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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상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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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의 산책로에 매일 보는 꽃이지만 볼 적마다 예쁘고 또 예뻐서 자주 해주는 말이 있다. "아이구 우리 예쁜이 사랑해" 그러면 꽃들도 바람에 흔들흔들, 어떤 꽃은 건들건들 앞다투어 "나두" 한단다.

이렇게 우스운 생각을 하며 산책을 마치고 휴게실로 돌아와 차 한 잔을 앞에 놓고 김광섭 시인의 시집을 펼치다가 깜짝 놀라 시집을 떨어트렸다. 아버지와 함박꽃의 대화가 그대로 한 편의 시가 되어있는 경이로움을 보았기 때문이다.

찻잔의 찻물이 바닥을 보일 즈음 감동이 누그러들자 이번에는 아쉬움이 몰려왔다. "김광석 시인만 아니었으면 '사랑'이라는 시는 내 건데!" 하며 또 혼자서 웃으니 옆의 동료들이 뭣도 모르면서 함께 웃어주는구나. 아버지가 시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아버지도 꿈이 있는데 한 번 들어보련?

내 나이 70에도 봄이 온다면.

이다음 내 나이 70에도 봄을 맞이할 수 있다면 참 좋겠다. 나이 70에 맞이하는 봄날, 나보다 젊고 아름다운 여인을 보면 눈이 부셔 어쩔 줄 모르는 찬란한 정열이 남아 있었으면 좋겠다.

나이 70에 맞이하는 봄 앞에서도 꿀리지 않는, 전주행 호남선 기찻길옆 봄 아지랭이 속의 솜털같은 민들레 꽃씨에게도 꿀리지 않는 당당함이 남아 있었으면 참 좋겠다.

내 나이 70에 맞이하는 첫 봄날, 나는 시(詩)를 쓰리라. 풀먹인 책상보가 하얗게 덮인 앉을뱅이 책상 앞에 앉아 오래 된 만년필을 꾹꾹 눌러가며 남들이 내 시를 읽으면 마음이 둥글어지는 그런 시를 쓰리라.

시를 쓴 다음 제일 먼저 사랑하는 딸에게 보여주리라.

그리고, 내 나이 70
아지랭이 피어오르는 첫 봄날에
이 말을 꼭 듣고야 말리.

"아이고! 우리 아버지 진짜백이 시인이 됐구랴? 갑시다 막걸리 마시러......"

아버지 나이 70에 꿈이 이루어진다는 보장은 없지만 지금도 카시미론 두꺼운 이불에 몸을 누이면 구름인 듯 떠있고 분홍빛 바람이 이마를 스칠 때면 안 될 건 또 뭐냐며 은근히 오기도 생긴다. 아버지가 좋아하는 시 한 편 동봉하니 잘 읽어보아라. 시집의 첫머리에 있는 시인의 말이다.

-

시인의 말

- 권오영

처음이야.
느린 계절을 읽다가 잠들었다.

덜컹거리는 잠의 문은 자주 흔들리고
나는 그 바람을 이겨내지 못했다.
똑같은 꿈속에서 너무 많은 처음을 지운다.

계절을 지운다.
바다, 바람, 모래, 나를 지우고 나니
내가 남았다.
봄이다

천년의 시작 '너무 빠른 질문' 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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