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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건은 장기간 불법구금과 고문으로 조작된 것으로, 피고인의 간절한 호소는 외면당한 채 최종적으로 사형이 집행되었습니다.

(중략) 법원이 사법부의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진실 발견을 소홀히 해 무고한 생명을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게 한 것이 아닌가 하는 회한을 떨칠 수 없습니다. 본 재판부의 법관들은 과거 잘못된 역사가 남긴 가슴 아픈 교훈을 깊이 되새기며, 피고인들의 진정 어린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실체적 진실 발견에 만전을 기해 같은 불행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중략) 그동안 형언하기 힘든 고통을 겪으며 인고의 세월을 지낸 피고인과 그 가족들에게 모두의 마음을 담아 위로의 뜻을 전합니다."

지난 2010년 서울고등법원 재판부(성낙송 부장판사)는 30년 전 선배 판사들의 잘못된 판결로 억울하게 사형을 당한 고 김정인의 재심 재판에서 무죄를 선고하며 재판부의 소회와 반성의 뜻을 담은 판결문 소회를 이렇게 읽어 내려갔다.

한 줄 한 줄 읽어 내려갈 때마다 배석했던 김동현, 박형순 판사의 눈에서는 눈물이 흘렀다. 과거 선배 판사들의 잘못된 판결로 참혹하게 무너진 사법부 정의에 대한 통한과 반성의 눈물이었다. 그들은 선배 대신 사죄의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고문으로 간첩 조작... 피해자 목소리를 외면한 사법부

 1981년 1월 20일 동아일보 지면.
 1981년 1월 20일 동아일보 지면.
ⓒ 동아일보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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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첩 김정인 사건"

후배 판사들을 눈물짓게 했던 그 사건은 지금으로부터 38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81년 1월 20일 각종 중앙일간지는 "간첩 김정인 사건"을 대대적으로 발표한다. 영장도 없이 체포된 김정인, 석달윤, 한화자, 박공심, 장제영 등은 최장 56일간 중앙정보부에서 감금된 채 고문을 당하며 '붉은 마수'가 되었다.

김정인, 석달윤 등 피해자들은 당시 서울지법 공판에서 불법 연행과 허위 자백에 대해 억울함을 호소했다. 그들의 억울함은 진실화해위원회 결정문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석달윤은 서울지법에 제출한 탄원서에서 중정에서 47일간 조사를 받는 동안 고문 등이 심하여 거짓 자백하였다고 주장하였고, 항소, 상고이유서에서 위와 같은 주장을 반복하면서, "중정 151호실에서 2주일, 138호실에서 3주일, 153호실에서 2주일 동안 감금되어 고문을 당했고, 다른 피고인 보다 10일 늦게 연행되어 47일 동안 조사 받았다"고 주장하였다.

장제영은 중정에서 56일 동안 조사를 받고 전에 앓던 정신분열증이 도질까 두려워 허위자백을 하였다고 진술하였고, 항소이유서에서 "56일간 불법구속 후 석방되어 불구속으로 검찰에 송치되었던 점을 참작해야한다"고 진술하였고, 중정에서 56일간 조사받은 후 석달윤 등의 증인이 될 것을 조건으로 석방되었다가 검찰에서 이를 부인하여 재구속되었다고 진술하였다.(2007. 6. 26 진실화해위원회 결정문)

김정인, 석달윤씨 등은 고문과 관련해서도 판사 앞에서 억울함을 호소했다.

김정인은 서울지법 공판에서 "검찰에서 자백한 것은 또 고문이 있을까봐 허위 자백하였다"고 진술하였고, 석달윤은 서울지법에 제출한 탄원서에서 "중정 조사관 6명(2인 3조)에게 47일간 조사받으면서 그 고통을 이겨내지 못하고 허위 자백하였고, 검찰 조사시 중정 진술과 다른 진술을 할 경우 검찰청 15층에 올라가 더 무서운 고문을 받게 될 것이라고 협박을 받았다"고 주장하였고, 장제영은 서울지법 공판에서 "중정에서 56일간 고문을 받아 정신분열증이 재발할 것 같아 허위 자백하였다"고 진술하였다.

박두례는 서울지법 공판에서 "중정에서 며느리와 아들이 맞는 것을 보고 허위 자백했고, 검사 앞에서도 애들이 또 맞을까 두려워 허위 자백하였다"고 진술하였고, 김정수는 서울지법 공판에서 "검찰에서도 고문이 있을까 두려워 허위자백하였다"고 진술하였다.(2007. 6. 26 진실화해위원회 결정문)

이러한 피해자들의 수많은 고문 주장에도 이 재판에 관여했던 노승두, 이흥복, 여상규 판사는 피해 사실을 모두 외면했다. 오히려 그들은 중앙정보부 수사관들이 불법 감금과 고문을 통해 조작한 범죄 사실만 인정했다.

결국 1981년 1월 30일 김정인에 대해 사형, 석달윤에 대해서는 무기징역을, 박공심 징역 1년 6월, 장제영 징역 2년을 선고하고 말았다. 그리고 항소와 상고, 파기환송, 재심을 거듭하던 끝에 김정인은 결국 1985년 10월 31일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이 당시 위 재판부의 배석 판사 중 한 명이 여상규 의원(현 자유한국당)이었다.

그리고 지난 2009년 1월 22일 서울중앙지법(한양석 부장판사) 재심 재판에서 석달윤과, 박공심, 장제영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그리고 1년 뒤인 2010년 7월 16일 서울고등법원(성낙송 부장판사)은 사형당한 김정인에 대해도 역시 무죄를 선고했다.

"웃기고 있네, 이 양반" 그는 이런 말할 자격 있나

질의하는 여상규 여상규 새누리당 의원이 4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검찰청에서 열린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서울고검, 중앙지검 등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미르-K스포츠 재단 의혹과 고 백남기 농민 사건 등에 대해 질의하고 있다.
▲ 질의하는 여상규 여상규 자유한국당 의원.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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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기고 있네."

최근 SBS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여 의원의 발언이 화제가 됐다. 당시 방송에서 제작진에게 '중앙정보부가 석씨를 고문했다'는 질문을 받은 여 의원은 "재판을 한두 번 하는 것도 아니고 매주 뭐 한 열 건 정도씩 하니까, 고문을 당했는지 어쨌는지 알 수가 없다. 지금 물어서 뭐 하느냐"고 대답했다. 또 석달윤씨 등 사건 관련자 여러 명이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것에 대해서도 "재심 제도가 있는 이상 무죄를 받을 수도 있다"며 큰 의미를 두지 않는 듯한 발언을 했다.

이에 제작진이 "당시 판결로 한 사람의 삶이 망가졌는데 책임을 못 느끼느냐"고 재차 묻자, 여 의원은 "웃기고 있네. 이 양반이 정말"이라며 전화를 끊었다. 이후 많은 사람들은 여 의원의 발언에 분노하였고, 심지어 그들을 처벌해달라거나 서훈을 박탈해 달라는 국민청원 움직임까지 거세게 일고 있다(관련 링크).

'웃기다'던 그 사건으로 인해 후배 판사들은 눈물을 흘렸고, 사형선고의 당사자인 여 의원은 사형당한 피해자의 억울함을 외면했다. 정작 눈물을 흘려야 할 사람이 누구인가?

흔히들 법원을 가리켜 '인권의 최후 보루'라는 표현을 쓰곤 한다. 그만큼 사법부의 결정과 판단은 신중하고 공정하며, 정의로워야 한다는 의미다. 더욱이 사형과 같은 중형을 선고하는 때는 더더욱 그러하다. 그러한 면에서 여 의원은 판사 시절 잘못된 판결에 서명하고, 그 판결로 인해 억울한 죽음을 맞이한 피해자에게 사죄해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이다.

또 하나, 여상규 의원은 공정한 법 집행을 판단할 만한 자질도 책임감도 갖추지 못하고 있다. 그런 그가 국회의원으로서 얼마나 정의롭고 공정한 법을 입안할 수 있을 것인가 실로 우려스럽다. 서민과 약자의 호소를 외면했던 그가 제정하는 법률이 누구를 위한 것이 될까. 들여다보지 않아도 알 수 있을 거 같다.

이제라도 여상규 의원은 억울한 호소를 외면한 채 한 사람을 죽음에 이르게 한 책임에 대해 유족과 피해자에게 사죄해야 한다. 또한 헌법 질서를 바로 세우고, 사회적 정의를 이루기 위해 국회의원직 역시 사퇴해야 한다.

피해자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를 갖추지 않고도 시민의 대표로서 버젓이 활동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웃기고 있는' 일인 것이다. 마지막으로 여 의원을 대신한 후배 판사의 진심 어린 사죄의 말을 다시금 되새겨 봐야 할 것이다.

"사법부의 그늘진 역사를 드러냄으로써 피고인의 명예가 회복되고 남은 가족들도 이 땅에서 평화롭고 복된 삶을 누릴 수 있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2010. 7. 16. 서울고법 판결문 중)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변상철씨는 '지금여기에' 활동가입니다. <오마이뉴스>에 국가폭력 피해자들의 이야기 '인권을 먹다'를 연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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