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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앙꿈깜 관광안내소
 위앙꿈깜 관광안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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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이인타논산을 내려온 우리는 버스로 갈아타고 치앙마이 시내로 들어온다. 다음으로 찾아갈 곳은 란나왕조의 초기 수도 위앙꿈깜(เวียงกุมกาม: Wiang Kum Kam) 이다. 여기서 위앙은 읍성(邑城: Walled town)을 뜻한다. 그에 비해 치앙은 도성(都城: Great wiang)을 말한다. 그러므로 치앙마이는 위앙꿈깜을 대신해서 새로 만들어진 도성이라는 뜻이다. 치앙마이 도성은 위앙꿈깜에서 북쪽으로 5㎞쯤 떨어져 있다.

위앙꿈깜에 도착하니 마차와 관람차가 기다리고 있다. 우리는 관람차에 타 유적지를 한 바퀴 돌아볼 예정이다. 그렇지만 나는 매표소 옆 관광안내센터에 들러 위앙꿈깜 관련 자료를 찾아본다. 다행히 태국어와 영어로 된 8쪽짜리 안내 카탈로그가 있다. 조감도, 지도, 사진, 설명이 곁들여진 아주 훌륭한 안내자료다. 치앙마이 순수예술국(Department of Fine Arts)에서 만든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런데 이렇게 훌륭한 자료를 알려주거나 챙겨주는 가이드를 본 적이 없다.

 꾸파돔 사원
 꾸파돔 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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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여행을 다니며 느낀 사실은, 가이드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지식수준이 별로 높지 않다는 것이다. 사실 현지 가이드는 그 지역의 역사와 지리, 문화와 예술에 정통해 있어야 한다고 본다. 가이드에게 관광객이 정보를 주어야 하는 상황도 가끔 발생한다. 현지 가이드의 반성이 필요한 대목이다.

자료를 보니 위앙꿈깜은 모두 42개 건물과 사원 유적으로 이루어져 있다. 위앙꿈깜이 란나왕국의 수도가 된 것은 1294년이다. 그러나 1286~1287년부터 이 지역에 건물과 사원이 지어지면서 수도로서의 조건을 갖추어 나가기 시작했다. 벽돌을 쌓아 만들어진 도성은 가로 850m 세로 600m의 직사각형 형태였다. 그러나 도시가 핑강이 굽이치는 곳에 위치하고 있어서 해마다 발생하는 홍수 피해를 입었다. 그 결과 도시가 1~2m 높이의 토사에 뒤덮이게 되었다. 망라이왕은 수도를 핑강 건너편으로 옮기고 도시 이름을 치앙마이라 부른다.

 위앙꿈깜 유적 개념도
 위앙꿈깜 유적 개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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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버려진 지하도시 위앙꿈깜이 다시 되살아난 것은 1984년이다. 치앙마이 순수예술국에서 발굴조사를 했고, 버려지고 폐허가 된 사원과 기념물을 발견하게 되었다. 발굴을 통해 남쪽 성벽과 동쪽과 북쪽의 해자를 확인할 수 있었다.

현재는 이들 발굴 지역을 27개 유적군으로 나눠 일반인에게 공개하고 있다. 우리는 그 중 절반 정도인 서쪽 지역 유적군만 돌아볼 예정이다. 대표적인 유적이 깐똠창깜(Kanthom Changkam) 사원과 체디렘(Chedi Liem) 사원이다.  

깐톰창깜 사원 둘러보기

 깐톰창깜 사원
 깐톰창깜 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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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일행은 깐똠창깜 사원으로 가는 길에 꾸파돔(Ku Padom)사원에서 잠깐 멈춘다. 여기서 꾸는 황금을 뜻하는데, 파돔이 무슨 뜻인지는 정확히 모르겠다. 꾸파돔 사원은 건물의 기단부가 옛 모습대로 남아 있다.

한쪽에는 원통형 철기둥을 세우고 지붕을 맞배지붕으로 해 올린 건물이 있다. 그리고 건물 안에 작은 부처도 모셔 놓았다. 발굴하면서 만든 시설로 보인다. 이들 유적이 석양을 받아 밝게 보인다. 문화유산은 아침이나 저녁에 찾아야 더 근사하게 보이는 것 같다.

차는 따뜨노이(Tat Noi) 사원을 지나 깐똠창깜 사원에 이른다. 여기서 우리는 사원지역을 자세히 살펴본다. 먼저 사원 이름부터 분석해 본다. 태국어를 모르니 깐똠의 의미를 제대로 알 수 없다. 창깜은 '네 다리로 건물을 받치는 코끼리'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이 사원을 우리말로 '코끼리 사원'이라 부르면 좋을 것 같다. 이곳에는 사원의 토대가 된 건물의 기초와 벽이 널리 분포하고 있다.

 깐톰창깜 사원의 탑
 깐톰창깜 사원의 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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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쪽에는 흰색의 기단부와 탑신부에 황금색으로 상륜부를 장식한 탑이 있다. 이 탑을 살펴보니 4각의 기단부에 네 마리 코끼리가 탑을 받치고 있다. 그렇다면 이 탑 때문에 창깜이라는 이름이 나온 것 같다. 탑신부에는 감실을 만들고 금동불 입상을 안치했다. 부처님 옆에는 제자인 목갈라나와 사리붓다가 협시하고 있다고 한다. 기록에 의하면 이 탑과 사원은 망라이왕 통치기인 1290년 건설되었다.

 망라이왕 사당
 망라이왕 사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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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 외에도 근대에 세운 법당, 망라이왕 사당이 있다. 법당에는 부처님이, 사당에는 망라이왕 동상이 모셔져 있다. 치앙마이 사람들은 사당에 망라이왕의 영혼이 머물고 있다고 생각해 이곳을 신성하게 여긴다고 한다.

이곳 법당과 사당에도 코끼리 장식이 있다. 그런데 이들 문화유산들이 제대로 관리가 안 되고 있다. 내부가 너무 어둡고 청소도 안 되어 있으며, 주변이 어수선하기 이를 데 없다. 이들 란나왕조 시대 문화유산을 발굴 복원하면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할 수도 있을 텐데 아쉽기만 하다. 

치앙마이 전통가옥에서 그들의 삶을 살펴보다

 폐허상태의 박물관
 폐허상태의 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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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 법당과 사당 주변에는 사람들이 산 흔적이 남아 있다. 치앙마이 전통가옥이 몇 채 방치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곳은 1300년 전후 폐허로 버려졌고, 그 후 200년쯤 후 사람들이 들어와 창깜 마을을 이루고 살았다고 한다. 그리고 1984년 발굴조사 과정에서 다시 삶의 터전을 떠나게 된 모양이다. 그래선지 집이 먼지가 잔뜩 쌓인 채 방치되고 있다. 나는 이들 집의 안팎을 살펴보며 치앙마이 사람들의 삶의 방식을 파악해보려고 노력한다.

건물은 크게 세 가지로 이루어져 있다. 주거용 2층짜리 주택, 휴식용 2층짜리 누각, 박물관으로 사용되는 1층짜리 건물이다. 박물관과 2층 누각은 문이 닫혀 있어 들어갈 수가 없다. 다행히 주거용 건물은 내부를 살펴볼 수 있다. 우리는 먼저 건물 외부에 있는 커다란 기구들을 살펴본다. 디딜방아. 베틀을 볼 수 있고, 박제로 만들어 놓은 농사용 물소를 볼 수 있다. 이들은 의식(衣食)을 해결하는데 없어서는 안 될 필수품들이었다.

 거실의 생활용품
 거실의 생활용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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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로 들어가 보니 의식주에 필요한 온갖 잡동사니들이 널려 있다. 상과 그릇, 항아리 같은 것들은 음식을 장만하고 준비하는데 사용하는 것이다. 부엌에는 화로, 솥, 단지 같은 것들이 보인다. 방에는 의류가 몇 벌 벽에 걸려 있다. 벽에는 또 악기들도 걸려 있다. 비파 같은 현악기도 보이고, 박으로 만든 타악기도 보인다. 벽에는 이들 생활용품과 악기 등을 설명하는 글이 있는데 태국어로 쓰여 내용을 알기 어렵다.

벽에 그려진 또 다른 그림을 통해, 물 지개는 여성들이 지었음을 알 수 있다. 이들을 보고 나서 우리는 다시 차를 타고 체디렘 사원으로 향한다. 중간에 이캉(I Khang) 사원, 푸피아(Pupia) 사원, 탓카오(That Khao) 사원을 지난다. 이 중 이캉 사원과 푸피아 사원은 비교적 완전한 형태로 남아 있다. 그것은 탑이 상대적으로 원형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체디렘 사원과 아쉬운 작별을

 체디렘
 체디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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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디렘 사원은 위앙꿈깜 유적의 서북쪽 모서리에 위치하고 있다. 체디렘은 태국어로 4각형 탑(Squared Pagoda)이라는 뜻이다. 원래 이름은 와트 꾸깜(Wat Ku Kham)으로, '황금탑 사원'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었다. 이 탑은 5층의 탑신으로 이루어진 몬(Mon) 스타일로, 하리푼차이에 있는 수완나탑(Chedi Suwanna)과 유사한 형태를 보여주고 있다. 체디렘 사원은 위앙꿈깜에서 원형을 가장 잘 유지하고 있는 사원으로, 현재 스님들이 거주하며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 

체디렘은 란나왕조 초기인 1287년부터 1294년까지 망라이왕에 의해 건설되었다. 하리푼차이에 있는 차마데비(Chamadevi) 사원의 꾸꾸드(Ku Kud)탑을 모방해서 란나양식으로 만들어졌다. 4각형의 기단부 가운데 감실을 마련하고 석불좌상을 안치했다. 그러한 감실은 5층으로 이루어진 탑신부까지 이어졌다. 매층마다 3개의 감실을 마련하고 석불입상을 안치했다. 탑은 위로 올라가면서 축소되는 형식을 취했다.

 탑을 지키는 사자상
 탑을 지키는 사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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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의 사방에는 장식으로 사자상과 작은 탑을 설치했다. 기단부 사방에는 사자상을, 탑신부 사방에는 란나식 소형탑을 설치했다. 이와 같은 감실장식을 통해 탑의 상승감과 장식성을 더했다. 상륜부도 4각을 유지하면서 올라갔고, 가장 위쪽에만 왕관형식의 금동장식을 달았다. 기본적으로 현재의 태국 불탑과는 상당히 다른 모습이다. 오히려 보드가야에 있는 보리대탑과 유사한 면이 있다.

이 탑은 1908년 미얀마 기술자들에 의해 현재의 모습으로 재건되었다. 그러므로 외장이 미얀마식으로 변형된 점은 있다. 대표적으로 흰색 톤의 태국양식에 황금색 톤의 미얀마 양식이 가미되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란나양식을 하고 있는 대표적인 탑으로 문화유산적 가치가 크다. 이 탑은 1992년 리노베이션을 거쳐 현재의 모습을 가지게 되었다. 

 체디렘 사원의 법당
 체디렘 사원의 법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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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의 동쪽에는 탑을 지키는 법당이 마련되어 있다. 그것은 법당에 안치된 부처님이 탑을 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근세에 지어진 것으로 전형적인 치앙마이 양식이다. 이 법당에는 스님이 상주하며 염불과 기도를 하고 있다. 또 탑의 남쪽에도 커다란 법당이 또 하나 있다. 이곳은 체디렘 사원 전체의 중심법당으로 보인다. 이들 법당 때문에 체디렘 사원은 살아 움직이는 느낌이다.

우리는 이제 치앙마이의 고대도시 와트 체디렘을 떠나야 한다. 시간여유를 가지고 유적지를 자세히 공부해야 하는데, 한두 시간 만에 돌아보다 보니 수박 겉핥기가 되고 말았다. 위앙꿈깜을 제대로 알려면 현지전문가의 설명을 들으면서 현장을 천천히 살펴보아야 하는데 말이다. 다음 목적지인 치앙마이 구시가지(Old City) 답사가 우릴 기다리고 있다. 아쉽지만 체디렘 사원과 이별해야 한다. 후일 다시 찾을 것을 기대하면서.


관심분야는 문화입니다. 유럽의 문화와 예술, 국내외 여행기, 우리의 전통문화 등 기사를 올리겠습니다.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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