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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 마을로 박씨 성을 가진 분이 귀촌했습니다. 공무원으로 생활하다 정년퇴직을 한 초로였지만 아주 건강해 보이는 풍채를 가지신 분이었습니다. 집 바로 옆에 딸린 500여 평의 밭뙈기도 사 농사도 짓겠다고 했으니 얼마쯤은 귀농에 해당하는 귀촌입니다.

농사 지을 땅이 넓지 않으니 몸에 해롭다는 농약 한 방울 치지 않고, 제초제도 사용 하지 않는 농사를 짓겠다고 했습니다. 거름도 퇴비만 주겠다고 했습니다. 어차피 가족들만 먹을 것이니 양이 좀 덜 나고, 질이 좀 떨어지더라도 건강만을 생각하는 그런 농사를 짓겠다고 했습니다.

이사를 온 첫해부터 부부는 밭에 붙어살다시피 했습니다. 여명이 밝아오는 새벽에도 밭에 있었고, 어스름이 내려앉는 저녁에도 밭에서 보였습니다. 풀이 나면 뽑고, 미처 뽑지 못해 어느새 웃자라 있는 풀은 낫으로 깎았습니다.

어떤 날은 퇴비를 뿌리고, 어떤 날은 벌레를 잡는다며 쌀뜨물에 뭔가를 섞어 뿌렸습니다. 마치 커다란 정원을 가꾸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렇게 열심히 한 때문인지 그분들의 밭은 항상 깨끗했습니다.

두 해 째가 되던 한여름, 장마철이 지나고 찜통 속 같은 무더위가 계속 될 때쯤, 그분들 밭에서 무성한 풀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이쪽을 풀을 뽑고 나면 어느새 무성히 자라있는 저쪽 풀을 감당할 수가 없다고 했습니다. 발버둥을 치듯 노력해도 쑥쑥 자라나는 풀을 이길 수가 없다고 했습니다.

그분들이 지칠 대로 지쳐 풀과 씨름을 하고 있던 때, 이웃해 있는 밭에 제초제를 뿌리러 갔던 친구가 박씨 아저씨에게 "제초제 한 번 뿌려 주느냐?"고 물었습니다. 평소 같으면 손사래를 치며 "괜찮다"고 했을 그분이 이제 더는 못 이기겠는지, "시험 삼아 한 번 뿌려보자"고 하더랍니다.

지금이야 그 효과(맹독성)를 많이 누그려트려 놨지만 그때만 해도 제초제가 보이는 효과는 빠르고 대단했습니다. 제초제 살포가 끝날 때쯤이면 제일 먼저 제초제를 뿌리기 시작한 곳에 있는 풀들은 이미 비들비들 말라가고 있는 게 눈에 보일 정도로 빠르고 강했습니다. 그해 이후, 박씨 아저씨는 어느새 제초제, 농약, 비료 예찬론자가 되어 있었습니다.

이 세 가지, 제초제, 농약, 비료가 없으면 밭 한 뙈기는커녕 반 뙈기 농사도 짓기 버거운 게 요즘 농업의 현실이자 실제입니다. 농약이 없으면 해충들을 이길 수 없고, 제초가 없으면 풀을 이길 수가 없습니다. 비료를 치지 않으면 제대로 된 결실을 얻을 수 없고, 트랙터나 콤바인 같은 농기계가 없으면 논 갈고 밭 가꾸는 것이 불가능해진 세상입니다.

의문이고 걱정입니다. 농사를 지으려면 반드시 이런 농기계와 저런 비료에 의존할 수밖에 없고, 맹독성 농약과 제초제에 포로가 돼야만 경쟁력을 가진 농사를 지을 수 있는지가 걱정이고 의문입니다.  

먹거리 건강을 위한 <자연농법>

<자연농법> / 지은이 후쿠오카 마사노부 / 옮긴이 최성현 / 펴낸곳 정신세계사 / 2018년 1월 5일 / 값 22,000원
 <자연농법> / 지은이 후쿠오카 마사노부 / 옮긴이 최성현 / 펴낸곳 정신세계사 / 2018년 1월 5일 / 값 22,000원
ⓒ 정신세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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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농법>(지은이 후쿠오카 마사노부, 옮긴이 최성현, 펴낸곳 정신세계사)에서는 이런 농사, 타락할 대로 타락한 요즘 농사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커다란 걱정 거리가 된 농약 농사, 제초제농사, 비료농사 등을 획기적으로 반전시킬 수 있는 농사법, '자연농사법'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막연한 기대, 추상적인 주장이 아닙니다. 저자 스스로 농사를 지으며 체득한 실사구시의 결과물이자 보고입니다. 이렇게 농사지으면 농기계를 이용해 갈지 않아도 되고, 무농약 무제초제 농사가 가능하다는 것을 실감나게 입증하며 설명하고 있습니다.

농업대학을 졸업한 저자는 서른다섯 살이 되던 해에 귀농해 세상을 떠날 때까지 자연이 짓는 농사에 시중을 드는 심부름 농사꾼으로 살아갑니다.

그렇게 '무경운, 무비료, 무농약, 무제초'로 짓는 농사가 '자연농법'이고, 시중드는 요령을 조목조목 설명하며 정리해 놓은 것이 이 챙의 내용입니다. 

"자연농법은 아주 간단명료하다. 가을에 벼를 베기 전에, 벼이삭 위로 클로버 씨앗과 보리 씨앗을 흩뿌려둔다. 싹이 터서 수 센티로 자란 보리를 밟으며 벼 베기를 하고, 사흘가량 말린 뒤 탈곡을 한다. 이때 나오는 볏짚은 모두 그대로 논에 뿌려놓고, 닭똥이 있으면 그 위에 뿌려놓기만 하면 된다. 이것으로 보리와 볍씨 뿌리기가 모두 끝나며, 보리를 벨 때까지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 수확할 때를 빼면 300평당 1인 또는 1인의 일손이면 충분하다." - <자연농법> 28쪽


자연농법에는 4대 원칙이 있습니다. 첫째, 무경운, 땅을 갈지 않는 것입니다. 둘째, 비료를 쓰지 않는 것입니다. 셋째, 무제초, 김매기를 하지 않는 것입니다. 다섯째, 무농약, 농약을 사용하지 않는 것입니다.

요즘의 농사법에 익숙해져 있는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땅도 안 갈고, 비료도 안 하고, 풀도 안 뽑고, 농약도 안 하는 게 무슨 농사냐는 반문이 생길 것입니다. "말장난 하냐?"는 반감까지 생길 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이러한 반문이나 반감이 어쩌면 얄팍한 지식이 가져오는 관성적 반감일 수 있다는 것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자연을 응시하다보면 땅이 가지고 있는 능력에 무임승차 하듯 편승할 수 있을 지혜가 생길 것입니다.

건강한 먹거리 농사를 위한 길라잡이

게으름 피우고, 팽개치듯 방치하는 게 자연농법이 아닙니다. 심을 것 심고, 뿌릴 것 뿌리되 자연, 주어진 여건이나 환경에 맞춰 지으면 자연이 알아 농사 지으니 시중 정도만 들며 지을 수 있는 게 '자연농법'입니다.

바로 이런 자연농법, 자연을 살필 수 있는 지혜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고, 먼저 경험하며 자연이 짓는 농사에 시중정도는 들어 줄 수 있는 일머리 요령을 비법 아닌 비법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것저것 살피지 못하고 생산량만을 놓고 우선 경쟁해야 하는 숨 가쁜 농사를 지어야 하는 입장이라면 허무맹랑하기 그지없는 헛소리처럼 들릴 것입니다. 하지만 건강한 먹거리를 염두에 둘 수 있는 농사를 지을 수 있는 입장이라면 건강한 먹거리를 얻을 수 있는 일석다조의 농법이 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언젠가는 모든 농업이 지행해야 할 처음이자 끝이 될 목표, 농사는 자연이 짓고, 농부는 그 시중을 드는 농법으로 귀결시켜 줄 이정표가 될 거라 기대됩니다.

덧붙이는 글 | <자연농법> / 지은이 후쿠오카 마사노부 / 옮긴이 최성현 / 펴낸곳 정신세계사 / 2018년 1월 5일 / 값 22,000원



자연농법 - 농사는 자연이 짓고, 농부는 그 시중을 든다

후쿠오카 마사노부 지음, 최성현 옮김, 정신세계사(2017)


태그:#자연농법, #최성현, #정신세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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