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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로 사는 시간을 버티게 해준 문장들에 대한 이야기 [편집자말]
육아휴직이 끝나고 복직할 때쯤, 주변에서는 다들 나를 걱정했다. 조부모 도움 없이 회사 다닐 수 있겠냐고. 친정과 시댁이 멀리 있고 양가 부모님 모두 생계를 위해 일하고 있어서 어떤 지원도 받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런데 주변을 보니 친정이나 시댁의 도움을 받지 않고 오로지 부부 둘이 맞벌이 하는 경우는 손에 꼽을 정도였다(양손도 아니고 한손에). 대부분은 근처에 친정이나 시댁이 있었고, 친정엄마가 아예 원정을 와있는 경우도 있었다.

남편은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육아와 가사를 함께 했지만 언제 퇴근할지 알 수 없는 노동강도가 센 회사에 다니고 있었다. 다행히 내가 다니고 있는 회사는 출산여성에 대한 배려 문화가 정착된 편이었다. 출퇴근 시간을 조정했고, 저녁 근무를 할 수 없는 상황에 대해 양해를 구했다.

'어떻게든 되겠지' 하며 복직했지만 하루하루 가시밭길이었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느라 아이도 나도 매일매일 아팠다. 당장 다음날 아침에 출근할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는 날들이 이어졌다. 병원과 약국을 전전했고, 아픈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회사로 갔다. 육아휴직 때만 해도 어린이집 가는 걸 좋아하던 아이는 아침마다 문 앞에 서서 울었다. 등원을 담당하는 남편은 그 모습을 보는 게 너무 힘들다고 했다.

퇴근 시간이 되면 마음이 초조해졌다. 내가 이 일을 남기고 가면 같이 일하는 선배가 일을 더 해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뒤도 안 돌아보고 칼퇴근 했다. 워킹맘이었던 선배는 본인은 친정엄마가 있어서 나보다 사정이 낫다며 빨리 집에 가라고 등을 떠밀었다. 회식도 MT도 당연히 참석 못했다. '2등 직원'이 된 기분이었다.

배가 고파도 편의점 한번 못 들르고 바로 어린이집으로 향했다. 발걸음은 어린이집을 향하는데 속으로는 도망치고 싶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퇴근 후 다시 집으로 출근. '투잡'을 뛰었다.

아이가 다니고 있는 어린이집은 가정형 어린이집이었다. 오후 6시 이전에 아이를 데리러 가도 한두 명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선생님도 아이도 나만 기다리고 있는 거다. 하루는 아이를 데리러 갔는데 담임선생님이 하원 당번이 아닌데도 퇴근을 하지 않고 있었다.

알고 보니 아이가 선생님이 일찍 가니까 울어서 함께 남아 있었다고 했다. 그 마음이 너무 고맙고 또 미안해서 아이를 데리고 집에 가는 길에 펑펑 울었다. 계속 일을 할 수 있는 걸까, 이렇게 여러 사람에게 민폐를 끼치면서, 여유라고는 단 한순간도 없이. 자신이 없었다. 이래서 조부모 없이 육아와 일을 병행하기 힘들다는 거구나, 뼈저리게 실감했다.

그래도 믿을 건 가족뿐

아이를 낳기 전, 부산에 사는 친정엄마가 나중에 서울에 와서 아이를 봐주겠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그때 나는 단호하게 말했다. 괜찮다고, 내가 어떻게든 알아서 하겠다고. 실제로 친정엄마가 아이를 봐준다는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면 속으로 혀를 찼다.

"부모가 무슨 죄야. 지금까지 키워줬는데 손자까지 봐줘야 하는 거야?"

대학 입학 후 10년 넘는 시간을 가족과 떨어져 살았다. 그 사이 가치관도 생활방식도 너무 많이 달라졌다. 특히 나는 내 공간과 내 시간이 중요한 사람이다. 가장 가까운 존재인 남편과 아이와 함께 있어도 늘 '자기만의 방'을 갈구한다. 이제 와서 엄마랑 같이 산다고? 상상이 안 갔다. 결혼을 했고 아이까지 낳았다. 이제 가족으로부터 진짜 독립해 '어른'이 되어야 한다. 나는 출산이 그 시작이 될 줄 알았다. 큰 착각이었다.

복직 한 달째 되던 날, 나는 목을 움직일 수 없어 침대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이전부터 고질병이었던 목 디스크 증상이 재발한 것이다. 하루 종일 앉아서 컴퓨터로 일하고 퇴근 후에는 에너지 넘치는 아이와 씨름하다 보니 목과 어깨가 늘 뻐근했다. 아프고 서러웠다. 몸도 마음도 번아웃 됐다.

 고부 갈등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B급 며느리' 스틸컷
 고부 갈등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B급 며느리> 스틸컷
ⓒ 영화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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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나는 친정엄마와 시어머니를 떠올리고 있었다. 도우미도 고려했지만 잘 알지도 못하는 남에게 내 아이를 맡길 수는 없었다. 그래도 믿을 수 있는 건 가족뿐이었다. 함께 산다면 아무래도 친정엄마가 더 편하겠지만 친정엄마는 당장 올 수 있는 여건이 안 됐다.

그때쯤 시어머니가 감사하게도 먼저 말을 꺼내줬다. 정 안 되겠다면 본인이 서울에 오겠다고. 다만 본가 살림도 챙겨야 하기 때문에 월요일 우리 집에 왔다가 금요일 원주에 가는 식으로 주5일 근무를 하겠다고 했다.

훗날 그때를 떠올리며 남편은 말했다. 아마 북한 김정은이 애를 봐준다고 해도 손을 덥석 잡았을 거라고. 물론 나는 시어머니와 사이가 비교적 좋은 편이었지만. 당시에는 정말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었다. 우리는 그렇게 시어머니와의 동거를 결정했다.

고민이 없지는 않았다. 친정엄마와도 같이 살 자신이 없는데, 시어머니랑 같이 살 수 있을까. 나와 마찬가지로 조부모 도움 없이 아이를 키운 워킹맘 선배는 무조건 지원을 받으라고 조언했다.

"육아는 마라톤이야. 5살까지는 애가 계속 아파. 벌써부터 힘 빼지 마. 나는 출근했는데 애가 갑자기 아프다 그러는 거야. 도저히 맡길 데가 없어서 어린이집에 다시 맡겨놓고 온 적도 있어. 돌아오는 택시 안에서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

유일한 '사적 안전망' 가족

아이만 생각한다면, 무조건 시어머니가 오는 게 맞다. 성심성의를 다해 아이를 돌보는 분이니까. 아픈 아이를 억지로 어린이집에 보내지 않아도 되고, 어린이집에 마지막까지 남아있지 않아도 된다. 나도 남편도 시어머니가 온다면 훨씬 삶에 여유가 생길 거다. 일주일에 한번은 저녁에 운동도 하고 강연도 듣고 친구도 만나고. 지금처럼 아등바등 하며 살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내 머릿속엔 하나의 질문이 떠나지 않았다. 누군가의 희생을 담보로 우리의 삶을 유지한다는 게, 과연 옳은 일일까. 시어머니는 30년 넘게 시어머니를 모시고 살았다. 그런데 이제는 '며느리살이'를 하게 생겼다.

평일에는 아들, 며느리, 손자를 돌보고 주말에 쉬지도 못한 채 팔순의 시어머니와 남편 그리고 딸을 보살펴야 한다. 끝이 보이지 않는 돌봄 노동의 쳇바퀴. 거기에 내가 빨대 하나를 더 꽂는 거다. 그토록 가족주의를 비판해왔던 내가. 그래도 시어머니 이외에는 대안이 없었다.

 김희경 <이상한 정상가족>
 김희경 <이상한 정상가족>
ⓒ 동아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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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출신으로 '세이브 더 칠드런' 등에서 활동한 김희경이 쓴 <이상한 정상가족>(김희경, 동아시아)은 질문한다. 서구에서는 근대화 과정을 거치면서 '개인'이 중요해지는 반면, 한국에서는 왜 오히려 가족이 지나치게 중요해지게 됐을까.

"한국 사회의 특이한 점은 흔히들 가족주의가 약해지기 마련인 근대화 과정에서 가족주의가 더 강력해졌다는 점이다. 근대화 과정 내내 국가가 '선 성장, 후 분배'의 논리 하에 거의 모든 사회 문제를 가족에게 떠넘겼기 때문이다. 사람을 먹이고, 키우고, 보호하고, 가르치고, 치료해주고, 부축해주는 그 모든 일들이 전부 가족의 책임이었다." <이상한 정상가족> p.166

김희경은 "위기의 나락으로 굴러 떨어지는 개인을 받쳐줄 사회적 보호제도가 전무한 상황에서 개인이 부여잡을 지푸라기는 뭐였을까"라며 "'사회적 안전망'이 없는 사회에서 개인이 기댈 유일한 언덕은 '사적 안전망'인 가족이었다"고 지적한다.

육아도 마찬가지다. 여성의 사회적 진출로 엄마도 아빠도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고 있지만, 가족 엄밀히 말하면 엄마의 영역이었던 '돌봄'을 맡아 줄 공적 지원은 턱없이 부족하다. 이런 상황에서 믿을 건 결국 가족뿐이다. 수많은 맞벌이 부부들이 조부모의 지원을 받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주변의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이들은 일과 육아 사이에서 고군분투하다 주로 임금이 적은 여성이 일을 그만둔다. 그리고 경력단절 여성이 된다. 너무나 익숙한 이야기다. 국가가 아이를 키우는 데 어떤 도움도 주지 않는 사회에서 가족의 도움조차 받을 수 없는 이들은 경쟁에서 도태된다. 시어머니는 서울에 오겠다고 결심하면서 말했다.

"내 새낀데, 내가 챙겨야지."

나는 그 말이 참 슬펐다. 김희경은 "자녀의 성공을 위해 똘똘 뭉쳐 분투했던 가족의 중심에 늘 '헌신적 어머니'가 있었다는 것도 한국 가족주의의 특징 중 하나"라고 설명한다. 이 문장에 밑줄을 그으며 나는 시어머니를 떠올렸다. '원정육아' 1년 만에 우울증과 당뇨를 얻었다는 친구 어머니를 생각했다. 노후를 잃어버린 수많은 엄마들을.

고민 끝에 우리는 시어머니와의 동거를 포기했다. 여러 사정이 있었지만, 얻는 것보다 잃을 게 더 많다는 판단이 들었다. 서른 넘은 아들과 며느리, 예순이 다 되어가는 시어머니가 오로지 아이 때문에 함께 산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육아는 남편과 나 그리고 아이. 세 사람의 일이라고 생각했다. 어떻게든 둘이서 해보자고 했다.

그 후로도 위기는 많았다. 나는 목이 한번 더 안 돌아갔고, 최근에는 아이가 B형 독감에 걸려 일주일 동안 어린이집에 가지 못했다. 남편은 야근으로 바빴고, 나만 일주일 휴가를 냈다. 지옥 같은 한 주를 보내고 몸살이 났다.

<이상한 정상가족>은 최근 문재인 대통령이 저자에게 직접 편지를 보냈다고 해서 화제가 된 책이다. 책의 마지막 장에는 스웨덴이 어떻게 저출산을 극복했는지 잘 나와 있다.
"'부모 되기를 자발적으로 선택한 가족의 경우 사회가 출산과 양육을 돕고 아이의 미래를 함께 돌본다'...중략...여성이 일과 양육 사이에서 둘 중 하나를 선택하는 상황을 겪지 않아도 되고 부부가 모두 일할 수 있도록 사회가 양육의 부담을 나눠 가지고 교육, 의료, 주택 문제를 사회가 해결..." p.226-227
많이, 정말 많이 부러워하며 책장을 넘겼다. 부디 이제라도 국가가 제대로 된 역할을 하기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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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에디터.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다다와 함께 읽은 그림책'을 연재하며, 하루 11분 그림책 <짬짬이 육아>를 펴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