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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자친구를 때려 죽인 이아무개씨(39)에 대해 사법부는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사법부가 가정폭력·데이트폭력에 의한 살인 사건을 남성중심적 시각에서 바라본다고 지적이 나온다.
ⓒ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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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7월, 한 30대 남성이 자신의 집에서 여자친구를 주먹으로 마구 때렸다. 의식을 잃은 여성은 결국 뇌사판정을 받아 7일 만에 사망했다. 그런데 여자친구를 죽인 이 남성은 지금 감옥에 있지 않다. 1심에서 집행유예를 선고받았기 때문이다.

지난 11일 의정부지법 형사합의11부(고충정 부장판사)는 데이트 중 여자친구를 때려서 죽음에 이르게 한 이아무개(39)씨에게 징역 3년, 집행유예 4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죄질이 좋지 않으나 피고인이 피해자에게 다른 남자가 생긴 사실을 확인하고자 다그치는 과정에서 벌어진 '우발적인' 범행"이며 "피해자 유족이 피고인을 용서, 처벌을 원치 않는다는 내용의 탄원서를 냈다" 등의 근거를 들며 "피고인이 정상적인 사회구성원으로 돌아갈 기회를 주기로 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상해치사죄 혐의로 기소된 피고인이 집행유예를 받고 풀려난 것은 이례적인 일일 뿐만 아니라, 국민의 법상식과도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많다. SNS상에서도 "가해자 남성 중심적 판결", "범죄자에게 관대한 나라" 등 재판에 대한 비난의 목소리가 들끓고 있다.

한 누리꾼은 <여자친구를 때려죽여도 집행유예, 이건 정말 아니지 않습니까?>라는 제목으로 청와대 청원을 올리기도 했다. 그는 "너무 충격적이라서 가슴이 떨린다. 대한민국에 사는 여성으로서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며 "판사들은 왜 이토록 가해자의 심정을 섬세하게 헤아려 주는 것이냐. 왜 이런 말도 안 되는 판결이 나오는지 대책을 강구해달라"고 썼다.

최근 트위터에서 여성 이슈와 관련해 목소리를 높이는 민주노총 김진숙 지도위원 역시 "한국남성 판사의 생각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판결문이다. 마치 피해 여성에게 책임을 묻는 듯하다"며 "(스위스에선 바닷가재를 끓는 물에 넣거나 얼음물에 담는 것도 금지하는데) 한국에선 전 여자친구를 무참한 고통속에 죽게 한 남자가 집행유예, 스위스 갑각류보다 못한 이 나라 여성들"이라며 재판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김 지도위원의 말처럼, 여성단체와 전문가들은 사법부가 가정폭력·데이트폭력에 의한 살인 사건을 남성중심적 시각에서 바라본다고 지적한다. 가해자가 남성의 경우는 감형이 이뤄지지만 여성인 경우에는 더욱 엄격하게 처벌하는 등, 성별에 따라서 판결 결과가 달라진다는 것이다.

배우자 죽이고도 벌금 100만원... 살해의 원인을 '피해자'에게서 찾나?

 이 사건의 남성은 방화치사 혐의로 기소됐다. 하지만 무죄를 받는다.
 가정폭력, 데이트폭력으로 여성을 숨지게한 남성들에 대해 사법부는 '우발적' '화가 나서' 등의 이유로 감경을 해주고 있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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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발표된 여성학자 허민숙 교수의 논문 <살인과 젠더>에서는 142건의 배우자 살해 사건을 분석해서 가해자·피해자의 성별이 사법부가 살인 사건을 판단하는데 어떤 영향을 주는지 밝힌다. 121건의 남성배우자에 의한 여성살해사건에서 재판부가 살인의 동기를 주로 '격분(56.1%)과 '분노'(16.7%)로 해석했다는 것에 허 교수는 주목한다. 남편이 아내를 살해한 재판문에는 "순간 격분하여", "우발적으로", "술에 취하여", "화가 나"등의 문구가 자주 나오며, 이는 감경사유가 된다.

이미 피해자가 사망한 직후이므로, 가해자는 죽은 여성이 부정행위를 하거나 자신을 무시했다고 주장하며 살해가 '사고'에 불과했음을 주장하기가 쉽다. 그런데 이와 같은 항변을 재판부가 적극적으로 인용한다고 볼 수 있다.

남성이 배우자나 애인을 죽였음에도 집행유예를 받은 판결은 이전부터 있었다. "피해자가 술을 마시고 늦게 귀가하였다는 이유로 부부싸움 과정에서 '우발적으로' (2009고합84), "피고인은 피해자가 친구들과 함께 술을 마시는 장소에 찾아가 일행 중 남자들도 끼어있음을 발견하고 '격분하여'"(2009고합201)등을 근거로 재판부는 폭행치사 사건임에도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심지어 "피해자의 외도 사실을 알고 나서 이를 용서하기 위하여 노력하였으나 때때로 분노를 참지 못했다"며 판결문에 남성의 증언을 적극 인용하며 폭행치사 혐의는 무죄, 상해죄만을 적용해 벌금 100만 원형을 선고한 적도 있다(2006고합911). "다소 남성적인 성격의 피해자는 거래처 사람들과 잦은 술자리를 갖고 나이 어린 피고인을 무시하였으며"(2009고합72)와 같이 여성이 살인의 원인을 됐다는 식의 내용을 판결문에 넣고 집행유예를 선고하기도 했다.

반면 여성배우자가 남성을 죽인 21건을 분석한 결과, 대부분 평균 20년에 가까운 장기간의 학대가 원인이 된 경우지만 남성이 가해자인 사건과는 사뭇 판결문의 내용이 달랐다고 허 교수는 지적한다. "피해자의 폭력에 시달렸으며, 피해자가 부정행위를 하였고, 피고인 의 대화에도 응하지 않았다는 점(...) 위 판단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2012노7), "피해자에 대한 생전행위에 대한 평가 여하를 불문하고 (...) 비록 피고인이 가정폭력의 희생자라 하더라도 피고인의 죄책이 결코 가볍다 할 수 없다 (2005노208)"등 남성의 가정폭력과 학대가 살인의 감경사유로 드러나지 않는다.

허 교수는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재판부는 남성이 아내나 사귀던 사람을 살해했을 때, 피해자인 여성이 남성을 정말 화나게 했으니까 죽였다고 보는 것 같다. 동거하던 여성을 죽이고 콘크리트로 암매장한 남성이 3년형을 선고받은 것을 보라"며 남성 가해자가 아내나 애인을 죽인 경우, 관행처럼 '솜방망이' 처벌이 이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이런 분위기 속에선 여성들이 데이트폭력·가정폭력을 여성들이 신고하기 힘들다. 오히려 내가 남자친구나 남편을 화나게 한 것은 아닌가 자기 검열을 하게 된다. 결국 성별 위계는 굳어지고, 여성이 남성의 소유물처럼 여겨지는 분위기는 바뀌지 않는다"며 "시민들의 의식보다도 사법부가 더 뒤떨어졌다는 생각이 든다"고 사법부를 비판했다.

"사법부, 젠더감수성 교육 의무화해야"

 불꽃페미액션이 여자친구를 때려 숨지게 한 남성에 대한 사법부의 집행유예 선고에 대해 항의하는 피켓을 만들었다
 불꽃페미액션이 여자친구를 때려 숨지게 한 남성에 대한 사법부의 집행유예 선고에 대해 항의하는 피켓을 만들었다
ⓒ 불꽃페미액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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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단체들도 사법부의 남성 중심적 시각에 문제를 제기하고 나섰다. 데이트 중 여자친구를 죽인 남성에 대한 집행유예 판결이 나온 직후, 한국여성의전화는 성명을 내 "재판부는 가해자에게 교정과 재발 방지를 위한 최소한의 처분조차 하지 않은 채 '정상적인 사회구성원'으로 돌아갈 기회를 주었다. 피고인에게 지극히 공감하며 용서하고, 피고인을 위해 할 수 있는 조처를 다 한 것은 다름 아닌 재판부이다"라며 "여성 폭력 가해자들의 변명들에 공감하고 이를 받아쓰는 판결들은 당장 사라져야 한다"며 사법부를 규탄했다.

여성단체 '불꽃페미액션'도 30일 오전 11시 의정부지법 앞에서 '여성살해가 집행유예면, 판사도 공모자입니다!'라는 제목으로 사법부를 비판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불꽃페미액션은 "사법부는 중립적이지 않다"며 "지속적인 데이트 폭력, 죽을 때까지 때리는 행위는 우발적인 범행이 되고, 자백을 한 초범 여성 가해자의 범죄는 왜 계획적이고 반인륜적인 범죄로 둔갑하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이들은 "여성의 피해에 공감하지 못하고 가해 남성에 이입하여 판결을 내리는 사법부를 규탄한다"며 "사법부의 젠더감수성 교육을 의무화하고, 여성 혐오 범죄 부서를 신설하며, 남녀동수판사제를 실시하는 것"을 대안으로 제시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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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마이뉴스 박정훈 기자입니다.

오마이뉴스 장지혜 기자 입니다. 세상의 바람에 흔들리기보다는 세상으로 바람을 날려보내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