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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북 어부의 아들> 책
 <납북 어부의 아들> 책
ⓒ 오진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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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북', 자기 뜻과 상관없이 북한에 납치되어 갔다는 말이다. 한국 전쟁 당시 많은 납북자가 발생했다. 전쟁 후에도 북과 맞닿은 지역 어부들은 조업 중에 우연히 휴전선을 넘거나 휴전선을 넘은 북측에 의해 납북자 신세가 되기도 했다.

휴전 이후 발생한 납북자들은 북의 선전 도구가 되기도 했지만, 일부는 우여곡절 끝에 되돌아오기도 했다. 납북되었다가 간신히 목숨을 부지하고 돌아온 이들을 기다린 건 북의 지령을 받은 '이중간첩', '빨갱이'라는 의심과 고문이었다. 군사 독재 정권 아래에서 경찰은 납북 피해자들을 감시하며 간첩이라는 허위 자백을 강요했다.

납북 피해자와 그 가족들은 무고하게 수감되는 고통을 감내해야 했고, 숨죽이며 살아야 했다. 아버지가 수감된 동안 아이들은 편모슬하에서 간첩 자식이라는 냉대와 의심을 받으며 온갖 불이익을 당해야 했다.

<납북 어부의 아들>은 여수 한 외딴 섬에서 납북 피해를 당했던 아버지를 둔 저자가 지역사회를 대표하는 기자로 우뚝 서기까지 과정을 담담하게 풀어내고 있다. <오마이뉴스> 심명남 시민기자 이야기다.

저자는 <오마이뉴스> 창간기념일 상인 2월 22일상, 세월호 특별 보도상, 6.4지방선거보도 특별상, 거북선보도 특종상 등 각종 굵직한 상을 수상했다. 작년에는 으뜸과 오름 기사 100개 이상을 쓰고 으뜸상을 수상하여 명예의 전당에도 올랐다.

"한 번도 아빠라는 호칭을 불러보지 못한 아버지 이야기를 싣는다"고 밝힌 저자에게 아버지는 원망의 대상이었다고 한다. 그 아버지는 평생 섬에서 생업에 종사했지만 납북자라는 꼬리표를 달고 경찰로부터 일거수일투족을 감시당해야 했다. 어린 저자를 업고 면회를 갔던 어머니의 회상은 고문기술자들이 활개 치던 군사독재 시절이 어떠했음을 알게 해 준다.

"다들 정보 직원들에게 안 죽을 만큼 맞고 전기고문도 당했어. 그런 일 있고나서 느그 아부지는 몸서리난다며 북한 얘기는 말술이 돼도 절대 말을 안 해. 죽을 때까지 안 하드만. 오죽했으면 북쪽을 보고는 오줌도 안 싼다고 그랬겠냐." -22쪽


아무리 세상이 변했다 해도 납북자 가족임을 스스로 드러내기가 쉽지 않다. 그간 당했던 기억 때문에 그렇고, 여전히 변하지 않은 차가운 시선들이 남아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또한, 세상이 어떻게 변할지도 모를 일인데, 납북자의 아들이라고 고백한다는 건 대단한 용기를 필요로 한다. 저자 심명남 기자는 그 어려운 일을 해 냈다. 어쩌면 그런 용기가 있었기에 지역사회 문제에 파고드는 근성 있는 기자가 되었는지 모른다.

여수 오동도 앞에서 심명남 기자
 여수 오동도 앞에서 심명남 기자
ⓒ 최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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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 기자가 뚝심과 관찰력, 치열한 기자 정신으로 만들어낸 특종들은 세상을 바꾸기에 충분했다. 빗물이 줄줄 새는 26억짜리 거북선 이야기, 부당하게 강제 퇴거될 위기에 처했던 모로코 이주여성 이야기, 세월호 닮은꼴이었던 18년 노후 선박 운행을 막은 기사 등은 그 대표적인 예다. 세상이 떠들썩할 정도의 특종을 터트릴 수 있는 기자에겐 특별한 무엇이 있다.

먼저, 한 번 물면 놓지 않는 불독 근성이다. 기사를 쓰고 그 결과물이 나올 때까지 후속 기사를 쓰기는 쉽지 않다. 근성뿐만 아니라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 기자정신이 없이는 불가능하다.

"거북선 관련 보도를 연속 세편을 쏟아냈다. 보도 후 여수시는 육상에 전시된 거북선 사업에 대해 감사원의 감사를 받았다는 후문이다. 이 기사로 인해 <오마이뉴스>>와 <여수넷통뉴스>에서 두 번의 특종상을 수상했다. 취재과정에서 여수시로부터 "육상에 전시된 거북선을 해양항만청과 조율해 4년 후 신북항이 완공되면 당초 목적에 부합하도록 해상에 전시하겠다"라는  확답을 받아낸 건 의미가 크다." - 229쪽


불독 근성을 갖고 있다고 해서 싸움만 하는 건 아니다. 노력하는 자는 즐기는 자를 당해낼 수 없다고 했다. 심 기자는 시민기자라는 걸 자랑스러워하고, 글 쓰는 걸 즐기는 사람이다. 긴장의 연속인 석유화학공장에서 24년째 교대근무를 하고 있는 저자는 글쓰기에서 스릴을 느끼며 긴장의 끈을 놓지 않는다고 한다. '심 기자'라는 호칭을 자랑스러워하는 그는 휴가마저 취재를 위해 쓸 정도로 우선순위를 기사 작성에 두는 기자다. 이처럼 그의 특별함은 지역사회, 현장을 발로 뛴다는 점이다.

"나는 비번 때 우선순위를 기사 작성에 둔다. 기사를 위해서 취재하고 늘 발로 뛴다. 틈나는 대로 취재를 통해 많은 사람들을 만나다 보니 피곤할 겨를도 없다. 또 하나는 휴가를 아낀다. 중요한 취재를 위해서 아낀 휴가를 활용하기도 한다. 직장생활과 시민기자 생활을 하려면 부지런해야 한다." - 339쪽


불독 근성을 갖고 발로 뛰는 기자, 글쓰기를 즐기는 기자는 오늘도 1000개 기사를 작성하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납북어부의 아들>은 그 과정 중에 나온 책이다. 어쩌면 자신을 더욱 담금질하기 위한 방편이었는지 모른다.

책에서 지명인 제주 김녕을 '김영'(88쪽)이라고 하거나, 자신의 주장이 객관성을 담보했음을 강하게 주장하려 했는지 모르지만, 기자 자신을 '필자'라고 계속해서 칭하는 경우 등은 옥에 티였다. 다른 글쓴이를 뜻하는 3인칭 '필자'를 1인칭으로 쓰는 습관은 권위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심 기자가 결코 권위적이라고 보지 않는다. 그는 여수 해녀 할머니들이 탈의실도 없이 물질하는 모습을 안타까워하는 마음 따뜻한 기자다. 사고가 빈번하게 터지는 여수산단에서 20여년을 근무하면서 이해관계가 있을 수밖에 없을 텐데도 성역 없이 공정하게 보도해 왔다고 자부하는 그에게 그 정도는 눈 감아줄 만하다.


태그:#심명남, #시민기자, #오마이뉴스, #납북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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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과 편견 없는 세상, 상식과 논리적인 대화가 가능한 세상, 함께 더불어 잘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사) '모두를 위한 이주인권문화센터'(부설 용인이주노동자쉼터) 이사장, 이주인권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서 『내 생애 단 한 번, 가슴 뛰는 삶을 살아도 좋다』, 공저 『다르지만 평등한 이주민 인권 길라잡이, 다문화인권교육 기본교재』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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