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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2018년의 핵심 키워드 중에 하나는 '밀양'이 될 것으로 보인다. 밀양, 密陽, 영화 밀양의 영문 타이틀은 '시크릿 선샤인(Secret Sunshine)', '남모르는 은밀한 햇살' 정도로 해석될 수 있다. 이 해석은 물론 밀양의 한자말 뜻을 문자적으로 풀어 쓴 것이다.

그렇다면 '밀양'이 전하고자 하는 '은밀하게 숨겨진 햇살'은 무엇일까?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아들의 살인자를 용서하겠다는, 어쩌면 더 이상 이 고통을 안고 살아갈 수 없어서 이젠 잊기로 했다는 한 여인, 자신이 살해한 아이의 엄마 앞에서, 살인자는 말한다. "나는 이미 주님의 은혜로 용서를 받았다"고. 인간인 당신의 용서 따위는 더 이상 의미가 없다고.

종교가 얼마나 극단적으로 반사회적인 인격장애(sociopath) 집단이 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들에게는 더 이상 자신에게도 타인에게도 그 어떤 '부끄러움'의 성찰이 불가능하게 된다.

불교에서는 이런 현상을 무참(無慘), 무괴(無愧)라고 하는데, 이 둘은 모든 악행에 항상 동반하는 근원적인 요소이다. 다시 말해 종교가 모든 악행의 뿌리가 되는 심성(心性)적 요소를 제공하게 된다는 것이다.

하여 다시 묻는 질문, '밀양'에 숨어있는 '은밀한 햇살'은 무엇일까?
 하여 다시 묻는 질문, '밀양'에 숨어있는 '은밀한 햇살'은 무엇일까?
ⓒ 파인하우스필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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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마 소리내어 부르기도 고통스러운 이름, 그 세월호를 모욕하고 저주하였던 자들이 세월호의 이름으로 도덕성을 운운하는 기막힌 상황이 용납되는 딱 그 정도의 사회에 아직 우리는 살고 있다.

인간의 고통과 양심의 소리에 대한 불감증은 한국 사회의 종교들에 일반적인 현상이 된지 오래다. 도덕적 감수성을 무감각하게 하는 모르핀 중독의 상태는 이미 영혼 깊은 곳까지 스며들었다. 수백 명의 아이들이 침몰하는 배에 갇혀 죽어간 그 울부짖음에 대해서도 교회가 '소풍'이나 '주님의 뜻'을 입에 올릴 수 있을 정도로 그들의 인간성은 망가졌다.

때문에 이젠 비록 보잘것없고 부끄러운 인생이긴 하지만, 인간다운 모습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거룩한 종교 같은 것은 버려야 할 시간이 오고 만 것이다. <밀양>에서 그렇게 간절히 신을 찾았던 신애가 그들의 신과 결별할 수밖에 없었던 것처럼. 오늘 밀양은 데자뷰로 다시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최근 안태근이라는 거룩하고 스스로 용서의 은혜를 받은 자의 신앙고백이 회자되고 있다. 셀프 용서에 대한 '믿음'으로 무릎을 꿇은 권력자와 거룩의 숄을 어깨에 두르고 빙 둘러선 성직자들의 기이한 광경. '잃어버린 한 영혼을 긍휼히 여기는 주님의 은혜'로 포장하는 종교가 그 배후에 서 있다.

자기도 속이고 남도 속이는 거짓일 뿐이다. 가난하고 병약하고 소외당한 수많은 영혼들이 심장이 쪼개지는 고통으로 몸부림칠 때, 그들의 거룩함은 어디에 있었는가? 절망에 빠진 사람들이 울부짖을 때, 그들은 듣는 흉내라도 내었는가?

단언컨대 오늘날 한국의 종교들은 자신들의 교주를 배반한 사이비들에 지나지 않다. 비구의 근본계율을 파기한 자들이 이판사판의 수장이 되는 불교도 그렇고 소외된 자들의 울부짖음을 못들은 척 하는 기독교도 마찬가지이다. 가난하고 소외된 자들에 대한 기사가 너무도 차고 넘쳐서 그것을 도려낸다면 성서가 누더기가 될 정도임에도 그에 대해서는 굳이 모르쇠한다.

변방에서 바람 앞의 촛불 같았던 약자 이스라엘을 향한 성서의 메시지는 너무도 분명하다.

"그 때에 네가 주님을 부르면 주께서 응답하실 것이다. 네가 부르짖을 때에, 주께서 '내가 여기에 있다'하고 대답하실 것이다."(이사야58.9, 표준)

고통 가운데 있는 사람들이 울부짖을 때, 반드시 응답이 있을 것이라는 희망의 메시지는 다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수 없이 반복된다. 한국교회와 같은 종교집단들에게 전하는 경고는 더욱 엄중하다.

"그들이 너를 보고 '네 집을 부유하게 하려고 부당한 이득을 탐내는 자야, 높은 곳에 둥지를 틀고 재앙에서 벗어나려 하지만, 너는 망한다' 할 것이다.(9절) 네가 뭇 민족을 꾀어서 망하게 한 것이 너의 집안에 화를 불러들인 것이고, 너 스스로 죄를 지은 것이다.(10절)
담에서 돌들이 부르짖으면,
집에서 들보가 대답할 것이다."(하박국 2장 11절, 표준)

부정의한 행위를 자행하면서도 이득을 탐하고 재앙에서는 벗어나려고 하는 자들에 대한 경고는 단순하다. '너는 망한다.' 고통 가운데 부르짖음이 있으면 반드시 응답이 있을 것이다. 심지어 그 원한이 담벼락에 묻혀 돌들이 부르짖는다면 그 집의 대들보라도 대답을 할 것이다. 고난의 부르짖음에도 불구하고, 신의 이름을 입에 올리는 자들이 응답하지 않는다면, 산천이 그에 반응할 것이며, 야훼가 직접 개입하고야 말 것이다.

"너희는 너희에게 몸붙여 사는 나그네를 학대하거나 억압해서는 안 된다. 너희도 이집트 땅에서 몸붙여 살던 나그네였다. 너희는 과부나 고아를 괴롭히면 안 된다.
너희가 그들을 괴롭혀서, 그들이 나에게 부르짖으면, 나는 반드시 그들의 부르짖음을 들어주겠다."(출애굽기 22장 21-13)

나그네들, 과부와 고아와 같은 약자들이 부르짖을 때, 야훼를 따르는 자들은 반드시 응답해야 하는 종교적 의무를 진다. 그들이 고난의 부르짖음에 응답하지 않는다면, 산천이 울부짖을 것이며, 그 부르짖음이 신원되지 않아서 신에게 향하면, 야훼신이 직접 개입할 것이다.

이것은 신과 인간의 파기할 수 없는 계약이기 때문에, 야훼신의 의무에 속한다. 모름지기 믿음이란 이런 것이다. 거룩의 휘장을 두른 교회나 법당에서 펄펄 살아있는 신앙을 찾을 있는 것이 아니다.

하여 다시 묻는 질문, '밀양'에 숨어있는 '은밀한 햇살'은 무엇일까?

아직도 뇌리에 선하게 남아있는 신애의 그 울부짖음, 세상의 모든 소리를 잠들게 하고 미처 목구멍을 벗어나지도 못한 절규의 메아리가 세상으로 터져 나올 때, 밀양의 비밀은 햇살을 드러낼 것이다. 가슴 깊이 숨겨둔 고통과 한을 끌어내어 부르짖을 때, 그 때 신들은 응답할 것이고 비밀은 벗겨질 것이다. 이제 부르짖을 용기를 갖자. 진정한 믿음은 그곳에 있다.


태그:#밀양, #MET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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