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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담임 교사의 연락처, 호주에서는 '안물안궁'입니다
 담임 교사의 연락처, 호주에서는 '안물안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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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톡! 메시지가 날라왔다.
 
'답답한데, 통화 가능해요?'

한국에서 살 때, 옆 동에 살던 그녀를 만난 건 우연이었다. 6년 전 나는 임신 중이었고, 그녀는 1살, 4살 남매를 키우고 있었다. 그녀와의 대화는 한여름 소나기 내리듯 상쾌했지만, 독박 육아와 초등 담임으로 외줄 타기 하듯 일상을 유지하던 그녀를 자주 만날 수는 없었다.

사십이 넘는 나이가 갖는 미덕 중의 하나가 '관계의 깊이가 시간의 양과 비례하지 않음'을 깨닫는 일인 양, 우리는 멜버른과 한국에서 장거리 수다를 이어가는 사이가 되었다.

밤 8시가 넘은 시간. 학부모에게 전화로 한 시간 가까이 하소연과 원망 섞인 말을 들어야 했던 그녀는 무작정 밖으로 뛰쳐나왔다. 잠옷 바람에 '마땅히 갈만한 곳'이 자동차뿐이었고, 동네를 무한반복 회전하다가 나를 찾은 것이다. 그녀는 깊게 잠긴, 낮은 목소리로 내게 물었다.

"교사가, 담임이 죄인인가요? 우리는 최소한의 사생활도 보호받을 수 없는 존재들인가요?"

어린 남매를 어린이 집에 맡기며 맞벌이를 하는 엄마들에게 하루는 '투잡 인생'이다. 퇴근 길에 아이의 하원과 더불어 '가정주부'라는 또 다른 명함을 가슴에 달고 죈 걸음과 바쁜 손을 놀린다. 먹이고 씻기고 정리하고 재우는 북새통에, 학부모와의 긴 통화는 그녀를 외줄 타기 일상에서 튕겨 나오게 했다.

경험상, 대한민국 교사(담임)의 전화번호는 쌍방 필요에 의해 학생과 학부모에게 활짝 열려있다. 바쁜 학부모들을 위해 주말에 개방되기도 했다. '사생활 보호'란 구호가 여타 직업과 마찬가지로 교사에게도 '그림의 떡'이었다.

학교 담장 안에서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해외에서 살다 보니 오롯이 모습을 드러내는 경우가 많다. 공과 사를 구분할 수 없는 근로 환경을 '학교 시스템' 자체가 부추기고 묵인하고 동조한다는 의구심이 든다.

교사의 하루 일과 중 '가르치는 일'과  '부수적인 일(교사들은 잡무라 부름)'의 비율이 물리적으론 반반이었다. 중요도로 치자면 4대 6쯤 될 것이다. 수업에 미흡했다고 관리자나 동료교사에게 지적받을 일은 없지만, 잡무 처리에서 실수하면 관리자로부터 호통이 떨어지고 동료교사에게 원망을 듣게 된다.

가끔은 수업 중에 장학사가 호출하는 경우도 있었다. 학교의 특성상, 잡무의 대부분은 학생과 학부모에 관련된 정보를 묻고 수집하고 사인을 받는 일들이다. 결국  담임에게 일이 폭증하기 마련이다. 하루에 수십 건씩 쏟아지는 잡무 처리를 빨리/제때/제대로 해내려면 가장 손쉬운 방법이 전화를 거는 것이다. 이걸 누가마다 하랴.

정말 '친절하고 사려깊은' 선생님을 원한다면

 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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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라, 난 일 년 간 아들 담임의 전화번호도 모르고 살았네!"

아이가 멜버른 초등학교에 입학해서 학년 말이 다 되어 가는데 난 아직 담임의 전화번호도 모른다. 학부모가 교사 개인의 전화번호를 몰라도 불편함이 없도록 시스템이 갖추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학생이 지각하면 행정실에 비치된 노트에 지각 사유를 적어 놓고 'latepass'(레이트 패스) 카드를 들고 교실에 들어가면 된다. 결석을 할 경우에는 부모가 컴파스(한국의 neis와 비슷한 교육포탈사이트)에 들어가 직접 결석계를 제출한다. 아이가 부상을 당하면 sick bay(양호실)에 가고 보건 교사나 행정실에서 학부모에게 연락을 취한다. 물론 사소한 부상은 연락은커녕, 얼음찜질 정도가 최상의 치료다.

또한 교사는 금전에 관한 업무에 일체 관여하지 않는다. 형편이 어려운 가정은 부모가 직접 centrelink(한국의 동사무소)에 가서 concession card(복지카드 같은 것)를 신청하면 자동으로 행정실과 연계된다. 담임이 신경 쓸 사항이 없다. 학생들 간, 교사와 학생 간, 학부모들 간에 각 가정의 빈과 부를 가늠할 수 없는 구조다. 한국 학교에서 문제가 되곤 하는 부모의 경제력에 따른 구별과 차별이 일어나기 어렵다.

"가르치는 일, 아이들과 함께 하는 일만 할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대한민국의 교사들이 한 번쯤은 입에 달고 살았을 법한 문장이 현실이 되는 곳. 꿈이 현실이 된다고 해서 교사들이 나태해지거나, 교육의 질이 하락할 것을 걱정할 필요는 없다. 아침부터 아이들의 치마와 머리 길이를 재고, 지각했다고 벌을 주며 학생들을 잘 휘어잡는 것을 교사의 전문성이나 책무라 여기지 않는다면, 미리 출근해서 그날의 교육을 위해 수업 자료를 준비하고, 교수학습 방식에 맞게 교실을 정돈하고, 기쁜 얼굴로 아이를 맞이하는 교사를 만나게 될 것이다.

학생이 교권을 침해하고, 교사는 학생을 폭언·폭력으로 대하고, 학부모와 교사가 언쟁을 벌이고 법정다툼으로 이어지는 사건이 하루가 멀다 하고 벌어지던 곳에서 10여 년을 근무한 나는 가끔 불안하다.

'학교가 이렇게 평화롭고 민주적으로 운영되어도 되는 건가?'
'이게 꿈이라면 제발 깨어나지 않길…'

덧붙이는 글 | 이글은 개인 브런치와 블로그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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