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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장애인인 필자는 6년 전, 한 대형 쇼핑몰에서 처음으로 무인점포를 경험했다.
 시각장애인인 필자는 6년 전, 한 대형 쇼핑몰에서 처음으로 무인점포를 경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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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장애인인 필자는 6년 전, 한 대형 쇼핑몰에서 처음으로 무인점포를 경험했다. 평소 쇼핑을 좋아해 백화점이나 아울렛을 자주 들르곤 하는데 무인점포는 난생처음 겪는, 그야말로 신세계였다. 무인점포란 점원 없이 쇼핑부터 결제까지 오롯이 고객이 혼자 하는 시스템을 뜻한다. 필자는 깜짝 놀랐지만 한편으로는 두려운 마음이 앞섰다. 쇼핑뿐만이 아니라 점차 실생활에 도입될 무인 시스템을 사용하는 게 시각장애인에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12월, 필자는 영화 <1987>을 보기 위해 CGV 영화관을 찾았다. 필자가 찾은 영화관뿐만 아니라 요즘 웬만한 대형 멀티플렉스 영화관은 인력을 대거 줄이고 무인시스템을 도입하는 추세다. 역시나 많은 사람들이 무인 결제기를 통해 보고 싶은 영화를 고르고 결제를 하고 있었다.

무인 결제기가 있으니 대기시간도 대폭 줄었고 영화를 고르고 결제까지 하는데 시간은 1분도 채 걸리지 않는 듯 했다. 하지만 필자의 경우는 다르다. 직원의 도움 없이는 영화, 시간, 좌석 어느 것 하나 쉽게 고를 수 없다. 할 수 없이 대기표를 뽑고 앉아있을 수밖에 없었다. 번호표를 뽑고도 20여 분가량을 대기한 후에야 직원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사회적 약자를 배제한 최신 시스템?

어느 식당에 설치된 무인결제기.
 어느 식당에 설치된 무인결제기.
ⓒ 조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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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에겐 외식 역시 쉬운 일이 아니다. 지난 1월 21일 일요일, 필자는 활동보조인과 함께 한 우동 전문점을 찾았다. 이 가게는 번화가에 적어도 1곳 이상 점포가 있을 정도로 인기가 많은 우동 체인점이었다. 이곳 역시 무인주문 시스템을 도입한 상태였다. 무인결제기에서 고객이 직접 메뉴를 선택하고 결제까지 마치면 점원이 음식을 가져다주는 시스템이었다. 시각장애인을 위한 음성 안내 시스템 등이 포함되지 않아, 이용에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한 직원에게 물어보니 무인 결제기 사용에 익숙하지 않은 고객에게는 직원이 옆에서 주문을 도와준다고 했다. 하지만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신용카드를 맡기고 결제까지 도움받아야 하는 일이 여간 불안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게다가 손님이 몰리는 점심시간이나 휴일의 경우, 과연 필자 같은 장애인이 점원의 도움을 받을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김창화 구로나눔장애인자립센터 대표는 "실제로 무인결제기 사용이 힘든 장애인들이 종종 피해를 호소하고 있다"며 "지나가던 사람에게 결제를 부탁하고 카드를 맡겼다가 카드를 들고 가버려 큰 피해를 당할 뻔한 사례도 있다"고 전했다.

무인시스템은 경영자 입장에서는 인건비 등 각종 제반 비용을 절감할 수 있는 효과적인 시스템이다.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또 다른 장벽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말하고 싶다. 필자 같은 시각장애인뿐만 아니라 노인이나 아동 등 사회적 약자에게는 불편을 넘어 무인시스템 서비스에 접근조차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무분별한 무인시스템 도입에 앞서 조속한 대안이 먼저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예를 들면 무인 결제기의 경우 음성이나 점자서비스를 지원해 장애인들도 이용하기 쉽게 해야 하며 불편을 만회할 수 있는 방안을 연구해야 할 것이다. 무인점포 역시 최소한의 인적 자원을 투입해 사회적 약자의 서비스 이용을 도와야 할 것이다.


태그:#시각장애인, #무인주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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