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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비혼, 돌아온 비혼, 자발적 비혼 등 비혼들이 많아진 요즘, 그동안 ‘비혼’이라는 이유로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다가 조금 더 또렷하고 친절하게 비혼의 목소리를 내고자 용기를 낸 40대 비혼의 이야기입니다 [편집자말]
 마흔여섯 살의 백수 싱글녀라니. 망망대해에 뚝 떨어진 기분이었다.
 마흔여섯 살의 백수 싱글녀라니. 망망대해에 뚝 떨어진 기분이었다.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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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 전, 나는 마흔한 살이라는 늦은 나이에 '방송작가'라는 새로운 직업에 도전했다. 거의 10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어렵게 합격하기도 했고, 더 이상 이력서를 쓸 일이 없었으면 하는 마음에 속된 말로 온몸을 불사르며 일했다.

그렇게 4년쯤 지났을까. 겨우 정규 프로그램을 맡아서 일하고 있었는데, 개편 때를 맞아 담당 PD가 바뀌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프로그램에 어느 정도 적응을 했다고 생각했기에 내 자리에 대한 걱정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아무래도 분위기가 이상했다. 육감이 발동해서 내가 먼저 조심스럽게 물었다.

"저는 계속 가는 건가요?"

그러자 PD는 원고 뭉치를 정리하며 뭔가 결심한 듯 말했다.

"물어봤으니 말해야겠네요. 사실 함께 일하고 싶은 작가가 따로 있어서 타진 중에 있습니다."

그 말인즉슨, 나는 아웃이라는 뜻. 순간 멍했다. 너무나 불친절한 해고 통보였지만, 그래도 이 직업의 특성상,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조용히 그리고 즉각적으로 물러나야 한다.

해고 선고를 듣고, 집으로 오는 길, 지난 시간들이 머릿속에서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생존하기 위해 땅개처럼 박박 기었던 시간들이 억울하다며 속에서 아우성을 치고 있었다. 마흔 다섯 살. 쌩쌩 돌아가지 않는 머리를 그저 노오오오력으로 어떻게든 극복하려고 하얗게 불태우다가 이제 좀 적응했다 싶은 그 순간에 잘린 그 황당함이란!
    
게다가 마흔여섯 살의 백수 싱글녀라니. 망망대해에 뚝 떨어진 기분이었다. '열심히 하면 잘 돼야 한다'는 룰이 실제 삶 속에서는 종종 삑사리를 낸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당할 때마다 당황스럽고 아픈 건 어쩔 수 없다. 친구들이나 선배들도 말은 안 하지만 얼굴에는 선명하게 쓰여 있었다.

'너 이제 어떡하니?' 

<섹스앤더시티> '캐리' 언저리라도 갈 줄 알았는데

 적어도 40이 넘은 싱글녀라면 <섹스 앤 더 시티>의 '캐리' 정도까지는 아니어도, 그 언저리는 가야 하는 것 아닌가? 뭐 그런 가당치도 않은 이미지를 갖고 있었던 것 같다.
 적어도 40이 넘은 싱글녀라면 <섹스 앤 더 시티>의 '캐리' 정도까지는 아니어도, 그 언저리는 가야 하는 것 아닌가? 뭐 그런 가당치도 않은 이미지를 갖고 있었던 것 같다.
ⓒ 시네마서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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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만 넘어도 퇴물 취급하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마흔 다섯을 넘긴 여자를 환영해 주는 곳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다고 카페를 하거나 치킨가게를 열 돈은 물론, 능력도 없었다.

현실적인 문제보다 마음을 힘들 게 한 건, 결혼도, 연애도, 일도, 모두 실패한 인생 같다는 자괴감이었다. 게다가 바닥에서부터 다시 시작하자고 하기엔 46이라는 나이가 어찌나 무겁던지...

'어쩌자고! 언제! 나이를 이렇게 먹은 거니?' 

하지만 이미 먹은 나이를 뺄 수도 없고, 아닌 척 감출 수도 없고, 그저 무거운 나이를 부여잡고 다시 일어나는 것 외에 뾰족한 수도 없었다. 독립한다고 대출받은 대출금도 갚아야 하고, 또 스스로를 먹여 살려야 하는 1인 가족의 가장이니까 어떤 일이든 해보려고 여기저기 이력서를 제출했다.

결과는 광속탈락! 대학을 졸업한 이후로 열심히 살아왔건만, 내 이력서는 더 이상 누구의 이목도 끌지 못했다. 이쯤 되면 사회가 나의 가능성 자체를 지우개로 지워버리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이런 일이 쌓이자 언제부터인가 아무도 나에게 "앞으로 뭐 할래?"라고 묻지 않았다.

나는 비굴할 정도로 움츠러들었고, 어느새 남들은 관심도 가지지 않는 내 모습과 처지에 지나치게 신경을 쓰고 있었다. 적어도 40이 넘은 싱글녀라면 <섹스 앤 더 시티>의 '캐리' 정도까지는 아니어도, 그 언저리는 가야 하는 것 아닌가? 뭐 그런 가당치도 않은 이미지를 갖고 있었던 것 같다. 아마 그 정도는 되어야 어디 가도 꿇리지 않고 무시당하지 않을 거라고 여겼던 모양이다.

하지만 내 현실은 어느새 망가진 몸매, 정신차려보니 늘어진 피부, 넓어진 모공, 푹 퍼지는 몸매, 염색을 안 하면 머리를 귀 뒤로 넘길 수 없을 만큼 많아진 흰머리, 게다가 백수! 아, 난 완벽한 루.저.였다.

나를 소독해준 말, "괜찮다"

어떤 누구도 내 삶을 함부로 평가하거나 판단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내 스스로 '루저'라는 낙인을 허용해 버리고 말았다. 생각해 보면 사회, 타인의 시선과 기준에 나를 욱여넣어서 벌어진 참사였다. 비참한 감정 때문에 왜곡되어버린 시선이 스스로를 찌르는 칼이 되어 있었다. 내가 살려면, 먼저 칼을 버리고 상처부터 보듬어줘야겠다 싶었다. 그때 소독해주는 말이 "괜찮다"였다.

처음에 친구들이 그렇게 말할 때는 '넌 안 당해봐서 몰라' '난 안 괜찮다는데 너가 왜 괜찮다고 그래?'하면서 그 말들을 힘차게 밀어냈다. 그런데 그 말을 거부하거나 받아들이는 건 온전히 내 선택이었다. 선택에 대한 책임은 내 몫이고. 살고 싶어서, 정말 살고 싶어서 나는 나에게 "괜찮다"고 말해주기 시작했다.

"백수여도 괜찮아."
"실패해도 괜찮아."
"이쯤에서 내 운명이 잠시 쉬고 다음 라운드를 준비하라고 쉬는 종을 쳐준 거야."
"그동안 열심히 일하느라 수고 많았어."

스스로한테 더 이상 채찍질하지 않고, 탓하지 않고, 괜찮다고 말해주는 것은, 묶인 마음을 풀어주고 상처를 아물게 하는 힘 있는 위로였다. 밑바닥으로 추락했다면, 섣불리 오르려고 하기보다 먼저 부러진 날개를 보살펴 줘야 한다. 그래야 툭툭 털고 다시 날 수 있으니까.

이력서의 단 몇 줄에는 담을 수 없는 수많은 나의 이야기들을 소중하게 여기기로 결심하면서, 루저나 위너가 아닌 그냥 '나'로 살기로 결심하면서 나는 자책과 절망의 늪에서 헤어 나올 수 있었다.

또 모든 문이 다 닫혀 버린 것 같아도 견디다 보면 솟아날 구멍은 생기는 법. 다행히 정기적으로 자유기고를 하는 곳이 연결되어서 많이 벌겠다는 욕심만 부리지 않으면 괜찮은 정도의 일을 하고 있다. 노후 준비를 위해 공인중개사 자격증 공부를 시작하기도 했다.

누구나에게 삶은 무겁지만 48살 싱글녀의 삶도 만만찮게 무겁다. 그 무게를 견디기 위해서는 "괜찮다"고,  "늦지 않았다"고 말해주어야만 한다. 그것을 이제야 배우고 있지만 그래도 괜찮다. 안 괜찮은 이유가 하나도 없지 않은가. 그래서 난 오늘도 내가 꿈 꿨던 40대와는 거리가 있지만 '괜찮은' 하루를 성실하게 살아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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