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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이다. 그리고 페미니스트다. 지난해엔 방송인 경력이 더해졌다. EBS <까칠남녀>에 출연해 패널들 사이에서 시원하면서도 균형잡힌 발언으로 중심을 잡아줬다는 평을 들었다.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학교 밖에서도 페미니즘에 대해 가르치느라 눈코 뜰새 없이 바쁜 이현재 교수를 '에코페미니즘 컨퍼런스' 마지막 강연자로 모셨다.

'여혐에 대항하기도 힘든데 페미니스트가 자본주의도 비판해야 하느냐'는 질문으로 강연을 시작한 이현재 교수는 페미니즘과 자본주의 비판이 어떻게 만날 수 있는지, 남성 중심적 대문자 자본주의에서 숨막히지 않고 살아가기 위해 수많은 비자본주의적 구멍들을 발견하고 늘려나가야 한다는 것을 차근차근 설명했다. 세상을 바꾸고 싶어하는 '쓰까 페미'(여성 이슈 뿐만 아니라 성소수자·장애 인권 등 다른 사회적 문제에 관심 있는 페미니스트를 이르는 말)들에게 '그뤠잇'한 영감을 주었기를 바라며 강의 요약을 싣는다.

세상을 뒤집는 다른 목소리  이현재교수가 이야기를 관중들에게 들려주고 있다
▲ 세상을 뒤집는 다른 목소리 이현재교수가 이야기를 관중들에게 들려주고 있다
ⓒ 여성환경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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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쓰까 페미일 수밖에 없다

'페미니스트가 자본주의까지 비판해야 하나요?'라는 질문을 많이 받습니다. 우리 너무 힘들어요. 가부장제만 비판하기도 힘든데 자본주의까지 비판해야 하냐고 물으세요. 여성 이미지가 상품화되고 대상화되어서 떠돌고 있고 그 떠도는 이미지가 누구의 욕망을 반영한 거냐면 남성 주체의 욕망을 반영한 거라고 이야기하잖아요. 우리가 상품이면 거기에 욕망을 실현하는 것은 남성이죠. 사실 경제의 순환구조에서 실현되는 건 남성 욕망인 것이고, 나는 거기서 대상화되는 것이고, 이 여성혐오의 구조를 굉장히 잘 순환시켜 주는 게 경제로서의 자본주의죠. 제가 얘기한 게 아니라 여러분들이 많이 하시는 얘깁니다. 

저는 그런 점에서 여성혐오를 얘기하시는 분들은 자동으로 쓰까 페미가 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우리 사회 변화가 문화운동으로만 가능할까요? 개인적인 변화를 통해서만 가능할까요? 아니잖아요. 우리가 쓰까 페미인 이유는 바로 그것이 사회적 구조와 맞물려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죠. 문화적 경향, 인식의 변화 하지 말라는 게 아니라 개인적인 변화가 사회적인 변화가 같이 가야 한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요.

자본주의, 남성경제, 괴물? 스튜핏!

이리가레라는 사람은 자본주의를 '남성경제'라고 표현하면서 '어머니든 처녀든 창녀든 모든 여성들은 남성 경제의 시장 안에서 거래되는 상품이며, 이 상품들이 모두 남성을 위한 가치를 내비치는 거울'이라고 말했어요. 여러분들이 여성혐오를 이렇게 정의하는 데 동의하신다면 그 욕망을 순환시키는 자본주의를 이야기해야 한다는 결론을 당연히 내리실 겁니다. 그런데 그 결론에 이르는 순간 우리는 좌절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남성경제는 너무 강력해 보이거든요. 여성혐오를 토로하는 많은 글들에서 눈을 뜨고 보는 것마다 다 여성혐오라서 솔직히 집 밖으로 못 나가겠다 이런 얘기들을 매우 많이 하는데요, 우리에게 경제, 자본주의도 이렇게 무서운 괴물처럼 보여지진 않을까 생각이 들었어요.

자본주의 담론에서 말하는 자본주의의 특징 중 첫 번째가 통일성이죠. 어떤 원자적인 개인이 자신의 이윤 즉 자본축적을 위해서 행동하는 것을 경제의 본질이자 최종지점으로 생각하는 게 자본주의라고 보는 거예요. 두 번째는, 이게 더 중요한 것 같습니다. 좌파든 우파든 가리지 않고 경제라고 했을 때 되게 웃기게 딱 하나의 경제를 얘기합니다. 즉, 자본주의 경제, 이 말은 뭐냐면 그들이 말하는 경제담론은 공적인 시장, 임금노동, 자본주의 기업 이 3가지 세트로 이루어진 경제를 뜻하는 것이고요, 우파는 이 경제를 어떻게 살릴까 고민하고 좌파는 이 경제를 어떻게 깔까 비판할까에 몰두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세 번째 특징은 총체성입니다. 여러분이 잘 아시다시피 지구화라는 말에 따라서 자본주의 원리는 그냥 우리 지역에만 있는 게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퍼져나가기 때문에 더 무섭습니다. 저렇게 강력한 유일한 경제, 총체적인 경제는 우리 힘으로 막을 수 없어. 왜냐, 그 법칙은 그 자체에 있고 우리 인간은 아무것도 할 수 없어. 그렇게 되죠. 앞서 말했던 해외에 서버를 두고 있는 몰카 촬영물 올리는 사이트들, 이런 것들도 지구화인가요? (웃음) 이런 게 정말로 빨리 돌아가고 있으니까 이걸 스톱시키려고 했던 많은 운동들이 빠른 물결 앞에서 좌절하게 됩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게 되냐면 답이 없어요, 집 밖으로 나가기 싫어요, 변혁운동이요? 운동권 내 여성혐오가 더 강한데요, 촛불 광장에서 성희롱 더 많았는데요, 자본주의를 뒤집자구요? 그게 안 된다는 게 현대사 아닙니까? '아, 그냥 인간이 싫다... 그러니까 나는 키보드 배틀이 답이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사실 우리가 많이 이러고 있죠. 굉장히 분노해있고 세상을 뒤집고 싶었지만 내가 말하면 말할수록 그게 너무 강력해서 좌절하게 되고요, 실제로 욕은 많이 나오지만 내가 바꿀 수 있다는 확신은 들지 않고, 너무 분노가 쌓여서 한번에 확 바꾸고 싶은데 그게 잘 안 되죠. 그렇기 때문에 온라인 밖으로 나오지 않고 온라인 안에서 온라인 배틀로 많은 시간들을 보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스튜핏! 저도 한번 쓰고 싶었어요. (웃음) 이게 사실 우리 생각의 잘못인 것 같다는 거죠. 어째서 그런가. 왜 스튜핏인가? 궁금해하실 여러분들에게 깁슨-그레엄의 이야기를 통해서 어떤 식으로 이 난국을 조금씩 헤쳐나갈 수 있는가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깁슨 그레엄은 사실 필명입니다. 두 사람이 함께 작업해서 책을 냈거든요. 첫 번째 책은 <그따위 자본주의는 벌써 끝났다>  페미니스트 정치경제학 비판이라는 부제가 달려있죠. 근데 페미니스트 정치경제학 비판에서 계속해서 비자본주의 운동 얘기를 계속 하거든요. 대문자 자본주의가 뭐냐 이걸 꼭 알고 가시면 좋겠습니다.

대문자 자본주의가 다른 게 아닙니다. 우리가 여태 말해왔던 방식의 자본주의인데요, 화폐를 통한 시장교환, 임금노동, 자본주의적 기업 이 자본주의적 기업은 여러분이 알고 있듯이 노동자의 잉여 노동으로부터 나온 이윤을 자본가가 갖게 되는 전유하게 되는 구조인데요, 이런 것이 자본중심적 담론이라고 얘기했는데, 우리가 여태까지 자본주의를 저런 식으로만 이해했고 자본주의 뿐만 아니라 경제를 저런 식으로 이해해왔다는 거예요.

매우 재밌게도 이게 페미니스트 정치경제학 비판인 이유는, 이러한 경제 담론은 여성들의 다양한 경제활동을 폄하하거나 삭제하고 있다는 점에서 남근중심적이다라고 얘기를 해요. 그리고 아까 이리가레 얘기를 했는데요 실제로 자본주의에선 남성들의 욕망을 실어나르고 있고, 팔려나가는 상품은 여성의 이미지입니다. 이것을 기억하시면 바로 자본주의 경제라는 논리가 남성의 욕망을 중심으로 남근중심주의와 함께 흘러가는 것이라는 걸 알 수 있어요. 그게 대문자 자본주의고 우리가 자본주의라는 것을 생각할 때 떠올리는 것이라는 거죠.

유령을 불러오자

대문자 자본주의의 역설이라는 것이 있어요. 저것이 모든 세계를 지배하고 있다는 말을 많이 할수록 거기서 빠져나올 수 없기 때문에 공포감에 사로잡히게 되는 거죠, 여성혐오의 구조를 외쳤던 뉴페미조차도 실제로 여성혐오의 구조가 너무 강해서 집밖으로 나올 수 없다는 말을 많이 해요. 이 말은 뭐냐면 우리가 비판하려고 만들어냈던 담론이 우리 발목을 잡아서 우리가 공포감에 싸이게 하는 역할을 오히려 하고 있다는 거예요. 즉, 비판하기 위해서 만들어낸 담론이 내가 비판을 멈추고 좌절하도록 명령하는 이 상황에 대해서 지적을 한 것이죠.

'자본주의가 우리를 다 삼켜버렸다고 얘기하지 않으면 어떻게 얘기하는데' 라고 물었을 때 깁슨 그레엄은 뭐라고 하냐면 '우리에게 다른 경제 언어가 없었기 때문에 다른 많은 경제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많은 용어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언어화되지 않았던 것이다'라고 했어요. 우리가 말하는 방식에 의해서 그것은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치부되는 유령이 되었을 뿐이라는 거예요. 지배적인 상징계 그 언어 속에서 없는 듯 버려지고 폐기되었다는 거죠,

그래서 깁슨 그레엄은 지배적인 담론에 의해서 포섭되지 못했던 많은 다양한 경제들을 불러오는 데서부터 시작하자고 해요. 그리고 우리가 이러한 비자본주의적 경제활동을 불러옴으로써 우리가 지금 여기서 한발 나가서 무엇이든 바꿀 수 있는 가능성을 찾을 수 있다 이렇게 얘기합니다. 그래서 유령 불러오기를 합니다. 굿을 막 하는 거예요. 그래서 다른 언어를 찾게 되는 거, 이게 핵심 관건이잖아요. 그래서 자본주의라고 생각되지 않은 것들을 다 불러와요.

여태껏 자본주의에 의해서 경제활동이라고 생각되지 않았지만 그렇지만 유일하고 굉장히 큰 것이 있다는 것을 발견한 거죠. 그게 바로 부불 가사노동이었구요, 너무 놀랍게도 이게 관점을 바꿔서 경제활동이라고 보는 순간 부불 가사노동이 경제활동에서 30-50%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것이죠. 이렇게 많은 비자본주의적 경제활동을 하고 있는데 우리는 이 사회가 완전히 말끔하게 경제적으로 자본주의적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게 아니냐 우리는 실제로 이런 일을 많이 하고 있는데.

비자본주의 시장도 아니고 임노동도 아니고 자본주의적 기업도 아닌 그것과 관련되어 있는 모든 혼종적인 유령들을 다 불러오면, 이런 게 나타나는 거예요. 선물교환, 비상품, 비상품이 뭐냐면 아까 요조님이 말했던 그거예요. 화폐에 의해서 교환되지 않았죠. 물물교환. 전형적으로 비자본주의적인 유통의 흐름을 만들어 낸 거예요. 대안 화폐 아까 말씀드렸었고, 품앗이도 마찬가지예요. 임금 없이 서로 노동력을 교환하는 거죠. 사회적 기업같은 경우는 기업이 임노동을 주면서 노동자를 고용해서 이윤을 내지만, 그 이윤을 자본가가 먹는 게 아니라 사회에 배분하는 거죠. 이렇게 되면 우리가 순수히 자본주의만 있다라고 생각하는 경제에는 사실 다양한 비자본주의적 경제들이 있다라는 사실이 발견되는 겁니다. 우리는 여태까지 이것을 경제라는 담론을 통해서 말하지 않았을 뿐이고 이제부터 해야 할 것은 경제담론에 자본주의라는 혹은 남성경제라는 유일한 담론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담론이 있다는 것에서 출발을 해야 한다라는 게 바로 깁슨 그레엄이 주장하는 거예요.

그렇게 되면 사실 자본주의적인 말끔한 형상을 가진 대문자 자본주의는 딱 하나고, 매우 혼종적인 소문자 자본주의들이라고 얘기할 수도 있고 혹은 비자본주의들이라고 할 수 있는 굉장히 많은 형식들이 존재하게 됩니다. 우리가 관점을 바꾸게 되면 발견할 수 있는 이게 바로 자본주의의 혹은 남성경제의 구멍인 겁니다. 그렇다면 이제 여러분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눈앞에 이제 이런 구멍들이 보여요. 그러면 우리는 그 구멍을 크기를 늘리는 일부터 시작하지 않겠어요? 저는 바로 앞 강연자들이 이야기했던 모든 것이 남성 욕망 중심의 자본중심 경제를 뛰어넘는 방식이고 다양한 경제를 실천하기 위한 출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세상을 뒤집는 다른 목소리 이현재 교수가 이야기를 관중들에게 들려주고 있다
▲ 세상을 뒤집는 다른 목소리 이현재 교수가 이야기를 관중들에게 들려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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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경제에 구멍을 내자

앞으로 이분들처럼 불순한 경제 만들기에 함께 참여해줄 것을 독려하는 이야기로 마지막을 맺고자 합니다.

여러분들 조금 실망하시겠지만 단번에 혁명적인 변화? 저 그거 잘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있는 이 자본주의 바깥에 사는 것은 아니거든요. 그런 면에서 저 사실 더럽습니다. 저 타협 좋아하고요. 하지만 저는 매우 섞을려고 노력합니다. 그리고 그 섞음 속에서 나오는 어떤 다름들 이것의 가능성을 좀 확대시켜 보려고 하는 것을 제 인생의 목표로 삼았습니다. 여러분들이 보기에 작을지 모르지만 제가 보기에는 매우 큰 구멍이고 벌써 무언가가 시작되었고, 계속 진행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자본주의 담론 안에 있는 이 비자본주의 유령들을 다 한번 불러서 우리가 한번 진혼굿을 해보면 좋겠어요. 

비자본주의는 별로 순수하지 않습니다. 반자본주의와 다릅니다. 비자본주의는 자본주의에 들러붙어 있는 유령적인 구멍이고요, 따라서 혼합형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단지 그 구멍을 넓혀가는 과정에서 자본주의와 달라질 수 있는 가능성을 넓혀가는 것이고요 사실 그게 우리가 목적한 방향대로 갈 지도 의문이에요. 하지만 이 재밌는 게임에 한번 참여해보자는 것이죠. 그리고 만약에 이렇게 되면 우리가 우리를 억압하고 있는 그 강력한 구조를 비난하거나 분노하는 대신에 또 그 구조에 똑같이 분노하지 않는 사람에 대해서 분노하는 대신에 '아, 나는 구멍 발견했어! 어디어디? 나도 좀 보자' 이렇게 감정적인 회로의 변화를 이뤄낼 수 있다는 게 굉장히 중요한 수확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까 말씀하신 '월경에 치얼스'처럼 남성적인 욕망에 가려졌던 여러분들의 몸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를 발견하는 게 필요해요. 풀 몬티라는 영화 보셨나요? 제철소가 일하던 전형적인 남성 노동자가 해고를 당합니다. 그렇지만 해고에 좌절하고 저항하기보다 자기가 살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을 마련하죠. 굉장히 다른 모습의 남성상을 보여줘요. 그런 모습도 굉장히 비자본주의적인 요소가 될 수 있다고 봅니다. 이런 것들을 모아서 남성경제에 구멍내기, 그뤠잇! 그뤠잇! 이라는 말로 제 강연을 마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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