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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회사에 새로운 제도가 도입되었다. 장기근속자 6개월 무급휴가. 내가 첫 번째 신청자가 됐다. 내 생애 가장 긴 휴가를 오직 2가지만을 위해 쓰기로 했다. 자전거 여행과 독서. 첫 번째 소원을 위해 지난 3개월 자전거 타기와 야영훈련을 했다. 그리고 지인들과 함께 37일간의 남미 자전거 원정을 떠난다. 참가자는 24번의 해외 원정 경험이 있는 김광옥 목사(62)와 전업주부 박정희씨(50), 그리고 직장여성인 나(58), 이렇게 셋이다. 3인의 좌충우돌 안데스 자전거 원정기를 소개한다 - 기자 말

 이제 출국이다. 웃고 있지만 남은 이들과 함께 가는 이들을을 불안하지않게하기위해 태연을 가장했다. 나는 지금 두려움에 다리가 후들거리고 있다. 내가 과연 수없이 해외자전거원정을 다녀온 전사들에게서 낙오되지않을지...
 이제 출국이다. 웃고 있지만 남은 이들과 함께 가는 이들을을 불안하지않게하기위해 태연을 가장했다. 나는 지금 두려움에 다리가 후들거리고 있다. 내가 과연 수없이 해외자전거원정을 다녀온 전사들에게서 낙오되지않을지...
ⓒ 강복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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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 기사 : 장기근속자 6개월 무급휴가, 첫번째 신청자가 됐다)

출국 전날, 경기도 파주에 있는 남편 거처를 방문해 고구마를 삶아 두었다. 내가 없는 동안 먹을 수 있는 간식을 준비하는 것으로 내 생에 최장기 출국에 대한 예의를 갖추었다. 딸들과 아들은 국내외 각자의 자리에서 흩어져 산다. 그런 우리 가족에게 눈물의 공항 송별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1월 14일, 일요일. 드디어 출발이다. 나는 공덕역에서 혼자 공항철도에 오르면서 가족 단체 모바일 채팅방에 문자메시지를 남기며 출발을 통보했다. 안데스의 험지로 모험을 떠나면서도 장기간 가정을 비우는 것이 미안해 최대한 자세를 낮추고 공손한 어휘를 골랐다.

"잘 다녀오겠습니다. 가족 모두 고마워요. 그리고 사랑해요. 나리·주리·영대, 잘 자라 주어 고맙다. 영원한 나의 동반자 서방님 사랑해요."
 
결혼 후 32년간 가정과 직장에 국한돼 살았던 내 자리를 이탈하는 것이 이렇게 미안한 마음인 줄은 몰랐다. 딸, 아들에게조차 존칭을 사용한 문구와 그동안 잊고 지냈던 '사랑해요'라는 표현을 다시 읽으면서 미안한 감정을 새롭게 발견했다.
 
아프리카에서 근무 중인 둘째 딸은 "건강하게만 다녀와 엄마~"라며 염려했고, 파주의 남편은 서정적인 송별사 대신 내가 달릴 안데스 고원의 구간별 루트와 거리를 구글 지도에서 캡처해 채팅방에 올려주는 것으로 답을 대신했다. 현지에서 인터넷 연결이 되지 않을 경우를 대비한 실질적인 배려였다.

남편은 사서 하는 내 고생을 한 번도 말리지 않았다. 행복은 편안하고 안전한 곳에 머무는 것으로 얻어지는 게 아니라 자신의 마음이 하고 싶은 것을 행하는 것에서 비롯된다고 믿는 사람이다.
 
자전거와 야영 장비를 비롯한 짐들은 사흘 전에 미리 이번 원정팀의 대장인 김광옥 목사님 댁에 가져다 놓았다. 항공 화물의 규격 사이즈를 넘지 않도록 자전거를 분해해서 박스 포장을 해야 하는 일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대장님은 24번의 해외 원정으로 체력과 실전경험, 그 어느 것도 빠지는 것이 없고, 팀원인 정희씨는 가정주부이지만 대장님 원정에 몇 번 동행했던 경험을 가진 데다가 가장 젊다는 강점으로 흔들림이 없었다. 단지 용기만 충전해 대원으로 합류한 나는 열정 외에는 아무것도 검증된 것이 없었다.

공항철도 안에서 기대보다 두려움이 앞서는 것은 낙오에 대한 염려이다. 검푸른 안데스산맥만 상상해도 다리가 후들거린다. 낙오의 불명예는 내 개인의 몫으로 감당한다고 하더라도 팀의 전체적인 계획에 차질을 빚게 해서는 안 될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시위를 떠난 화살이다. 과녁을 향해 날아가는 일만이 가능한 상황이다. 아무리 미천한 졸이라도 잘 조련해 승리케 하는 것이 명장이 아니겠는가. 나는 무모한 도전을 결정하던 3개월 전, 대장의 경험과 판단이 내 날개가 되리라 믿었다.

벌써 대장님은 공항에 도착했다는 문자가 왔다. 자전거 3대와 모든 짐을 혼자 용달차에 싣고 출국장에 도착한 것이다. 나는 두려움을 꿀꺽 삼키고 지난 3개월의 훈련 동안 수백 번도 더 되뇐 말을 다시 혼자 중얼거렸다.

"남미, GAZUA(가즈아, 가자라는 뜻의 신조어)!"     
  
나는 0%가 아니기 위해 꿈을 꾸었다     
   
 자전거와 리어 패니어(자전거 뒤쪽에 다는 짐바구니)에 담길 필수적인 장비로만 국한했지만 동행하는 짐이 마치 이삿짐처럼 많아보인다.
 자전거와 리어 패니어(자전거 뒤쪽에 다는 짐바구니)에 담길 필수적인 장비로만 국한했지만 동행하는 짐이 마치 이삿짐처럼 많아보인다.
ⓒ 강복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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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9월 초 남미 리마행 항공권을 구입할 때만 해도 사실 오늘 같은 날이 올지는 확신할 수 없었다. 로스앤젤레스 국제공항에서 환승을 위해 기다릴 때까지도 픽션인 듯 싶었다. 있을 법한 소설 속 이야기. 내가 소원했던 것을 스스로 현실인 양 꾸며쓰고 있는 것은 아닌지 내 볼을 꼬집어 당겨보았다. "아야!" 소설은 아닌 모양이다.

회사에서 처음 시행한 장기근속휴가의 첫 수혜자가 내가 될지도 의문이었고, 첫 장기 여행이 내가 58년을 살아온 그 땅으로부터 가장 먼 남미가 될 줄은 정말 몰랐다. 불과 6개월 전에는 말이다. 더구나 내가 자전거와 함께 비행기를 탈 줄은 더욱 몰랐다.

꿈을 꾼다고 모두 이루어질 수는 없는 일. 하지만 꿈조차 꾸지 않는다면 실현 가능성은 0%. 나는 0%가 아니기 위해 꿈을 꾸었을 뿐이다. 하지만 이것이 현실이 된 것은 나만의 의지가 아니었다. 바람이 불고 구름이 일고 비가 오는 그 우연 같은 조화로움의 결과일 테다.

로스앤젤레스(Los Angeles International Airport)를 경유해 댈러스(Fort Worth International Airport)에서 다시 리마행에 몸을 싣는다. 꿈이라면 리마에서 깨겠지.

덧붙이는 글 | 모티프원의 블로그 www.travelog.co.kr 에도 함께 포스팅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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