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국방부는 할리우드 영화를 홍보나 선전 수단으로 즐겨 활용해왔다. 마이클 베이의 영화 <진주만>(2001)의 경우 수많은 지휘관들이 제작에 협조했고, 이에 제작진은 군을 우호적으로 그리도록 시나리오를 수정했다.

 < 12 솔져스>는 미 육군 특수요원들의 영웅담을 그렸다.

< 12 솔져스>는 미 육군 특수요원들의 영웅담을 그렸다. ⓒ 제이앤씨미디어그룹


31일 개봉한 크리스 헴스워스 주연의 영화 < 12 솔져스>는 미 국방부가 좋아할 만한 영화다. 영화는 9.11 테러 직후 첫 반격 작전을 위해 아프가니스탄으로 파견된 그린베레 특전요원들의 실화를 소재로 하고 있다.

영화의 만듦새만 보면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다. 험준한 고원을 무대로 펼쳐지는 전쟁신은 보는 이들의 시선을 압도하기에 충분하다(실제 촬영은 아프가니스탄과 자연환경이 비슷한 뉴멕시코에서 이뤄졌다). 타이틀 롤 '미치 넬슨' 역을 맡은 크리스 헴스워스의 액션 연기는 '천둥의 신'이 지상으로 내려와 무적용사 람보로 변신한 듯한 모습이다. 마이클 셰넌, 마이클 페냐 그리고 영화 <문라이트>에서 '블랙'으로 분한 트래반트 로즈 등 주연들의 연기도 무리 없다. 전쟁 영화를 좋아하는 이들에겐 안성맞춤이다.

이 영화는 또 미국이 아프간 침공 작전을 어떤 식으로 수행했는지 보여준다. 영화는 미치 넬슨(크리스 헴스워스) 대위가 지휘하는 ODA 595 특전단이 탈레반을 물리치고 아프가니스탄의 전략적 요충지 마자리 샤리프 점령 작전을 수행하는 과정을 그린다.

넬슨 대위 포함 12명의 요원들은 아프간 침공작전이 개시되자 처음 현지로 파견된다. 이들은 현지 군벌인 도스툼과 합동작전을 펼쳐 단 2주만에 마자리 샤리프 점령에 성공한다. 전쟁은 주로 도스툼 부하들이 치른다. 미군 요원들의 주임무는 공습 위치를 파악해 사령부에 알리는 것이다. 요원들이 좌표를 '찍으면' 전폭기들은 엄청난 폭탄을 퍼붓는다.

실제 아프간 침공은 이런 방식으로 이뤄졌다. 탈레반이 아프간을 장악하자 1996년 도스툼과 하자라족 모하킥, 타지크족 마수드가 반탈레반 연합전선을 구축했고 미국은 아프간 침공 때 이 연합전선을 적극 활용했다. 미군 병사의 피해를 최소화하는, 아주 효과적인 방식이었다.

미국은 그럴 자격 있나?

 < 12 솔져스>에서 미치 넬슨 대위역을 맡은 크리스 헴스워스는 흡사 람보를 방불케 하는 연기를 펼친다.

< 12 솔져스>에서 미치 넬슨 대위역을 맡은 크리스 헴스워스는 흡사 람보를 방불케 하는 연기를 펼친다. ⓒ 제이앤씨미디어그룹


이제 영화의 이야기를 파고들 차례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영화가 진짜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위험천만하다.

이야기의 전반적인 흐름은 할리우드 전쟁영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무용담이다. 주인공인 넬슨 대위 및 이하 부대원들의 공을 폄하할 의도는 없다. 이들은 미 합중국 군인으로서 임무에 충실했으니까. 단, 아무리 전공을 세운 미국 군인들을 치켜세우더라도 사실을 왜곡하거나 편견을 조장하는 건 안 될 일이다. 그러나 이 영화는 보란 듯 이 같은 기본원칙을 깨뜨린다.

영화엔 탈레반 거점 지도자 라잔이 여자 아이들에게 교육을 시켰다는 이유로 여성을 공개처형 하는 장면이 나온다. 실제 탈레반은 여성들에게 '부르카'로 불린 온몸을 감싸는 옷을 입히고 여성들의 사회활동과 교육을 전면 금지시켰다. 만약 이를 어겼을 시 수천 군중이 보는 앞에서 공개처형했다.

한편 미국은 2001년 9.11 테러 직후 아프간 침공을 감행했다. 아프간을 장악한 탈레반이 9.11 테러의 배후인 알 카에다에 은신처를 제공해줬다는 게 이유였다. 그러나 미국은 탈레반과 알 카에다가 직접 연관을 맺고 있다고 단정할 확실한 근거를 내놓지는 않았다. 이 와중에 CNN·BBC 등 영미권 '주요 외신'들은 탈레반을 광적 민족주의 이슬람 세력으로 규정하는 보도를 쏟아내다시피 했다.

사실은 어떨까. 탈레반의 등장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장본인은 바로 미국이었다. 미국이 탈레반을 설계하던 시점은 구소련이 아프간을 침공했던 198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아프간을 비롯, 미얀마·예멘·라오스 등 20년 넘게 국제 뉴스 현장을 누빈 정문태 기자는 자신의 책 <전선기자 정문태 전쟁취재 기록>에서 미국과 탈레반의 유착을 이렇게 적었다.

"CIA(미 중앙정보부)는 러시아의 남하정책 봉쇄라는 미국의 전통적인 대중앙아시아 전략과 함께 가스와 원유를 낀 경제적 잇속을 헤아리며 아프가니스탄에 눈길을 꽂아왔다. 1980년대 대대 무자히딘의 대소비에트 항쟁을 비밀스레 지원한 CIA는 1989년 소비에트 군대가 떠난 뒤 내전으로 치닫는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국한테 이문을 안겨줄 대안세력을 꿈꾸며 탈리반을 설계했다. 그리고 미국의 이슬람 맹방인 사우디아라비아가 뒷돈을 대고 파키스탄이 병참기지 노릇을 하며 탈리반을 키워냈다. 부정부패와 불법은 탈리반의 젖줄이었다.(책 본문에서 '탈리반'으로 표기해 그대로 옮겼다-기자 주)"

미국은 구소련이 물러나면 아프간 재건에 나서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구소련이 발을 빼자 미국도 같이 발을 뺐다. 이후 탈레반이 아프간 영토 대부분을 장악하고, '세상에서 가장 순결한 이슬람 국가 건설'을 외치며 온갖 잔혹행위를 자행했음에도 미국은 모른 척 했다. 이랬던 미국이 9.11 테러가 벌어지자 26일 만인 10월 7일에 탈레반을 소탕하겠다며 대대적인 군사행동을 벌였다.

사실 아프간 침공을 전후해 미국이 이전부터 아프간 침공을 준비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일었고, 이 같은 의혹은 현재도 진행형이다. 그도 그럴 것이 아무리 미국이 초강대국이라고 해도 단기간에 대규모 전면전을 벌였으니, 요즘 유행어로 '이게 실화냐'란 의문을 사기에 충분했다.

다시 영화로 돌아가 보자. < 12솔져스>는 탈레반의 광기만 부각시킬 뿐, 이들의 등장과 세확장에 미국이 깊숙이 개입했다는 사실은 감춘다. 앞서 적은 바대로 미 국방부가 좋아할만한 대목이다.

미 국방부 입김에 휘둘리는 할리우드

 < 12 솔져스>는 미국의 음모는 감춘 채 탈레반을 일방적으로 악마화한다.

< 12 솔져스>는 미국의 음모는 감춘 채 탈레반을 일방적으로 악마화한다. ⓒ 제이앤씨미디어그룹


사실 미 국방부는 베트남 전쟁 이후, 육·해·공 각 군 별로 할리우드가 위치한 LA에 사무실을 내고 영화 제작 전반에 영향력을 행사해왔다. 이 영화 < 12 솔져스> 제작과정에서도 기밀 작전에 투입됐던 군인들이 참여했다는 후문이다.

이 영화를 보면서 할리우드가 퇴행했음을 실감한다. 미 국방부가 군을 우호적으로 그리는 영화에 지원을 아끼지 않았고, 몇몇 영화인들은 이에 적극 반응했다. <트랜스포머> < 13시간> 등을 연출한 마이클 베이가 대표적이다. 그러나 미국이 벌인 부도덕한 전쟁의 의미를 성찰하고, 거침없는 비판을 제기한 시도 또한 없지 않았다. 올리버 스톤과 프란시스 F. 코폴라는 각각 <플래툰>과 <지옥의 묵시록>을 통해 베트남전이 미국의 침략전쟁이었음을 고발했다.

반면 아프간·이라크 전쟁에 대해서는 오로지 무용담 일색이다.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이라크전에 참전한 네이비실 요원 크리스 카일의 영웅적 활약을 그렸고, 마크 월버그 주연의 <론 서바이버>는 아프간에서 임무를 수행했던 네이비실 요원 마커스 러트렐을 미화했다. 케서린 비겔로우의 <허트 로커>도 임무수행으로 힘들어하는 미군병사들의 고뇌만 있을 뿐, 미국의 침공으로 일순간 폐허가된 이라크의 고통은 찾아 볼 수 없었다.

물론 예외는 없지 않다. '본 시리즈'로 유명세를 얻은 폴 그린그래스는 <그린 존>에서 미국의 이라크 침공 명분이 됐던 대량살상무기가 실은 거짓이었음을 꼬집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그 수위는 올리버 스톤에 비하면 약하기 그지없다.

아프간·이라크 전쟁은 베트남 전쟁 보다 훨씬 더 추악한 양상으로 기획·실행됐다. 그런데 할리우드는 과거와 달리 미국의 추악함을 고발하기보다 영웅담으로 흐르는 모양새다. < 12 솔져스>는 이런 흐름의 연장선상에 놓여 있다. 시간의 흐름이 자연스럽게 의식의 진보로 이어지지는 않는다는 평범한 진리를 다시금 실감한다.

12솔져스 크리스 헴스워스 올리버 스톤 론 서바이버 아메리칸 스나이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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