으로 마주하고픈 이야기를 들려주는 <인도, 사진으로 말하다>(도래 펴냄)를 폅니다. 지은이는 첫머리에 사진을 찍는 눈길을 이야기합니다.

한국사람은 외국사람이 이 나라를 '문명으로 발돋움한 눈부신 도시'가 아닌 '뭔가 좀 오래되거나 후줄근한 모습'을 사진으로 찍으면 안 좋아한다고들 해요. 이러면서 정작 다른 나라로 가면 '뭔가 좀 오래되거나 후줄근한 모습'을 사진으로 즐겨 찍는다지요.

인도나 몽골이나 부탄 같은 곳을 찾아가는 한국사람이 사진으로 찍는 모습 가운데 '크게 발돋움한 도시 한복판'보다는 '시골스럽거나 오래되거나 가난해 보이는 사람이나 마을이나 골목'을 찍는 일이 흔하다고도 하고요.

그런데 이는 한국에서도 으레 불거집니다. 오래된 골목마을로 나들이를 가서 사진을 찍는 분들은 '더 낡거나 더 오래된 모습'을 찾기 마련입니다. 마실꾼뿐 아니라 사진작가도 이런 모습을 더 눈여겨보고요.

"길을 가다가도 멀리 사원이 보이면 무작정 들어갔다. 사원이 웅장하고 역사가 깊고, 뭐 이런 것은 전혀 중요하지 않았으니까." (76쪽)


무엇을 사진으로 찍느냐는, 무엇을 어떻게 바라보느냐 하는 이야기라고 느낍니다. 한번 가만히 돌아볼 수 있어야지 싶습니다. 왜 인도를 더 오래되거나 낡거나 가난해 보이는 모습으로 찍어야 할까요? 더 오래되거나 낡거나 가난해 보이는 모습으로 찍힌 인도 사진을, 정작 인도사람은 어떻게 받아들일까요?

어쩌면 우리 스스로 인도라는 나라를 이웃으로 마주하지 않기에 더 오래되거나 낡거나 가난해 보이는 모습을 찾아내어 찍으려 하지는 않을까요? 우리가 찍은 사진을 이웃한테 고스란히 선물로 준다고 생각한다면, 섣불리 '그런 모습'만 찍지는 않을 테고요.

마을 아이들
 마을 아이들
ⓒ 현경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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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에서 마주한.
 길에서 마주한.
ⓒ 현경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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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이웃이나 동무를 사진으로 찍은 다음에 선물로 준다면, 이를테면 '못난 모습'으로 나온 사진은 버리거나 지우기 마련입니다. 장난 삼아 '못난 모습'으로 나온 사진을 줄 수 있지만, 장난이나 놀이가 아니라면 '못난 모습'은 굳이 안 쓰기 마련이에요.

우리가 이웃이나 동무를 사진으로 찍으려 한다면, 이웃이나 동무하고 나누고 싶은 뜻이나 마음이나 생각이 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이야기를 하려고 사진을 찍지요. 즐거이 이야기를 하고 싶기에 사진을 찍어요.

"처음부터 사진기를 들이대지 말았어야 했다. 몸과 마음을 다 비우고 그 사원의 아름다움을 먼저 감상했어야 했는데 오직 사진 욕심만 채우려고 여기저기 돌아다녔지 마음속으로는 하나도 감동받지 못했던 것이다. 결과는 참담했다." (111쪽)


<인도, 사진으로 말하다>를 읽으면, 지은이 스스로도 '사진 욕심'에 빠져서 도무지 마음에 안 드는 사진을 찍고 말았다는 말이 곧잘 흐릅니다. 지은이 스스로 이제껏 지켜본 '다른 작가들 욕심투성이 사진'에서 훌훌 벗어나 새롭고 상냥하며 즐겁게 사진빛을 이루고 싶은데, 때로는 더 좋은 사진이나 더 나은 사진을 얼른 찍고 싶다는 생각에 빠지기도 한다고 털어놓습니다.

가네쉬
 가네쉬
ⓒ 현경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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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에 비친 산속 꽃
 물에 비친 산속 꽃
ⓒ 현경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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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우리 스스로 바쁘다고 여기는 터라 '마음 아닌 욕심'으로 기울지 싶습니다. 오늘 아니면 다시 그곳에 가기 어렵다는 생각을 하니, 차분히 돌아보고 둘러보고 헤아리고 살핀 뒤에 살며시 사진기를 들기보다는, 서둘러 이 모습도 찍고 저 모습도 찍으려 할 수 있어요. 굳이 100장이나 200장을 찍어야 하지 않는데, 다문 한 장만 찍더라도 이 한 장에 마음을 담으면 되는데, 숫자에 얽매인다고 할까요. 사진으로 안 찍으면 마음에 안 남는다고 여긴달까요.

"이 동네 어르신들을 뵙고는 오래전에 돌아가신 할아버지 생각이 났다. 힘든 농사일을 하다가 쉴 때는 언제나 기다란 곰방대에 말린 담뱃잎을 잘라서 꼭꼭 누른 다음 담배를 태우던 할아버지의 모습이 아직도 머릿속에 선명하다. "(157쪽)


서두르지 않거나 바쁘지 않은 몸짓이 되기가 어려울 수 있습니다. 사진찍기에서뿐 아니라 마실하기에서도 비슷해요. 아이를 낳아 돌보는 살림에서도 비슷하고, 무엇을 배우는 길에서도 비슷합니다. 책 한 권을 서둘러 읽는대서 책 한 권을 더 잘 알아채거나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남보다 책을 1시간 빨리 읽기에 책을 더 잘 꿰뚫지 않아요.

내면. 벽에 비친 나무 그림자에서 읽기
 내면. 벽에 비친 나무 그림자에서 읽기
ⓒ 현경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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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년의 기억, 펌프
 유년의 기억, 펌프
ⓒ 현경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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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찍지 못한다면 이튿날 찍을 수 있습니다. 올해 찍지 못한다면 이듬해 찍을 수 있습니다. 오늘도 올해도 못 찍을 뿐 아니라 이튿날이나 이듬해에도 못 찍는다면, 서너 해 뒤라든지 열 해쯤 뒤에 찍을 수도 있어요.

더 빨리 사진 한 장을 얻어야 하지 않습니다. 책을 더 빨리 읽어치워야 하지 않습니다. 아이를 더 빨리 다그쳐서 더 빨리 배우라 이끌어야 하지 않습니다. 우리 스스로도 더 빨리 더 나은 사람으로 거듭나야 하지 않습니다. 사진작가 자리로 본다면, 더 빨리 더 멋진 사진을 선보여서 더 이름난 사진작가 소리를 들어야 하지 않습니다.

힌두사원에 가서 사진을 찍을 때마다 복전함에 꼭 시주를 한다. 그것이 예의라 생각해서 그렇게 했을 뿐, 특별히 소원을 빈 적은 많지 않다. 사원에서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것만으로 고마웠다. (163쪽)


마음에 담긴 노래대로 사진을 볼 수 있다고 느낍니다. 우리가 마음자리에 서두르려는 생각을 심으면, 한국에서든 인도에서든 늘 바빠맞은 몸짓으로 닦달하면서 겉훑기에 그치기 쉽다고 봅니다. 우리가 마음밭에 차분하면서 느긋한 생각을 심으면, 인도에서든 한국에서든 언제나 즐거우면서 상냥한 손길로 이야기꽃 이루는 사진 한 장을 얻는다고 봅니다.

사진 찍는 여인
 사진 찍는 여인
ⓒ 현경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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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원을 지키는 사람
 사원을 지키는 사람
ⓒ 현경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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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한 장 찍을 수 있어 고맙습니다. 사진 두 장 찍을 수 있어 반갑습니다. 사진 석 장 찍을 수 있어 기쁩니다. 사진 넉 장 찍을 수 있어 사랑스럽습니다.

사진을 한 장씩 찍을 적마다 어떤 마음인가를 헤아려 보면 좋겠어요. 고마움, 반가움, 기쁨, 사랑, 여기에 꿈, 노래, 꽃, 해, 별을 떠올리고 웃음, 눈물, 아픔, 날개돋이를 그리다가 어깨동무, 손잡기, 이웃되기, 서로돕기를 담아 볼 수 있습니다.

"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꽃 부겐빌레아는 겨울이면 특히 꽃의 색깔이 짙어져서 말 그대로 눈부시게 아름답다. 별 감상 없이 지나쳐 버리고는 했는데 이 산속에서 다시 만난 부겐빌레아는 먼지 한 점 없이 선명하게 피어 꽃 터널을 이루고 있었다." (45쪽)


어디에서나 사진꽃이 핍니다. 길에서도 숲에서도 꽃은 그저 꽃으로 곱습니다. 숲에서만 고운 꽃이 아닌 길에서도 고운 꽃입니다. 인도에서도 한국에서도, 도시에서도 시골에서도, 이 마을에서도 저 마을에서도, 우리는 상냥하면서 고운 마음을 건네면서 상냥하면서 고운 사진을 얻습니다.

노래하는 마음으로 꽃길을 거니는 몸짓이 되면, 참말 누구나 언제나 노래꽃 같은 사진을 찍으리라 봅니다. 우리가 걸어가는 길대로 사진 한 장을 이룹니다. 우리가 서로 바라보는 눈길에는 우리가 나누고 싶은 말 한 마디가 살며시 드러납니다. 찬찬히 마주하면서 먼저 마음에 깊이 담고서야 사진기를 손에 쥘 노릇입니다. 아직 마음에 깊이 담지 않았다면 사진기는 등짐 깊숙하게 묻어둘 노릇입니다.

로디가든 대나무
 로디가든 대나무
ⓒ 현경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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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승에서 보는 이승
 저승에서 보는 이승
ⓒ 현경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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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인도, 사진으로 말하다>(현경미 / 도래 / 2014.6.25.)



인도, 사진으로 말하다

현경미 지음, 도래(2014)


태그:#인도 사진으로 말하다, #현경미, #사진책, #사진읽기,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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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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