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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상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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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베르 카뮈는 "빗속에서 담배를 나눠 피울 때 우리는 동지애를 느낀다"라고 했지. 아버지는 새우젓으로 간을 맞춘 두부찌개 냄비 속에서 너와 나의 숟가락이 딸그락거리며 부딪힐 때 동지애를 느끼고 네 입에 들어가는 밥에 저절로 미소가 지어지며 힘이 솟을 때 아버지와 딸은 이런 거구나 한단다. 또한, 너와 내가 맥주라도 앞에 놓고 오순도순 이야기할 때 "맞아"라고 해 가며 서로의 추억을 공유하고 공감할 때는 괜히 신나서 오버를 하기도 했지.

그리고 너희들이 삼백예순 날 어디 가서 뭔 일을 하든지 궁금해하지 않을 만큼 서로의 동선을 잘 알고 있다는 데 대해서 기쁘다. 요즈음처럼 험한 세상에 아버지의 걱정거리 하나가 준 셈이다.

"아비는 항상 시를 짓는 마음으로 너희를 키웠노라."

아버지가 너희들에게 자주 하는 말이다. 아버지가 시인은 아니지만, 시를 쓰겠다면 너희들과 추억을 공유해가며 그렇게 시를 쓰지 않겠나 하는 마음이지.

엄마와 함께 오토바이 여행을 다니며 주로 호텔이 아닌 여관에서 묵었는데 호텔의 샹들리에 불빛보다 여관의 은은한 백열등 불빛이 더 아름다웠다. 일식집의 회보다 방파제에서 떠주는 회가 더 맛있었고 강원도 인제 용대리 입구 노천에서 파는 옥수수를 함께 먹으며 옥수수로 하모니카를 불어주면 엄마는 행복해했다.

승용차의 안락한 뒷좌석보다 돌멩이 하나만 밟고 지나가도 튕겨 나갈 것 같은 오토바이의 뒷좌석을 엄마는 더 사랑했으며 한적한 시골길 주유소에서 기름을 넣을 때면 엄마는 주유소 주변에서 냉이를 캐고는 했다.

인제에서 올라가는 미시령 입구 산나물과 옥수수 오징어를 파는 할머니가 있는데 항상 들리는 곳이다. 여행을 떠나기 전에 엄마는 할머니 드릴 제과점 빵을 챙기고 겨울이면 목도리를 챙겨가서 할머니 목에 둘러주고는 했다.

사랑이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사랑은 그런 것이다.

아버지가 너희들을 시를 짓는 마음으로 키웠다는 그 마음 또한 사랑이 아니겠느냐. 문득 너희들 없는 방에 들어가 너희들이 읽던 책을 뒤져보며 슬그머니 웃던 생각이 나는구나. 아버지가 노래처럼 흥얼거리고 다니는 시 한 편 들려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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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꿈

권혁수

아이들이 없는 공부방
책장 틈에서 몽당 크레파스 하나
굴러 나온다
손끝이,
가슴이 파랗게 물들기 시작했다

천년의 시작 '얼룩말자전거' 4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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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모이, #아버지와 딸,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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