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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 형태의 소형 손지갑
 동물 형태의 소형 손지갑
ⓒ 이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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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운 지방에서는 낮보다 밤에 놀이문화가 발달해 있다. 낮에는 생업에 종사하고, 밤에는 함께 어울리거나 휴식을 취하러 밖으로 나오기 때문이다. 그래서 동남아 지역에서는 나이트 바자르(Night Bazar)라는 이름의 야시장이 발달해 있다. 우리도 치앙마이 야간 시티투어를 하기 전에 잠깐 야시장엘 들른다. 그것은 태국의 풍물도 살펴보고, 필요한 물건도 구입하기 위해서다. 우리가 찾아간 곳은 구시가지 동문 밖에 있는 아누산(Anusarn) 시장이다.

이곳 시장에는 의식주와 관련된 모든 물건이 팔리고 있다. 그렇지만 내 눈에 들어오는 것은 예술성이 있는 생활용품이나 수공예품이다. 그 중에서도 가방, 직물, 목공, 도자기, 은세공품, 종이공예품, 칠공예품, 고산족이 만든 수공예품의 수준이 높다. 가방은 큰 것보다는 소형 손지갑이 마음에 들었다. 가죽으로 코끼리, 호랑이, 사자, 양 같은 큰 동물도 만들고, 개구리, 무당벌레, 올빼미, 해마 같은 작고 예쁜 동물도 만들었다.

예술작품을 만드는 장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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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크기는 하나 같이 손바닥에 들어갈 정도다. 크기의 평준화, 색깔의 다양화라는 측면에서 대단한 기술과 예술성을 보여준다. 직물류는 염색이나 디자인이 훌륭한데 비해서 가격은 대단히 싸다. 목공예 제품도 많은데, 야간장식용 등불이나 스탠드로 제작을 했다. 실을 꼬아 만든 동물들도 있는데, 이것 역시 대단히 예술적이다. 코끼리, 용, 뱀, 닭이 있다. 12간지의 동물로 보인다. 뫼비우스의 띠처럼 종이를 연결해 만든 구형(球形) 장식품도 화려하기 이를 데 없다.

이곳에는 먹거리도 풍부하다. 꼬치 종류도 여러 가지고, 과일 종류도 여러 가지다. 우리는 저녁을 먹은 후 바로 이곳으로 왔기 때문에 꼬치에는 관심이 없다. 더운 지방에 왔으니, 이곳에서만 맛볼 수 있는 몇 가지 과일을 시식한다. 그렇지만 이곳 계절이 우리로 말하면 겨울이어서 과일의 종류도 적고 맛도 떨어진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는 망고스틴, 람 야이, 잭 프룻 등 몇 가지 과일을 먹어보고 말린 망고를 구입한다.

해자와 성벽으로 이루어진 도성 이야기

치앙마이 도성 안 구시자지 개념도
 치앙마이 도성 안 구시자지 개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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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시장 답사를 마친 우리는 툭툭이를 타고 구시가지 투어에 나선다. 걸어서 도성과 구시가지를 답사하기에는 거리가 좀 멀기 때문이다. 치앙마이 도성은 사방 둘레가 7.5㎞쯤 된다. 그러므로 동서남북 사방으로 성벽의 길이가 1.8~2㎞이다. 성벽 밖으로는 해자가 둘러쳐져 있는데, 폭이 18m쯤 된다. 그리고 길은 해자의 안쪽과 바깥쪽으로 나 있다.

이 도성이 처음 만들어진 것은 1296년 망라이왕에 의해서다. 그는 도성 내부에 왕궁과 사원을 설치하고 동서남북 성벽의 가운데 4개의 문을 설치하도록 했다. 이 중 가장 먼저 만들어진 것이 북문인 창뿌악(Chang Phuak) 게이트다. 창뿌악은 '흰 코끼리(White elephant)'라는 뜻으로, 왕실의 출입문으로 사용되었다. 동문은 타패(Ta Pae) 게이트로, '배를 댄다(Boat landing)'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것은 동문을 통해 길이 핑강 쪽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동문인 타패 게이트와 성벽
 동문인 타패 게이트와 성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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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은 수안독(Suan Dok) 게이트로, '꽃 정원(Flower garden)'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 문을 통해서는 승려 등 성직자들이 출입했을 것으로 여겨진다. 남문은 치앙마이 게이트로, 귀족과 관리 등이 출입했다고 한다. 그리고 삼팡캔(Sam Fang Kaen: 1401-1441)왕 때 치앙마이 게이트 서쪽에 샌풍(Saen Pung) 게이트가 만들어졌다. 이 문은 장례행렬이 나가는 문으로 사용되었다. 그러므로 우리말로 하면 시구문(屍口門)이 된다.

그리고 도성의 네 모서리에는 성을 지키기 위한 망대 겸 장대를 설치했다. 이러한 성벽은 무앙캐오(Mueang Kaeo: 1495-1526)왕 때 보완되고 강화되었다. 그 후에도 도성에 수많은 변화가 있었겠지만 특별한 기록이 없다. 1800년경 차오카윌라(Chao Kawila)왕이 성벽을 강화하는 등 도성을 재건했다고 한다. 그러나 1930년대 중반부터 1945년까지 성벽과 성문이 많이 무너지고 훼손되었다. 그 후 1960년대 성문으로 이어지는 도로가 개선되었고, 1996/97년 성문과 성벽이 현재의 모습으로 재건되었다.

치앙라이 왕실사원인 와트 체디루앙

도시 기둥
 도시 기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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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벽 안에 지어진 왕실 사원은 왕조의 정신적인 지주로 국가의 안녕과 번영을 기원하는 역할을 했다. 그러므로 도성 한 가운데 지어지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런 의도로 처음 만들어진 사원이 '도심의 배꼽(Sadeu Mueang)'으로 불리는 인타킨(Inthakhin) 사원이다. 인타킨 사원에는 치앙마이의 중심을 상징하는 도시 기둥(City Pillar)이 있었다. 이 기둥은 치앙마이를 지켜주는 수호신으로, 풍요와 다산을 가져다준다고 믿었다.

그런데 불교의 영향으로 이 기둥 한 가운데 부처님이 자리하게 되었다. 그리고 사원에 두 개의 탑이 만들어졌다. 이 탑은 망라이 왕 때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후 이 사원이 체디루앙 사원과 프라싱 사원 등에 밀려 사원으로서의 중요성이 떨어지게 되었다. 대중들은 인타킨 축제 때 도시 기둥을 찾아, 향, 꽃, 등을 바치며 경배를 한다. 깨끗한 물로 부처님을 관욕(灌浴)시킨다. 이러한 행위를 통해 대중들은 마음의 위안과 평화를 얻고, 번영과 풍요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와트 체디루앙
 와트 체디루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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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1800년대 초 이 기둥이 와트 체디루앙 사원으로 옮겨졌고, 인타킨 축제가 체디루앙 사원 중심으로 이루어지게 되었다. 와트 체디루앙이 왕실사원으로 만들어지기 시작한 것은 샌무앙마(Saen Mueang Ma: 1385-1401)왕 때다. 그는 자신의 아버지 쿠나(Ku Na)왕의 유골을 그곳에 모시려고 했다. 그러나 사원을 완공한 것은 샌무앙마의 아들인 삼팡캔왕으로 24m 높이의 탑을 완성했다.

이곳이 왕실사원으로 더 큰 위용을 갖추게 된 것은 삼팡캔의 아들인 틸로카라트(Tilokarat: 1441-1487)왕에 의해서다. 그는 1481년 탑을 82m 높이로 확장하였고, 와트 체디루앙을 치앙마이 최고의 사원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1545년 지진으로 탑의 상단부가 무너져 42m 높이로 줄어들게 되었다. 1800년대 초에는 인타킨 사원에 있던 도시 기둥이 이곳으로 옮겨져, 체디루앙 사원은 정치와 종교적인 면에서 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면에서 치앙마이의 중심사원이 되었다.

와트 체디루앙
 와트 체디루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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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8년에는 탑의 동쪽에 커다란 법당이 세워졌고, 이곳에 14세기말에 만들어진 불상(Phra Chao Attarot)을 모셨다고 한다. 1992년에는 탑 주변에 있는 나가와 코끼리 등 조형물에 대한 개보수가 있었다. 2010년에는 탑의 북쪽에 2층짜리 건물이 지어졌고, 박물관 겸 도서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곳에는 사원과 관련된 역사기록과 유물이 보존 전시되고 있다. 체디 루앙 사원은 탑, 도시 기둥, 법당, 나무가 잘 어우러진 치앙마이 대표 사원이다.

우리는 탑과 건물을 중심으로 체디루앙 사원을 한 바퀴 돌아본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이, 도시 기둥을 이곳으로 옮길 때 심었다는 수호신 나무(Guardian tree)다. 양(Yang)이라 불리는 열대교목으로 그 높이가 50m는 되어 보인다. 그리고 그 옆에 도시 기둥이 있는데, 무슨 연유에선지 오색천으로 감싸놓았다. 탑으로 가기 전 우리는 중심법당을 잠시 살펴본다. 그곳 입구에는 용머리를 한 나가가 양쪽에서 지키고 있다. 법당의 박공에는 머리가 셋 달린 전설 속의 코끼리(Erawan)상이 둘 있다고 하는데 찾을 수가 없다. 자료를 보니 이들은 현재 박물관에 가 있다고 한다.

검은색 옥불
 검은색 옥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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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당을 보고난 우리는 탑으로 간다. 동쪽에서부터 시계방향으로 돌면서 탑과 불상을 살펴본다. 탑의 동쪽 기단부에는 계단을 만들어 탑신부로 올라갈 수 있게 만들었다. 그리고 탑신부에는 감실을 만들고 그곳에 불상을 안치했다. 이 불상이 탑이 만들어진지 600주년을 기념해서 1995년 안치한 검은색 옥불이다. 남쪽의 탑신부에는 금동불이 모셔져 있다. 서쪽의 탑신부에도 금동불이 모셔져 있다.

그런데 탑의 서쪽부분 앞에는 와불도 있고, 12간지를 나타내는 동물도 있고, 포대화상 같은 보살도 있다. 북쪽 부분에는 탁발승들의 모습도 보인다. 이들 조형물은 엄숙하고 경건하다기보다는 인간적이고 해학적으로 보인다. 이곳을 찾는 젊은 승려들도 자연스럽게 부처님을 경배하고 핸드폰을 가지고 놀기도 한다. 체디루앙 사원처럼 야간조명으로 화려한 절을 찾아, 그 절의 역사와 종교적인 특징을 살펴보는 것도 괜찮다는 생각이 든다. 

동맹을 맺은 세 왕의 동상

삼왕 동상
 삼왕 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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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간 시티투어의 마지막 코스는 삼왕(Three kings) 동상이다. 삼왕 동상은 남문과 북문을 잇는 프라 폭끌라오(Phra Pokklao) 거리의 중간에 있는 체디루앙 사원 북쪽 300m 광장에 위치하고 있다. 이 동상은 1970년 치앙마이 주청사 앞에 세워졌다. 그것은 란나왕조를 세운 망라이왕이 파야오(Phayao) 왕국의 응암무앙(Ngam Mueang)왕과 수코타이 람깜행(Ramkhamhaeng)왕과 1296년 4월 맺은 삼각동맹을 기념해서 만들어졌다.

가운데 망라이왕이 있고, 왼쪽에 파야오왕, 오른쪽에 수코타이왕이 있다. 1996년 4월에는 치앙마이 탄생 70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가 이곳 삼왕 동상 앞에서 치러졌다. 사원의 성유물들이 시내를 한 바퀴 돈 뒤 이곳에 안치되어 참석자 모두 그것을 알현할 수 있도록 했다. 제단은 꽃으로 치장하고 제물을 바쳤으며, 무희들이 춤으로 신을 즐겁게 했다. 그리고 왕비인 시리킷과 브라만 등 귀족들이 참석해 행사의 격을 높였다.

삼왕 동상 뒤로 보이는 전 치앙마이 주청사
 삼왕 동상 뒤로 보이는 전 치앙마이 주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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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왕 동상 뒤로는 서양식 건물이 보이는데, 이것은 1924년 치앙마이 지역의 행정을 담당하는 관청으로 세워졌다. 원래 이곳에는 차오 카윌로롯(Chao Kawilorot: 1856-1870)왕의 왕궁이 있었다. 1933년부터 이 건물은 치앙마이 주청사로 사용되었고, 1996년 주청사가 시의 북쪽으로 확장 이전하면서 치앙마이 문화예술센터로 변화되었다. 2017년 이 건물 2층에 도서관과 박물관이 만들어졌으며, 치앙마이 역사와 문화의 중심공간으로 그 역할을 하고 있다.


태그:#야간 시티투어, #나이트 바자르, #타패 게이트 , #와트 체디루앙, #삼왕 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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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분야는 문화입니다. 유럽의 문화와 예술, 국내외 여행기, 우리의 전통문화 등 기사를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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