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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카트> 한 장면
 영화 <카트> 한 장면
ⓒ 명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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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심히 일하면 정직원 되는 거예요" 영화 <카트> 속 마트 임직원의 대사이다. 그러나, 이후 계약직 마트 노동자들은 계약 기간이 끝나기도 전에 부당 해고를 당하고, 이에 해고 당한 마트 노동자들은 노조를 설립해서 부당 해고의 반대하는 농성을 벌인다. 그렇지만 회사는 이들을 불법 점거라 규정하며, 대체 인력을 고용하고 경찰력과 용역들을 끌어들여 진압하려 든다. 또한 노조의 교란을 위해서 일부 노동자들만 다시 복직시키는 약삭 빠른 술수를 펼치며, 장기전으로 흐르는 시위를 더욱 지치게 만든다.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폭력의 주체는 마트 회사일지 모르겠지만, 은밀하고 집요하게 이들을 진압하고 무기력하게 만드는 것은 다름 아닌 법과 규정이다. 법은 부당 해고를 정당 해고로 뒤집고, 해고 노동자들에 대해 회사가 보호할 대상이 아니라고 일갈한다. 보호의 대상이 아닌 폭력의 대상이 된 마트 노동자들은 누군가 진압 과정에서 다치거나 피해를 입어도, 회사가 책임질 문제가 아니라 불법 점거를 한 개인의 몫으로 돌린다. 부당 해고에 대한 명백한 시위도, 백주대낮에 벌어지는 폭력에 대해서도 법은 아무 말을 하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 존재들을 더욱 안개 속으로 내몰게 하는 것은 바로 우리 사회의 잘못된 법체계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것은 영화이기도 하지만, 영화가 아니기도 하다. 영화는 2년 이상 근무한 노동자를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한다는 비정규직보호법 시행을 앞두고 700여 명을 해고한 2007년 홈에버 사태를 바탕으로 한다. 당시 일방적으로 해고당한 노동자 대량해고와 노조탄압에 맞선 이들의 투쟁은 실제 상암동 홈에버 월드컵점을 점거하면서 오랫동안 계속되었고, 파업을 주도한 노조지도부들이 복직을 포기하는 조건으로 나머지 조합원들만이 겨우 복직할 수 있었다.

지도부들의 희생으로 이룬 절반의 승리이지만, 영화는 절반의 승리에 대한 것보다 절반의 실패에 대한 이야기를 지속해서 다루고 있었다. 실패에 대한 이야기를 주로 다루지만 이것은 절망적이라고 말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불리한 조건 속에서 절박한 연대를 이루어 함께 맞서 싸우는 이들의 모습에 대해서 감히 절망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함께 일했던 정규직 사원들에게 모멸의 시선을 받기도 하고, 마트 소비자들에게도 이들의 존재는 분탕을 일으키는 존재로 괄시받는다. 딱 한 꺼풀만 벗기면 사건은 다르게 보이는데도, 마트 임직원들과 여론에 의해 사건은 축소되고 은폐된다. 영화 끝부분에서 선희(염정아 분)가 마트 방송을 하는 곳에 가서 마이크를 잡고 처절하게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대목은 아무도 이들에게 발언권을 주지 않았다는 것을 모순적으로 드러내는 모습이다.

개봉한 지 3년이 지나서 절반의 실패는 전화위복의 기회를 얻게 되었다. 지난 2월 1일 홈플러스(옛 홈에버) 노사의 정규직 전환으로, 근속 12년 이상 무기계약직 노동자를 기존 정규직 직급인 '선임'으로 전환하기로 합의했다. 실제로 2007년 홈에버 투쟁의 한가운데에 있었던 노동자 중 273명이 이번 정규직 전환 대상에 포함됐다. 이는 국내 마트 중 처음으로 시행되는 정규직 전환 제도이고, 영화의 투쟁이 투쟁으로만 그치지 않고, 기존의 16개월 이상 근무한 비정규직 사원을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한 인사제도보다 한 단계 진일보한 정규직 전환 정책에 도달하게 된 것이다.

그렇지만 이는 모든 곳에서 벌어지는 보편적인 일이 아니라, 대형마트 중 처음으로 시행되는 우리 사회의 특수한 일이다. 조합원들이 10년 동안 멈추지 않고 투쟁했다는 점, 최저임금이 큰 폭으로 인상돼 무기계약직과 정규직의 임금이 크게 차이가 나지 않았다는 점, 정부의 정규직 전환 정책에 따라서 기업이 사회적 책임을 이행하게끔 만든 것이다. 그렇지만, 특수한 한 사례에 그치지 않고 전면적으로 모든 기업과 기관이 사회적 책임을 짊어질 수 있게 공론화되고, 법적 체계가 노동자 편에 설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논의해야 한다.

우리는 홈플러스 노동자의 권익 보호 소식을 접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구조조정으로 내몰린 연세대 청소노동자의 삶을 접한다. 연세대는 최저임금 인상을 빌미로 전일제 노동자를 밀어내고 그 자리에 초단시간 노동자를 고용하고 있다. 전일제 노동자의 인건비를 충분히 부담할 수 있고 전인적인 교육을 담당하는 대학이 노동자의 권익 보호를 등한시하고, 인건비 감축에만 혈안이 돼있는 상황이다. 청소노동자들은 자신과 자신의 뒤이은 사람들의 존재를 위해서 본관에서 잠을 자고 새벽 4시에 일어나 일찍 일을 마치고 투쟁의 현장에서 목소리를 내는 것을 멈추지 않고 있다.

우리 사회 곳곳에는 위기에 몰린 노동자의 삶이 있고, 이들은 여전히 자신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서 분투하고 있다. 승리는 보다 많은 곳에서 보편적으로 쟁취돼야 하고, 보이지 않는 존재들의 목소리는 반드시 확보돼야 한다. 연이어 고용의 주체들은 자신의 행동에 대해서 일말의 책임을 져야 할 것이며, 구태의연한 법과 체계는 이들의 최소한의 지지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바뀌어야 한다.



태그:#카트, #홈플러스, #노동자, #연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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