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염력>은 '류승룡의 영화'라고 해도 과장이 아니다. 단순히 초능력을 지닌 사내로 등장해서가 아니다. 빚보증을 잘못 서 야반도주 한 아빠로서, 자신의 능력에 스스로 놀라는 개인으로서 등 영화에서 다양한 면모를 소화해야 했기 때문이다.   

<염력>에서 그가 맡은 신석헌은 그래서 영웅이 아니라 소시민이다. 십 수 년 만에 만난 딸을 훈계하고, 재개발 광풍에 삶의 터전을 잃어버린 영세세입자들에게 호통 치는 모습은 영락없이 먹고 사는 문제에 허덕이다 청춘을 보낸 기성세대다. 영화는 히어로의 활약보단 신석헌 개인의 각성에 더 비중을 둔 모양새다. 

의외의 코미디

우연히 얻은 초능력을 표현하기 위해 류승룡은 표정연기부터 온몸연기까지 소화해야 했다. 슬랩스틱 코미디 전문가와 안무가에게 따로 몸짓을 배울 만큼 영화엔 류승룡의 다양한 개인기가 담겨있다. "영화 <최종병기 활> 때보다도 힘들었다"며 그가 재치 있게 운을 뗐다.

"연상호 감독님은 애니메이션 <서울역>으로 만나기도 했고, 본래 그의 팬이기도 했다. <부산행>으로 칸영화제를 가기 직전 만나서 <염력> 이야기를 들었다. 시놉시스만 보고 결정했는데 그만큼 빠르게 정한 것이지. 그만큼 설정이 좋다고 생각했다. 영화에 감독님만의 유머나 시선이 잘 들어가 있다. 난 그걸 잘 표현하면 되는 것이었다. 그의 기발함이 좋았다. 촌철살인도 있고, 블랙코미디 요소도 담겨있어서 연상호 감독의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는 분이라면 <염력> 역시 좋아하실 것 같다.

사전에 안무가와 많은 이야기를 하면서 연습했다. 신석헌 스스로 자신이 얻은 능력의 한계를 모르고, 감이 없기에 매순간 인상 쓰면서 최선을 다하려 하잖나. 혀도 막 내밀고(웃음). 이런 모습을 또 과하지 않게 표현해야 했는데 어휴, <최종병기 활> 찍을 때보다 힘들었다. 막상 배우들은 괜찮았는데 제 연기에 스태프들이 웃다가 쓰러지기도 하고(웃음)." 

 영화 <염력>의 한 장면

영화 <염력>의 한 장면. ⓒ 넥스트엔터테인먼트월드


류승룡은 <염력>의 메시지를 "평범한 사람에 대한 통쾌한 응원"이라 정의했다. "신석헌이 자신의 초능력을 나쁜 곳이 쓰지 않잖나"라고 반문한 그는 "소통이 서툰 가족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라고 설명했다.

"신석헌은 항상 도망가는 비겁한 사람이었다. 청소부 아줌마가 자신 때문에 혼나는데도 외면하고, 사람들에게도 괜히 나서지 말라고 하잖나. 그러다가 책임감이 생기고, 어느새 아빠였고 사회구성원임을 깨닫는다. 딸 앞에서 처음으로 아빠의 역할을 제대로 하려는 모습을 보이는데 전 신석헌이 자기와의 싸움에서 이긴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지난 3년

<염력>은 배우 류승룡이 3년 만에 관객 앞에 내놓는 작품이다. <7년의 밤>과 <제5열> 등 또 다른 출연작이 있었지만 후반 작업과 제작 환경 문제로 <염력>이 가장 먼저 공개됐다. 그 스스로는 일을 꾸준히 했다지만 관객 입장에선 일종의 공백기라고 생각할 수 있는 지점이다. 

"본의 아니게 8개월 정도 쉬는 시간이 있었다. 뭐 불안하진 않았고, 그런 시간이 제게 주어졌다는 게 참 소중했다. 너무 앞만 보고 달려온 게 아닐까 스스로 돌아보면서 여행 다니고 그랬다. 인생이 속도도 중요하지만 방향이 중요한데 연기하면서 너무 날 채찍질하고 혹사시켰더라. 그런 상태에서 자신감 있는 모습으로 포장하려는 내 모습에 지쳤던 것 같다. 옛 동료들, 은사님들을 만나면서 여러 이야기를 들었다." 

 배우 류승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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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부생 시절 그의 은사 중 한 분인 김효경 교수는 류승룡에게 '늦게 피는 꽃'이라며 포기하지 말고 계속 연기할 것을 권했다는 일화가 있다. 영화 <아는 여자>(2004)의 단역으로 영화계에 데뷔했을 때 류승룡의 나이는 35세. 보통 사람이라면 포기하고 다른 길을 갈 법하지만 그는 은사님의 말을 붙잡고 뚜벅뚜벅 나아갔다.

"맞다. 김효경 선생님이 그런 조언을 해주셨다. 너는 늦게 피는 꽃이니까 조급해하지 말고 끝까지 하라고. 안타깝게도 2년 전에 돌아가셨다. 그 분도 뵙고, 임권택, 이준익 감독님 등을 만나면서 날 점검했다. 오래 전에 스스로에게 '좋은 배우가 되자'며 했던 약속을 떠올리면서. 같은 소속사 후배인 엄태구나 김대명에게도 그런 이야기를 종종 한다. 나 자신부터 마음이 편해야 보는 사람들도 편하다고 말이다. 다들 오랜 무명을 거쳤고 지금은 제 몫을 해내는 배우잖나.

연기 고민은 끝까지 하겠지. 배우의 종착점은 아무도 모르는 것이니까. 지금으로선 연기를 안 하는 것 같은 연기를 보이는 게 목표다. 참 어려운 일이지. 결국 좋은 사람이 되어야 좋은 배우가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좋은 사람이 되려고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다. 그때그때 하루하루 만나는 사람에게 최선을 다하려 한다. 오늘 하루가 어제의 미래지 않나. 최선을 다해 살고 싶다(웃음)." 

 배우 류승룡.

앞서 언급한 작품 외에 또 다른 그의 차기작은 이병헌 감독의 <극한직업>이다. 여기서도 류승룡 특유의 편안하고 코믹한 모습이 담길 예정. ⓒ NEW



류승룡 염력 심은경 박정민 7년의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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