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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하는 바는 여성이 아닌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지난 1일, JTBC 뉴스룸 손석희 앵커는 한 문장을 소개하며 브리핑을 시작했습니다. 그가 한 대학에서 교수로 재직하던 시절 만났던 제자 송보경씨가 보내온 편지 내용입니다. 송씨는 #예술계_내_성폭력의 생존자이기도 합니다. 그녀는 서지현 검사의 증언 이후 '한국판 #미투 운동이 시작되고 있다'고 앞다투어 보도하는 언론의 행태를 지적했습니다. 그 이전에 터져나왔던 여성들의 증언을 사실상 삭제하고 있다는 겁니다. 송씨의 편지가 손 앵커에게도, 우리에게도 뼈아프게 다가오는 이유입니다. <오마이뉴스>는 송씨의 동의를 구하고 해당 편지글의 전문을 싣습니다. 그녀는 이 기고를 통해 '피해자들과 조력자들이 힘을 내면 좋겠다'고 강조했습니다. [편집자말]
 이제, 당신이 우리의 말을 들어야할 때입니다.
 이제, 당신이 우리의 말을 들어야할 때입니다.
ⓒ 뉴스룸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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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석희 교수님께 송보경 드림.

교수님 안녕하세요, 송보경입니다.

아시다시피 2016년 #예술계_내_성폭력의 피해자로 폭로를 하고, 그해 연말 가해자로부터 명예훼손 고소를 당했습니다. 수도 없는 도움을 받았습니다. 각오는 했지만, 그래야만 죽지 않을 수 있는 날들이었습니다.

그런데 한 번도 후회한 적은 없습니다. 어두운 상황 때문에 사람들과 멀어지고, 가족들에게 숨기느라 마음이 터질 것 같고, 하고 싶은 것들이 미뤄져도요. 몸은 망가져 조사 직후에는 2, 3주 걷지 못하기도 했고 지금은 평생 갈지도 모른다는 섬유근통증 진단을 받았습니다. 그래도 후회하지 않았습니다. 구구절절 힘든 이야기가 있지만, 핑계 대지 않고 열심히 움직였으니 다 적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 검찰 내 성폭력 사건이 터졌습니다. 언론에서는 '한국판 #미투(MeToo)'라고 일컫더군요. 모 언론은 '한국에서는 이런 것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이런 생각을 증명하듯 기사들이 터져 나왔습니다. 교수님, 제 나이에 맞는 단어일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저는 지금 환멸을 느낍니다.

이것은 제 사적 감정을 떠나 언론의 문제임을 아셔야 합니다.

2016년 #예술계_내_성폭력 폭로로 인해 아직까지 많은 피해자와 조력자들에게 보복성 고소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어쩔 수 없이 '명예훼손' 혐의를 거짓으로 시인하는 것부터 자살 시도까지, 아직도 모든 피해는 '진행 중'입니다.

이러한 실태를 모르는 것과 묵인한 것은 여성이 검사여도 성폭력의 피해자가 되는 나라에서 언론으로서의 임무를 다 하지 못한 것입니다. 또, 한국에서 그동안 이런 증언이 없었다고 말하는 보도는 그동안의 방관을 책임지지 않으려는 것입니다. 가해동조인들이 그 말 아래 숨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거의 모든 여성이 폭력의 피해자인데, 이런 상황에 놓이면 묘한 죄책감을 느끼게 됩니다. 내 폭력은 법적 사건으로 비화되지 않았기 때문에, 재판 단계로 넘어갔을 때 더 나쁜 결과를 마주하는 피해자가 있기 때문에... 이런 식으로 더 아픈 사람들을 걱정하고, 자신의 작은 안위를 부끄러워합니다. 2017년 그것과 싸우느라 힘들었습니다. 그러나 그들과 그 시간을 두고 오고 싶지도 않습니다. 그래야만 도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슬픔과 고통으로 저마다 시간을 늦춰 서로를 도운 수많은 이들이 있습니다. 이 사람들의 존재를 없애고 나아가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이 서사를 삭제하고 나아갈 순 없습니다 

제가 교수님께 <참고문헌 없음>이라는 책을 드린 것은, 그 내용이 누구에게도 말하기 힘들지만 너무나 만연한 일에 대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어렵게 그 고통을 가르쳐주는 피해자들에게 감사하기 때문입니다. 그 자리에서 당연히 'No'를 외치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그래서 얼마나 많은 여성들이 꿈을 접고 고립되었는지 언론인으로 개인으로도 아셔야 하기 때문입니다.

교수님의 인터뷰가 이러한 부분에서 비판을 받고 있더군요. 그래서 그 영상을 보지 못했습니다. 저는 용감하지만 교수님을 사랑하고, 그 마음이 다치는 것이 두렵습니다. 교수님께 멀리서 의지해온 시간들을 버려야하는 것이 아직 두렵습니다. 교수님은 '너희는 나에게 배우는 것이 아니라 경쟁한다는 마음으로 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인터뷰를 보지도 못하는 지금, 그 마음으로 편지를 쓸 수 없어 괴롭습니다.

교수님 저는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사건으로 가지 못하고 침묵하는 여성도, 저처럼 폭로를 통해 사건화하는 여성도 원하는 바는 여성이 아닌 사람으로 거듭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부족한 저의 메일을 보고 한때 가르침 받은 놈이 건방져 영영 멀리하고 싶으시다면 그것도 안타깝고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저는 사건을 겪으면서 많은 사람들과 이별했고, 그들을 사랑하는 저의 마음과도 이별했습니다. 두려움 속에서 메일을 써 부족합니다. 교수님 곁에 저와 같은 말을 더 훌륭하게 전하는 이들이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늘 건강하세요. 감사합니다.

* 편지가 소개된 뉴스룸 영상(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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