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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좀 의존적인 것 같아요."

나를 대변하는 수많은 성향과 기질 중 한 부분인 '의존적인 나'를 조심스럽게 꺼내보였다.
이 이야기를 듣던 지인 한분이 이런 말을 건넨다.

"선생님은 의존적이지 않아요. 의존적인 사람이라면 지금처럼 이렇게 살 수 없어요. 어쩌면 의존적이라는 말을 입 밖으로 내는 것으로 자신을 의존적인 사람으로 만들고 있는 것일 수도 있어요. 앞으로 그런 말을 안 해보는 것도 방법일 것 같아요."

그래 그럴 수도 있다. 어쩌면 '의존적'이라는 말에 나를 가두려 하는지도 모른다. 일주일 넘게 감기몸살로 심신이 약해져 스스로 갇히고 싶어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그 말을 다시 생각에 올려본다.

의존적이다->의존적인 측면이 있다->때로는 의존적이고 싶다-> 의존적이면 안 되나?

결국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진 생각은 '왜? 의존적이면 좀 어때서?'라고 말하며 입을 삐쭉거린다. 역시 심신이 약해졌을 때 부정적인 생각과 비합리적인 신념은 기회를 놓치지 않는구나.

이 감정은 대체 뭐지?

나에게 나를 묻다
 나에게 나를 묻다
ⓒ 김수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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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40년 인생을 통틀어 보자면 나는 꽤 의존적인 인간이고, 의존적인 삶의 틀거리에 익숙하게 살아왔다. 지금도 여전히 어느 정도는 부모님에게 심리적 의존을 하고 있기도 하고. 결혼 이후 아빠의 울타리에서 남편의 울타리로 넘어와 보호를 받으며 안전감과 안정감을 느끼며 살고 있다. 그리고 어쩌면 지금도 80% 이상은 남편에게 의존적인 존재로 살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아이가 5살이 될 때까지 전업주부로 남편과 아이에게 최적화된 삶을 살았다. 그러다 내 아이를 포함한 동네 아이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려고 재미로 시작했던 '솔라라의 그림책놀이터' 수업은 나에게 경제활동이 가능한 삶의 세계를 보여주었다. 즐겁게 일하면서 돈도 벌 수 있다는 사실이 신기하고 신났던 시절이었다.

결혼 전 회사 생활에서는 느끼지 못했던 열정과 설레임으로 수업 준비를 했었다. 그렇게 다시 시작된 사회 생활이 올해로 8년째이다. 그림책을 읽고 재밌는 독후 활동으로 아이들을 만나는 문화예술강사로 경기도를 누비며 행복했다.

출판사와 책놀이를 기획하고 만들고 실행하면서 자기표현과 인정의 욕구를 동시에 충족시키기도 했었다. 비록 남편만큼 안정된 직장의 형태도 아니고 고수입이 보장되는 직업군도 아니지만 아이들과 교감하며 즐겁게 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런데 재작년부터 문득문득 한번씩 고개를 내미는 생각이 있다.

'일 하기 싫다. 왜 별로 재미가 없지?'

살아있는 인간이라면 일을 안 하고 살아갈 수는 없다. 나 또한 티 안 나는 가사노동은 남부럽지 않을 만큼 병행하며 프리랜서 워킹맘으로 살아가고 있다. 그렇다면 내가 하기 싫다는 그 '일'은 뭐지? 인생의 전부가 될 필요는 없지만 자본주의 사회에 발 딛고 살아가는 존재에게 없어서는 안 되는 돈. 그 돈이라는 것을 버는 '일'을 말하는 걸까?

즐겁게 일하면서 돈도 벌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며 열정을 불태웠던 나는 어디로 갔지?
경제활동을 하기 싫다는 걸까?  다시 비취업 여성의 삶으로 돌아가 지금보다 좀 더 가정에 충실한 여성의 삶을 살고 싶은 걸까? 이 물음에 나는 0.1초도 망설이지 않고 '그건 아닌데'라고 대답한다.

그렇다면 대체 뭐지?

경제활동을 하는 여성의 삶이 싫은 것은 아닌데 일하기 싫어하는 마음은 어디에서 기인하는 것일까? 혹시 하기 싫은 일을 말하는 것일까? 하기 싫은 일은 이제 그만 하고 싶은? 훗. 이 질문을 던지자마자 친정 엄마의 얼굴이 떠오르고 어이없다는 뉘앙스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하고 싶은 일만 하고 어떻게 사니?"

어렸을 적부터 꽤 여러 번 들었던 말이다. 하고 싶은 일만 하고 살 수 없다는 엄마의 주장에 때로는 동조했고 때로는 저항했다. 어쩌면 엄마는 그녀의 인생에 있어서 하고 싶은 일을 제대로, 마음껏, 기꺼이 해본 경험이 거의 없었으리라.

고등교육의 기회도 접어야 했던 시대에 입에 풀칠하기 위해 아등바등 살았던 엄마의 삶에는 부재했을 수밖에 없는 세상이었을 것이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돈을 버는 것'은 상상 속에서나 일어날법한 일일 테니까.

하고 싶은 일

즐겁게 일하면서 돈도 벌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며 열정을 불태웠던 나는 어디로 갔지?
 즐겁게 일하면서 돈도 벌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며 열정을 불태웠던 나는 어디로 갔지?
ⓒ 김수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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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나는 여기서 '하고 싶은 일'이라는 것을 묻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면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일까?

내가 하고 싶은 일...
하고 싶은 일...
하고 싶은 일...

이 질문이 이렇게 답하기 어려운 질문일 줄이야. 언제부턴가 아이들이 "선생님은 꿈이 뭐예요?"라고 물어오면 명쾌하게 되돌려줄 대답이 없어서 난감했던 나를 마주하는 것만큼이나 안타깝다.

계속되는 아이들의 단도직입적인 질문에 '꿈'을 찾았던 여정이 떠오른다. 그 이야기는 자꾸 비집고 올라오는 위의 질문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다는 희망이기도 하다.

그 답을 찾을 때까지 나는 그냥 적당히 의존적이고 적당히 독립적인 여성으로 일상을 살아내야겠다.


태그:#삐삐앤루팡, #그림책, #여성, #자아정체성,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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