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회 이 드라마를 여는 오프닝 크레딧은 조금 특별하다. 끊어진 다리와 무너진 건물, 물에 잠긴 배 이미지가 차례로 나오는 동안, 우리는 성수대교, 삼풍백화점, 그리고 세월호를 떠올린다. 지난달 30일 종영한 JTBC 드라마 <그냥 사랑하는 사이>(아래 그 사이)는 그렇게 우리 사회가 겪은 재난을 직시하는 데서 시작한다.

 ‘그냥 사랑하는 사이’ 오프닝 크레딧 중 한 장면.

‘그냥 사랑하는 사이’ 오프닝 크레딧 중 한 장면. ⓒ JTBC


재난은 끝나도, 상처는 계속된다

쇼핑몰 붕괴 사고가 있었던 '그날' 이후, 더는 전과 같은 삶을 살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 쇼핑몰 공사 현장에서 인부로 일하던 아버지를 잃고, 자신도 겨우 살아나온 강두는 환청과 환각에 시달린다. 또 다른 생존자인 문수는 동생을 두고 혼자 살아나왔다는 죄책감에 당시의 기억을 모두 지웠다. 자식 앞세운 부모는 울어도 웃어도 죄인이라던 문수 엄마는 소주의 힘을 빌려 하루하루를 겨우 살아가고, 화물차 운전사였던 문수 아빠는 일을 관두고 사고 현장 근처에 국수 가게를 차렸다.

살아나온 것을 다행으로 여기기에 이들의 삶은 너무 버겁다. 오늘은 그저 버티고 견디는 것이고, 내일이라고 새롭게 기대되는 것도 없다. 사고의 기억이 언제 또 불쑥 찾아와 일상을 헝클어 놓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드라마는 붕괴 순간과 주인공들이 갇혀있던 당시의 장면을 몇 번이나 계속 반복해서 보여준다. 아무리 화면 속 모습이라도 바로 앞에서 고통을 마주하기란 어렵고 힘든 것이어서, 때로는 눈을 감아버리고 싶을 때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문득, 눈 감아도 잊히지 않을 사고 기억과 트라우마를 평생 안고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이 생각났다. 재난이 끝나도 일상은 이어지고, 상처는 계속된다.

우리가 진짜 해야 할 일, '기억하는 것'

문수와 강두는 사고 부지에 들어설 실버타운 공사 현장에서 일하다 우연일지 운명일지 모르게 추모비 건립 작업을 맡게 된다. 어떤 재료를 사용할지, 디자인을 어떻게 할지 한참을 고민하던 이들은 '보여주기 위한' 일이 아니라, '진짜 해야 할' 일을 하기로 한다.

그 일의 시작은 유가족을 찾아가 희생자 한 명 한 명이 어떤 사람이었는지, 무슨 일을 했고 또 무엇을 좋아했는지 듣는 것이었다. 추모공원 부지도 밖에서 잘 보이지 않는 구석이 아니라 누구나 쉽게 볼 수 있는 입구로 하고, 사고 현장에 있던 기둥 조각들을 맞춰 추모비로 세운다. 보기 불편하지 않겠냐는 물음에 문수는 이렇게 답한다. 

"불편하니까, 시간이 지났으니까, 보상금을 받았으니까, 그렇게 잊기 시작하면 안 되잖아요. 그러니까 자꾸 같은 일이 반복되죠."

문수와 강두는 그렇게 추모비를 함께 만들면서 서로의 아픔을 덤덤히 고백하고 치유해간다. 불편함을, 고통을, 아픔을 숨기지 않고 끄집어내어 기어이 마주하는 것. 희생자를 추모하고 사고를 기억하는 그들의 방식이었다.

 붕괴사고 잔해로 추모비를 만드는 문수와 강두.

붕괴사고 잔해로 추모비를 만드는 문수와 강두. ⓒ JTBC


절망을 딛고 세상을 살아가는 법

<그 사이>에는 사회적 약자들이 유독 많이 등장한다. 강두에게 엄마이자 친구였던 약장수 할멈은 "사람은 가난 때문에 죽는 거"라며 뒷골목 한 켠에서 이주노동자들을 치료한다. 강두가 사는 여인숙 주인의 아들 상만은 조금 모자라지만 누구보다 강두를 살뜰히 챙긴다. 문수가 유일하게 의지하는 친구 완진은 오토바이 사고로 다리에 장애가 있다.

모두 우리 곁에 '존재하지만 드러나지 않는' 사람들이다. 드라마는 할멈을 통해 아파도 병원에 가지 못하는 이주노동자들의 고충을 이야기하고, 경사로가 없어 카페에 들어가지 못하는 완진을 통해 장애인에게 배려 없는 사회를 보여준다.  

이들은 곁에서 서로를 지키며 함께 살아간다. 배우자도 먼저 보내고 자식도 없는 할멈이 세상을 떠나고 난 뒤, 다 같이 모여앉아 그녀를 추억하는 장면은 왠지 뭉클하기까지 하다. 또, 강두가 아플 때에는 의사가 의아해할 정도로 누구랄 것 없이 먼저 자기 간을 내어놓겠다고도 한다. 혈연으로 맺어진 가족은 아닐지라도, 그렇게 서로의 상처를 보듬으며 세상 속으로 한 걸음 더 들어갈 용기를 얻는다.  

 할멈의 병실에 모인 사람들.

할멈의 병실에 모인 사람들. ⓒ JTBC


현실의 무게만으로 충분히 벅찬 사람들에게 <그 사이>는 어쩌면 외면하고 싶은 드라마일지 모른다. 하지만 이 드라마는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한다면 이 힘겨운 세상도 한 번 살아봄직 하다고, 마지막까지 희망을 놓지 않는다. 재난이라는 무거운 소재를 현실적으로 다루면서도 보는 내내 따뜻함이 느껴지는 이유다.

"살아남아서 다행이다." 강두의 마지막 나레이션은 작가가 우리에게 건네는 따스한 위로이기도 하다. 살아남은 우리 모두가, 부디 서로를 사랑하며 힘껏 행복하기를.

그냥 사랑하는 사이 그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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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변화는 우리네 일상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고 믿는, 파도 앞에서 조개를 줍는 사람.

오마이뉴스 스타팀에서 방송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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