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는 현재 세계 최고의 프로 축구리그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축구선수들이라면 누구든 한 번쯤 뛰어보고 싶은 '꿈의 무대'이기도 하다.

불과 10여년 전만 해도 한국선수들이 EPL에서 뛴다는 것은 만화처럼 상상 속에서만 가능한 꿈으로 여겨졌지만, 이제는 어느덧 두 자릿수를 넘긴 한국인 프리미어리거들이 배출되며 충분히 현실가능한 목표가 됐다. 2005년 박지성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입단을 시작으로 2018년 현재의 손흥민(토트넘)-기성용(스완지)에 이르기까지 한국축구를 대표하는 수많은 스타들이 EPL에 도전하여 영욕의 시간을 보냈다.

프리미어리그 출범 이래 활약한 한국인 선수는 총 13명. 많은 선수들이 꿈의 무대에 도전하여 한국축구의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왔다. 역대 한국인 프리미어리거중 최고의 업적을 남긴 선수는 역시 '두 개의 심장' 박지성이다. 네덜란드 무대를 거쳐 2005년 잉글랜드로 진출한 박지성은 최초의 한국인 프리미어리거이자 가장 화려한 족적을 남긴 선수로 지금까지도 인정받고 잇다.

호날두-긱스-루니와 어깨 나란히 했던 박지성

박지성, 시즌 첫 골 폭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박지성(오른쪽)이 지난 2011년 8월 28일(현지시각) 영국 맨체스터의 올드 트래퍼드에서 열린 잉글랜드 프로축구 프리미어리그 아스널과의 경기에서 팀의 다섯 번째 골을 넣은 뒤 기뻐하고 있다. 이날 맨유는 8-2로 대승을 거뒀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박지성(오른쪽)이 지난 2011년 8월 28일(현지시각) 영국 맨체스터의 올드 트래퍼드에서 열린 잉글랜드 프로축구 프리미어리그 아스널과의 경기에서 팀의 다섯 번째 골을 넣은 뒤 기뻐하고 있다. 이날 맨유는 8-2로 대승을 거뒀다. ⓒ 연합뉴스/EPA


박지성은 유럽 경력의 유일한 흑역사로 거론되는 QPR에서의 1시즌을 제외하면 잉글랜드 최고명문 맨유의 주요 선수 중 한 명으로 무려 7시즌(2005~2012)이나 활약했다. 박지성은  리그에서만 134경기에 출전하여 19골을 기록했으며 리그 우승 4회, 리그컵 우승 3회, 챔피언스리그와 클럽월드컵 우승 1회 등 무수한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한국인 선수가 챔피언스리그 우승과 결승전 무대에 선발 출장한 경력도 박지성이 유일하다.

박지성이 활약하던 시기의 맨유는 요즘과는 달리 EPL와 유럽무대를 호령하던 최전성기 시절이었다. 박지성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라이언 긱스, 나니, 안토니오 발렌시아 등 하나같이 세계적인 선수들과 경쟁하며 당당히 어깨를 나란히 했다는 점에서 한국 축구 팬들에게도 큰 자부심이 됐다.

물론 박지성은 엄밀히 말해 맨유 시절 호날두나 긱스 같은 붙박이 주전이나 에이스는 아니었다. 비교적 많은 출장 기회를 얻었던 시즌에도 주전과 벤치를 오가는 로테이션 멤버에 더 가까웠다. 맨유가 우승을 차지했던 2007~2008시즌 챔피언스리그 토너먼트에서 좋은 활약을 선보이고도 정작 결승전에서 선발명단에서 제외된 것은 박지성의 커리어에서 가장 안타까운 순간으로 꼽히기도 한다.

박지성은 비록 EPL에서 탁월한 기술이나 체력조건을 지니지는 않았지만 뛰어난 전술 이해도와 멀티플레이어라는 자신만의 장점을 잘 살려 맨유에서 '팀 플레이어'로 확고한 입지를 구축했고, 강팀과의 빅매치에서 누구보다 강한 모습으로 벤치의 신뢰를 받는 선수로 자리매김했다.

'이달의 선수상' 받은 '월드클래스' 손흥민

'1골 1도움' 손흥민 활약 토트넘, 에버턴에 4-0 대승  잉글랜드 프로축구 토트넘 공격수 손흥민(7번)이 13일(현지시간) 영국 런던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7-2018 프리미어리그 23라운드 홈경기에서 전반 26분 에버턴의 문 안으로 팀의 선제골이자 결승골을 집어넣고 있다. 이날 1골 1도움을 기록한 손흥민의 활약에 힘입어 토트넘은 에버턴에 4-0 대승을 거두었다.

▲ '1골 1도움' 손흥민 활약 토트넘, 에버턴에 4-0 대승 잉글랜드 프로축구 토트넘 공격수 손흥민(7번)이 지난 1월 13일(현지시간) 영국 런던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7-2018 프리미어리그 23라운드 홈경기에서 전반 26분 에버턴의 문 안으로 팀의 선제골이자 결승골을 집어넣고 있다. 이날 1골 1도움을 기록한 손흥민의 활약에 힘입어 토트넘은 에버턴에 4-0 대승을 거두었다. ⓒ EPA/연합뉴스


'흥날두' 손흥민은 박지성의 뒤를 이어 한국인 프리미어리거의 간판 계보를 잇고 있다. 지난 2015년 아시아 선수 역대 최고 이적료(약 3000만 유로)기록을 세우며 독일 분데스리가 레버쿠젠을 떠나 토트넘에 입성한 어느덧 프리미어리그에서 세 번째 시즌을 맞이하며 한국축구와 아시아 출신 유럽파의 역대 기록을 잇달아 갈아치우는 중이다.

손흥민은 2년차였던 2016-17시즌 리그 34경기에 출전해 14골을 넣으며 2014-15시즌 기성용이 기록했던 역대 아시아 프리미어리거 한 시즌 최다골(8골) 기록을 갈아치웠다. 손흥민은 토트넘 세 시즌 동안 리그 26골을 넣으며 박지성(19골)의 아시아 통산 최다골 기록도 넘어섰다. 역대 한국인 선수 13명이 프리미어리그에서 기록한 총 득점은 총 78골인데 이중 3분의 1을 손흥민 혼자 몰아넣은 것이다. 2016년 9월과 2017년 4월에는 두 번이나 '이달의 선수상'을 수상하기도 했는데 이 역시 아시아 프리미어리거로는 손흥민이 유일하다.

박지성이 이타적인 플레이와 다재다능한 전술소화력이 돋보이는 '언성 히어로'였다면, 손흥민은 득점기록에서 보듯 '골잡이'로서 EPL에서 자리잡은 최초의 한국인 선수다. 이동국, 박주영, 지동원 등 많은 한국인 공격수들이 EPL에 도전장을 던졌지만 손흥민 이전까지는 이렇다 할 성공사례가 없었다. 손흥민은 현 시대의 한국인 선수중 차범근-박지성 이후 가장 '월드클래스'에 근접한 선수라는 평가다.

'한국축구의 캡틴' 기성용은 한국인 프리미어리거 최다 출전 기록을 눈앞에 두고 있다. 기성용은 지난 1월 31일 아스널전까지 프리미어리그 통산 154번 경기를 소화하며 박지성이 보유한 한국인 프리미어리그 최다 출전과 타이 기록을 수립했다. 한 경기만 더 출장하면 기성용은 새로운 기록의 주인공이 된다.

2012년 스완지시티로 이적하면서 프리미어리그에 데뷔한 기성용은 첫 시즌 29경기에 출장했고 이듬해는 선덜랜드에 임대되어 27경기(선발 25경기)에 나섰다. 2014-15시즌부터 다시 스완지시티로 돌아와 3시즌간 33경기-28경기-23경기에 출장하며 꾸준히 팀의 주축으로 활약했다. 올시즌에는 부상이 잦았음에도 13경기에 나서면서 건강할 때는 꾸준히 주전급으로 중용되고 있다.

소속팀이 몇 년간 계속된 강등 전쟁과 감독교체를 반복하며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기성용은 여전히 프리미어리그에서 수준급 미드필더로 인정받고 있다. 유럽 선수에게 밀리지않는 우수한 피지컬과 기술력을 겸비하여 유독 몸싸움이 격렬한 프리미어리거에서 아시아 선수로는 드물게 중앙 미드필더겸 플레이메이커로 장수하고 있다는 것이 바로 기성용의 가치를 증명한다.

기성용, 프리미어리그 개막전 선제골 지난 2014년 8월 16일, 스완지 시티의 기성용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의 EPL 개막전에서 선제골을 넣은 후 동료들에게 축하를 받고 있다.

▲ 기성용, 프리미어리그 개막전 선제골 지난 2014년 8월 16일, 스완지 시티의 기성용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의 EPL 개막전에서 선제골을 넣은 후 동료들에게 축하를 받고 있다. ⓒ 연합뉴스/EPA


앞으로 한국인 프리미어리거가 써내려 갈 역사를 기대하며

이밖에 이영표(전 토트넘/ 2005-2008, 70경기)와 설기현(전 레딩, 풀럼/ 2006-2010, 48경기 5골)도 EPL에서 나름의 족적을 남긴 선수들로 기억된다. '성공한 유럽파 수비수'의 원조인 이영표는 박지성과 동시대에 토트넘에서 측면 수비수로 3시즌을 활약했다. 전성기에는 당시만 해도 유망주에 불과하던 가레스 베일(레알 마드리드)을 밀어내고 주전 풀백을 꿰찰만큼 안정감에서는 꽤 호평을 받았다. 

크로스나 오버래핑 등 현대축구에서 요구되는 풀백의 공격적인 면에서는 EPL 수준에 미치지 못했다는 지적도 있었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불리한 체격적 조건에도 불구하고 이영표 이후 그만큼 유럽무대에서 오랜 시간 안정적으로 자리잡은 한국인 수비수도 없었다는 점에서 시간이 흐를수록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설기현은 2부리그 챔피언십 시절을 포함하여 풀럼, 레딩, 울버햄튼 등에서 활약했다. 레딩 시절에는 EPL 선수랭킹 11위까지 오르며 단기간이나마 박지성-이영표보다 높은 평가를 받던 시기도 있었다. 이 기록은 훗날 손흥민에 의하여 깨지기 전까지 한국인 프리미어리거로는 가장 높은 랭킹에 오른 기록이었다. 하지만 한 팀에서 오래 머무르지 못했고 풀타임으로 꾸준한 활약을 보인 시즌이 없었다는게 아쉬움으로 남아있다.

야심차게 도전장을 던졌던 한국인 프리미어리거들이 모두 성공한 것은 아니다. 김두현(당시 웨스트브로미치), 이동국(미들즈브러), 조원희(위건), 박주영(아스널), 김보경(카디프), 윤석영(QPR), 지동원(선덜랜드) 등도 한때 EPL 무대를 밟았으나 모두 프리미어리그에서 이렇다 할 존재감을 남기지못하고 조용히 사라졌다. 특히 '아스널의 유령' 박주영이나 '골없는 공격수'라는 오명을 들었던 이동국은 지금도 EPL 역사상 '최악의 영입'을 선정할 때 종종 이름이 오르내릴 만큼 소속팀에도 '흑역사'로 남았다.

현지진행형인 이청용(크리스탈 팰리스)은 역대 한국인 프리미어리거 중에서도 가장 파란만장한 행보를 걷고 있는 인물이다. 기성용이나 손흥민보다 먼저 잉글랜드 무대에 진출하여 벌써 9시즌째 한국인 선수 중 가장 오랜 기간을 활약했지만, 명암이 극명하게 교차한다.

볼턴 시절 초창기에는 탁월한 기술을 앞세워 빅클럽의 관심까지 받을만큼 승승장구했지만 2011년 다리 골절 부상과 소속팀의 2부 강등이라는 악재가 겹치며 점차 내리막길에 접어들었다. 최근에는 주전경쟁에서 밀린 팰리스를 떠나 출전기회를 확보하기 위하여 친정팀인 챔피언십 볼턴으로 임대 이적을 시도하다가 무산되며 아쉬움을 남기기도 했다.

한국인 선수들과 강등과의 악연도 빼놓을수 없다. 박지성과 윤석영, 김보경, 이청용 등은 소속팀에서 2부리그 강등을 경험하는 굴욕을 맛보기도 했다. 올시즌도 기성용의 스완지와 이청용의 팰리스 등이 강등권 탈출을 놓고 치열한 생존경쟁을 펼치고 있는 상황이다.

빛도 그림자도 있었지만, 한국인 선수들은 끊임없이 빅리그에 도전하여 자신들만의 스토리를 만들어왔다. 지금까지 이뤄온 것보다 앞으로 더많은 태극전사들이 프리미어리그에서 써내려갈 새로운 역사가 더 기대된다.


☞ 관점이 있는 스포츠 뉴스, '오마이스포츠' 페이스북 바로가기

축구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