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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이 땅의 평범한 여성들을 강제로 전쟁터에 끌고 가 위안부라는 이름 아래 성노예로 만든 일본의 인권 유린을 비판하고, 피해자들의 의사와 상관없이 졸속으로 체결한 한일위안부 합의의 폐기를 촉구하는 의미에서 전국 각지에 세워진-지금도 세워지고 있는- 평화의 소녀상을 답사한다. 

이는 '국가'라는 이름 아래 조직적으로 전개된 여성 인권 유린과, 아직도 이를 공식 인정하지도, 반성하지도 않는 일본 정부에 대한 분노를 표현하는 필자만의 평화적인 방법이며, 부끄럽고 잘못된 과거를 바르게 청산하고 더 나은 미래를 향해 나아가고자 하는 이 사회의 여러 노력에 작은 보탬이 되고자 하는 의지의 표현이다.

단, 그냥 찾아다니기만 해서는 의미가 적다고 보고, 가능하면 소녀상이 세워진 지역의 역사성과 소녀상 건립이 갖는 의미, 소녀상의 모습과 상징성 등을 다양하게 알아보고 그 의미를 탐색하고자 한다. (이는 단순한 평화의 소녀상 답사를 넘는 지역 답사의 의미도 갖게 됨을 의미한다) - 기자 말

서울 성북동 가로공원에 나란히 앉아 있는 한중 평화의 소녀상
▲ 한중 평화의 소녀상 서울 성북동 가로공원에 나란히 앉아 있는 한중 평화의 소녀상
ⓒ 홍윤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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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제2차 세계대전 기간 중 일본은 최소 20만 명 이상의 중국인 여성들을 위안부로 동원했다고 한다. 2016년 10월 22일 중국 상하이에 있는 상하이 사범대학 캠퍼스 원이안루 앞에 한중 평화의 소녀상이 세워졌는데, 이에 상하이 주재 일본 총영사관은 상하이 사범대학에 우려의 뜻을 전달했고, 일본 외무성은 도쿄 주재 중국 대사관에 우려를 전했다. 

② 태평양전쟁 중에 필리핀을 점령한 일본군은 1942~1945년 약 3년간 필리핀 여성 1000여 명을 위안부로 강제 동원하였다. 2017년 12월 9일 필리핀 마닐라시티 로하스대로의 산책길에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 여성상이 건립되었다. 일본 정부는 철거를 요구하고 있다.

③ 1942년 네덜란드령 인도네시아를 점령한 일본군은 네덜란드 거주민 및 전쟁포로 수용소를 설치하고 이곳에 수용된 네덜란드 여성들을 위안부로 강제 동원하였다. 200~300명이 동원되었고, 적어도 65명은 명백하게 강제 동원되었음이 입증되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일본 정부도 마지못해 인정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로마인 이야기>로 우리나라에도 유명한 일본 작가 시오노 나나미는 "네덜란드 여자도 위안부로 삼았다는 이야기가 퍼지면 큰일"이라며 "그 전에 급히 손을 쓸 필요가 있다"는 기고문을 일본 잡지 <문예춘추>(2014년 10월호)에 올렸다. (서울대 서양사학과 주경철 교수는 그녀의 저작들과 기고문에 나타나는 극우적 성향을 꾸준히 비판해 왔다. <테이레시아스의 역사> <모험과 교류의 문명사> 참고)

우익 성향이 강한 그녀의 글을 통해 일본은 위안부 문제에 대한 진정한 사과나 반성으로 과거사를 정리하기보다는 국제적으로 나쁜 소문이 -특히 서양인들에게- 퍼지는 것을 두려워하며 발뺌하거나 서둘러 덮으려고만 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일본 우익세력의 민낯이다.

위안부 문제는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다. 따라서 피해국과의 공조와 협조를 통해 더욱 널리 알릴 필요가 있다. 일본이 두려워하는 것은 바로 이 부분이다. 

한국과 중국의 네사람의 예술가가 공동 작업한 소녀상. 서울 성북동 골짜기 들어가는 입구에 자리하고 있다.
▲ 한중 평화의 소녀상 한국과 중국의 네사람의 예술가가 공동 작업한 소녀상. 서울 성북동 골짜기 들어가는 입구에 자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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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지하철 4호선 한성대입구역 6번 출구로 나가면 성북동 올라가는 도로가 나온다. 이 도로를 따라 20m만 가면 왼쪽에 버스 정류장이 있고, 오른쪽으로 가로공원이라는 작은 공원이 있다. 이 공원에 한·중 평화의 소녀상이 있다.

이곳은 과거 한양도성으로 둘러싸인 이른바 '사대문' 바로 바깥에 위치한 지점으로, 서울 시내(혜화동)에서 혜화문을 넘어가 미아리, 수유리를 거쳐 의정부로 가는 주요 교통로상에 위치한다.

이곳에서 북쪽으로 북한산 방향을 향해 깊이 파인 골짜기가 과거 성북동 지역이다. 한양 도성에 바로 붙은 풍경 좋은 골짜기여서인지 과거 일제 때 이후로 많은 문화예술인들이 살았던 비싼(?) 동네이기도 했다.

하지만 일제 때 남향은 총독부 방향이라며 북향으로 집을 지은 만해 한용운의 심우장이 남아 있고, 일제의 문화재 약탈에 대항하여 우리의 문화재를 사들여 자신의 집터에 미술관을 세운 간송 전형필의 집터(간송미술관)가 있는 걸 보면 '문화의 혼'이 살아 있는 동네라고 해야겠다. 

한·중 평화의 소녀상은 2015년 10월 28일에 세워졌는데, 성북평화운동위원회(한·중 평화의 소녀상 건립과 인간 존엄을 위한 성북평화운동시민연대)가 주관하여 제막식을 거행하였다. 정면에서 보았을 때 왼쪽이 한국인 소녀상, 오른쪽이 중국인 소녀상이다.

이 소녀상은 미국 LA 외곽 글렌데일시에 세워진 평화의 소녀상을 보고 영감을 얻은 중국 청화대 미술학과 교수 판위친과 제작자 레오스융 두 중국인 예술가가 원제작자인 김운성, 김서경 작가 부부에게 제안해 만들어졌다. 한국인과 중국인 두 나라 예술가들이 공동으로 제작한 작품이라는 점에서 그 의미가 남다르다.

더구나 2016년 10월 22일 중국 상하이에 있는 상하이 사범대학 캠퍼스에 똑같은 소녀상이 한 쌍 더 세워졌으니 바다를 건너 그 의미를 나눈다는 점에서 더욱 기특하다.

중국인 소녀상은 굳게 쥔 주먹과 옷이 걷히면서 드러난 팔목 부분 때문에 좀 더 강한 느낌을 준다
▲ 중국인 소녀상 중국인 소녀상은 굳게 쥔 주먹과 옷이 걷히면서 드러난 팔목 부분 때문에 좀 더 강한 느낌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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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상을 들여다보자. 일단 두 소녀상이 나란히 앉아 있는 모습이 정겹다. 다른 곳에서는 항상 혼자 앉아 있는 모습이 외로워보였는데, 여기서는 친구가 생겨 든든해 보인다. 그리고 각자의 개성이 도드라져 두 소녀상을 비교하는 즐거움도 쏠쏠하다.

본래 김운성, 김서경 작가의 소녀상 옆에는 항상 빈 의자가 있는데, 중국인 소녀상이 옆자리를 차지하고 있는데도 이 소녀상들 옆에 빈 의자가 하나 또 있다. 이는 다른 아시아 국가의 희생자들을 위한 자리이다. 빈 의자 하나가 무한한 확장성을 갖는 셈이다.

중국인 소녀상은 땋은 머리에 단호할 정도로 팔을 걷고 주먹을 강하게 쥐고 있다. 이 부분 때문일까. 상대적으로 한국인 소녀상이 차분하고 정적으로 보인다면 중국인 소녀상은 더 역동적으로 보인다. 전체적으로 몸이 가늘고 굴곡이 더 많다.

한국인 소녀상 뒤에는 다른 소녀상과 마찬가지로 할머니의 그림자가 있고, 중국인 소녀상 뒤에는 의자로 걸어온 발자국이 있다. 왜 발자국이 있는지는 빈 의자 뒤 바닥에 새겨진 다음의 글이 알려 준다.

한국인 소녀상 뒤의 할머니 그림자와 중국인 소녀상 뒤 발자국이 나란하다.
▲ 소녀상 뒷모습 한국인 소녀상 뒤의 할머니 그림자와 중국인 소녀상 뒤 발자국이 나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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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길을 돌고 돌아 친구를 찾아와 옆에 앉았습니다.
있던 자리에선 말을 못하고 숨죽여 왔습니다.
친구는 이야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다소곳하면서도 진지하고, 잔잔하면서도 진실되게 이야기하는 친구와 같이하고 싶었습니다.
바로 나의 이야기이기도 하거든요.
절대 잊을 수 없는 우리들의 이야기
이제 함께 하려 합니다."

먼저 용기있게 이야기한 친구를 따라 아픔과 상처를 함께 하며 세상을 변화시키고자 찾아왔다는 이야기는 가슴에 큰 울림을 남긴다. 이 글이야말로 한·중 평화의 소녀상이 갖는 의미를 차분하고 낮은 목소리로 크게 이야기하고 있다.

아베 내각에서 일했던 일본의 극우 정치인 나카야마 나리아키(中山成彬)는 과거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일본 여성은 자신이 위안부였다고 누구도 말하지 않는데, 한국 여성은 그러지 않는다. 인종이 다르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이들의 망언에 분노하기보다 용기있게 말하고, 같은 고통을 겪고 같은 공감대를 가진 친구와 협력하여 반성하지 않는 그들을 향해 더 높고 더 큰 목소리로 지속적으로 말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그 비상식적인 험한 입을 좀 다물게 할 수 있지 않을까.

한국, 중국, 필리핀, 대만, 인도네시아, 네덜란드... 미래의 언제인가 모든 국적의 일본군 위안부 희생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절대 잊을 수 없는 이야기를 함께 하는, 인권과 평화를 추구하는 소녀상군이 한 자리에 마련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그리하여 빈 의자가 모두 채워지기를.

한성대 입구역 6번 출구 버스정류장 뒤 가로공원에 소녀상이 위치한다
▲ 성북동 길가의 평화의 소녀상 한성대 입구역 6번 출구 버스정류장 뒤 가로공원에 소녀상이 위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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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답사 정보

자가용를 이용하지 말고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이 좋다. 서울 지하철 4호선 한성대입구역 6번 출구로 나오면 오른쪽에 위치한다.

소녀상 길 건너편에는 오랫동안 빵집의 명성을 누린 나폴레옹과자점(본점)이 있다. 수많은 제빵사를 배출한 서울 빵집의 사관학교로 통하는 집이다. 이 집 크림빵 하나 입에 물고 성북동 답사를 함께 해 보자.

소녀상 앞 버스정류장에서 1111번, 2112번 시내버스를 타면 간송미술관(현재 보존 공사로 휴관중이며,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전시 중), 심우장에 갈 수 있다.

일제의 감시와 억압 하에서도 국보인 청자상감운학문매병, 훈민정음 해례본, 정선의 풍속화 등 다수의 국보와 보물 등 문화재를 살리고 구해낸 간송 전형필의 정신, 시와 불교, 비밀 결사로 일제에 끝까지 저항했던 만해 한용운의 말년 거처인 심우장에 어린 불굴의 의지를 함께 만나는 좋은 한나절 답사 코스가 될 것이다.

만해 한용운이 말년에 머물렀던 거처. 남향의 총독부가 보기 싫어 북향으로 지었다
▲ 심우장 만해 한용운이 말년에 머물렀던 거처. 남향의 총독부가 보기 싫어 북향으로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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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한중 평화의 소녀상 , #성북동 평화의 소녀상 , #한성대입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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